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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40화 (140/194)

< 진로상담 >

로키는 태호를 보고, 두 개의 구슬을 보았다.

한참이나 번갈아 보던 그는 두 눈을 깜빡였다. 이내, 저편을 보는 척하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와... 이게 대체 뭔 일이야.]

그는 황당 반, 감탄 반의 목소리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태호는 그를 보며 씩 웃었다.

[그거 조겐이지?]

“보시다시피.”

[건방진 땡중 자식, 호되게도 당하는구나. 쌤통이다.]

로키는 구슬을 향해 조롱하듯 말했다.

-크윽... 저 애미 애비도 없는 망나니가 아주 건방지다!

태호는 조겐이 시부렁대는 소리를 듣고 로키에게 전달해 주었다.

“로키 님이 애미 애비도 없는 망나니랍니다.”

[오... 잠깐 줘 볼래?]

-어, 어어, 안돼!

로키는 조겐의 구슬을 쥐고 사정없이 흔들었다.

[죽어라, 요 땡중.]

-꽤애애애애액!

한참 동안 화풀이를 한 뒤, 태호는 조겐과 로만을 인벤토리창에 집어넣었다.

태호는 그에게 입을 열었다.

“신력으로 결계를 쳐 주십시오.”

[......그러지.]

결계가 완성되었다.

“보셨듯, 앞으로 저는 악신 사냥에 나설 겁니다. 상위 신들은 혼돈의 힘과 결탁해 있다는 것을 로키 님도 아시겠죠?”

[......그래서?]

이제는 비밀거리도 아니라는 듯 태호가 직접 말했다. 그러자, 로키 역시 태연하게 받았다.

“앞으로 저를 도와주실 거라면 비밀 하나를 알려 드리고, 아니면 말겠습니다.”

태호가 담담하지만 배짱 있게 나섰다. 로키는 물끄러미 태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준비가 됐나 보군?]

“그렇습니다.”

[흐음... 그래. 읊어 보아라.]

로키는 그렇게 말한 뒤 태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태호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말했다.

“저는 회귀자입니다.”

[......]

로키는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수호 일족의 힘을 받아 회귀했죠.”

[그렇군...... 이제 이해했다.]

로키답게 이해가 빨랐다. 그제야 모든 것을 알겠다는 듯, 그는 고개를 까닥였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었다. 한편으로는... ‘상위 신의 사도 중 하나가 아닐까’란 생각을 한 적도 있다만.]

그가 물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수호자, 아우슈리네 님이 힘을 쓰셨다는 말이겠군. 맞느냐?]

“예.”

[휴우... 기어코 이런 날이 오고 말았군.]

로키는 피곤하다는 듯 두 눈을 비볐다.

“저를 돕기로 약속하신 겁니다.”

[그러마. 이제 와 어쩔 도리가 없군.]

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호는 그 자리에서 볼카노스를 불렀다.

[로키...]

볼카노스가 그를 보았다. 로키는 빙긋 웃으며 볼카노스에게 물었다.

[유배지는 어떠셔?]

[지낼 만하더군.]

태호는 볼카노스에게 말했다.

“로키 님께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로키 님을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볼카노스는 빙긋 웃었다.

[그랬구나. 로키는 내 오랜 벗이기도 하다.]

태호는 그제야 로키가 유독 태호에게 호의적으로 굴었던 이유 중 하나를 깨달았다.

볼카노스가 로키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 일은 매우 조심스럽게 행해져야 한다. 너는 일국(一國)을 책임지는 몸... 괜찮겠나?]

로키가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어쩌겠어? 그간 도와준 것도 있으니, 손 뺀다고 나중에 파토 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리도 없고.]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이상하게도 로키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에휴. 이번 회차는 여러모로 배배 꼬였군.]

로키가 긴 한숨을 내쉬면서도 주먹을 내밀었다. 볼카노스는 그런 로키의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맞부딪혔다.

‘됐다.’

가슴 한편이 뿌듯해진다.

이로써 태호는, 믿을 수 있는 세 명의 신을 얻은 셈이다.

볼카노스, 카실론, 로키.

[그나저나, 네메데스 님을 만났다.]

[네메데스? 살아 있었나 보군.]

[최근 네메데스 님조차 천계의 상위 정보를 얻지 못하셨다더군. 아무래도 상위 신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정도만 들었다.]

태호도 카실론에게 이것저것 들었기에 묵묵히 듣고 있었다.

[네메데스조차 접근하기 힘들다면... 아무래도 순환의 고리 때문에 제대로 똥줄이 타나 본데.]

로키가 팔짱을 끼며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노친네들, 아무튼 그렇게 오래 살아 놓고 더 살고 싶은 건가. 난 이제 오래 사는 것도 지겹던데.]

