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성 싹쓸이 >
[예...?]
경비병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가주실 내부의 상황은 묘했는데, 의자며 탁자가 작살나 있었고 뭔가 격투가 벌어진 상황이 분명했다.
허나.
“이 계집이 헛소리를 하기에 잠시 격분했을 뿐, 아무 일 없다. 일단 마저 하던 이야기를 해야 하니, 그것들 데리고 나가 있거라.”
[......]
그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쩐지 눈을 부릅뜬 채, 눈치를 살피는 엘린을 본다. 그리고 가주를 흘끗 살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가 저렇게 말한다면야.
[예, 알겠습니다.]
쿵!
문이 다시 닫혔다.
태호는 의자에 대충 앉아, 구슬을 꺼냈다.
-이, 이건 대체 뭐지? 날 어떻게 한 거냐!
타시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호는 빙긋 웃었다.
“하던 얘기, 마저 해야지.”
-뭐라? 가보는 절대 줄 수 없다!
“그래? 안됐네.”
태호는 엘린에게 구슬을 던져 주었다.
“......?”
“똑바로 불 때까지 흔들어 버려.”
잠시 후.
태호는 가문의 비밀 창고라는 게 있음을 알아냈다.
“오.”
가문의 비밀 창고는 가주실의 은밀한 설계로 만들어져, 언뜻 보면 도저히 찾을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입장 조건도, 가주가 직접 손을 써야 했다.
‘생체 인식 같은 건가?’
침대가 드르르- 움직이며 그 내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자, 타시니가 태호를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두려움이 한껏 들어차 있었다.
“돼, 돼, 됐냐?”
“음. 됐다.”
“그, 그럼 날 풀어 주는 거지?”
“그런 약속은 안 했지.”
펑!
-이 개자시이이익!
타시니가 다시 구슬이 됐다.
창고 내부에는 에픽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
태호는 그 내부를 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상에...”
엘린 역시 말을 잃었다.
내부는 그야말로 황금 창고! 번쩍이는 재화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정작 태호는 꽤 무덤덤했다.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에픽 네 개를 챙겼다.
“좋은 게 많네. 야, 너도 챙길래... 아하.”
이미 엘린은 후다닥 달려 들어가 이것저것 주워 모으고 있었다.
저 스스럼 없는 모습이 꽤 마음에 들어, 태호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부유 원석을 획득했습니다.]
개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역시 부유 원석이다. 이건 부유석보다 1,000배 이상 강력한 부유 물질로, 하늘을 떠다니는 원동력이다.
자동차로 치면 엔진 역할인데, 추후 리얼 포스의 유저들은 이 물질을 매우 고가에 구매하게 된다.
결국 대항해 시대에서 대항공 시대로 게임이 변모하게 되는데,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
그 외에도 하늘성 특산물 중, 초고급 아이템들이 즐비했다.
[천상철(天上鐵) 원석을 획득했습니다.]
천상철 원석이다.
이는 에픽 제작에 들어가는 귀중한 재료였다. 태호도 실물을 몇 번 만져 본 적 없는 물건이다.
그 외.
[응축된 고대 마력의 정수]
[마력의 결정체]
등등이 굉장히 많았다.
그렇게 각종 귀중 재료들을 쑤셔 넣던 태호의 눈에, 저편 구석의 갑옷이 보였다.
태호는 멋들어지게 장식돼 있던 갑옷을 가리켰다.
“저거 아머 슈트 아냐?”
“어디? 아!”
엘린이 후다닥 달려가 아머 슈트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흠.”
태호는 아머 슈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촤라라라락-!
아머 슈트는 어느새 팔찌 형태로 변했다. 그것을 들어 확인해 보았다.
[등급 : 레전더리(하늘성 사대가문)]
[종류 : 장신구]
[이름 : 로데오 아머 슈트]
[하늘성의 아머 슈트.]
[옵션 : 올 스텟이 50 상승합니다.]
[마법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생명력이 30% 상승합니다.]
고작 레전더리.
고작이라고 붙이긴 그렇지만, 아머 슈트라는 것 자체는 매우 매력적인 요소였다.
“흠. 이거 괜찮은걸.”
우선 팔찌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현재 착용 중인 팔찌는 ‘찬란한 은총의 팔찌’다.
