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기사
데페로에게서 얻은 것은 혼돈의 유산 4개다.
하나는 장착 시 귀속이고, 세 개는 평범한 유산. 일단 제물로 유용할 테니, 놔두고 걸음을 재촉한 곳은 드워프들의 대장간이었다.
드워프들의 대장 엑셀이 태호를 맞았다.
“기다리고 있었네.”
그는 자신 있게 팔찌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우리의 선에서 만들 수 있는 최선일세.”
[등급 : 에픽(하늘성 사대 가문, ‘검은 머리 드워프족’에 의해 개량됨.)]
[종류 : 장신구(팔찌)]
[이름 : 하늘성 사대 가문, 아머 슈트.]
[하늘성의 아머 슈트.]
[설마 이걸 만드는 변태는 없겠죠? 있다면 그분께 말씀드립니다. 아아, 당신은 진정한 고인물입니다! -초보 학자, 카실론.]
[옵션 : 생명력이 2배 상승합니다.]
[마력이 2배 상승합니다.]
태호는 사전에 차라리 생명력과 마력 몰빵을 시켜 달라는 언질을 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이편이 낫다.
예전의 옵션들도 나쁘다곤 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한곳에 몰빵된 옵션이 훨씬 태호에게 유용하게 쓰일 터다.
가장 먼저, 강화된 어둠의 명령은 생명력 비례 대미지를 주는데 그 대미지가 2배 더 상승했다는 말로 보면 된다. 게다가 마력은 이미 그냥 마력이 아니라, 신비력으로 적용되기에 유용했다.
“조만간 또 찾아뵙겠습니다.”
“언제든지 들려만 주게.”
드워프들의 대장간을 나섰다.
지금부터는, 다음 단계에 착수해야 한다.
태호는 우선 카자토스를 찾아갔다. 카자토스는 새로이 지어진 마을의 실세라고 할 수 있었다. 마을의 분쟁거리를 해결해 주는 경비대의 역할이다.
“어쩐 일인가.”
그가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게 말했다. 태호는 그런 그에게 신과 하나를 내밀었다.
“신과입니다.”
“신과......”
카자토스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 태호에게 물었다.
“내게 주는 것인가.”
“예.”
“이유는?”
“드시면 신력에 눈을 뜨실 수 있을 겁니다.”
“......!”
“그리고 다가올 전쟁을 도와주십시오.”
“전쟁......!”
카자토스는 팔짱을 낀 채 흠- 하며 한숨을 내쉬다 태호를 빤히 보았다.
“강한 적들인가 보군.”
“천계의 상위 신들, 그리고 그들의 사도. 그쯤 될 겁니다.”
태호는 별것 아닌 양 말 했지만, 별것이었다. 카자토스의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기대되는군.”
그는 그렇게 신과를 먹어 치웠다.
콰아아아-!
전신에 신력이 감도는 것이 느껴졌다. 카자토스가 두 눈을 감은 채 그 힘을 운용하는 것에 힘썼다.
잠시 후.
그의 몸속에 신력이 일렁였다. 신력이되, 변형된 신력이었다.
‘신의 힘에 필적했던 고대의 일족.’
그런 이들에게는 빼앗겼던 과거의 힘을 되찾아 주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하나 더 드십시오.”
“음?”
카자토스는 군말 없이 태호가 내민 신과를 하나 더 먹었다. 허나 이번에도 역시 아르카네 때처럼 더 이상의 효력을 발휘하진 못하는 듯하다.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인 듯하군.”
동감이었다.
‘아, 그렇네.’
그런 의미로, 수호자의 힘의 다음 단계를 얻으며 몸이 변화했다는 것을 새삼 자각한다.
“새로이 얻으신 힘의 이름은 뭡니까?”
“투력(鬪力)이라 하는군. 신비한 일이다, 이것은... 내 기억엔 고대에 소실된 우리의 힘이었거늘.”
카자토스의 말에 경외감이 어려 있었다. 태호는 씩 웃었다.
“다행이군요.”
“이 힘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카자토스와 태호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쪽이야말로.”
* * *
그 시점에 사방으로 퍼트려 두었던 네 명의 분신체가 돌아왔다.
막시무스에게 필요한 보물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태호는 그것들을 받아, 막시무스를 소환한 뒤 내밀었다.
