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
우선 신과 나무를 한 그루 뽑아 본다.
뽑혀진 신과 나무는 급속도로 쪼그라들더니, 금세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
이것을 뽑아다 옮겨 심을 계획은 파토가 나 버렸다. 태호는 귀찮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다가, 과거를 떠올렸다.
‘용과.’
그렇다.
태호는 용과 나무를 단 하루 만에 씨앗에서 열매가 열리게 한 적이 있다. 마법이 아니라, 신의 보물을 사용하면 가능하다.
‘우리아.’
숲의 신 우리아의 아이템 비옥한 양토, 그리고 천상의 영수가 있다면 신과 재배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좋아 좋아.’
그럼 이제 다음.
* * *
태호는 헤르메스에게 물었다.
다름 아닌, 헤르메스의 신발 ‘경계를 넘는 자’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장소들에 대한 질문이었다.
첫 번째 장소, 올림포스 내부.
두 번째 장소, 올림포스의 신과 밭.
세 번째 장소, 헤르메스가 몰래 재배하던 밭.
이제 두 개의 장소가 남았다.
네 번째 장소는, 놀랍게도 금속 날개를 가진 한 존재가 조각상처럼 정좌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이거...”
태호는 흠칫 놀라 소리쳤다.
“이거 시팔 아후라잖아!”
그렇다.
상위 신, 아후라였다. 놈의 금속 날개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예? 아... 어... 거, 거기는...
헤르메스가 당황했다.
“너 따위가 대체 어떻게?”
-어... 그거야 뭐... 어... 너 따위라뇨...
헤르메스가 우물쭈물하길래 태호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이 새끼 이거 수상해. 너 뭐 하는 놈이야? 이중 첩자 같은 거야?”
-예...
“예?”
-그렇습니다.
“......시부럴.”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태호는 연신 헤르메스를 보다, 공간 속의 아후라를 보다 이마를 짚었다.
“와... 이거 완전 막장드라마네.”
-헤헤, 죄송합니다. 사실은 이 신발도 아후라 님께 받은 보물로 강화한 녀석입죠.
새삼 녀석이 다르게 보였다. 태호는 곰곰이 생각하다 녀석에게 물었다.
“너, 이중 첩자면 정확히 하던 일이 뭔데?”
-음... 정확히는 올림포스의 정보를 아후라 님께 넘기고 있죠... 올림포스 쪽에는 아후라 님의 왜곡된 정보를 넘기고요.
“왜?”
-나름의 생존 전략이라고 해야할까요... 왜냐고 물어보셔 봐야... 당신께서도 아후라 님께 잡혀서 죽을래 살래의 기로에 서면, 이런 선택을 하실 거라 믿습니다만.
목소리만 들으면 천진난만한 놈이 따로 없는데, 알고 보니 속이 시커먼 능구렁이였다.
“후우... 그래, 이중 첩자. 아후라가 원하던 정보가 뭐더냐?”
-이걸 말하면 저는 진짜로 죽는데요.
“아후라는 무섭고, 나는 전혀 안 무섭다 이거지?”
태호가 코웃음을 치자, 헤르메스는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게 아니라... 휴우. 알겠습니다. 말씀드리죠.
녀석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아후라 님은 우라노스 님의 힘을 흡수하길 원하십니다. 새로운 상위 신은 더 늘어나선 안 된다는 주의예요. 반면, 우라노스 님은 입지를 더 늘리기 위해 필사적이죠.
‘흐음...’
문득 태호는 깨달았다.
‘이거, 이놈 하나 때문에 상위 신 둘에 우라노스까지 얽힌 셈이잖아?’
대단한 놈이었다.
‘왕건이다.’
모르고 낚았지만, 대박이다.
“그럼 아후라 쪽에서도 난리가 났겠네?”
-음... 아무래도 그러니까 올림포스를 의심할 확률이 높죠?
헤르메스의 목소리가 잔뜩 풀 죽어 있었다.
“그렇겠지. 정보를 전달하던 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는데, 그 범인이 영 뜬금없이 라의 사도인 마몬의 부하였으니까. 그럼, 아후라는 솔직히 말해서 라를 의심할 수밖에 없지?”
-예...
“라는 올림포스의 장난질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굉장히 높고, 올림포스는 당연히 날벼락을 맞은 셈이니 화가 났고, 브라만은 나름대로 움직이고. 지금 이 상황은...”
