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합격
[으음...]
막시무스는 신과를 하나 먹더니, 전신에 넘치는 신력을 느끼며 신음을 흘렸다.
신력은 막시무스의 심장부로 스며들었다.
태호는 그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어떠냐?”
[음?]
막시무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가 말인가?]
“어디 아프지는 않냐?”
[흐음...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이게 신과라는 과일이라고 했나?]
“그래.”
태호는 팔짱을 낀 채 막시무스를 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이제 보니, 막시무스의 전체적인 상태가 꽤 기묘했다. 신비력을 다루는 중에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비력이 5단계에 접어들고 나서부터 같은걸.’
즉, 신비력의 단계가 상승하며 ‘기운’을 감지하는 더 세밀한 경지에 올랐다는 말이다.
태호는 아르카네와 막시무스를 같이 놓고 서로를 비교해 보았다.
아르카네의 전신에는 은은한 신비력이 감돈다. 그 안에 잡다한 기운은 전혀 없었다. 순수 그 자체! 그것이 아르카네를 뜯어본 소감이었다.
[사과 줘.]
태호는 아르카네에게 사과를 주며, 막시무스를 뜯어보았다.
막시무스는 꽤 기묘하다.
전신에 여러 기운들이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었다. 마력도 어느 정도 있고, 어둠의 기운으로 보이는 기묘한 힘도 조금, 그리고 회색빛을 띠는 힘이 미묘하게 섞여 있다. 태호의 신비력 역시 아주 약간 느껴진다.
거기에 신력이 조금 덧대어진 느낌.
“넌...... 대체 뭐냐?”
[......]
막시무스가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팟!
그리고 스스로 역소환되어 돌아가 버렸다.
“......”
태호는 다시 막시무스를 불렀다. 그리고 단단히 토라져 버린 것 같은 녀석을 구슬렸다.
“여러 힘들이 얽혀 있어서 그래.”
[흥...]
이런 기운에 대해 잘 알 것 같은 인물은? 딱 봐도 역시 로만뿐이다.
태호는 로만을 꺼내 막시무스를 보여 주었다.
[저건 여러 힘이 얽혀 있다.]
놈이 명확하게 대답해 주었다.
“얽혀 있다?”
[너는 모르는 거냐? 저놈은 데스나이트다.]
데스나이트.
태호는 그 이름을 곱씹어 보았다.
“그렇지.”
[저건 고대 왕국 아나크레온의 왕, 불사왕 쿤에게서 어둠의 세례를 받은 기사였다. 기사로서 성취도 뛰어나, 검술의 경지에도 올랐지. 게다가 혼돈의 힘으로서, 무한한 삶을 살게 되었다. 여러 힘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녀석이라고 보면 된다.]
불사왕 쿤.
이는, 태호에게 에픽 목걸이인 ‘선지자의 해골’을 하사한 리치였다.
“......!”
태호는 불현듯 그것을 깨달았다.
맞다.
다급히 로만에게 물어보았다.
“너, 막시를 알았지 참. 이 녀석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인 거냐?”
[......]
로만은 대답해 주기 싫다는 듯 침묵을 지키다,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네가 어디까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과거의 회차 중에선 ‘죽음의 군단’이라는 거대 이벤트가 발생된 적도 있었다.]
“죽음의 군단...?”
온몸이 오싹! 떨려 온다.
[너는 가끔은 멍청하구나. 저놈에게 데스나이트의 심장이라는 사기 능력을 부여해 준 이유는, 저놈 역시 계획의 일부로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획의 일부!
[불사왕 쿤과 데스나이트, 두 놈이 주력이었지. 참고로 그 계획은 꽤 성공리에 끝나, 12번째쯤 회차에서 대흥행을 했었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간은 이런 생각을 못 했다. 로만은 생각보다 더 쓸모가 있었다.
“그럼 너, 막시가 더 강해지는 법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겠네?”
[그렇겠지.]
로만이 툴툴거렸다.
“불러 봐.”
[하아......]
놈은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둠 기사단 세트, 불사왕의 왕관, 초월의 검, 무한의 방패.]
아이템들의 목록인 듯하다.
어둠 기사단 세트는 이미 막시가 입고 있다. 무한의 방패는 막시무스의 스킬 명이 아니던가?