[이, 이건!]
막시무스가 화들짝 놀랐다.
[나의 주군 카이저! 대, 대체 이것들을 어디서 구했단 말인가?]
막시무스는 정말이지 감격한 얼굴로 태호가 내민 보구들을 만지작거렸다. 녀석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는 것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하네.’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오오! 이건 왕관! 그분의 왕관이 아닌가!]
불사왕의 왕관을 든 막시무스가 소리쳤다.
[이건, 초월의 검!]
그리고.
[무한의 방패까지...!]
하나하나를, 마치 오랜 친구를 보듯 추억에 젖은 얼굴로 바라보던 막시무스가 태호를 보았다.
[고맙다, 나의 주군!]
“별말씀을.”
막시무스는 하나하나 아이템들을 착용해 나갔다. 불사왕의 왕관을 착용하자, 막시무스의 몸에 스며들 듯 왕관이 사라졌다.
화아악!
녀석의 몸에 검은빛이 강림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빛은, 녀석의 전신을 강화해 주었다. 덩치가 훨씬 더 커지고 근육은 우락부락해졌다.
화아아악!
검을 쥐자, 세상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쿠구구궁-! 쿠쿵!
벼락이 떨어지듯 검은 기운이 검에 스며들고, 막시무스의 전신에 퍼졌다.
녀석의 머리가 길어졌다. 전신에서 신묘한 아우라가 풍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방패를 쥐자, 막시무스의 온몸이 황금빛과 검은빛의 조화로 물들었다.
[당신의 펫 ‘강철의 기사 막시무스’가 힘을 되찾았습니다.]
[‘최후의 기사 막시무스’로 명칭이 변경됩니다.]
[막시무스가 보유한 ‘어둠의 기사단 세트’가 에픽 등급, 거래 불가로 변경되었습니다.]
본디 유니크 세트였던 어둠 기사단 세트가 에픽으로 변환되었다는 소리다.
화아아악!
그 순간 정면에 나타난 인물이 있었다. 태호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 바로 불사왕 쿤!
반투명한 형체로 일렁이는 불사왕 쿤은 막시무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 주군!]
막시무스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기사 막시무스여.]
쿤이 입을 열었다.
[나의 아나크레온에 남은 마지막 충신, 막시무스여.]
[예, 주군!]
그는 한없이 자비로운 얼굴로 막시무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호는 물끄러미 그런 쿤을 바라본다.
회귀하고 리얼 포스를 다시 시작한 뒤, 태호는 불사왕 쿤으로부터 ‘선지자의 해골’을 받은 바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에픽 마법서까지 하나 얻었고, 큰 도움이 되었다.
[드디어 나의 사념이 담긴 보구들을 모두 모았구나. 장하다, 고생 많았다.]
[당치도 않습니다, 주군!]
막시무스의 목소리가 감격에 겨워 떨리고 있었다.
문득 쿤이 태호를 바라보았다. 그가 빙긋 웃는 것이 보였다.
과거 태호가 보았던 쿤은 해골만 남은 사악한 리치의 형상이었다. 허나, 지금의 쿤은 언젠가 회상에서 보았던 잘생긴 중년의 사내가 되어 있었다.
그는 아나크레온의 상징이 새겨진 망토를 한 채, 고풍스러운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대는 나와의 약속을 기억하는가.]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너는, 그와 맞설 수 있겠는가? 네 생각은 오만일 것이다. 그의 힘은 너무나도 강대하고 기괴하도다. 일개 인간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과거 그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의 마음은, 변치 않았는가.]
쿤이 물어 온다.
-다시 죽더라도, 최선을 다해 놈과 맞설 겁니다.
태호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물론입니다.”
혼돈의 권좌, 판타로스. 나아가 천상의 권좌의 상위 신들, 그리고 그 뒤의 세계.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음은 달라진 것이 없다.
쿤이 만족한 듯 웃었다.
[훌륭하군.]
그는 양팔을 활짝 벌렸다. 그리고, 자신의 망토를 벗어 막시무스에게 하사하였다.
[나의 의지를 이어... 현재의 주군에게 목숨을 바쳐라, 막시무스.]
[충!]
막시무스가 그 망토를 받아 들며 소리쳤다.
그리고 쿤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의 몸이 점점 더 어둠의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나 역시, 함께 하리라.]