레전더리 세트를 귀속시켜 세트 효과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썩 매력적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장착 귀속인데 이렇게 옵션 체감이 적은 것도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건 쓸 만하겠어.’
태호에게는 현재 대륙 제일의 손재주를 가진 드워프 일족이 있다.
“아. 너, 그 목걸이.”
태호가 엘린의 목걸이를 가리켰다.
과거 태호가 박살 내 버린 목걸이는 자체회복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였다.
“이, 이거?”
엘린이 화들짝 놀라 목걸이를 꼭 쥐었다.
“또 부술라고?”
“......날 뭐로 보는 거야.”
“정신 나간 사이코...?”
“......”
태호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게 아니고. 그거 에픽이지?”
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엘린의 목걸이는 장착제한에 ‘엘린’이 걸려 있다. 나머지 가주들의 목걸이도 확인해 본바, 똑같이 장착 제한이 있었다.
‘일단 챙기자.’
창고를 반쯤 싹 긁어 내 인벤토리창에 쑤셔 넣은 뒤, 엘린이 챙긴 물건들도 인벤토리창에 넣었다. 나중에 돌려줄 생각이다.
창고를 나선 뒤 비밀통로를 닫았다.
이제 가주실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태호는 험험, 목을 가다듬은 뒤 크게 소리쳤다.
“내 이 건방진 계집을 당장...! 여봐라!”
“가, 갑자기?”
엘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쾅!
다시 문이 열리고 경비병들이 들이닥쳤다.
태호는 호통을 쳤다.
“이 건방진 계집을 당장 쫒아내거라! 다시는 이리 들이지 말라!”
[예, 알겠습니다.]
눈치 빠른 엘린이 울상을 지으며 소리쳤다.
“이거 놔라! 이 천한 것들이...!”
“썩 꺼져라! 당장 끌고 나가 거리통에 던져 버리거라!”
[당장 나오십시오!]
경비병들이 엘린을 질질 끌고 나갔다.
“이거 놔! 타시니, 이 망할 영감!”
태호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엘린도 한쪽 눈을 찡긋하며 화려한 연기를 펼쳤다.
자.
이제 가주가 없어져도 엘린의 혐의는 없어졌을 거다.
잠시 후 태호도 저택을 나섰다.
“내 호니 가주와 할 이야기가 있다. 따라올 필요 없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의 태호는 누가 봐도 타시니 가주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또 다른 거대한 저택 앞이었다.
[아, 가주님. 안녕하십니까.]
역시 가주 대우가 좋다.
태호는 다음 가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하늘성을 사분하는 가문 중 하나, 모터리 가문이다.
가주실로 들어선 태호는 그곳의 가주를 보았다.
“음? 어쩐 일이시오?”
“아, 드릴 말씀이 있어서.”
[하늘성, 모터리 가문의 가주]
[호니 모터리]
“비밀스러운 이야기인 모양이군. 안 그래도 하늘성에 파문 가문의 자제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니만...”
태호는 씩 웃었다.
잠시 후.
‘수확이 좋네.’
태호는 그곳에서 구슬 하나, 그리고 네 개의 에픽을 캐낼 수 있었다.
이번에도 네 개.
두 개 가문을 돌았는데 여덟 개나 모았다. 게다가 그곳의 비밀 창고에서 역시나 귀중한 원석들과 ‘아머 슈트’를 얻을 수 있었다.
[아, 벌써 가십니까.]
이 하늘성에서 가문의 힘은 절대적이다. 태호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모터리 가문을 나섰다.
그다음에는 갈튼 가문을 조졌다.
그다음엔 지티아르 가문을.
단시간 내에 태호는 하늘성을 사분하는 네 개 가문을 완전히 조져 버렸다. 가주들은 신의 주박술로 칭칭 묶여 구슬이 되어 버렸다.
-대체 이게... 이 무슨 흉악한 짓이냐!
-당장 풀지 못할까!
가주들이 소리쳤다.
-멍청이들이 늘었군.
로만이 투덜거렸다.
-이 대체 무슨 사이한 일이란 말인가!
-이 공간은 대체?
참다못한 조겐이 빽 소리쳤다.
-거 아가리들 닥쳐라! 대가리를 산 채로 뜯어내 돼지 밥으로 줘 버리기 전에!
-너나 닥쳐라, 땡중.