그들은 한동안 두런두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문득 로키가 태호에게 물었다.

[그래서, 다음 계획은 뭐냐?]

태호는 그런 볼카노스와 로키를 두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제가 기억하고 있는 악신들부터 하나하나 처리해 볼 생각입니다.”

[악신들? 흠...]

“그들을 소환하는 법은 사티로스가 알 겁니다. 또한 저는 수호자의 힘을 가지고 있기에 천계에서 추적당할 일도 없죠. 몇몇 신들을 잡아, 그들의 힘을 제 것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수호자라 이거지.]

로키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잔머리의 대왕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책사 역할을 맡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지금, 사티로스를 사로잡은 상태고.]

로키의 두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평소에는 그저 실없는 웃음으로 보일 테지만, 지금의 눈빛에서 태호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럼 내게 한 가지 묘책이 있다.]

“뭔가요?”

태호가 물었다.

[지금 상위 신들과 혼돈의 권좌가 협력 상태라는 건, 알음알음 천계에도 꽤 퍼진 이야기다. 상위 신들을 옹호하는 세력이 제법 많기도 하지.]

많다.

사실, 따져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의 세계에서도 무수히 많은 황제들이 불로장생을 바랐던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싫다. 또, 여러 차원을 전전하며 희생양을 늘리는 것도 이젠 질렸다. 그래서 이쪽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다. 입 밖으로 의견을 내기는 힘들겠지만 말이야... 어지간히 건드려서는 크게 답도 없다.]

로키가 짧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그들의 동맹 체계에 균열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좋겠군.]

“동맹에 균열을?”

태호가 반문했다.

[그래. 우선 악신 몇 놈을 잡아 족쳐 버리는 게 좋겠군. 계획은 내 차차 생각해 보마.]

로키의 말은 간단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군요. 어떤 악신을 잡아, 어떤 능력을 흡수할지가 고민입니다. 볼카노스 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일단 조겐은 사로잡은 채 당분간 놔둬 볼 생각입니다. 캐낼 정보도 있을 듯하고요.”

[그래. 그건 내 생각도 그런데, 조겐 놈이 옛날부터 윗분들 앞잡이처럼 움직이던 놈이라 아는 것도 많을 거다. 그럼 악신 리스트를 뽑아 볼까?]

로키의 말을 볼카노스가 받았다.

[흐음... 악신이라.]

볼카노스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보아 하건대, 네게 마법 쪽으론 눈에 띄게 부족한 점이 없다.]

[그건 나도 동감이네.]

로키가 고개를 까닥였다.

[너 어차피 쟤 권능 몇 개 더 받으면 돼. 마법 쪽은 크게 문제가 없을 거야. 에픽 모으는 게 조금 난관이긴 한데, 그건 알아서 해야지 별수 있어?]

“......”

맞는 말이었다.

[문제는 육탄전 쪽에 있지. 너 아마 원상태 조겐 정도 되면 쪽도 못 쓰고 죽을 거다. 근접해 온 놈들에게 대응할 효과적인 방법이 우선이다. 목숨을 일단 늘리고, 움직임으로 놈들과 대적할 수 있어야 해. 맞서서 주먹질하라는 게 아니고, 걔들 움직임 피할 정도는 돼야지. 그치 볼카노스?]

[음, 일리 있다.]

[그렇다면, 우선 로두스 정도를 먼저 잡아 볼까?]

[악신 로두스 말이군. 흠,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쓸모가 있겠군.]

[아니면 프나틴이나 아자무스 같은 애들도 있지. 걔들 다 체술 쪽이지?]

[아자무스는 검이고, 프나틴은 봉술이었지. 둘 다 까다롭고, 몸놀림이 매우 날쌔다.]

[좋아. 그럼 걔들 중 만만한 애는 로두스니까, 그거 먼저 잡아 족쳐 볼까?]

[그랬었지.]

[로두스 잡아서 한번 파워 업 하고, 아자무스로 가자. 프나틴은 까다로우니 뒤로 미루자고. 내 로두스는 수소문해 보마.]

“......”

두 신들이 나누는 대화가 약간 이상했다. 태호는 두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어... 뭐라고 하고 싶은 건 아닌데요.”

[음?]

[뭔가?]

두 신들이 태호를 보았다

“저기, 일단은 동족 사냥을 하는 건데 너무들 태연하신 것 같아서요...”

로키는 별것 아니라는 듯 코를 후볐다.

[천계에서도 세력이란 것이 있다.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하고, 뭐 그렇다. 신이 신을 죽이는 것은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다. 당장 얼마 전에도 나는 로두스와 생사를 걸고 싸웠었으니까.]

“......”

그렇다.