그것이 태호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전신으로 스며드는 기운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업 달성!]
[아나크레온의 정수를 획득했습니다.]
아나크레온의 정수!
[어둠의 신화력(神話力)의 단서를 찾았습니다.]
메시지들이 이어지며, 태호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그는 사라져 가면서 옅게 웃고 있었다.
어느새 사방이 다시 고요해졌다.
막시무스는 무릎을 꿇은 채 한참이나 그대로 있었다. 태호는 그런 막시무스의 옆으로 걸어갔다.
“......”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막시무스의 등이 살짝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숨죽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태호는 녀석을 내려다보다, 몸을 돌렸다.
따지고 보면 여기까지 온 것은, 막시무스의 공이 크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것은, 나의 동료들을 내 손으로 없애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들은 최후의 전장까지 용맹히 싸웠으나, 결국 공포에 순응한 채 판타로스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나와 함께 그들을 무찌르는 데 힘을 보태 줘. 왕의 유언이라면, 나는 기꺼이 남은 생명을 바치겠다.
아나크레온의 왕, 서피드 쿤에 대한 충의로 시작된 여정이나 다름없다.
녀석 덕분에 메인 퀘스트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일어났다.
그 충성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태호는 잘 모른다. 허나, 결코 얕지 않으리라.
불사의 저주에 걸려, 무수히 많은 회차 동안 녀석은 절망하고 또 노력해 왔으리라. 한편으론, 기다려 왔으리라.
자신과 함께 혼돈의 힘을 무찌를 존재를!
한참 동안 흐느끼던 막시무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카이저.]
“그래.”
막시무스는 벌떡 일어서더니, 태호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태호의 앞에서 다시 무릎을 꿇었다.
[나는 이 시간부로, 네게 나의 목숨을 걸겠다.]
“......”
[목숨을 다해 보좌하겠다.]
“고마워.”
태호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이제 녀석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이름 : 최후의 기사 막시무스]
[레벨 : 500][아나크레온 최후의 기사]
[불사왕 쿤의 가호를 받고, 모든 보구를 모아 최후의 기사로 각성하였다.]
[생명력 : 10,000,000][마력 : 1,000,000]
[공격력 : 700,000]
[방어력 : 700,000]
[보유 스킬 : ...]
[특수 스킬 : 최후의 기사][절대 방패][불사항전(不死抗戰)]
생명력과 마력은...
‘맙소사. 얼마나 오른 거야?’
비교해 보니, 펜리르 3세보다 10배씩 더 높다.
게다가 공격력과 방어력 역시 펜리르 3세보다 더 높다. 보유한 특수 스킬들도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스킬명 : 최후의 기사]
[막시무스가 모든 능력치의 2배를 증폭하는 최후의 기사로 변신한다. 이 능력은 모든 아군에게 부여된다.]
스킬들도 인상 깊다.
[스킬명 : 절대 방패]
[막시무스가 자신의 생명력과 마력의 합산치의 10배에 달하는 방패를 만들어 모든 아군을 보호합니다.]
[스킬명 : 불사항전(不死抗戰)]
[막시무스가 죽지 않는 최후항전태세에 돌입합니다. 불사항전의 적용시간 동안 아군이 모두 동일한 효과를 받습니다.]
녀석이 아주 믿음직스러워졌다.
“나도 목숨을 다해서.”
태호는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린 뒤, 막시무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 숙원을, 그리고 내 숙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마.”
......막시무스까지 강화되니, 전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우선 새로 얻은 것들을 살펴본다.
‘아나크레온의 정수가 뭐지?’
아이템이었다.
[등급 : 에픽]
[종류 : 재료]
[이름 : 아나크레온의 정수]
[어둠의 고대 왕국, 아나크레온의 정수. 어둠의 신화력의 단서.]
‘흠.’
단서는 하나가 아닌 모양. 태호는 그것을 다시 넣어 두고, 다른 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로이 수호자의 힘을 각성한 뒤 얻은 스킬, ‘만유의 눈’이었다.
‘만유의 눈.’
사용해 보자.
지잉-!
신비력이 사용되며 섬뜩한 눈깔 하나가 만들어졌다. 신비력이 잔뜩 느껴지면서 반투명한 것이, 은신 효과와 비슷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