태호가 두 눈을 반짝였다.
“총체적 난국이네?”
-바로 그겁니다...
“아주 좋아.”
진심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볼카노스 님이 탈옥을 시도한 사연엔 이런 배후가 있었다, 이거지.’
현재의 천계는 상위 신들의 신경전으로 난리가 난 상태인 것이다.
총 여섯의 상위 신!
아후라, 둠 제네울, 라, 브라만, 부처, 메타트론.
이중 둠과 아후라는 이미 판타로스 쪽과 커넥션이 있다. 여차하면 저쪽에도 붙을 놈들이다. 또한, 아후라와 브라만은 라와 갈등 관계를 빚을 확률이 매우 높다.
라는 올림포스와 대립한다.
부처는 아군이 될 확률이 농후하며, 메타트론은 미묘한 선에 놓여 있다.
‘즉, 이 시점이기 때문에 천옥의 경계는 느슨해졌고 볼카노스 님은 탈출을 시도 중이다.’
좋다.
이제 마지막.
다섯 번째 장소.
이곳은, 튼튼해 보이는 석조건물로 보였다. 독특한 양식이었고, 인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태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놈이라면 이 역시 의미심장한 장소로 지정해 두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긴?”
-어, 거긴...
헤르메스가 멋쩍게 대답했다.
-제 집입니다.
“......”
패스.
태호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 시점에, 태호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해 놓을 생각이었다.
* * *
가장 먼저, 태호가 해야 할 일은 ‘만유의 눈’을 요지에 깔아 두는 것이었다.
이것은 신들이 감지할 수 없는 시야 확보책이다. 그렇다면, 상위 신들의 요지에 깔아 두는 것이 정석이었다.
‘우선.’
그러나, 문제가 생긴다.
‘어떻게 잠입해야 하지?’
문제라면 문제였다.
태호가 골똘히 방법을 생각할 즈음, 문득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등급 : 에픽]
[종류 : 방어구(신발)]
[이름 : 경계를 넘는 자]
헤르메스의 신발은 경계를 넘는 자.
실제로 이것으로 녀석의 비밀 신과 밭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태호는 조심스럽게, 경계를 넘는 자를 사용했다.
지잉-!
눈앞에 다시 떠오르는 화면들.
그 화면 중, 현재 서 있는 ‘비밀의 신과 밭’에 만유의 눈을 만들어 냈다.
둥실-!
신비력이 사용된 만유의 눈은 허공에 둥실둥실 떠서 섬뜩한 눈깔을 데굴데굴 굴려댔다. 태호는 그것을 쥐어, 화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두-웅!
“......”
그러자, 태호가 서 있는 머리 바로 위쪽에 만유의 눈이 나타났다.
‘이렇게 되는군.’
-정말 귀신 같네요. 어쩜 이런 힘이 있을 수가 있지?
헤르메스가 혀를 내둘렀다. 신비력이란 감지 불가의 힘이 가져오는 충격이 어지간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선 만유의 눈을 네 개 더 만들어 냈다. 그리고, 첫 번째 눈을 올림포스의 회의장으로 밀어 넣어 본다.
둥-실!
회의가 한창인 그들의 머리 위로 만유의 눈이 둥실둥실 떠 있으나, 그 누구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제 아후라의 견제를 예상할 방법이 없어졌잖습니까.
제우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본다.
-또한, 브라만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브라만으로부터?
제우스의 옆에 있던 푸른 머리의 신이 입을 연다.
-저분은 포세이돈 님입니다.
헤르메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여 본다.
저게 올림포스의 포세이돈인 모양이다.
-브라만이?
우라노스의 말에 포세이돈이 대답했다.
-예. 자신의 사도인 아수라를 통해 이런 이야길 하더군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우라노스 님과 직접 대면하고 싶다고요.
-흐음... 갈수록 심상치 않게 돼 가는군.
태호는 팝콘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 어떤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좋아.’
그 정보까지 체크해 두고, 다음 지역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후라의 방.
아후라는 강골로 보이는 인상의 사내였다. 강철로 된 두 개 날개가 고이 접혀 있었고,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고 있다.
두근.
두근.
두근.
상위 신!
상위 신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몰래 훔쳐본다니, 그건 소름 끼칠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일이었다.
