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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47화 (147/194)

< 유배지에서 탈출하는 방법 >

데페로가 우뚝 섰다.

그의 전신에 박혀 있는 눈동자가 정면을 향했다. 그곳에, 다소 황당한 얼굴의 아자무스가 서 있었다.

아자무스는 자신의 무기를 등에 멘 채 로만과 데페로를 번갈아 보았다.

[아자무스! 이 개자식!]

[......?]

혼돈의 각인이 새겨진 소환이 그를 불러 응했건만,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아자무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

[이 육시럴 개자식! 넌 오늘! 내 손에 죽는다!]

데페로의 도발은 아주 효과적으로 먹혔다.

[뭐라는 거야, 이 눈깔 괴물이?]

지금이야 큰일을 앞둔 상태로 두 개의 권좌가 동맹 관계이지만, 태곳적에는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었다.

특히 데페로와 아자무스는 생사를 건 혈투를 벌이며 악업을 쌓아 왔다.

[감히! 혼돈의 권좌에! 도전하다니!]

[......이 미친놈이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난리가 났네?]

아자무스는 일말의 남아 있는 이성으로 로만에게 시선을 돌렸다.

[말해 봐라, 사티로스. 대체 무슨 일이냐 이게?]

홱!

데페로의 몸에 박혀 있는 눈동자들이 일제히 로만을 향했다.

“......”

이때.

“......”

로만은 평생의 혼을 담아, 필사적인 연기를 펼쳤다.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입술을 꾹 깨문 채 그를 노려보며 두 주먹을 꽉 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으으으으! 이런! 뻔뻔한! 개자식!]

데페로가 볼 때, 그것은 명백한 긍정의 표시! 황당해하는 아자무스에게 달려든 것도 그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일단! 내 주먹! 맛을 좀! 보거라!]

[어어? 이 미친놈이 한번 해보자는 거냐?]

아자무스 역시 이마에 힘줄이 솟구치며 자신의 봉을 빼 들었다.

[오냐, 내 오늘 태곳적 못다 한 숙원을 이뤄야겠다.]

“...저 멍청한 새끼들.”

로만은 작게 중얼거렸다.

콰지지지직!

데페로와 아자무스의 한판 대결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두 놈은 그야말로 박 터지게 싸웠다.

[감히! 주박을! 걸어!]

[무슨 소리냐 이 무식한 새끼야!]

파파파팟! 챙!챙!

봉과 주먹이 수백 수천 번을 금세 맞부딪히고, 사방에 길쭉한 촉수가 솟구쳐 나와 아자무스에게 날아든다.

퍼퍼퍼퍽!

아자무스는 촉수에 한껏 얻어맞고 결계 저편으로 처박혔다.

[크으으... 오호라... 네놈들, 설마 동맹 파기를 하려고 생쇼를 하는 거냐?]

[뭐! 너! 거기 딱! 가만히! 있어라!]

데페로가 더욱 열을 받아 놈에게 총공격을 가했다. 사방에서 촉수가 쏟아지고, 아자무스의 온몸이 난도질을 당했다.

[크아아아악!]

허나 반쪽짜리이지만 역시 신은 신.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데페로와 로만을 보며 저주를 퍼부었다.

[이 일, 결코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너희 모두 곱게 죽지는 못할 거다!]

아자무스는 자신의 창을 데페로의 미간에 쑤셔 넣었다.

푸지직!

눈깔 대여섯 개가 짓뭉개지며 구역질 나는 점액이 쏟아져 내릴 즈음, 아자무스가 빛으로 변했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들! 이 일들은 모두 권좌에 보고될 것이다! 목 씻고 죽을 날을 기다리기나 해라!]

‘됐군.’

로만은 그 모습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게 섰거라, 아자무스! 게 서!]

쿵 쾅 쿵 쾅!

데페로가 하늘 높이 빛으로 사라지는 놈을 따라 무작정 달릴 무렵, 로만은 뒤를 돌아보았다.

영혼 나간 인형처럼 서 있던 태호의 분신이 보였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음이 분명한 태호의 분신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

분신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채, 파시식! 하며 사라졌다.

“하아.....”

......로만이 태호를 다시 만난 것은, 길길이 날뛰는 데페로를 간신히 진정시킨 뒤 잊혀진 섬에 잔류시킨 뒤였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잊혀진 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무인도였다.

