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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46화 (146/194)

< 의리는 개나 줘 버린 놈들 >

지이이잉-!

혼돈의 결계가 펼쳐지며 사이한 색을 띠었다. 태호는, 이제는 익숙해진 그 결계 속에서 소환되어 강림하는 로두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쭈우우욱!

하늘에서 떨어진 로두스는 평범한 20대 남성의 모습이었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고, 긴 채찍을 허리춤에 멘 상태였다.

채찍은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뭐,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두스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태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지?]

태호는 그를 빤히 보았다.

미안하지만 정면 대결할 생각은 단 1g도 없다. 그가 물어볼 그사이, 이미 마법은 날아가 작렬하고 있었으니까.

태호가 사용한 두 개의 마법이 저마다 로두스, 그리고 제단에 작렬했다.

먼저.

로두스에게 작렬한 것은 엄밀히 따지면 아이템 효과였다.

칠흑의 어둠 반지가 부여한 아이템 효과, ‘고갈의 낙인’이다.

샤샤샥!

고갈의 낙인이 미처 대응하기 전의 로두스에게 스며들었다.

고갈의 낙인은 상대방에게 10분의 시간 동안 신력으로 만들어진 낙인을 찍는다. 그리고 낙인이 찍힌 상대는 생명력과 마력을 회복할 수 없다.

다른 마법은 제단으로 쇄도했다.

콰지직!

그의 제단이 작살나고, 혼돈의 유산 두 개는 결계를 해제했다. 특수한 각인도 지진과 함께 사라지며, 로두스는 경악한 얼굴을 했다.

[무, 무, 무, 무슨 짓을?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태호는 경계 태세를 갖춘 채 로두스를 응시했다. 놈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서, 설마!]

로두스의 얼굴에 노여움이 서렸다.

[사티로스가 배신이라도 했다는 말이냐? 이노오옴!]

로두스의 채찍이 날아들었다. 황금 채찍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태호에게 쇄도한다.

팟!

태호는 가볍게 땅을 차며 뒤로 쭈욱 거리를 벌렸다. 여차하면 마신강림을 사용할 준비를 마친 태호가 놈을 노려보았다.

[크... 크으읏!]

로두스의 전신이 조금씩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 양팔저울 하나가 나타났다.

따각! 따각! 따각! 따각!

[심판의 양팔저울]

[균형이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역풍의 강도는 105입니다.]

‘105?’

태호는 조겐을 떠올렸다.

조겐이 받은 역풍은 205였다. 헌데 저 녀석은 거의 절반이나 역풍을 무마한 셈이었다.

‘어떻게?’

태호가 두 눈을 가늘게 뜰 무렵, 놈이 소리쳤다.

[네놈을 우선 잡아 손가락 하나하나 비틀어 주마, 그리고... 억!]

그런 놈에게 작렬한 것은 자비라곤 없는, 15연발의 ‘강화된 어둠의 명령’이었다.

콰지지지직!

그야말로 온몸을 거대한 망치로 흠씬 두들겨 맞는 듯한 충격이 로두스에게 전해졌다.

‘역풍이 105라면, 조겐만 못 해도 충분히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

태호의 예감은 적중했다.

[커어어억!]

놈이 휘청하는 사이, 태호가 놈에게 새로이 얻은 볼카노스의 권능을 쏟아 냈다.

‘절멸의 화살.’

쑤우욱-!

태호의 지팡이 끝에서 순도 높은 어둠의 화살이 만들어졌다. 마치 사방의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그 화살은 쏜살같이 놈의 심장부에 꽂혔다.

우드득-!

순간.

놈이 몸을 비틀었다.

[캬아아아아앗!]

[볼카노스의 상위 힘]

[등급 : ???급]

[쿨타임 : 1,000초][숙련도 : x][소모 마력: 1,000]

[스킬명 : 절멸의 화살]

[절멸의 화살을 쏘아 낸다. 이 화살은 상대에게 직격한 뒤 2분간 지속되며 특수 상태이상 ‘절멸’을 가한다.]

[절멸에 당한 상대는 지속적으로 모든 상태이상이 리필되며 모든 감각이 정반대로 뒤바뀐다.]

[절멸에 당한 상대에게 전체 생명력의 10%에 달하는 생명력을 강제로 빼앗아, 일시적으로 자신의 생명력 최대치를 올립니다.]

[상태이상 ‘절멸’은 그 어떠한 상태이상 효과로도 중첩되지 않습니다.]

동시에 태호의 생명력이 족히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고작 10%를 빨았는데 이 정도라고?’

