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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53화 (153/194)

티 안 나고 신속하게 (2)

태호는 부하인 악마의 그림자에 숨어,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로키에게 물었다.

-올림포스와 마몬이 싸우는 중인 모양이군요?

-그렇지? 정확히는, 걔들은 원래 항상 싸운다. 북방의 마지막 구역이 올림포스산일 테니까?

-그쪽에도 상위 신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다. 다만, 근접했던 신이 있지.

-누굽니까?

-우라노스. 상위 신에 가장 가까운 녀석이라고 할 수 있다. 힘은 충분하나, 상위 신으로 격상되지는 못하고 있지. 덕분에 근접한 아도니스와는 자주 투닥거린다고 보면 돼.

-투닥거리는 이유는요?

-올림포스의 영역 반경에 광범위하게 자라는 신과(神果) 때문일 거다. 그건 뭐 신선과보다 상위에 속하는 재료라 할 수 있지.

태호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이상하군요. 그냥 상위 신들이 나서서 해치우면 그만 아닙니까?

-너는 상위 신들의 무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

로키의 물음에 태호는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로키 님보다 조금 더 센 정도?

-신화력이란, 조금 더가 아니라 꽤나 압도적인 우위의 힘이다. 물론 이 몸은 꽤 강하니까, 솔직히 내 집 안에서는 상위 신들과 비빌 만하다.

-지역에 따라 강하고 약하고의 차이도 있습니까?

-당연하지. 불의 신 아그니가 굳이 화산 지대에 사는 이유를 생각해 봐라.

-아!

태호는 대번에 이해했다.

로키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우라노스는 올림포스 안에서는 상위 신과 거의 동급 힘을 발휘한다. 직접 라와 우라노스가 맞붙는다면, 북반구 대륙은 아예 증발해 버릴걸? 그래서 라는 직접 올림포스를 향하지 않고, 우라노스는 직접 아도니스를 공격하지 않는 거다.

-아하!

-그건 모두에게 손해니까, 부하들의 무력이 곧 상위 신의 무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라의 무력은 꽤 막강한 편이지. 전투 양상 역시 인간 세계처럼 대규모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 대 일, 이 대 이 등의 소규모 전투가 천계의 전쟁이지.

로키의 말은 꽤 도움이 되고 있었다.

-게다가 신화력은 소모가 된 후, 회복이 매우 더디다. 덕분에 상위 신들이 직접 나서는 것은 보기 힘들다. 가장 최근의 경우가, 지상에 제멋대로 강림한 볼카노스를 잡기 위해 메타트론이 힘을 쓴 것이니.

-흐음...

태호는 우선, 마몬을 주시하기로 했다. 악마가 마몬에게 말했다.

[오늘 밤은... 계획대로... 올림푸스의 국경을 넘으실 예정이십니까?]

국경을 넘는다?

태호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무렵, 마몬이 대답했다.

[최근... 사도들이 지상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는구나... 이번 회차의... 리얼 포스가... 생각보다 빨리... 끝날 모양이군... 문제가 생겼다...]

사도는 곧 움직일 예정.

[또한... 나 역시, 새로운 사도로... 발탁된 바...]

마몬이 사도다?

태호는 그것에 대해 로키에게 물었다.

-마몬 그놈이 사도가 됐다고? 그건 금시초문인데.

로키도 모르는 극비사항인 듯 했다.

[때문에... 라 님께 사도의 세례를 받기 전... 북부의 일을 깔끔하게... 해결하고... 가고 싶군.]

마몬의 말에 악마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태호는 악마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탑의 그림자로 이동해 그곳에 몸을 숨겼다.

* * *

마몬은 옥상의 거대한 광장에 한동안 머물며 명상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신력은 끊기지 않고 치솟아 올라 탑의 사방에 퍼져 간다.

동시에 탑을 둘러싼 신력의 결계는 더더욱 두터워져 갔다.

‘결계를 강화하는구나.’

그가 몸을 일으킨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천계에도 밤이 찾아온다.

태호는 그 마몬의 모습을 쫓았다.

마몬이 사방으로 자신의 신력을 쭈욱 퍼트렸다.

[일어나라... 나의 부하들이여...]

하늘을 보니, 붉은 달이 떠 있었다. 마몬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탑을 떠나려는 모양이다.

