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대로 미친놈
콰지지직!
끔찍한 소리는, 로두스에게 틀어박히는 어둠의 명령 15연발의 소리였다.
[크아아아앗!]
로두스가 쓰러졌다.
사실, 태호는 무덤덤했다. 어차피 이놈은 풀어 두었으면 적이다.
이러니저러니 티격태격해서 미운 정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태호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말이었다.
오히려 적을 살려 두는 것이 비정상. 놈들을 살려 둬 봐야 나중에 배로 힘들어짐을 잘 안다.
쓰러진 로두스가 천천히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가 되고, 태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구우우우웅-!
마치 온몸에 가해지는 중력이 족히 두세 배는 가중된 느낌!
쿵-!
쿵-!
전신으로 스며드는 이질적인 고통, 그리고 힘. 태호는 ‘온몸이 용암 불에 들어가면 아마 이런 고통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익숙해지질 않네.’
허나 참아 낸다.
혈관이 하나하나 확장되며, 뼈가 조각났다 다시 맞추어지는 격통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천상의 권좌의 신, ‘로두스’의 스킬을 흡수합니다.]
[‘패시브 스킬 : 기적의 질주’를 얻었습니다.]
[패시브 스킬 : 기적의 질주]
[설명 : 천상의 권좌의 신, ‘로두스’를 사냥하여 그의 스킬 하나를 받았다.]
[자신의 모든 움직임이 300% 증가합니다.]
‘흠.’
다시 움직임이 3배 빨라졌다. 배수로 붙는 능력치는 뭐가 됐든 이득인데, 움직임 관련한 것들은 특히 더욱 그랬다.
가장 좋은 점은, 이런 움직임 관련 스킬들은 ‘탈것에 탑승’했을 때도 동시 적용 된다는 점이다.
‘우선, 신들과 맞붙었을 때 움직임 때문에 추격당해 얻어터질 걱정은 덜었다.’
로두스가 그렇게 사라진 뒤, 태호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거기에.
태호는 헤르메스의 신발을 확인해 보았다.
[등급 : 에픽]
[종류 : 방어구(신발)]
[이름 : 경계를 넘는 자]
[헤르메스, 이 녀석은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발동 시 모든 상태이상이 해제됩니다.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고유의 영역’으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이 아이템은 ‘경계’를 효과적으로 넘나들 수 있습니다.]
알쏭달쏭한 능력이었다.
‘고유의 영역에, 경계를 효과적으로 넘나들 수 있다?’
그보다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역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는 점일 거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카실론이다.
‘카실론 대체 어디 간 거야?’
그리고.
‘야타는...’
야타카라스라는 까마귀를 펫으로 거둔 적이 있었다. 녀석은 본래 ‘군자의 지팡이’를 보유하고 있던 보스급 몬스터였는데, 아무튼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그때였다.
태호의 몸에 일렁이던 신비력이 일순간, 쫘아악! 퍼졌다가 한곳으로 뭉쳤다.
쿵- !
쿵- !
쿵- !
“......?”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당황한 태호가 그것의 이유를 떠올릴 무렵.
쿠우우웅-!
저 멀리.
아마도 세상 끝자락에서라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여섯 비전력이 하늘 꼭대기까지 치솟는 것이 보였다.
“아!”
그렇다.
현재의 상황은, 드래고니악의 드래곤들이 긴 동면에서 깨어남을 의미한다.
‘좋아.’
마음이 무지하게 넉넉해진 태호는 어쩐지 씩 웃었다. 힘이 되어 줄 드래곤들이 깨어났으니, 남은 신과를 어느 정도는 나누어 줄 의향이 있다.
* * *
“흐음.”
간만에 만난 블랙 드래곤 장로, 소테드 스펠터는 태호를 보며 흥미롭다는 듯 여러모로 뜯어 보았다.
“이건 정말 맙소사군.”
그는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태호는 이제 예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던 것이다.