역시나 신들의 힘은 대단했다. 아마, 유저에게 있어 신이란 ‘몬스터’에게 적용되는 계수값을 받아서일 듯했지만 그것이 더욱 좋았다.

이제, 놈에게는 2분간 모든 상태이상이 무한히 리필된다.

‘폭사.’

쾅!

‘폭사.’

콰콰쾅!‘

폭사가 터지면서 놈은 그야말로 사정없이 전신이 폭발에 폭발을 이어나갔다. 폭사로 터져도 곧바로 자동 리필되는 모든 상태이상은 무시무시한 성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건... 볼카노스! 이 빌어먹을 시컴둥이가 드디어 일을 내기로 했나! 너, 가만히 있어라! 내 당장... 크엇!]

놈의 모든 감각이 정반대가 되었다.

‘대체 저건 어떤 상황인지 짐작도 안 가네.’

태호는 놈이 막 달려오려다가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도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그대로 10스택을 쌓은 뒤.

‘지옥의 어둠 불꽃, 5연발.’

[아아아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폭사.’

쾅쾅콰콰쾅!

지금 놈의 수준을 보니, 싸움은 진작 끝낼 수 있었다. 다만 궁금할 뿐이다.

[이노오오오옴!]

놈의 황금 채찍이 길쭉하게 늘어나, 사방을 싹 쓸 듯 날아들었다.

태호는 놈과 거리를 더욱 벌렸다. 그리고 놈이 방심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주었다.

‘진짜 이러면 무방비인 거야?’

그렇다면 이야기가 아주 쉽다.

태호는 놈을 빤히 노려보았다.

‘자, 밑천 한번 털어 봐.’

조겐을 취조했을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천계로 돌아갈 수 없냐고? 당연히 있지. 다만 시간이 걸렸기에 쓸 엄두를 못 냈을 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여러 시도도 해 보고 싶었다.

[칫!]

놈은 문득 자신의 심장부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지이이이잉-!

금빛 광채가 일며 놈의 몸이 빛으로 변해 간다.

‘저게 탈출기군.’

조겐은 저것을 쓸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즉.

저것을 사용하기 위해선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

태호는 그것을 확인한 후, 지체 않고 거리를 좁혔다.

‘어둠의 발걸음.’

팟!

순간이동한 태호가 놈이 움직이려는 사방에 ‘나락의 절대 구역’을 만들었다.

‘신력으로 막을 수 있나 볼까.’

쿠구궁-!

신력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놈의 사방을 틀어막고.

‘폭사.’

쾅!콰콰쾅!

[10스택 달성]

‘강화된 어둠의 명령, 5연발.’

생명력이 족히 2배로 뻥튀기된 상태로 99%를 소모한 일격이 다섯 발 작렬한다.

쐐애애액!

섬뜩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콰지지지직!

[크아아아앗!]

빛으로 변해 하늘로 솟구치던 놈이 비명을 질렀다. 허나, 놈은 멈추지 않고 나락의 절대 구역에 부딪혔다.

‘막히나?’

파지지지직!

금빛 광채와 검은색 비전력이 맞부딪히며 마치 쇳덩어리 두 개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불똥이 사정없이 튀었다.

‘막힌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폭사.’

‘대규모 범위 폭사.’

‘폭사.’

폭사를 계속해서 돌린다.

‘폭사.’

콰콰쾅!

콰콰콰콰콰쾅!

콰지지지직!

어느새, 놈이 저 하늘에서 금빛 광채를 잃는 것이 보였다. 놈이 공중에서 뒤돌아 태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어찌...]

피유우!

그리고 땅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태호는 추락하는 놈에게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신의 주박술.’

촤라라라락-!

놈의 전신에 주박이 만들어졌다.

[으아아아아!]

로두스는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려 했지만, 남은 힘이 얼마 없다.

‘힘이 모자라면.’

촤자자자작-!

놈의 전신은 점점 더 말라 가고 있었다.

‘역풍을 더 잘 받는군.’

이렇게 큰 힘 들이지 않고 놈을 주박으로 묶어 버릴 수 있었다.

팡!

태호는 놈을 구슬로 만들어 손에 쥐었다. 마치 옛날, 포켓몬이라는 게임을 하던 생각이 났다.

-주박... 너... 설마 볼카노스인가? 아닌데... 신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신력을 쓴다니...

태호는 품 속에서 조겐을 꺼내, 두 녀석을 양손에 쥐었다.

“서로 인사해라.”

-뭐냐, 누구냐! 어? 너, 너! 너 설마 조...겐?

-......로두스.

로두스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 욕을 내뱉었다.

-이 빌어먹을 땡중 새끼! 네놈이 배신자였구나! 이 개자식! 이 호로자식!