조금 아까, 마몬에게 보고를 하던 악마를 비롯한 몇몇 부하들이 옥상으로 올라와 무릎을 꿇었다.

[목숨으로... 지키겠습니다...]

에픽들은 가져가지 않는 모양이다. 가만 보니, 에픽들은 정화가 진행 중이었다.

‘다녀와서 먹어 치울 생각인 모양이군.’

태호의 머리가 잽싸게 굴러갔다.

[다녀오마...]

마몬이 음산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 순간, 검붉은 바람이 휘몰아쳐 마몬과 수하들이 사라졌다.

‘좋아.’

마몬은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탑 내부에는 당장 수백의 병사가 주둔해 있었고 탑을 둘러싼 결계는 더욱 가중되어 있었다.

침입자의 흔적은 전혀 없었으니, 안전에 안전을 기한 셈이었다.

물론.

태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그의 패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악마는 옥상에서 사방의 결계를 꼼꼼히 살폈다.

곧.

옥상으로 대여섯의 악마가 더 올라왔다. 놈들은 시선을 마법진과 에픽 아이템에 둔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난감한데.’

태호는 고심하다가, 문득 그럴듯한 생각을 해냈다.

일단.

태호는 탑 바깥쪽에 숨겨 둔 분신체로 본신을 이동한 뒤, 인벤토리창을 꺼냈다.

‘여기 어딘가 있었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인벤토리창을 찾던 태호는 아이템 몇 가지를 꺼내 들었다.

‘폭탄 해파리, 안개 열매.’

폭탄 해파리는 레이드급 던전 ‘바넷사의 해저 기지’를 클리어하며 잔뜩 주워 둔 바 있던 아이템이다.

안개 열매는 신선의 산인 영산 근처에 무성히 자라, 대충 수확해 둔 바 있었다.

폭탄 해파리는 마력을 담아 던지면 폭발 효과를 얻는다.

이는, 물리적 대미지는 거의 적지만 꽤나 큰 소리와 화려한 이펙트로 장난삼아 대도시 테러를 할 때 쓰면 꽤 재미있는 물건이었다.

안개 열매는 일정 지역에 안개를 만들어, 여러모로 응용이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두 개를 꺼낸 태호가 눈을 빛냈다.

신비력은 사용할 예정이나, 볼카노스와 관련된 스킬이나 권능은 일단 사용 보류다. 혹시나 놈들이 눈치채면 귀찮아진다.

우선.

폭탄 해파리를 백여 개 가까이 꺼내, 신비력을 불어 넣었다.

보통의 폭탄 해파리는 인벤토리창에 들어감과 동시에 바짝 마른 건어물 같은 생김새가 되지만, 마력을 불어 넣으면 이렇게.

지이이잉-!

당장 터질 듯 부풀어, 야구공처럼 변한다. 충격이 오면 무조건 터져 버리는데, 잔해조차 남지 않아 꽤나 유용했다.

태호는 그렇게 변한 폭탄 해파리들을 탑의 근처로 냅다 던졌다.

쾅! 콰콰콰콰콰콰쾅! 콰지지직!

조용하던 도시에 일순간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이지?

-폭발?

태호는 인벤토리창에 가득 있는 해파리들에 죄다 신비력을 쏟아부어 도시 사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쾅! 콰콰콰쾅! 콰지지직!

‘와, 이거 장난 아니네.’

당장 쓰는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파괴력이 엄청났다. 신들이 없는 곳을 골라 던지고 있다곤 해도, 한방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고 건물이 아작 나는 것이다.

특히 중점적으로 뿌리는 것은 마몬의 탑 인근이었다. 그림자 속에 숨어서 뿌리고 숨어 버리니, 태호는 없고 애꿎은 폭탄만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쾅!

그리고 안개 열매를 터트린다.

사아아아-!

삽시간에 온 사방에 안개 지대가 만들어졌다.

태호는 인벤토리창에 가득 들어 있는 폭탄 해파리에 신비력을 모조리 담아, 하늘 높이 던졌다. 둥실 떠올라, 바닥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그대로 다시 탑 정상의 그림자로 이동한 태호가 정면을 주시했다.

[크르르르?]

[이 무슨 일...?]

[폭발... 심상치 않다...]

