< 악신 사냥 (2) >
태호는 결계 바로 바깥에서 조겐을 관찰했다.
‘저거 결계를 못 넘는 것 같은데.’
예전의 조겐을 보며 생각했던 것 중 하나였지만, 아직 리얼 포스의 이중 맹약은 깨지지 않았고 놈들은 현 상황 결계 밖으로 절대 나올 수 없을 거다.
이유는 하나.
‘결계로 나오는 순간, 역풍을 견딜 수 없게 돼.’
그렇다면.
태호는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크아아아아! 빌어먹을 사티로스! 네놈이 감히 배신을?]
결계 내에서 조겐이 발광을 하고 있다. 허나 놈의 사방을 뒤덮은 20겹의 나락의 절대 구역은 놈을 봐줄 생각이 없는 듯, 사정없이 쇄도하고 있었다.
푸푸푸푸푹!
“야.”
태호가 로만을 불렀다.
-......
로만이 대답이 없었다. 놈은 한마디 더 해 주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넌 일 끝나면 뒈졌어.”
-으...
태호는 결계 밖에서 놈을 빤히 보다가, 이번엔 ‘강화된 어둠의 명령’을 15개 저장한 뒤 10스택을 쌓고 입장했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조겐의 온 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태호는 그를 빤히 보았다.
‘어차피, 천계에서는 나를 감지하지 못 한다는게 밝혀졌고.’
그렇다면 굳이 천상계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가정이 성립한다.
쾅!
조겐이 태호에게 달려들었다.
콰콰콰콰콰콰쾅!
사방에 깔아 둔 강화된 마력 지뢰가 사정없이 터졌다. 하나하나가 조겐에게는 충격인 모양이었다.
[크으으윽! 아니, 아, 아니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놈이 심히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과거의 태호는 그저 비전력 좀 쓸 줄 아는 꼬맹이였을 터다.
허나 지금.
태호는 신력을 사용해, 아주 귀찮고도 강력한 공격을 퍼붓는 사이코로 돌변한 것이다.
‘통한다.’
그 점이 전신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지옥의 어둠 불꽃, 5연발.’
그런 놈에게 지옥의 어둠 불꽃 5연발이 작렬했다.
‘폭사.’
콰콰콰콰콰쾅!
틈을 주지 않고 꽂히는 다음 스킬들.
‘강화된 어둠의 명령, 15연발.’
콰지지지지직!
15연발의 강화된 어둠의 명령은 생명력 99%를 대가로 만들어졌다. 그게 15연발이나 쏘아져 나가, 조겐의 머리에 작렬했으니 놈이 고꾸라지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콰직! 콰직! 콰직!
그 순간에도 나락의 절대 구역이 어둠의 창을 쏟아 내 놈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태호는 남은 신비력으로는 지뢰를 마구 깔아 버린 뒤.
[크아아아앗!]
놈이 지척까지 도달했을 때.
톡!
뒤로 빠져, 결계 바깥에 섰다.
쿠우우우웅-!
놈의 주먹이 결계를 때려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조겐이 질겁할 정도로 놀라는 모습 역시 보였다.
태호는 그런 상황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결계를 있는 힘껏 때렸는지, 결계 전체가 우웅! 우웅! 하고 울었다.
‘아하-’
태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역시나 저거, 결계 부수면 역풍 심하게 맞는구나.’
게다가.
태호는 흘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아직 미동조차 없다. 조겐이 두들겨 맞고 있는데 어떤 제스쳐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즉.
‘이중 맹약 때문에 리얼 포스 내부 사정을 온전히 알 수가 없나 본데?’
그 가정이 성립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역시 조겐을 소환할 때의 표식이다.
천계에서 지상의 일을 모조리 꿰고 있다면, 그런 표식이 필요할 리가 없다. 그냥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판단하면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조겐이 죽을 위기에 처할지 모르는데도 방관하는 천계의 태도이다.
게다가 놈들은 태호의 신비력을 추적하지도 못한다. 이제 태호는 수호자의 힘 3단계를 개방했으니, 더욱 추적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세 번째.
‘여의치 않으면 돌아가면 되잖아?’
헌데 놈은 돌아가지 않고 있다. 아니, 못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것은...
