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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54화 (154/194)

전 차원급 또라이

대도시 아도니스 북부.

거리로 치면 체감상, 본대륙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올라가는 거리와 맞먹는 듯싶다.

가파른 산등성이를 지나쳐, 거대한 강을 넘어 어마어마한 크기의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부 땅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크기.

이 고지대의 끝에 있는 것이 올림포스일 것이다.

‘저기다.’

일순.

사방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방은 일단 북부이기에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으나, 어느 정도 임계점을 넘어선 순간 찬바람이 사라졌다.

그리고.

고오오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거대하고 위압적인 신력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이었다.

공간 안에 아름다운 나무들이 서른 그루 정도 있었고, 그 나무들에 저마다의 과실이 달려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저게 바로 신과.’

신선과보다 상위 열매이며, 이 북부를 상위 신 ‘라’가 노리는 이유.

태호는 그 결계를 보자 슬쩍 뒤로 빠졌다.

고오오오-!

사방에서 신력이 몰아치고 있었다. 하늘은 어느새 거무죽죽해지고, 불길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도 색깔이 있다면, 검붉은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여기저기서 하나둘, 신력들이 등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태호는 근방의 거대한 나무의 그림자에 숨어 저편을 바라보았다.

산 초입.

그곳에, 거대한 덩치의 괴물인 마몬이 서 있었다. 마몬의 사방에는 그의 수하로 보이는 악마들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하얀 기운을 사용하는 세 명의 신이 서서 마몬을 노려보고 있다.

태호가 그림자를 움직여, 조금 더 그들에게 가까이 이동했다.

[마몬, 또 기어들어 왔구나. 한 번만 더 나타난다면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막 입을 연 남자는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미남이었다. 상체를 반쯤 벗은 듯한 복장에, 한 손에는 번개 모양 창을 쥐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거 제우스구나.’

올림포스 신화에 대해서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제우스, 헤라, 헤라클레스 등을 비롯한 각종 신들은 이미 한국의 매스 미디어에서 닳고 닳은 소재였다.

그렇다면?

제우스 옆에 서 있는 것은.

‘아테나!’

태호는 아테나는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테나는 직접 몇 번인가 만나 교섭한 적도 있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자신의 창과 방패를 쥐고 있었고, 그 옆에는.

아테나와 비슷한 모습을 한 남신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건 아레스일 거다.

로키의 말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의 신, 아레스.

리얼 포스의 대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이지만, 총 세 명의 올림포스 신이 마몬과 조우하고 있었다.

마몬이 으르렁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침 잘됐다... 시간이 없어서... 너희 모두 한 번에 박살을... 내 주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았는데...]

[간덩이가 부었구나, 마몬!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 될 줄 알아라.]

쿠구구궁- 콰콰쾅!

하늘에 천둥 번개가 쳤다.

콰과과광!

우렁찬 번개가 바닥에 내리꽂히며, 불꽃을 만들어 냈다. 마치, 낙뢰 지역에 들어온 것 같은 한 폭의 지옥도가 금세 만들어졌다.

쾅! 콰콰쾅!

마몬의 사방에 내리꽂히는 번개들이 섬뜩하다. 허나, 마몬은 익숙하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양팔을 활짝 펼쳤다.

[나는 곧... 지상으로 향한다! 가기 전, 신과를 라 님께 바치고 가야겠다!]

콰과과과!

마몬이 양팔을 활짝 폈다. 사방으로 사이한 신력이 쭈욱 퍼져 나가, 검붉은 장막을 만들어 냈다.

쿵- 쿵- 쿵-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붉은 악마 떼였다.

‘저건 악마 떼를 소환하는구나.’

악마 떼가 그야말로 수백 수천이었다. 단숨에 사방을 수놓는 악마 군단이 나타나도,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세 신은 미동조차 없었다.

태호는 그들의 싸움을 관찰했다.

휘리리릭-!

아테나의 창이 저편을 가리켰다. 쏟아져 나온 바람의 압력이, 악마 군단의 중심을 꿰뚫었다. 동시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은, 창의 비였다.