“......”
태호는 거리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그 화려한 거리로 돌아와, 인파 속에 파묻혔다.
파시싯!
그 순간. 태호가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태호는 그렇게 거리를 걷다가, 골목 저편의 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는 엘린을 발견했다.
상처받은 고양이같이, 웅크리고 앉아 세간의 시선을 피해 있는 녀석에게 다가섰다.
“가자.”
엘린은 그런 태호를 보며 두 눈을 깜빡였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새삼스럽게?”
“......”
태호는 인벤토리창을 뒤적이며, 네 개의 구슬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이 넷이 하늘성의 네 가주다.”
엘린이 두 눈을 깜빡였다.
“너 가져.”
“......”
태호는 엘린의 품에 네 개의 구슬을 꼭 쥐여 주었다.
“가주가 없어졌으니 가만히 놔둬도 가문 네 개는 자멸할 거야. 후계자 전쟁이 벌어지면 큰 답 없이 분열하겠지. 하늘성 갖고 싶어?”
그녀는 물끄러미 서서 가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그냥.”
복수심에 불타며 하늘성을 정복할 꿈을 꾸었지만, 막상 원흉인 네 가주를 잡아들인 지금. 엘린은 어쩐지 무덤덤해져 버렸다.
“기분이 이상하지?”
“......응.”
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힘이 빠져 보이는 얼굴이었다.
“원래 복수란 게 그래. 하늘성 갖기 싫어도, 그것들은 너 가져.”
태호는 씩 웃었다. 그리고 구슬이 된 조겐을 꺼내, 마구 흔들어 버렸다.
-크아아악! 뜬금없이 대체 왜!
“스트레스 받을 때 사정없이 조져 버려.”
엘린이 피식 웃었다. 어쩐지 그녀는, 태호가 꽤 마음에 들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아버님 명예는 회복시키고 싶어.”
태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그 네 놈을 이용해. 내가 주박을 걸긴 했지만, 아티펙트화와 인간화는 너도 할 수 있어.”
엘린은 조심스럽게 네 개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이년! 네 이년!
-네년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고마워.”
“별말씀을.”
태호가 엘린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엘린은 배시시 웃으며 태호에게 주먹을 맞부딪혔다.
고오오오-
공중정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성에 정박해 두었던 공중정원이 움직이고,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드높은 하늘성의 고도에서 점차 내려서는 공중정원은 어느새 본래의 고도에 머물렀다.
태호는 엘린의 몫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주었다.
마력의 결정체들, 그리고 각종 원석들이 튀어나왔다. 엘린은 어쩐지 그것들을 내려다보며 두 눈을 깜빡이다가, 태호를 보았다.
“이제 뭘 할 거야?”
“일단 아지트로 돌아갈 거야. 너는 뭘 할 거냐?”
“난...”
그녀가 두 눈을 빛냈다.
“내 부하들을 다시 만들어서, 아버님 명예를 되찾게 할 거야.”
“응.”
어쩐지 그녀가 고분고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호는 엘린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야.”
“......?”
“욕 한 번만 해 줄래?”
“......미친 새끼.”
그제야 태호는 씩 웃었다.
“좋군. 또 보자.”
샤샤샥!
태호가 스크롤을 찢었다.
태호가 사라진 뒤, 엘린은 오도카니 혼자 남아 보물들을 내려다보았다.
“......”
문득 복잡한 생각이 들어 가만히 고개를 숙인 그녀가 손등으로 두 눈을 슥슥 닦은 뒤 고개를 들었다.
......태호는 아지트로 돌아왔다.
이번 수확은 에픽 16개, 그리고 네 개의 아머 슈트, 그 외 하늘성 고유의 귀중한 원석들이었다.
문득 엘린이 떠올랐다.
‘세계가 무한히 반복됐고...’
아마, 그녀는 무한히 많은 시간 동안 그 세계들의 하늘을 떠돌았을 거다.
무슨 기분일까.
정해진 운명의 세계를 떠돌며, 매번 기억하지 못한 채 그 세계를 다시 살아가는 기분.
“......”
그런 생각들을 하며 태호는 걸음을 옮겼다.
아머 슈트들과 재료들을 이용해, 이 녀석들의 개량이 가능한지 알아볼 시간이었다.
< 하늘성 싹쓸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