이제는 소테드 역시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 그 단기간 내에, 정말 믿기지 않는 수준의 성장이다.
허나.
-운명은... 이미 뒤틀린 것 같습니다만. 저 인간은 지금 지나칠 정도로 강합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가질 수 없는 운과 기연, 그리고 신들의 축복을 받은 듯합니다. 어찌 저게 가능합니까?
그는 과거, 네메데스. 즉 ‘카실론’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저 녀석이 운명을 뒤튼 겁니까?
-어쩌면.
그의 마지막 말을 되새겨 본다.
-그 녀석을 도와줘. 분명히 크게 도움이 될 거다. 내 용건은 이게 끝이야.
“흐음-”
그의 말이 맞았던가.
소테드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눈을 떴다.
그때.
그의 눈앞에는 신과가 하나 있었다.
“이건 뭐냐?”
“신과라는 겁니다.”
“신과...?”
소테드는 곧 경악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아는 그 신과 말이냐?”
“예.”
“허어...”
“드십시오. 그리고 이건...”
태호는 다섯 개를 더 내밀었다. 드래고니악에 존재하는 ‘드래곤의 유산 여섯 개’에 딱 맞는 개수였다.
“다른 드래곤 장로님들 몫입니다.”
소태드는 태호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이런 것을 주지 않아도... 나는 네게 협력할 것이다만...”
태호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저는 고작 협력자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뭐라?”
“신들과의 전쟁이 벌어질 위기입니다. 안그래도 상위 신들의 사도 중, 아수라가 지상으로 온다고 합니다. 저는 놈을 대비해야 합니다.”
“......!”
“제겐 최악의 상황에 맞설 동료가 필요합니다.”
소테드는 갈등했다.
‘죽음.’
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어떤 의미였던가? 그리고, 예전부터 느껴 왔던 기묘한 기시감.
마치 이 세계가 무한히 반복돼 왔다는 것 같은 착각!
소테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이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는가?”
태호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휴우-”
소테드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독할 정도로 청명한, 푸른 하늘이 보였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의 질감, 그리고 느껴지는 불길한 바람.
그는 다시 태호에게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것을 들어도 될까?
과연, 이것을 듣게 된다면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반응할 수 있을까?
평생을 두고 살아왔던 이 세계가, 사실은...
그는 눈을 감았다.
그는 장로급 드래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느낀 점이 하나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지식에 대해 고개를 돌리는 것은 쉽다. 등 돌린 채, 그저 ‘이대로만’ 살아가는 일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서는, 나아갈 수 없다.
이내.
그는 눈을 떴다. 다시 뜬 그의 눈에는 결심이 깃들어 있었다.
“이 세계는 무한히 반복하고 있다. 맞는가?”
“......”
제발 아니라고 해라.
차라리 그게 착각이라고 해라.
소테드는 태호를 보며 그렇게 되뇌었지만, 태호는 어쩐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
실소가 나왔다. 그는 큭큭큭, 웃었다.
“어느 정도는.”
태호는 그에게 진실을 이야기했다. 소테드는 충격받은 얼굴이었지만, 침착하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미치겠군.”
총체적인 소감은 그랬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태호가 내민 신과를 다 받았다.
“이쪽은 내가 움직여 보지. 다만,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가 움직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물러서기로 했다.
“기다리겠습니다.”
* * *
“어마?”
간만에 본 엘린은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하늘하늘한 하얀색 원피스에, 곱게 빗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찰랑였다.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녀는 조각 같은 입술을 움직여, 태호에게 말했다.
“이 개새끼 또 왔네?”
“......”
못 들은 걸로 하자.
태호는 험험, 목을 가다듬은 뒤 엘린에게 입을 열었다.
“먹어라.”
그녀에게도 신과를 내밀었다.
“뭔데?”
“좋은 거.”
엘린은 태호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면서도, 열매를 입에 넣었다.
곧.