태호가 조심스럽게, 만유의 눈을 집어넣었다.
둥-실!
아후라는 눈치채지 못한 듯, 고요히 명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후라의 보물로 강화한 신발인데, 왜 전혀 눈치를 못 채지?”
-그야... 이걸 사용하는 건 신력을 이용하는 건데... 신력이 아니라 이상한 힘을 써서 감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잖아요.
“아.”
바로 이해했다.
거의 만능 치트키 같은 신비력의 힘이었다.
태호는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시선을 돌렸다.
올림포스의 신과 밭에도 하나.
그리고 움직인다.
파파파팟!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대도시 아도니스였다.
아도니스의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것은 마몬의 탑이다.
태호는 마몬의 탑을 뚫고 들어가 본 적이 있고, 뒤탈이 없었던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쑤-욱!
마몬의 탑의 신력을 뚫고 진입한다. 그림자 속에 숨은 태호는 탑의 계단을 오르며 꼭대기로 향했다.
[빌어먹을! 아수라 그 개자식이 내 뒷조사를 하고 다닌다... 이 말인가...?]
마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호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뿐 아닙니다... 아후라의... 사도... 앙그라 마이뉴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전보입니다...]
마몬의 부하로 보이는 악마가 말했다.
[앙그라 마이뉴가...?]
[예... 지상으로... 향한다 합니다...]
[크으읏... 그런 빌어먹을... 자식들도... 향하여... 공을 세우려는데... 나는... 림몬... 이 개자식... 때문에...]
마몬은 속이 탄다는 듯 가슴을 연신 치며 포효했다.
태호는 그 단서들을 조합해 정보 몇 가지를 도출해 냈다.
1. 현재 상위 신의 사도들은 지상으로 향할 예정.
2. 이유는 천태호 본인 때문. 이제 상위 신들은 회귀자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하고, 지상에서 회귀자 색출을 할 듯.
3. 사도들끼리의 사이는 좋지 않음.
‘좋아.’
여기에도 만유의 눈 하나.
눈 하나가 둥실둥실 떠올랐다.
탑을 빠져나온 태호는 다시 움직였다.
목표는, 아도니스를 굽어보는 거대한 피라미드였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엔 거대한 눈이 움직이며 사방을 훑고 있었다.
“이건 뭐냐?”
-이건 라 님의 가호를 퍼트리는 건물입니다. 이 눈은 만유의 눈과 비슷한 일을 합니다.
태호는 피라미드를 빙 돌아보았다.
과연.
피라미드에서는 범접하기 힘든 힘이 물씬물씬 새어 나오고 있어, 대도시 아도니스에 전체적으로 퍼트리고 있었다.
이것이 신화력!
농도 짙은 황금색이었고, 굉장히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태호는 아직 그것과 신비력을 놓고 비교하면, 한 급 이상 떨어지는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위 신들은 진짜 무섭구나.’
재수 없게 놈들에게 잡히면, 주박에 당해 그야말로 인생 끝장의 장면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튀자.
다시 달려 도착한 곳은, 천계의 정 중앙 부근이었다.
그곳에 황금빛 성이 보였다.
저곳이 천상의 권좌다.
태호는 천상의 권좌 근방에 만유의 눈을 하나 띄워 두었다.
천상의 권좌 사방에는 거대한 신화력으로 만들어진 결계가 뒤덮여 있었다.
혹시나 싶어, 만유의 눈 하나를 슬쩍 보내 보았는데 결계에 닿자마자 소멸해 버렸다.
‘신화력의 단계에 진입해야 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부분들을 인지한 상태로 태호는 다시 리얼 포스의 땅에 돌아왔다.
* * *
지상에 도착해도 미리 띄워 둔 만유의 눈들은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화면에서 저마다의 움직임을 보이는 사물체들을 하나하나 지켜보다, 걸음을 옮겼다.
이제 다시 우리아의 숲으로 돌아왔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새록새록했다. 숲보다는 늪에 가까운 지형 한가운데, 샘 하나가 보였다.
이 샘에 아이템들을 넣기 시작하면 우리아가 소환될 거다.
태호는 레어 장비들만 던져 넣으며 과거를 떠올렸다.
화아악!
그리고, 우리아가 나타났다.
[어떤 놈이 또 쓰레기만 던져 대고...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