콰콰콰콰쾃!

마몬의 힘은 대부분 졸개들의 강화, 그리고 소환 능력인 듯했다.

‘네크로멘서.’

리얼 포스에도 저런 직종이 존재한다. 하수인들을 소환해 물량으로 승부하는 직종이다.

구-웅!

악마군단의 하늘에 핏빛 구름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비가 내린다.

키야아아아악!

캬아아아앗!

악마들이 비를 맞으며 덩치를 키우고, 힘을 회복했다. 이어진 것은 올림포스의 총공격이었다.

콰콰쾅! 콰르릉 쾅!

쐐애애액!

세 신의 위용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하늘에선 연달아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수십 개의 창이 날아다니며 악마 군단을 헤집어 두었다.

허나.

‘비등해.’

태호는 마몬이 가진 힘의 격차를 여실히 느꼈다. 이놈은 다른 신들보다 우월하게 강하다.

‘그렇다면, 사도들의 수준은 딱 마몬 정도일 거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 모르겠지만, 지켜보니 완전한 힘을 보유한 신 세 명을 상대로 절대 꿀리지 않는 수준인 것이다.

콰지지직!

아레스의 창이 마몬의 본체로 날아들었다. 마몬은 자신의 끔찍한 꼬리를 휘둘러, 창을 막아 내었다.

캉-!

휘리리릭!

창은 꼬리에 맞아 빙글빙글 돌며 날아와, 태호가 깃든 그림자의 바로 옆에 꽂혔다.

‘엿 될 뻔했네.’

태호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창이 스르르 뽑혀 나와, 다시 악마 군단에게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콰지지직! 우지직!

아무튼 그야말로 신들의 싸움이란 이런 수준이다. 이 거대한 필드가 초토화되는 것도 별로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악마 군단은 그야말로 검붉은 장막에서 끝도 없이 기어 나오고, 올림포스의 신들은 그것을 막는 것이 고작인 듯싶었다.

‘어디 보자.’

좋다.

상황은 이쯤 되었으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볼까 한다.

‘신과.’

-올림포스의 성향은 어느 쪽입니까?

태호는 로키에게 물었다.

-그놈들, 중립이다. 굳이 따지자면, 별로 인간에게 큰 관심은 없는 수준이겠지.

의외였다.

-아테나는 대륙 일에 관심이 있던데요? 혼돈의 힘 억제에 한 숟갈 보태기도 했고요.

-중립이란 말은, 이쪽 사정에 따라 이득이 되는 쪽의 편에 선다는 말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쭈-욱!

저편에서 온 사방을 초토화할 정도로 거대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 저 판에 낄 정도는 아니다. 태호는 선과 밭으로 분신체를 밀어 넣었다.

쿠-웅!

위압감 가득한 압박이 밀려왔다. 심장을 옥죄어 오는 압력이었다.

허나, 마몬의 탑을 뚫을 때 느낀 압력보다는 훨씬 덜 했다.

‘흡.’

그 압력을 견디며 쑤욱, 분신체가 결국 선과 밭의 결계를 뚫고 들어섰다.

태호는 그대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신과들이 나무 하나에 수십 개씩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생김새는 체리와 비슷했는데, 크기가 제법 크다.

물씬 풍기는 향긋한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취할 뻔했다. 신선과와는 차원이 다른 물건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태호는 분신체의 몸으로 본신이동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해 마몬의 부하 중 하나를 꺼내 소환했다.

-여, 여긴 어디... 히, 히익... 시, 신과?

이 녀석의 이름은 림몬.

마몬의 수하로서, 상당히 높은 직위를 가진 악마다. 태호는 림몬에게 ‘속임수’를 사용했다. 이제 태호의 모습은 림몬의 것으로 바뀌었다.

태호는 사방의 신과를 사정 없이 쓸어 담기 시작했다.

궁- 구구궁-!

결계 저 너머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태호가 림몬의 모습으로 열심히 신과를 주워 담고 있을 무렵이었다.

신과 밭, 저편에서 기묘한 신력이 느껴졌다.

