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사제 데칼 >
“네 이름은?”
손오공이 물어왔다.
“카이저입니다.”
“이상한 이름이군.”
그는 능글맞게 웃었다. 그리고 태호의 가슴을 주먹으로 살짝 툭툭 쳤다.
“다음에, 내가 새 힘을 익히게 된다면 다시 싸워 보자고.”
삼장이 합장을 했다.
‘생각보다 쉽게 손에 넣었다.’
손오공의 분신술을 쉽게 손에 넣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놈의 힘은 전성기 신노스의 1/2급이었다. 물론 신력이나 비전력급의 힘을 쓰지는 못했다. 단순히 신체적 능력만으로 그 수준이었다.
만약 태호가 마력으로 붙으려 했다면 패배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녀석에게서 ‘분신술의 서’를 얻어 내는 것은 보통 난이도가 아닌 셈이다.
적어도 보통 유저라면 1:1로 손오공을 이길 사람이 없다. 그건 전투 센스를 넘어, 물리적으로 그냥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비정상적인 힘.
태호가 조심스럽게 삼장에게 물었다.
“서역으로 가신다고요.”
“예. 저희는 관음보살님의 명에 따라, 지상의 요괴와 마물들을 퇴치하는 퇴마행을 함과 동시에 서역으로 향하여 경전을 완성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 서역이란 것이 본대륙을 말합니까?”
“아, 아닙니다. 동방대륙의 천축이란 곳을 말합니다. 물리적으로 도달한다면야... 하루면 되겠습니다만, 그분의 뜻은 이 동방대륙의 모든 퇴마를 행하시는 것이라 해석하였습니다.”
그런 셈이군.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과정에서 뭔가를 얻으시는 겁니까?”
삼장은 말없이 빙긋 웃었다. 그 미소가 굉장히 선해 보였다.
태호는 잠정적으로, 그 행위들 자체가 ‘부처’의 큰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곧 맹약은 깨지고, 순환의 고리를 둔 거대한 전쟁이 벌어질 거야.’
부처는 모를 리가 없으니, 어쩌면 자신의 군대를 만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
태호가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물었다.
“혹시 뭐 하나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삼장이 빙긋 웃었다.
“혹시... 동방대륙에 ‘분신’이란 기술을 쓰는 사람이 또 있습니까?”
“사람이라...”
삼장은 곰곰이 생각했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쥬신에 한 신선이 있겠지요.”
신선이라?
태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 삼장이 덧붙였다.
“전우치란 이름을 쓰는 신선입니다. 그는 쥬신의 영산(瑛山)이란 곳에 산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그곳은 쥬신의 신선이 아니면 출입이 불가하니...”
영산.
태호는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영산이라면.’
그곳은 엄밀히 따져, 아르카네가 소환되는 ‘정령계’급의 위치였다.
‘일단 알아는 두자.’
* * *
태호는 화과산을 떠났다.
마음속에는 새 아군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을 새겼다.
‘손오공, 그리고 삼장.’
그 위에 존재하는 관음보살, 그리고 그들을 총괄하는 상위 신 부처.
화과산을 떠난 태호는 그대로 남부로 향했다. 화과산을 지나자 마치 봄 같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대로 인적 없는 산기슭에 접어들어, 자리를 펴고 앉았다.
지금부터 분신술을 익힐 거다.
[등급 : 에픽]
[종류 : 스킬북(교환 불가)]
[이름 : 미후왕, 분신술의 서]
[그 건방진 원숭이가 언젠가 천계의 복숭아를 죄다 뜯어 먹는다면, 내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구요. -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분신체를 2체 만들어 냅니다. 숙련도에 따라 분신체의 개수가 늘어납니다. 분신체는 본신의 65%의 성능을 발휘하며 모든 착용 아이템과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스킬북의 설명이었다.
카실론은 군데군데 본인이 이 세계의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암시를 해 둔 셈이었다.
태호는 스킬북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더 섀도우의 심장’과 거의 같은 옵션이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미후왕, 분신술의 서를 익혔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태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이미 보유한 ‘분신체’ 장비가 존재합니다. 두 개의 성능을 합치시겠습니까?]
합쳐?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메시지가 이어졌다.
[합산 시 분신들의 성능이 약간 상승합니다.]
이 역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수락.”
[통합 : ‘더 섀도우의 상징’의 분신 능력에 합산되었습니다.]
[등급 : 에픽]
[종류 : 장착(캐릭터에 장착 귀속됨)]
[이름 : 더 섀도우의 심장]
[더 섀도우. 혹자는 그를 뱀파이어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혹자는 추락한 신이라고도 말하죠. -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본신의 65%의 성능을 발휘하는 그림자 분신을 2체 만들어냅니다. 분신은 본체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모든 착용 아이템과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옵션2 : ‘미후왕, 분신의 서’의 분신 능력이 합산되어, 기존의 분신체들의 개수가 2체 증가하고 5%의 성능 향상이 이루어졌습니다. 분신의 서의 숙련도가 증가하면, 분신체의 개수와 성능 향상이 추가로 이루어집니다.]
‘놀랍군.’
태호는 뜻밖의 수확에 기분이 썩 좋아졌다. 5%의 성능 향상이라지만 없는 것보단 나은 데다, 이로써 다른 가능성 역시 생겨났기 때문이다.
‘분신체 관련 기술이나 아이템들은 어쩌면 계속해서 합산될지도 모르겠어.’
이는 호재였다.
우선.
분신체를 소환한다.
샤아아악-!
눈앞에 금세 분신체 4명이 만들어졌다. 하나하나 요모조모 뜯어보아도 똑같이 생겼고, 똑같이 신비력을 사용하는 데다 네 개의 추가 화면이 생겨 그들의 시선이 공유되었다.