‘이중 맹약을 뚫고 강림한 일종의 패널티.’
그러니까.
‘마음 놓고 죽여도 되겠군.’
태호의 표정이 변했다.
오싹!
문득 조겐은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고오오오-
문득.
결계 너머의 태호가 사라졌다. 조겐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 어디냐!]
어느새 태호는 저편의 결계를 이용해 조겐의 제단으로 돌아와 있었다.
태호는 놈을 보며 빙긋 웃었다.
“역풍 맛을 한번 봐라.”
[뭐, 뭐?]
콰지직!
태호의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간 강화된 어둠의 명령이 조겐의 제단에 작렬했다.
와자자자작!
그야말로 사정없이 박살 나 버린 제단을 보며 조겐의 두 눈이 크게 커졌다.
이내 태호는 바닥에 만들어진 진형에 손을 뻗었다.
‘발동, 창공 세트.’
태호의 팔찌에 저장된 ‘창공 세트 옵션’이 발동되었다.
콰콰콰콰쾃-!
마력포 난사가 시작되었고, 동시에 장착 귀속인 ‘가이아의 가호’로 사용할 수 있는 ‘맹렬한 지진’ 역시 발동했다.
쿠구궁- 쿠궁-
[어, 어, 어어어... 어어! 아, 안돼!]
조겐이 비명을 질렀다.
태호는 진형의 한가운데에서 사이한 빛을 발하는 혼돈의 유산 두 개를 냉큼 챙겼다. 진형이 틀어지고, 뿜어져 나오는 빛은 작살이 나 버렸다.
동시에.
사방을 수놓던 결계가 사라졌다. 그야말로 일순간, 팟! 하는 찰나의 순간 사라졌다.
[어, 어어어!]
조겐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 자식! 무슨 짓을!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태호는 그의 앞에 섰다. 고개를 삐딱하게 꺾은 채 놈을 바라볼 뿐이다.
‘역풍 값을 볼까.’
따각 따각! 따각 따각!
귓가에 양팔저울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놈의 머리 위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심판의 양팔저울]
[균형이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역풍의 강도는 205입니다.]
역풍의 강도는 205.
과거, 볼카노스가 에픽 두 개급 역풍을 맞을 때가 33이었으니 그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막대한 패널티였다.
쩌저저적-
일순간.
조겐의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놈이 눈에 띄게 말라 가고 있었다.
‘저게 균형의 역풍.’
놈은 허우적거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사, 사, 사, 살려 줘!]
놈이 목숨을 구걸한다. 태호는 놈을 내려다보았다.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 이, 이대로면 죽는다... 주, 죽는다아!]
태호가 놈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너도 죽음이 두려운 거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조겐이 고개를 들었다. 놈의 두 눈 가득히 지독한 두려움이 들어 차 있었다.
[사, 사, 살려 주기만 한다면.... 뭐, 뭐든 하겠다! 이, 이대론 안 돼... 나는... 사, 살고 싶어!]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
태호는 그간 쌓여 온 신들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이들도 결국은, 과거의 언젠가는 인간이었던 이들.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 공포는 이들에게도 주효하다. 그저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었을 뿐, 가진 힘이 바뀌었을 뿐.
태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살고 싶다 이거지?”
조겐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호가 그에게 손을 뻗었다.
“무슨 말이든 듣겠다, 이거지.”
‘이건 미친 새끼다.’
조겐은 이가 저절로 딱딱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신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인간일 시절, 그는 동방대륙의 승려였다. 요괴와 귀신을 잡으며 퇴마행(退魔行)을 나선 동방대륙 최강의 승려.
그 시절에도 한 번 느껴 본 적 없는 압도적 공포가 밀려오고 있었다.
‘이건... 귀신왕(鬼神王)보다 더 악독한 놈이다.’
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악마에게 걸리면 국물도 남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편이 오히려 낫다. 죽으면 그걸로 끝장이니까!
“말해. 무슨 말이든 듣겠다, 이거지?”
악마의 속삭임 같다. 허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조겐은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힘을 느꼈다. 균형의 역풍이 매우 강력하다. 이중 맹약을 뚫고 대륙에 강림한 대가를 모조리 받는다면 그걸로 끝장이다.