정상의 악마들이 우왕좌왕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몬에게 보고를 한 악마는 제법 등급이 높은 악마인 듯, 각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탑 정상에는 단둘의 악마만이 남았다. 마몬에게 보고를 하던 악마, 그리고 그의 수하인 듯한 악마다.

[다곤... 너는 지금 당장... 탑의 경비태세를 발동하라...]

[알겠습니다... 림몬 님...]

높은 직책은 림몬, 낮은 직책은 다곤.

과거 어디선가 흔한 악마의 이름 중 하나로 보았던 적 있는 듯했다.

태호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림자에서 튀어나왔다.

쑤우욱-!

[엇?]

[웬 놈이냐!]

두 놈이 태호를 보며 소리쳤다.

동시에 작렬한 것은, 15발의 ‘강화된 어둠의 명령’이었다.

사전에 저장된 스킬이 그야말로 시전 시간조차 없이 쏘아져 나간다.

콰지지지직!

림몬의 머리에 작렬!

그야말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와지지직!

림몬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일격에 죽지는 않았으나, 이대로라면 단숨에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옆에 서 있던 다곤이 두 눈을 부릅뜰 무렵은, 태호의 지팡이가 놈에게 마법을 날린 뒤다.

‘절멸의 화살.’

파시시식!

그 무렵.

쾅! 콰콰쾅!

콰콰콰쾅!

탑 바깥에 던져둔 폭탄 해파리가 지상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폭음을 만들어 냈다.

‘폭사, 폭사, 폭사.’

쾅 쾅 쾅 쾅!

그 폭음에 맞춰 폭사를 이어 갔다.

무시무시한 폭음이 들려오지만, 탑의 사방에서 터지는 소리와 맞물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촤라라라락!

이어 두 개의 신의 주박이 쏟아져 나왔다. 태호는 주박이 완성되기 직전, 계급 높은 악마인 ‘림몬’으로 변했다.

‘속임수.’

바로 로키의 가호, 속임수를 이용해서.

촤아악!

어느새 태호의 모습은 림몬의 모습이 되었다. 옥상의 두 악마가 바로 주박에 걸리고, 태호는 두 놈을 구슬로 만들어 인벤토리창에 집어넣었다.

남은 것은 전리품 획득!

망설임 없이 사방에 놓여 있는 스무 개가 족히 넘는 에픽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에픽이 단숨에 너무 많이 들어오니, 솔직히 현실감도 없어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챙길 즈음.

[무, 무, 무슨 짓이십니까... 림몬 님!]

뒤늦게 올라온 악마들이 그런 태호를 보며 기겁했다. 태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크르르...]

‘이런 식으로.’

마치 들킨 것이 분하다는 듯 태호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악마들에게 포효했다.

[나는... 지금부터.. 올림푸스로 갈 것이다... 크크크, 멍청이들... 마몬은... 어차피...]

딱히 뭐라 말할 거리가 없어, 마치 거대한 비밀이 있는 것처럼 말끝을 흐려 본다.

동시에 태호는 아이템을 모조리 인벤토리창에 넣은 뒤 탑의 옥상 저편으로 뛰어내렸다.

[어엇!]

[무, 무슨 짓!]

까마득한 저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태호는 탑 밖의 분신체로 본체를 옮겼다.

팟!

그리고 분신체를 해제했다. 이로써, 소기의 목표 중 하나였던 마몬의 창고를 털었다. 탈탈 털어 버려, 솔직히 놈이 얼마나 분노할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다. 기왕에 저질러 버렸고, 어차피 돌이킬 수 없다.

태호의 머리는 풀가동 상태.

‘다음은 올림포스다.’

마몬이 향했다면, 분명 전투가 벌어질 확률이 높다. 우선 그곳으로 달릴 생각이었다.

마몬의 힘을 지켜보고, 다른 신들과의 전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태호가 두 눈을 반짝였다.

문득.

도심 저편에, 거대한 피라미드 꼭대기의 눈이 보였다. 부릅뜬 눈은 도심을 쓰윽, 훑다가 문득 태호를 바라보는 듯했다.

태호는 빤히 서서 눈을 바라보았다.

저것은 상위 신 ‘라’의 눈일 것이다.

언젠가 저런 놈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가올 현실임은 분명했다.

태호는 그곳을 바라보며, 주먹을 내밀었다. 그리고, 가운뎃손가락을 펼쳐 한쪽 눈을 찡긋한 뒤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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