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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60화 (160/194)

공갈 협박

아수라는 자신의 몸을 몇 번이고 돌아보더니, 기분이 좋은 듯 다시 크게 웃었다.

“왜 저렇게 웃고 지랄이지?”

태호의 말에, 로만이 투덜거렸다.

-저놈이 원래 살던 곳은 천계에서도 가장 끔찍한 무간지옥이다. 거기서 벗어나 지상에 온 것이 기쁜 모양이지.

아수라는 그대로 자신의 양 주먹을 쾅쾅! 맞부딪혔다.

동시에, 놈의 등 뒤에 희미하게 일렁이던 팔들이 움직였다.

쇄쇄쇅! 쇄쇗!

콰지지지지직!

온 사방에 팔들이 든 거대한 장비들이 휘둘러지며, 그야말로 초토화가 돼 가기 시작했다.

[으하하! 으하! 좋아! 아주 좋아!]

아수라는 그대로 한참이나 사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데페로-! 이 호로 새끼! 거기냐!]

“......”

-......

아수라가 땅을 쾅! 하고 찼다. 곧, 사방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아수라의 신형이 저 멀리 사라졌다.

따라가야 한다.

태호는 그대로 몸을 움직였다.

쐐애애애애액-!

가볍게 땅을 찼을 뿐인데, 움직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학 빨라졌다.

바로, 로두스를 잡고 얻은 3배 움직임 보너스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크르릉-!

유령표범이 소환되고, 녀석이 그야말로 물 위도 질주할 기세로 땅을 주파해 나갔다.

저 멀리.

아수라의 시뻘건 신형이 보였다. 예전이라면 단숨에 놓쳐 버렸을 그 움직임이, 지금은 보인다. 손에 잡히고 있었다.

태호는 느꼈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근접 공격을 가해 오는 신들에게서 충분히 몸을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 *

남부, 잊혀진 섬.

[데 페 로 오 오 오 오!]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데페로가 고개를 돌렸다. 이 기운은 아주 익숙하고, 또 유쾌하지 않은 기운이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 멀리.

시뻘건 신력이 느껴지더니, 놈이 쇄도해 오는 것이 보였다. 불덩어리가 날아오는 듯 하더니 곧.

콰아아앙!

아수라가 잊혀진 섬에 당도했다. 아수라는 착지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뒤, 벌떡 일어서서 데페로에게 소리쳤다.

[데페로! 네놈이 감히 아자무스를 공격했느냐? 뭐지? 이유가 뭐냐? 바로 말 해라!]

성미 급한 것이 딱 아수라 다웠다.

[귀찮은! 놈이! 왔군!]

[나는 브라만 님의 사도! 이 악행을 잠자코 넘어갈 수 없느니라!]

[뭐라! 여전히!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두드득 - 우드드득-!

데페로의 혼돈의 힘이 개방되고, 아수라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신력이 뿜어져 나왔다.

잊혀진 섬의 사방에 진동이 울려 퍼지며, 그야말로 당장이라도 맞 붙을 기세가 이어졌다.

그 모습을 태호가 그림자 속에 숨어 지켜보고 있었다.

-저 등신새끼들, 저럴 줄 알았다.

로만이 말했다.

-야, 나 풀어 줘.

“괜찮겠어?”

-어차피 저놈 저거, 우리 죽일 수는 없다. 특히 나는 더 그렇지.

맞는 말이었다.

로만은 판타로스의 사념체. 즉, 현세에서는 판타로스의 역할을 대행한다. 로만을 공격하는 것은 곧 진짜 선전포고이며, 돌이킬 수 없어진다.

-저거 의례상 저러는 거야. 하지만 두 돌대가리가 만났으니, 진짜 싸움이 나도 이상할 것 하나 없다.

“......”

-그럼 데페로는 죽는다. 저놈에게 죽으면 우리 모두에게 손해니, 풀어 줘.

태호는 로만을 보다가, 그를 풀어 주었다. 그의 말은 일리 있었다.

펑!