별수 없다. 그는 죽기 싫어 신이 된 사람이었다. 승려로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등선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속세를 벗어나지 못 했던 파계승이다.
[듣....겠다.]
진실의 눈이 정보를 알려 주었다.
-진실.
“좋아.”
촤라라락-
태호의 손에서 시커먼 쇠사슬이 뿜어져 나왔다.
[신의.... 주박!]
태호의 주박이 조겐을 뒤덮었다.
촤라라라라라라락-!
조겐은 자신을 속박하려는 주박에 저항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팔.’
치이이이익-
어느새 조겐의 온몸에 사슬이 감기고, 문신으로 각인되었다. 조겐은 동시에 자신에게 가해지는 역풍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어라? 이리도 빨리?’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주박으로 묶였어도 역풍을 온전히 상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헌데...
태호는 주박을 온전히 건 조겐을 보며 씩 웃었다.
펑!
조겐이 구슬로 변했다.
-이런 개 등신 같은 땡중 새끼! 칠칠치 못하게 저런 놈한테 잡히는 거냐?
동시에 조겐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사티...로스... 이런 개호로자식! 네놈이 기어코 배신을 해 버렸구나!
-애초에 빌어먹을 네놈 새끼가 블러드 아일랜드만 잘 해결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 개 등신 땡중 새끼. 네놈 덕분에 아주 잘 됐군, 다 배렸다! 차라리 뒈지질 그랬냐?
-세상 살다 보니 배신자가 오히려 배짱을 튕기는구나! 내 똥물에 튀겨도 모자랄 호로 썅놈을...
두 놈이 듣기만 해도 섬뜩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말싸움을 벌였다.
태호는 두 개의 구슬을 번갈아 가며 내려다보았다.
하늘에 낀 먹구름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결계도 사라졌으며 조겐의 제단은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태호는 조겐의 제단을 마저 부수었다.
빠직! 빠지직!
이제 조겐의 제단이 가루가 돼 버렸다.
-아흑, 아흐흑...
조겐은 그것을 보는게 슬픈 듯 연신 신음을 했다. 태호는 두 개의 구슬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꾸아아아악!
-어어어어억!
제단이 있었던 흔적조차 남지 않게 신비력을 주입했다. 신비력이 머금어지자, 작은 돌멩이들이 모래처럼 변했다.
당초의 목적은 조겐을 죽이고 신의 능력 하나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허나, 이쯤 되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의외로 쓸만할 지도.’
일단 데리고 다니며 정보를 캐거나 다음 악신을 찾든 하고, 나중에 처리해도 늦지 않는다.
“후우...”
태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쨍- 한 태양 빛이 느껴졌다.
......광휘의 궁전.
태호가 간만에 돌아올 무렵, 광휘의 궁전 인근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아! 왔어?”
근처는 완전히 개간이 돼 있다. 벌써 집들이 수십 채는 들어서 있는 것이 신기했다.
“어... 이것들은?”
“보시다시피.”
라간은 아주 흡족한 얼굴을 했다. 주민들은 이제 비좁은 광휘의 궁전이 아니라, 근방의 마을의 집에 하나둘 들어서 있었다.
라간이 입을 열었다.
“아, 그나저나. 이거 그래서, 슬슬 영주를 선택해야 하걸랑.”
“영주?”
“엉. 이게 규모를 이쯤 짓다 보니까 시스템이 떠올랐는데, 영주를 선정해야 한 대. npc는 안되고 유저만 된다는거 보니까...”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해.”
“뭐? 정말? 그래도 돼?”
태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네가 다 했으니, 당연히 네가 해야지. 네 거야.”
어쩐지 녀석은 감격한 얼굴이었다.
“고마워! 그럼 난 우리 마을을 카지노로 만들어 볼까 해.”
“......”
카지노라.
태호는 라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간 고생 많이 했겠네.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부담 없이 말하고.”
“옛서!”
라간이 아주 신난 눈치였다.
태호는 천천히 새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대로 태호의 자본력과 뛰어난 무 대륙의 노동력, 그리고 드워프들이 있는 한 노펜시아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나쁘지 않군.’
그런 생각을 하며, 태호는 광휘의 궁전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로키의 제단 앞에 섰다.
< 악신 사냥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