태호는 그간 그 부분을 간과했다. 신들끼리도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있고, 전쟁을 벌이거나 목숨을 걸고 결투를 하기도 한다.

[태생이 다들 인간이니 뭐 당연한 일이겠지. 지상의 역사가 그러하듯, 천계의 역사도 뭐 다를 게 없다. 무튼. 그럼, 일단 로두스부터 조지자.]

태호의 진로 설계자들이 서로 결론을 내렸다.

“흠... 헌데, 새로운 협력자들을 만드는 부분은 어찌할까요?”

[협력자라.]

“예를 들어, 속성의 지배자들 말입니다. 볼카노스 님 말고도 다섯 분이 더 계십니다. 그분들에게 접촉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네 생각은 어떻냐?]

로키의 물음에, 태호가 생각했던 부분을 말했다.

“아직 아군을 마구 늘릴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일단은 기밀 사항이고, 다른 분들께는 제가 신뢰를 가질 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들은 유배 생활을 천 년이나 지속해 왔다. 눈앞의 저 녀석처럼... 한결같은 신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알겠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우선.

볼카노스의 다음 권능을 하나 부여받기 위해선 에픽 10개가 필요했다.

10개!

그 천문학적인 개수를 보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태호의 머릿속에는 아직 무수히 많은 리얼 포스의 에픽들이 생생하다. 그간은 시도해 보기 힘들었던 에픽들도, 이제는 크게 여유를 갖고 해 봄 직하다.

가장 많은 에픽을 단시간에 얻을 수 있는 곳은, 단박에 떠오르는 곳이 단 한 군데뿐이다.

‘하늘성!’

태호가 엘린의 공중정원에 도착할 무렵, 엘린은 열심히 만들어 낸 새 부하들을 시험가동 중에 있었다.

“아, 왔어?”

엘린은 기분이 아주 좋은 듯 태호를 보며 방긋 웃었다. 웃는 얼굴은 참 예쁜데, 입이 험한 게 문제라고 생각하며 태호가 운을 떼었다.

“하늘성 가자.”

“갑자기?”

“응.”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태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감각 세계에 들어 서 있는 태호의 이마에, 그녀의 손이 느껴졌다.

따스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태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디 아프니? 거길 갑자기 왜 가? 정신병 같은 거 도졌니?”

진지한 얼굴로 상스러운 말을 하는 그녀에게 태호가 씩 웃어 보였다.

“거기 볼일이 생겼거든.”

“볼...일?”

태호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하늘의 비기, 참암검(?巖劍), 마법의 깃털, 운다스타의 신발이 필요해졌어.”

엘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하나하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하며 말했다. 그리고 흠칫 놀라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너 미쳤어? 하늘성에 있는 보물들이잖아? 그거 귀족들이 꽉 쥐고 있는 가보들이잖아! 아니...”

‘잠깐만.’

문득 엘린은 고민되는 표정을 지었다.

‘저거, 어쩌면 하늘성에서도 통할지도?’

그렇다면 대박이었다.

엘린의 가문은 하늘성에서 파문당한 몰락 귀족 가문이다. 그녀 역시 하늘성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안 되면?’

그럼 죽는다.

“그, 그러면... 나한테 뭐 줄 건데?”

태호는 빤히 엘린을 보다가 대답했다.

“하늘성 너 줄게.”

“......”

그때.

카르르르르릉-!

하늘 저편에서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다.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풍선 같은 형태의 몬스터였다.

[Lv. 550]

[정예][월드보스]

[구름 위의 지배자, 아르젠타비스]

끼아아아아악!

“아이 씨발! 바빠 죽겠는데 저건 또 뭐야!”

엘린이 화들짝 놀라 조종석으로 달려가려던 그때, 태호가 지팡이를 놈에게 겨누었다.

“마침 잘됐군. 저놈은 로밍(*몬스터가 움직이는 범위) 거리가 애매해서 찾기가 힘든 녀석이었는데.”

아르젠타비스는 거대한 맹금류라고 보면 되는데, 테이밍 자체가 불가능한 야생 그 자체의 거대 독수리였다.

워낙에 흉폭하고 공략이 난해해, 과거의 리얼 포스에서는 서비스된 지 5년이 지난 뒤에야 공략이 됐다.

허나 지금은.

태호가 지팡이를 겨누며 읊조렸다.

‘강화된 어둠의 명령, 15연발.’

콰지지지지지직!

막 나타난 아르젠타비스의 대가리에 열다섯 발의 마법이 틀어박혔다.

꽤애애액!

놈이 비명횡사했다.

“......?”

태호는 저 멀리로 떨어지는 녀석을 향해 뛰어들 준비를 마치며 엘린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가자, 하늘성.”

< 진로상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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