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력에 대한 단서
우리아가 태호를 보며 반겼다.
[야 너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태호도 씩 웃어보였다. 그녀는 어쩐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물어왔다.
[그래, 오늘은 뭘 내놓을... 아니. 무슨 일이지?]
“......”
시커먼 속마음이 다 보인 것 같지만 넘어가자.
“그... 제가 또 숲을 가꾸고 싶어져서 말입니다.”
[숲이라!]
우리아가 방긋 웃었다. 그녀는 숲의 여신 답게 숲과 관련된 이야기면 아주 환장하는 듯 했다.
[뭘 심고 싶은데?]
“음... 뭐 다양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숲을 굉장히 사랑하는 편이죠. 새 마을의 뒷산이 너무 민둥산이더라고요. 그래서 거길 숲으로 꽉! 꽉! 채우고 싶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허나 태호의 말에 우리아의 두 눈이 더욱 생기발랄해졌다.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그런 일이라면야 언제든 환영이란다. 내, 특별히 네게 어마어마한 흙과 성수를 줄 수도 있지.]
그녀가 살살 웃으며 덧붙였다.
[그런데, 흠... 그런데 말이다...... 에픽 같은 거 하나 있으면, 내 정말 최선을 다 해 줄 수 있는데...]
태호는 그녀의 말을 듣다가 물었다. 노골적으로 에픽을 요구하는 것이 꽤 이상했다.
“에픽이요? 꽤 급하게 필요하신 모양이네요?”
[응? 어... 어, 그렇지. 그게... 천계의 사정 때문이지. 이 쪽은 나름대로 사정이 있단다?]
-진실.
“음... 하지만 에픽이란 것은 정말 구하기 어렵고 귀한 것인 걸요... 어디에 쓰실지 알려 주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태호가 망설이는 척 하자, 그녀가 급했는지 알아서 술술 털어 놓기 시작했다.
[실은, 조만간 큰 전쟁이 터진다는 말이 있거든. 뭐, 너희랑은 크게 상관 없는 일이다만. 그래서 나도 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지.]
전쟁이 터진다?
태호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흥미 가득한 두 눈을 하며 물었다.
“우와, 전쟁이라니요? 신님들도 전쟁이란 것을 하나 보네요? 그럼, 더 높은 신님들도 계신 건가요?”
[그렇지. 그 높으신 분들 두 분이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시원찮게 대립하시니 원... 으, 뭐 이런 얘기까지.]
우리아가 정신을 차리고 대번에 말을 끊었다.
[아무튼 그래서 에픽이 필요하다. 하나 내놓으면, 내 최선을 다해 베풀어 주마.]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에픽 하나 내어 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벤토리 창에서 적당히 집히는 혼돈의 유산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혼돈의 유산이구나.]
그녀는 그것을 받아 챙겼다.
그리고 내민 것은 총 두 가지 종류였다.
[아이템 : 매우 비옥한 양토를 3개 획득했습니다.]
[아이템 : 순도 높은 천상의 영수를 3개 획득했습니다.]
과거 그녀에게 받았던 것은 ‘비옥한 양토’ 그리고 ‘천상의 영수’ 였다.
헌데 그보다 한 등급 높은 물건을 세 개 씩 받았다. 태호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부르렴. 얼마든지 도와주마.]
그녀는 기본적으로 탐욕적인 신이었다. 인간에 대한 생각은 중립이지만, 매번 아이템을 챙기는 데 있어서는 탐욕을 보였다.
즉.
그녀는 지금 에픽이 급하다. 이유?
‘그렇군.’
천계 상위 신들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것, 그리고 이중맹약이 끝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이번 회차의 리얼포스가 끝을 볼 때 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는 것이다.
‘우리아.’
태호는 그녀를 기억했다.
* * *
-아, 우리아 님 말씀이시군요.
헤르메스는 정보에 능했다.
-그분이라면, 브라만님 휘하에 계실 겁니다.
“브라만?”
-넵.
브라만이라면 그녀의 행동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전쟁 준비라니...