‘어디.’
태호가 네 명의 분신체들에게 신비력 수련을 지시했다. 하나하나 지시를 내려 총 넷에게 명령하는 것은 생각보다 머리 아픈 일이었다.
마치 과거,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네 개의 유닛을 저마다 독자적 컨트롤을 해 주는 상황과 같았다.
허나 태호의 일체감은 100%이며, 이미 수호자의 힘을 각성해 오감과 정신을 비롯한 모든 능력이 개량된 상태. 잠깐 동안 헤매긴 했으나, 금세 익숙해졌다.
잠시 후, 태호는 네 분신체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신비력이 조금 더 발전하였습니다.]
‘역시다.’
금세 신비력 발전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신비력이 조금 더 발전하였습니다.]
[신비력이 조금 더 발전하였습니다.]
혼자 할 때의 5배의 효과다. 곧.
[보유 중인 스킬 ‘신비력(어둠)Ⅰ’이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신비력(어둠)Ⅱ]
[설명 : 태고의 힘, 정순한 어둠의 비전력과 신력의 결합체를 사용합니다.]
[마력을 치환하여 신비력을 수집합니다.]
[2단계에 접어들며 신비력의 농도가 더욱 짙어졌습니다. 신비력으로 가하는 모든 스킬의 성능이 20% 상승했습니다.]
크게 달라지진 않았으나, 20% 스킬 성능 상승이 붙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신비력 연마를 주문했다.
4인의 분신체가 가부좌를 틀고 신비력을 연마하는 것을 보는 것은, 꽤나 기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본인 역시 눈을 감은 채 연마에 돌입했다.
현 상황.
우선은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악신들은 현재 둘 남아 있고, 그들의 힘들을 흡수한다면 훨씬 더 강해질 터다.
‘볼카노스의 권능은...’
그의 다음 권능을 받기 위해선 에픽 20개가 필요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수준으로 늘어난다면 20개 다음엔 40개가 분명한데 가히 천문학적 요구량이었다.
‘문제군.’
고오오오-!
전신에서 신비력이 요동쳤다. 마치 기분 좋은 차가운 물에 온몸이 잠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이되, 몸에 닿으면 젖지 않은 채 보송보송한 느낌은 살아 있다.
‘곧 사도들이 온다.’
로키의 계획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그것이 현 상황의 관건인 셈이다.
생각대로 천상의 권좌와 혼돈의 권좌가 갈등을 빚게 된다면, 모든 적을 태호 혼자 상대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의외의 아군이 있을 가능성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고...’
상위 신, 부처. 그가 유일한 상위 신들의 아군일 확률이 높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태호는 점점 더 무의식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무슨 생각을 하긴 하는데, 그 생각 자체가 금세 저 뒤편으로 사라져 버리는 기분. 무아지경이라는 집중력의 세계에 접어든 것이다.
의식이 끊어진 듯 그야말로 정신없이 비전력 수련에 임하던 어느 순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상황에서 문득, 온몸에 기괴한 열기가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뭐지?’
고오오오오오-!
신비력은 태호의 체내에서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온몸을 순환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 온몸에 열기가 들어차는 것이다.
‘어?’
가만 보니, 온몸을 돌던 신비력이 마력의 영역을 침범해 나가고 있었다.
고오오오-!
신비력은 마치 마력을 잡아먹듯 삼켜 버린 뒤, 그 자리에 들어찼다.
온 몸의 혈관이 뒤틀리고 용암이 들끓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큽.’
예전이라면 적지 않게 당황했을 테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태호는 그것이 ‘한 단계 높은 신비력’으로 가기 위한 과정임을 대번에 깨달았다.
필사적으로 정신을 바로잡은 채 신비력 유지를 위해 힘을 썼다.
콰아아아아아!
온몸의 신비력이 폭주하듯 늘어난다. 그것을 제어하려 애쓰던 태호는 온몸의 혈관 하나하나 속으로 신비력이 주입돼 간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피, 마력 등이 모조리 신비력으로 만들어지는 기묘한 경험이었다.
그 순간.
마치 몸이 붕 뜨는 것 같다! 이 역시 무아지경이 만들어 낸 새로운 감각일 뿐인가?
아니.
아닌 것 같은데?
‘어라?’
태호는 눈을 부릅떴다.
‘어?’
그리고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하늘.
태호의 전신은 순도 높은 어둠에 뒤덮여, 하늘을 부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땅이 벌써부터 새끼손가락만 하게 작게 보인다.
‘어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호의 몸은 둥실둥실 저 하늘로 향할 뿐이었다.
‘어어어어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문득.
태호의 두 눈에 펼쳐진 황홀경의 세계!
하늘의 별이 하나하나 가까워지고, 저 멀리 흐르는 찬란한 은하수가 보인다.
달은 지나치게 커 보이고 그대로 둥실둥실 더 높은 하늘로 떠오를 무렵.
더 높은 하늘로 빠르게 솟구쳐 올라간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하늘성보다 훨씬 더 높은, 마치 이 세상의 끝에라도 도달한 것처럼 지상의 모든 것이 개미처럼 보일 무렵.
태호의 두 눈에 보인 것은 이 세계에 만들어져 있는 거대한 결계였다. 매우 얇은, 마치 유리막 하나 같은 결계이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그런 결계다.
그 결계에 도달하자,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게 설마 리얼 포스의 이중 맹약?’
수호자의 대사제 데칼이 만들었다는 이중 맹약의 결계를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충돌하면 죽는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지만, 이상하게도 온몸에 느껴지는 것은 굉장히 따스한 기운이었다.
두 눈을 뜨자, 또 다른 세계였다.
태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중 맹약의 결계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빠져나온 것이다!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리얼 포스의 지상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거대한 세계들이었다.
< 대사제 데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