그 외에는 잘 모르겠다. 태호의 전생에서는 본 바 없는 아이템들이었다.
[당연히 모를 거다. 이전 회차에서는 대부분 등장한 바가 없으니까. 특히 불사왕의 왕관은, 선지자의 해골을 보유한 네 녀석도 모를 정도로.]
놈이 투덜거렸다.
[쿤이 앉아 있던 의자 아래에 비밀 통로가 있다는 걸 알아낸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맙소사군.”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을 강화했을 때, 이 녀석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냐?”
[당시엔 일개 신 하나쯤은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솔깃한 수준의 잠재력이다.
[헌데, 지금 이 녀석에게는 기묘한 가능성이 보이긴 한다. 전에는 신력이나, 네놈의 그 기이한 힘 같은 것을 얻지는 못했을 테니까.]
아닌 게 아니라, 막시무스의 몸 한편에는 미량의 신비력도 일렁이고 있었다.
태호는 두말 않고 재촉했다.
“빨리 불어, 다른 것들 어디서 구해?”
[맡겨 놓은 것처럼 얘기하는군.]
로만은 투덜거렸으나, 태호에게 협조하기로 약속한 바 있었고 그것이 본인에게도 이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로만이 술술 실토했다.
[초월의 검은....]
잠시 후.
로만이 아이템들의 입수 경로를 모조리 설명하자, 태호는 분신체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분신체들을 하나하나 아이템 입수를 위한 장소로 파견보냈다.
[......]
로만은 그 모습을 보더니 입을 쩍 벌렸다.
‘터무니없는 괴물이 돼 가는군.’
어쩐지 잠깐 못 본 새, 이 미친놈이 더 괴물이 되어 있었다. 로만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승산을 가늠해 보았다.
‘이쯤 되면, 여태까지의 인간 중 비견될 인간은 없는데...’
이제 이놈에게 현재의 데페로는 그다지 어려운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중 맹약이 완전히 깨져 제약이 일부 사라진 상황에서도 고전할 것이다.
‘알려 줘야 하나.’
로만은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로만에게는 아직 태호에게 말하지 않은 여러 강한 힘들의 포인트가 있었다.
과거, 혼돈의 힘 확장을 하기 위해서는 리얼 포스의 세계 곳곳에 포인트를 만들어 두어야 했다.
매번 리얼 포스는 재시작되고, 그때마다 가장 효율적으로 혼돈의 힘을 퍼트린 뒤 유저들을 강화해야 했다.
유저들이 강해질수록, 그들의 ‘영혼’은 강한 가치를 얻으며 나아가 혼돈의 권좌에 힘을 불어 넣어 ‘이중 맹약’을 깨는 데 도움을 주었으니까.
여러 고민을 하는 로만이, 다시 태호의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갔다.
인벤토리 안으로 돌아가기 전, 로만은 자신의 칭찬을 제법 많이 들은 것이 기쁜지 화가 풀려 실실거리는 막시무스를 보았다.
‘에휴.’
* * *
자.
이제 태호는 신 하나를 죽일 생각이다.
이런 섬뜩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어쩐지 태연했다. 딱히 죄악감 따윈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고심해야 할 부분은 조겐, 로두스, 림몬. 셋 중 어떤 능력이 도움이 되느냐다.
올림포스에서 사로잡은 ‘헤르메스’는 일단 열외다. 이 녀석은 올림포스와 교섭에 사용될 수 있으며, 딱히 악감정 따위가 있지도 않았다. 그저 녀석이 재수가 없었을 뿐.
펑! 펑! 펑! 펑!
하지만 일단 소환은 해 둔다. 녀석이 가진 능력이 뭔지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으응? 허, 헉! 이게 뭐지?]
헤르메스가 기겁했다.
[이놈! 이 개 같은 놈!]
마몬의 수하였던 림몬이 포효했다.
[......]
[......]
로두스와 조겐은 조용히 입을 닥치고 있었다. 천태호라는 미친놈에게 개겨 봐야 돌아오는 것은 참담한 응징뿐이란 걸 아는 것이다.
과연.
펑!
림몬이 구슬로 돌아가, 지옥의 흔들기 코스 3회를 받고 돌아왔다.