서서히 이번 회차의 리얼포스가 끝나 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우선 태호는 광휘의 궁전으로 돌아와, 발빠르게 신과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현재는 모두 바깥 마을로 나가, 텅 빈 광휘의 궁전 1층, 2층을 이용하기로 했다.
[매우 비옥한 양토가 생성될 범위를 선택해 주세요.]
매우 비옥한 양토는 1개당 1층을 꽉 채울 수 있었다. 흙은 엄청난 윤기를 머금고 있었으며, 만지면 즙이 줄줄 새어 나올 정도로 기름졌다.
1층에는 ‘??? 신화력의 정수’를 사용하기로 했다.
헤르메스의 비밀 신과밭에서 캐온 그것을 심자, 사방으로 은은한 힘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너, 신과 키우는 데 얼마나 걸렸지?”
-대략 3년 정도 걸렸죠?
3년...
‘패착인데.’
그걸 예상 못 했다. 아무리 우리아의 신력이 깃든 땅과 영수라고 해도 그 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는 없을 거다.
태호는 다시 그것을 꺼내 고심했다.
‘이걸 조금 더 강화시키면 좋을 텐데.’
여러 모로 만지작거리던 태호는, 신화력의 정수에 신비력을 불어 넣어 보았다.
지이잉-!
주먹만 하고 얇은 그 물건이 신비력에 반응했다. 신비력을 마치 물 먹는 스폰지처럼 먹어 치우고, 다시 잠잠해진다.
그대로 땅에 심어 보았다.
“......!”
정확히 신비력을 넣은 만큼 조금 더 영향력이 커진 느낌이 들었다.
착각인가?
태호는 다시 꺼내, 신비력을 모조리 불어 넣었다. 신비력이 녹아 들어가며 신화력의 정수가 점점 더 크게 진동했다.
고오오오-!
그러다 다시 잠잠해진다. 다만, 색감이 조금 변해 있었다. 예전에는 무미건조한 석판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생동감 있게 변했다고 해야 할까?
‘감 잡았어.’
태호는 신비력을 그야말로 쏟아 붓기 시작했다. 체마변환을 통해 무수히 많은 회수를 반복하여 그야말로 쏟아넣는다.
지이이이잉-!
한도 끝도 없이 신비력을 먹어 치우던 신화력의 정수가 신비력을 머금지 못 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걸린 뒤였다.
“......”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어질어질하단 생각을 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신화력의 정수는 이제 스스로 대단한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대체 이걸 어디다 쓰는 거지?’
의문을 담은 채, 태호는 그것을 묻었다. 이제 신과를 심어 볼 시간이다.
신과 재배법은 간단했다.
우선, 신과를 잘게 썬다.
그리고 약 1미터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심으면 된다. 심고 나서 흙을 잘 덮어 준 뒤, ‘순도 높은 천상의 영수’를 몇 방울씩 뿌려 주었다.
뿌리면서도 새삼 놀라웠다. 이 흙과 영수에는 모두 우리아의 순도 높은 신력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헐.”
그리고 다시 놀랐다.
1층에 심은 신과 자리는 총 30개.
헌데 영수를 한두 방울씩 뿌리고 나서 돌아보자, 벌써부터 싹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와.
헤르메스도 놀란 모양이었다.
-효과 진짜 끝내주네요 형님.
“......?”
-형님이라 불러도 되죠?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었다. 태호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내 말만 잘 들으면 너는 무조건 사는 거야.”
-그럼요. 형님만 믿습니다.
-거짓.
진실의 눈이 금세 거짓임을 알려주었다. 태호는 쓰게 웃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아나크레온의 정수’를 묻어 볼 생각이었다.
지이이이잉-!
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신비력을 수십 수백 번씩 주입해 1층과 같은 식으로 심었다.
신과를 재배하자, 역시 금세 싹이 돋았다.
‘영수가 제법 남았네.’
순도 높은 천상의 영수 2통을 싹 다 비울 정도로 열심히 물을 분배하여 뿌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았다.
수중에 보유하고 있는 신들을 떠올려 본다.
‘림몬.’
림몬은 우선 조금만 더 놔둬 보도록 한다. 일단은 마몬의 핵심 수하이니, 써먹을 곳이 한번만 더 있다면 써먹고 죽일 생각이다.