“하아... 빌어먹을. 저질러 버렸군.”

로만은 어쩐지 후회 일색이라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고 태호는 씩 웃고 있었다.

“그래서... 네 다음 계획은 뭐냐?”

“일단은 기다리는 거.”

천계에서 제스쳐를 취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우선 지금까지 로키의 계획은 아주 성공리에 진행돼 가고 있었다.

“정말 악마 같은 놈이군. 네놈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빠그라지기 일보 직전이다.”

“반은 네 덕이다. 데페로를 잘 묶어 두었으니, 당분간 쉬고 있어.”

“억 잠깐...”

태호는 냉담하게 대꾸하며 그를 구슬로 만들었다.

팡!

인벤토리창 속에 집어넣은 뒤, 태호는 그 작은 섬에서 저편 잊혀진 섬의 데페로 그리고 네 명의 장군을 살펴보았다.

좋다. 이제 첫걸음은 성공리에 내디뎠다.

* * *

[오... 맙소사.]

로키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의 눈앞에는 세 명의 악신이 구슬이 되어 있었다.

조겐, 로두스, 셴.

특히 셴은 무적의 갑피를 가진 신이었는데, 생김새는 약간 아르마딜로에 가까운 인간형이었다.

약점을 공략하자 그리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

태호는 볼카노스도 소환했다.

-하아...

-빌어먹을 볼카노스!

-대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놈들이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태호는 우선 세 구슬을 인간형으로 바꾼 뒤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대질 신문을 시작하겠다. 참고로 내게는 진실의 눈이 있고, 너희의 거짓 수준은 전부 다 파훼가 가능하니 거짓을 고할 시 즉사를 약속하마.”

태호가 눈을 부릅뜬 채 놈들을 노려보자, 최근에 잡힌 셴이 대들려다가 조겐의 손에 잡혀 멈추었다.

셴은 이제 로키와 볼카노스를 보며 양 볼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더럽고 추잡한 배신자들! 특히 너! 로키! 애비를 제 손으로 패 죽인 패륜아 자식이 드디어 천계도 배신하려...”

[저거 죽여.]

로키의 간단한 말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콰지지직!

태호가 망설임 없이 지팡이를 휘둘러 놈의 갑피에 마법을 꽂아 넣었다.

“캭!”

주박에 걸렸어도 그 막대한 방어력의 갑피는 제 기능을 했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뒹굴었다. 죽기 직전의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아니다. 일단 살려 두자.]

로키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제, 제, 젠장!”

이제 대질 신문이 시작되었다.

[너희들, 누구 밑에 있냐?]

로키의 말에, 조겐이 선뜻 입을 열었다.

“메, 메, 메타트론 님이다!”

조겐은 그렇게 말하며 태호를 흘끗 보았다. 까까머리에 우락부락한 파계승이 태호의 눈치를 본다.

태호는 그런 조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바람잡이 역할로 딱이군.’

동시에 생각했다.

‘용도가 다하면 빨리 죽여 버려야겠다.’

질문이 오고 갔다.

여러 질문이 오고 가고, 로두스와 조겐이 질세라 앞다투어 지식을 쏟아 냈다.

“......”

허나, 역시 셴은 아무 말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태호가 셴에게 말했다.

“넌 죽음이 두렵지 않군?”

“......”

셴은 태호를 노려보았다.

“죽음은 두렵다. 허나, 그렇다고 동족을 배신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저건 안 되겠군.’

지조가 있는 녀석이었다. 신념이 있는 녀석은 이런 협박 따위론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의지, 잘 알겠다.”

태호가 로키를 흘끗 보았다. 로키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까닥였다.

콰지직!

셴이 강화된 어둠의 명령 15연발을 맞고 쓰러졌다. 죽이는 중에도 찝찝함이 남았다.

‘이런 녀석들이 많으면 곤란해.’

“크으... 네놈들이... 이런다고, 어차피... 사도들이 강림할 것... 너희는... 쓰레기처럼 짓뭉개져... 영겁의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셴이 죽어 가며 저주를 뱉었다.

“......”

그대로 놈이 숨을 거두었다.

흠칫!

흠칫!

조겐과 로두스가 몸을 웅크리는 것이 보였다. 족히 천 년은 살아왔을진대, 하는 짓은 인간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그 순간.