-왜 다들 나한테만 지랄병인 걸까? 내가 만만하냐? 난 배신자가 아니다! 등신처럼 잡히기나 하고, 아주 잘하는 짓이다!

두 놈이 욕 배틀을 시작했다.

한동안 입에 담기 힘든 욕이 오고 가고, 까마득한 옛날에 명을 달리한 서로의 부모의 생사 여부를 확인했다. 머릿속이 욕으로 범벅이 될 무렵에야 태호가 입을 열었다.

“둘 다 아가리 닥쳐.”

-너나 닥쳐라, 미천한 놈아!

로두스는 태호에게 사로잡혔으나 아직 매운맛을 보지 못해 혈기 왕성했고.

-헙! 나, 난 조용히 한다!

조겐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몇 번 당해 본 놈은 역시 달랐다.

태호는 로두스를 한참 동안 공들여 흔들었다. 특별히 조금 더 신경 써서 흔들자, 놈은 그야말로 고래고래 죽어라 소리를 질렀다.

-꾸애애애애액!

놈이 헛구역질하는 소리를 듣던 태호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대질 신문에 들어간다.”

-......!

-뭐, 뭐라고?

“룰은 간단하다. 사실대로 말하는 놈을 살려 주고, 거짓말하는 놈은 죽인다. 유용한 정보를 말하는 놈은 정상참작된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부터 나는 악신 프나틴을 잡으러 갈 거다. 놈의 치명적인 약점을 아는 놈은 3초 내에 입을 열어라. 또한 필요한 팁도 받는다. 중요한 건 3초야. 먼저 손든 놈부터 발언권 준다.”

-......

-......

두 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3.”

태호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2.”

그리고.

“1.”

-소, 손! 손!

조겐이 빨랐다.

“읊어.”

태호의 말에 그가 촉새처럼 말했다.

-프, 프, 프나틴은 급소가 있다. 게다가 나는 제단 위치도 안다! 내가 다 알아서 설명해 주마!

-이... 이런 미친 땡중이?

-닥쳐! 일단 살고 봐야지!

조겐의 그 태도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태호가 씩 웃었다.

“어딘데?”

-겨드랑이 안쪽! 그곳이 급소다! 거기가 아니면 프나틴은 피해를 입지 않는다!

“아하.”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로두스에게 말했다.

“그럼 너는?”

태호는 3초를 세었다.

로두스는 아직 지조가 남아 있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너는 그럼 죽어야겠다.”

-......

로두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멍하니 있다, 태호가 인간형으로 만들자 화들짝 놀랐다.

[이, 이런 미친... 대체 이게 어찌 돌아가는...]

허나 이미 태호에게 무력으로 당했던지라, 그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태호가 어둠의 신비력을 뿜어내며 말했다.

“네 지조는 잘 알았다. 의외로 의리 있는 녀석이라 놀랐다. 단숨에 죽여 줄 테니 걱정 말...”

[나, 나, 나는... 어... 그래, 셴의 제단을 안다!]

“......”

역시 이놈도 의리나 신의는 개나 줘 버린 놈이다.

셴.

그 역시 악신이었다.

로키는 태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는 아자무스를 데페로와 싸움 붙인 뒤 천계로 돌려보낸다. 두 놈이 싸우는 사이 악신을 최대한 잡아먹어야 해.

-어차피 시간을 들여 사냥해도 되지 않을까요?

-아니지. 이미 사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단 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는 거야. 그럼 신들 역시 소환에 응하지 않게 될 확률이 높아. 결국 아껴 뒀다 나가리 되는 거지.

-아...!

-그러니까... 아자무스를 두들겨 팬 뒤 돌려보냄으로써, 혼돈의 권좌와 천상의 권좌 사이에 분쟁거리를 만들어 두는 거야. 혼돈의 대장군 데페로가, 천상의 권좌의 아자무스를 습격했다는 분쟁거리 말이야. 아 참, 그리고.

-예.

-넌 실행력은 좋은데, 조금만 더 머리를 써라. 한 놈만 잡아다 심문하지 말고, 두세 놈 잡아서 대질 신문을 해. 적당히 협박하면서 그중 한 놈에게 포상을 줘. 그럼 없던 정보도 나올 거다.

로키는 가히 천재였다.

태호는 그의 생각이 착착 들어맞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적이 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

그리고 정면의 로두스를 보았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의리라고는 정말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이었다.

아무튼.

일단, 이 상황에서 태호는 최대한 악신들을 수집해 두어야 했다.

찌지직-!

태호가 다시 스크롤을 찢었다.

< 의리는 개나 줘 버린 놈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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