[꾸어어억!]
좋다.
“자, 다름 아니라 지금부터 너희 중 하나를 잡아 족쳐 볼까 한다. 지금부터 너희는 서로 가진 능력의 장점 하나만 내게 설명해라.”
[뭐, 뭣! 그게 무슨 흉측한...]
헤르메스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태호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 구경하던 막시무스가 입을 열었다.
[나의 주군 카이저, 그렇다면 가장 능력이 출중한 놈을 살려 준다는 말이겠지? 바로 나처럼 말이야.]
“바로 그렇지. 자신의 쓸모를 내게 인정받으면, 오래 산다.”
막시무스가 바람잡이 역할을 잘 해 준다.
네 명의 신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눈치 빠른 조겐이 잽싸게 입을 열었다.
[나, 나, 나는 앞으로 최선을 다해 앞잡이가 되겠다. 참고로 나는, 천계의 여러 소식에 능통하며 또한 무술 지도 및 각종 영약과 비약에 통달해 있다! 또, 또...]
조겐은 확실히 여러 쓸모를 보였다.
“흐음... 좋아, 넌 합격.”
[좋았어!]
조겐이 환호성을 질렀다. 처음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정말 경박하기론 답도 없는 녀석이었다.
펑!
조겐이 구슬이 되어 사라졌다.
태호는 그다음 읊으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로두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어... 무기술에... 능하며...]
[차라리 죽여라! 미친놈, 네놈이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그때, 림몬이 끼어들어 태호에게 욕을 한 사발 뱉어냈다. 태호는 그런 림몬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조금 더 이용할 필요가 있겠지.’
올림포스의 우라노스, 그리고 아도니스의 태양신 라. 두 놈들의 사이에 조금 더 사용해 볼 여지가 남아 있다.
“아주 건방지지만, 네 패기는 마음에 든다. 너도 합격.”
로두스를 잡아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펑!
림몬이 살았다.
[저, 저요! 하나만 여쭤보고 싶어요!]
그때, 헤르메스가 급하게 소리쳤다.
“흠?”
[대체 저를 왜 납치하신 건가요...?]
헤르메스는 기죽은 얼굴로, 간신히 용기를 짜낸 듯 물어 왔다.
“신과 따는 걸 들켰으니까?”
[맙소사... 혹시 제 예상이 맞다면, 로키 님의 속임수를 사용하신 건가요?]
사로잡힌 주제에 예의 바른 녀석은 처음이다. 태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역시... 하지만 신력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어요. 또 뭔가...]
이내, 그가 흠칫 놀랐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려 하면 일찍 죽는다는 진리를 이제 깨달은 모양이었다.
녀석이 전략을 바꿔 소리쳤다.
[아, 아, 아, 아무튼! 저, 저는 신과 밭에 들어갈 수 있어요! 신과 많이 따 가게 해 드릴게요!]
“......”
태호는 코를 후비적거렸다.
“어떻게?”
[저, 저만 아는 비밀통로가 있어요! 그, 그리구요! 올림포스에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저는... 독자적인 신과 밭도 하나 가지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살려 주세요!]
대체 죽음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가끔 궁금해진다.
이들이 이토록 두려워하는 죽음이 진실로 인간의 죽음과 동등한 공포란 말인가?
태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합격.”
[정말요?]
헤르메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그를 죽일 생각도 없었지만, 그가 물어 온 의외의 정보는 큰 수확이었다.
‘신과를 더 얻을 수 있다 이거지.’
쏠쏠하다. 그렇게 되면, 신과로써 이룰 수 있는 경지들은 금세 달성할 수 있을 거다.
이런저런 가늠을 하던 태호는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유용하군.’
헤르메스를 막 돌려보내려다가, 태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그 신발은 나 줘.”
[히익!]
헤르메스가 울상을 지었다.
[이건 안 되는데요...?]
“안 되면 죽어야...”
[드릴게요!]
헤르메스는 두 눈 가득히 눈물을 훌쩍이며 자신의 신발을 벗어 주었다.
‘삥 뜯는 느낌이네.’
동네 건달이 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태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헤르메스의 신발을 받아 들었다.
“좋아. 돌아가.”
펑!
헤르메스도 돌아갔다.
남은 것은 이제 로두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