“히야아악!”
두 눈을 부릅뜬 채 비명을 질렀다.
“너, 너, 너 이 새끼! 드디어 나를 암살... 어?”
태호는 엘린을 주시했다.
‘확실히 고대 일족들은 힘 컨트롤이 빠르네.’
엘린은 몸에 깃든 신력을 보며 기묘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거... 신력?”
“신과란 열매야. 잘 먹어 치웠어.”
“......”
태호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장하다.”
“어, 어, 야! 이걸 왜 나한테...”
“만약에 무슨 일 생기면.”
태호는 엘린에게 똑바로 말했다.
“부리나케 도망쳐라, 알았지? 하늘성 같은 데로 숨어서, 나오지 마.”
“......무, 무슨 말?”
그때였다.
저 먼, 아주 먼 곳의 하늘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쿠구궁- 쿵-
쿠구구구궁-
하늘로 먹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태호는 엘린의 공중정원에 서서 팔짱을 낀 채, 그것을 주시했다.
‘온다.’
저것은 로키가 사전에 말해 둔 바 있는, 상위 신 ‘브라만’의 사도인 아수라가 분명했다.
사도!
놈들이 드디어 지상으로 향한다.
태호는 숨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쿠구구궁- 쿠궁-
하늘이 미친 듯이 우는 어느 순간.
쩌저적-!
마치 하늘이 무형물처럼 절반으로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이 먼 곳에서도 다 보인다.
갈라진 하늘의 틈새에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붉고 시커먼, 용암 불이 들끓으며 비명이 가득한 지옥도다.
그 틈으로 뭔가가 쏟아져 내린다.
거대한 힘!
이 먼 곳까지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신력의 파동이었다.
태호는 천천히 로만을 꺼냈다.
“아수라가 왔다.”
-흠.
로만은 의외로 그리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예전에도 아수라 정도는 강림한 적 있었냐?”
-한 번.
로만이 어쩐지 맥 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땐 어땠는데?”
-저 돌대가리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놈이다. 하지만, 상위 신의 명령은 철저히 지키는 놈이기도 하지. 아무래도... 예전의 그 일 때문인 것 같은데.
예전의 그 일.
바로, 악신 ‘아자무스’와 혼돈의 대장군 ‘데페로’를 싸움 붙였던 그 일 말이다.
-한번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 데페로도 말 안 통하는 돌대가리지만, 아수라는 차원이 다른 돌대가리다.
태호도 동의하는 바였다.
......쿠구구궁- 쿠궁-
하늘은 요동치고 있었다. 사방에는 붉은 신력이 쫘악 퍼져, 온 사방의 모든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두둑 두두둑-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리꽂힌 것은 붉은 신력의 덩어리라고 봐도 무방한 빛의 군집체였다.
그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며, 그 안에서 등장한 한 남자가 있었다.
상의는 벗어 던져 버렸는지 온데간데없고, 폭넓은 검은색 면바지를 입었다.
맨발에, 근육질 상반신을 드러낸 남자의 머리카락은 타오르는 붉은 빛이었다.
두 눈은 영롱한 루비색으로, 광기로 번들거렸다.
[지상!]
그가 소리쳤다.
[지상! 지상! 지상! 크하하하하! 내가 지상에 왔다!]
아수라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20대 초중반 정도로 젊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태호의 눈에는 보였다.
놈의 등 뒤에는 반투명한 신력으로, 무수히 많은 팔이 일렁이며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고 있었다.
‘신비력 등급이 올라가면서, 내 눈이 완전 바뀌었어.’
이제 태호는 과거에는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아하하하하! 우하하하! 우히히! 으히히!]
아수라는 기쁘다는 듯,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웃었다. 태호는 멀찍이 떨어진 그림자 속에 숨어서,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어떠냐, 미친놈이지?
로만의 말에 적극 공감이다.
‘미친놈이네.’
역시 소문대로 미친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