‘어쩌지?’

태호는 잠깐 생각하다, 기지를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다.

[엥...? 넌 뭐냐?]

어느 순간.

쏜살같이 태호의 앞에 나타난 것은, 금발 머리의 소년이었다.

그의 신발이 재미있다. 신발에는 날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는 둥실둥실 허공에 떠 있었다.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헤르메스.’

헤르메스는 전생에서도 한번 본 적 있었다. 몇 번인가 등장해, 잡다한 의뢰를 들어주는 식인 신이다.

[너... 림몬 아니냐? 이 새끼 봐라?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헤르메스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얘는 별거 없네?’

태호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여러 가늠질을 했다. 헤르메스는 그다지 강한 신이 아니었고, 일단 제압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 같지는 않았다.

저편을 바라본다.

제우스를 비롯한 세 신은 이쪽의 일을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

‘이 녀석이 알릴 방법은 없나?’

떠보자.

[크르르... 드, 들켰군...]

[이 악마 놈의 새끼, 너 딱 걸렸다! 여기서 딱 기다려! 내 당장...]

헤르메스가 양팔을 활짝 벌렸다. 그의 신력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가며, 뭔가를 알리는 것 같았다.

‘오케이.’

태호는 그와 동시에 잽싸게 도주하는 헤르메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가 저 녀석의 임무.’

그렇다면, 저걸 사로잡아 가도 이 상황에선 나쁠 게 전혀 없다는 뜻.

왜냐?

엄밀히 따져, 이 행동은 ‘마몬의 하수인인 림몬’이 한 일이기 때문이다.

태호는 지팡이를 꺼내 들며, 잽싸게 도망치는 헤르메스의 그림자 속에 숨었다.

[어? 이놈이 어디 갔지?]

그리고 그림자 속에서, 헤르메스의 그림자에게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강화된 어둠의 명령, 15연발.’

콰지지지지직!

이 모든 것은 진작에 익혀 두었던 스킬 ‘섀도우 체이서’ 덕에 가능한 일.

[스킬명 : 섀도우 체이서]

[옵션 : 상대방의 그림자를 가격하면, 본체에 동일한 대미지를 가합니다. 모든 상태이상 기술과 힐링, 버프 등도 동일합니다.]

이는 다크랜드의 ‘노스페라투 섀도우’에게 얻은 것으로, 아주 유용하게 쓰일 예정이다.

[어? 어어? 크아앗!]

힘차게 도망치던 헤르메스가 고꾸라졌다. 태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신의 주박술’로 헤르메스를 옥죄어 왔다.

[어? 어어어?]

촤라라라락!

헤르메스가 반항 한 번 못 하고 구슬이 됐다. 그 사이, 태호는 다시 신과를 무자비하게 쑤셔 넣었다.

그리고.

샤샤샥-!

로키의 아스가르드에 있는 분신체로 본신을 옮겨 담았고, 모든 분신체를 해제했다.

파시식!

그 모습을 본 로키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눈치였다.

[어... 너 설마...]

태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내심 태연하게 일들을 해치웠지만, 솔직히 말해 태호의 입장에서도 결코 쉬운 일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너... 헤르메스 잡아 온 거냐?]

태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과도 왕창 뜯어 왔고?]

“예.”

[오우...]

로키는 이마를 짚었다. 그는 이내 어깨를 들썩이더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으하하하하!]

“......?”

태호가 왜 웃냐는 듯 로키를 보자, 로키는 그게 더 가관이라는 양 더욱 크게 웃었다.

[너는 역시... 또라이다.]

“예?”

[또라이가 확실해. 그냥 또라이가 아니라, 슈퍼 또라이다. 거의 전 차원급 또라이야. 으하하하하!]

“......”

태호는 그런 로키를 보며 피식 웃어 버렸다. 사실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 술술 풀렸다.

마몬의 집을 털고, 마몬의 부하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뒤, 올림포스와 이간질을 하고, 신과를 어마어마하게 챙겨 온 데다, 헤르메스까지 사로잡았다.

“휴-”

또라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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