풀려난 로만은 자신의 혼돈의 힘을 끌어 올렸다. 잊혀진 섬 끝자락에서 풀려난 로만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신의 주박술로 꽁꽁 틀어 막혀 있지만, 아주 미량의 혼돈의 힘은 운용이 가능하다.

[사티로스!]

아수라가 시선을 돌렸다.

로만은 아수라를 보며 혀를 찼다.

“귀찮은 놈이 왔군.”

그의 투덜거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아수라가 전신에서 불꽃을 튀겨냈다.

[너! 똑바로 대답해라, 아자무스를 공격한 이유가 뭐지? 선전포고인가?]

로만이 오히려 따지듯 말했다.

“내가 묻고 싶군. 네놈이 모시는 브라만의 의도는 뭐냐?”

아수라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났다.

[무슨 말이지?]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이번 회차는 심각하게 틀어졌다. 모든 계획이 다 망가졌고, 이대로면 이번 회차에서 이중맹약이 깨질 것 같지가 않다.”

[.....!]

아수라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 땅의 인간들이 어느정도 성장을 해야, 혼돈의 권좌가 열려 그들을 흡수한다. 허나 이 상황을 보아라, 계획대로 진행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다 아작나 버렸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아수라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리얼포스의 대지에서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할 ‘혼돈의 힘 퍼트리기’ 가 전혀 진행돼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태호’ 에 의해 전체적으로 아작이 났다.

[그, 그, 그건 단순히 네놈의 능력 부족...]

“닥쳐라!”

로만이 거칠게 소리쳤다.

[그래! 닥쳐라! 머저리!]

가만히 지켜보던 데페로가 동조했다. 아수라는 두 눈이 시뻘겋게 변해, 빠드득 빠드득 이를 갈았다.

[한 번은 참아 준다. 자... 하던 얘기를 계속 해라.]

“계획대로 하나도 진행되지 않은 것은, 나의 탓은 아니다. 나는 지난 140여 회차에 걸쳐 무수히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단 한 차례의 실수도 없었다는 것은 천계의 모두가 아는 사실!”

140회차나 됐다고?

태호는 혀를 찼다.

“허나 이번 회차에는 유독 걸림돌이 많았으며,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그것은 내가 볼 때...”

로만이 숨을 고르고, 아수라를 보며 소리쳤다.

“상위 신들의 개짓거리가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개소리!]

아수라가 대꾸했다.

[우리는 그저 여태까지처럼...]

“그럼!”

로만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럼, 일단 하나 물어보지! 조겐은 어디 갔지?”

[조...겐?]

아수라가 두 눈을 꿈뻑였다.

“소위 ‘악신’ 이라 불리는 놈들이 우리를 도와주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조겐은 어디 갔지?”

[그, 그야 나는 모르지!]

“그럼 로두스는 어디 갔는가? 셴은? 그 빌어먹을 자식들은 다 어디 가고, 도와준다는 약조는 대체 어디 갔는가? 될 일이 하나도 되지 않고 있다!”

태호는 그림자 속에 숨어, 로만의 말을 듣다 기함을 토해 버렸다.

‘말빨 좋네.’

태호는 조겐, 로두스, 셴이 다 어디 갔는지 안다.

그중 둘은 태호가 죽였고, 조겐은 지금 인벤토리 창 안에 있다.

허나 상위 신들이 알 리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로만의 화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조, 조, 조겐은... 메, 메타트론 님의 부하이다. 그러니 내가... 알 방법이 없지. 게다가 셴은 라, 로두스는...]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다!”

로만이 그의 말을 다시 끊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내 볼 땐, 아무리 봐도 천계의 상위 신들의 개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단 거다!”

[......]

“너희들 중 누군가가 이중맹약이 깨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게 아니면 협력을 약속했던 악신들이 모조리 잠적해 버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네놈은 지상에 나타났지!”

[......음.]

“마지막으로, 아자무스는 이 몸을 주박으로 묶으려 했다! 증거는 내 몸에 남은 주박의 상흔이다! 이 덕분에 일 진행은 더 힘들게 됐다!”

로만의 말은 죄다 거짓이었다.

거짓말을 아주 잘 했다.

[무, 물증이 있는가?]