‘조겐.’
조겐이 슬슬 쓸모를 다 했다. 이 놈은 잡아 죽여도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다곤.’
이 녀석을 족치면 되겠다.
다곤이 누구나면, 마몬의 탑에서 림몬과 함께 사로잡았던 악마다.
태호는 다곤을 꺼내, 소환했다.
[허, 헉! 여, 여긴!]
이젠 익숙한 반응을 뒤로한 채, 태호는 정해진 몇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아는거 다 토해 봐.”
놈은 정확히 다른 사로잡혔던 녀석들이 겪은 코스를 밟았다. 우선 반항하고, 흔들림 코스 3회를 거치고, 구토반응을 보인 뒤, 고분고분해졌다가, 다시 거짓말을 하고, 또 다시 흔들리고 나서야 제대로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아는 것은...]
허나 놈이 아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그리 쓸모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콰지직!
다곤은 그렇게 죽었다.
날아든 15발의 강화된 어둠의 명령이 일격에 놈을 끝장냈다.
다곤의 몸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태호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큽!”
태호는 반사적으로 잔뜩 긴장했다. 신들을 죽여 힘을 흡수할 때 마다 느꼈던 격통이 떠오른 것이다.
‘어라?’
헌데 이번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황금빛 힘이 스며들어 전신으로 퍼져 나갔지만 이렇다 할 고통은 없다. 그저 미약한 욱신거림이 퍼져 나갔을 뿐.
곧.
[천상의 권좌의 신, ‘다곤’ 의 스킬을 흡수합니다.]
[‘패시브 스킬 : 악마를 보았다’ 를 얻었습니다.]
스킬을 얻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엑티브 스킬 : 악마를 보았다]
[설명 : 천상의 권좌의 신, ‘다곤’을 사냥하여 그의 스킬 하나를 받았다.]
[하급 악마들을 소환합니다. 또한, 악마들을 흡수하여 생명력을 회복하거나 생명력 최대치를 늘릴 수 있습니다.]
‘의외로 쓸만 하네.’
소감은 그게 끝.
다곤을 깔끔하게 해치우는 것을 보자, 헤르메스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흐끅!
“......”
그 사이, 눈 앞의 신과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싹이 점점 더 자라고, 굵어지고, 허물을 벗는 것이 실시간으로 펼쳐진다.
잠시 후.
신과는 그야말로 신과 나무가 되어, 작은 신과 열매를 맺었다.
“정말 맙소사군.”
그 열매도 점점 익어 가며 덩치가 커져 가고, 또 잠시 후에는 완전히 영글었다.
-이렇게 빨리 수확을 할 수 있다니... 이게 대체...
헤르메스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무 하나당 열린 열매는 5개 가량. 1층에 30그루가 자라 열매를 맺었으니, 150개의 열매를 수확했다.
‘예상 외의 수확이군.’
태호는 온전히 익은 신과 열매를 모조리 딴 뒤, 2층으로 올라가서도 150개의 열매를 수확했다.
종합 300개가 넘는 열매를 수확했다.
‘영 현실성이 없네.’
태호는, 너무 많아진 신과 열매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한번 재배가 끝나자, 신과 나무들은 서서히 시들어져 가고 있었다.
“저건 왜 저래?”
-아, 신과 나무는 원래 다년에 한번밖에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한번 수확한 건 족히 3년은 휴지기에 들어가죠.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먹어 볼까.
너무 많아진 신과 열매, 그래서 이제는 더욱 망설임 없이 먹어 치울 수 있게 되었다.
우적 우적 우적!
그 고귀한 신과를 사정없이 씹어 삼키자, 메시지들이 줄지어 눈 앞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신과의 신성한 기운이 체내에 머뭅니다.]
[신과의 기운은 당신의 ‘신비력’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메시지가 떠올랐을까?
슬슬 이 신과 맛도 질린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떠오른 메시지는 그동안의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당신의 ‘신비력(어둠)’ 의 단계가 향상되었습니다.]
[신비력(어둠)의 신화력에 대한 단서를 찾았습니다.]
“......?”
신비력의 신화력에 대한 단서라고?
태호는 그 메시지를 보며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