[강자의 이끌림이 발동됩니다.]

‘그렇군.’

태호는 속으로 내심 안도했다.

[패시브 스킬 : 강자의 이끌림]

[설명 : 혼돈의 대장군(신노스, 케노스, 샴)을, 혼돈의 장군(옴무, 탄베)을 사냥해, 그들의 힘을 일부 획득하였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쓰러트릴 때, 상대의 능력치나 스킬을 흡수합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

혹시나 해서 주박을 받은 상태의 적을 죽였을 때 발동되지 않으면 어쩌나 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쓰러진 셴의 시체가 붕 떠오르더니, 황금빛이 되어 태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콰아아아아-!

동시에 전신에 가해지는 것은 격통!

“큽!”

태호는 뜬금없이 시작된 그 격통에 입술을 앙다물었다. 온몸을 비집듯 혈관 하나하나가 확장되는 그 기분은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천상의 권좌의 신, ‘셴’의 스킬을 흡수합니다.]

[‘패시브 스킬 : 경이로운 갑피’를 얻었습니다.]

동시에 타오르는 통증은 사라지고, 셴의 시체는 그야말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태호는 헉, 헉, 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신의 권능이 한계치에 도달하였습니다.]

떠오른 메시지가 추가로 있었다.

‘한계치에 도달하였다...?’

아무래도, ‘신비력 연마’가 더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확실히.’

그간

[패시브 스킬 : 경이로운 갑피]

[설명 : 천상의 권좌의 신, ‘셴’을 사냥하여 그의 스킬 하나를 받았다.]

[자신의 생명력 비례 1,000%의 방어막을 얻습니다. 만약 방어막 관련 소지 아이템이 있다면, 이 효과와 중첩됩니다.]

‘1,000%라고?’

이 정도면 거의 두 개의 목숨이었다.

현재 태호에게는 600%의 생명력 비례 방어막이 있는데, 거기에 1,000%가 추가되었으니 도합 1,600%의 방어막이 생긴 셈이다.

게다가 대미지 반사 역시 1,600%의 방어막에 적용될 테니 완전히 남는 장사였다.

태호는 이제 셴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에픽 아이템 두 개를 보았다.

‘신을 잡아도 에픽이 떨어지는구나.’

두 개의 에픽은 각각 방어도와 관련된 아이템이었고, 지금 당장은 쓸 일이 없을 듯싶었다.

[그거 꽤 좋아 보인다.]

로키가 탐내는 듯하기에 태호는 씩 웃어 보였다. 우선 챙기고, 다시 두 악신 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

“......힉......”

두 놈들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죽인다 죽인다 말만 하지, 정말 죽이는 것을 보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것이다.

태호와 로키, 그리고 볼카노스 3인방의 대질 신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까지도 그리 비협조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죽음을 직접 본 뒤 두 악신의 협조력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질문이 나오면 앞서 대답하기 위해 애쓰고, 모르는 것이 나오면 대체할 다른 정보를 제공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렇게 한참의 심문이 이어지고.

태호는 빼낼 정보를 일단 적당히 빼냈다는 확신이 들자, 두 녀석을 구슬로 만들어 집어넣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두 녀석들의 스킬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허나, 신비력의 등급 향상을 꾀하지 않는 이상 이 이상은 힘들 듯싶다.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겹쳐 있었지만, 어쩐지 더 이상 불안하지가 않다. 태호는 꽤 믿음직한 얼굴을 한 볼카노스와, 팔짱을 낀 채 미소를 머금고 있는 로키를 보았다.

아군!

이렇게 든든한 아군이 있다니. 어쩐지 전신의 긴장감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일단 적당히 정보는 캤다. 다만, 섣부르게 행동하긴 힘들겠지.]

어느새 지략가의 면모를 갖춘 로키가 여러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천계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쪽은 내 알아보마.]

“저는 아무래도 신비력 연마에 조금 더 힘써야 할 듯하군요.”

문득 볼카노스가 입을 열었다.

[상황상 곧 드래고니악의 드래곤들이 동면에서 깨어날 것 같구나.]

“아.”

태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블랙 드래곤 장로, 소테드 스펠터. 그가 이제 긴 동면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또한, 나 역시 이 유배지에서 탈출할 방법을 여러 방법으로 생각해 보았다.]

“......!”

< 유배지에서 탈출하는 방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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