로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쪽에서도 물증이 없구나?’

그렇다면 더욱 당당하게.

“물증? 그것은 아자무스에게 요청해야지 당한 내게 요청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 또한 엄밀히 따지면 맞긴 한데, 애초에 가정 자체가 거짓이었다.

오히려 당당한 로만에게 아수라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또한 아자무스는 라의 부하! 내가 볼 땐 상위 신 라가 제일 수상하다! 너희는 대체 어찌 나를 의심하는 거지? 리얼포스의 이중맹약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이 누구 같나?”

[.......]

“당연히 이 몸, 사티로스 님이다! 설마 너는 내가 이중맹약이 깨지기를 원치 않는다 생각하는가?”

[어... 그건 아닌데...]

아수라가 그의 화려한 말빨에 밀렸다.

그가 우물쭈물 하는 것이 보였다.

이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네 말이... 일리가 있긴 한데... 그래도 명령은 명령이다!]

“명령이 뭔데 그러지? 한번 읊어 봐라!”

로만의 말에 아수라가 두 눈을 깜빡였다.

[음... 네놈과 대장군 데페로를 제압하고, 자세한 사항을 알아낸 뒤 일을 해결하라 하셨다.]

“네놈은 정말 대가리가 돌로 만들어져 있군. 천계의 아수라와 헤라클레스의 대가리는 돌덩어리라는 말이 사실이었나 보구나!”

[뭐어?]

아수라가 전신에서 불꽃을 탁! 튀겼다. 그리고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가아암히 그 돌대가리와 나를 비교해?]

“물론 그와 비견되는 아자무스와도 형제나 다름없다. 네놈의 돌대가리는 그 정도로 끔찍한 일이다! 잘 생각해 봐라, 방금 나는 진실된 정보를 다 실토했다!”

[어윽!]

그건 또 사실 같았기에 아수라가 머뭇거렸다.

“그러니 지금부터 네놈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권좌간의 심대한 갈등의 시작이 될 것이다. 나는 어차피 죽어도 혼돈의 권좌로 돌아간다!”

[......]

“그리고 다음 회차에 기필코 네놈의 죄를 물어, 그야말로 개박살을 내놓을 것이다. 네놈은 무간지옥이 싫겠지만, 판타로스 님께 간곡히 부탁드려 네놈을 평생 그 곳에 못박아 주겠다!”

[아이 씨... 이게 아닌데.]

아수라가 투덜거렸다. 이게 아니다 싶었는지,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로만이 슬쩍 그를 더 건드렸다.

“너는 브라만이 네 뒤를 언제까지고 봐 줄 것 같으냐? 내 볼 땐 어차피 너는 소모품이다. 네가 뭔가를 저지르면, 너를 잘라내 책임을 지면 되는 소모품이란 말이다.”

로만이 가슴을 활짝 펼쳤다.

“그래도 충성을 지키고 싶다면, 나를 죽여라. 여기 데페로도 죽여라. 그리고 다음 회차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준비나 해라. 평생 무간지옥에서 썩게 만들어 주마!”

아수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돌대가리에 말이 통하지 않는 멍청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주 바보는 아닌 모양이다.

로만의 협박에 두 눈을 꿈뻑이던 아수라는 한참 동안이나 망설이다가,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조만간... 다시 온다.]

로만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네가 말 한 것들은... 다 상세히 전하겠다... 그리고, 진위여부를 파악하여 다시 돌아오지.]

“좋다!”

[칫!]

쾅!

아수라는 땅을 찼다. 땅이 움푹 파이며,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고, 그 틈새로 아수라의 신형이 빨려 들어갔다.

치치치칙-!

갈라진 하늘이 하나로 붙고,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휴....”

로만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사티로스! 나는 놈과! 싸우고 싶다! 저 놈은!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이 돌대가리를 어찌하면 좋을까.

로만은 데페로를 보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아니다. 때를 기다려라.”

로만은 털썩 주저앉아 탈진한 듯 이마의 땀을 닦아내다, 태호가 숨어 있는 그림자를 보며 살짝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태호도 그림자 속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로만의 공갈협박이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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