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도
신화력이란 것은 무엇일까?
상위 신들이 가진, 고유의 힘. 한 분야에 있어 최대치에 이른 단계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신비력의 신화력의 경지에는 대체 무엇이 있을까?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의문을 품고, 스킬을 확인해 본다.
[신비력(어둠)Ⅵ]
[설명 : 태고의 힘, 정순한 어둠의 비전력과 신력의 결합체를 사용합니다.]
...
[5단계에 접어들며 어둠 고유의 능력에 더욱 더 가까워졌습니다.]
[6단계에 접어들며 신화력의 단서를 찾았습니다.]
6단계를 자세히 보자, 추가 메시지가 보였다.
[미지의 힘, 신화력의 단계에 한 걸음 내딛었습니다. 필요한 단서들을 수집하여 조합 후, 신화력의 결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아리송할 뿐.
허나 여기서 한 가지 더 얻었다.
‘어둠의 신화력, 신비력(어둠)의 신화력은 서로 달라.’
어쩌면 태호는 어둠의 신화력을 얻을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볼카노스는 조만간 탈옥을 할 것이고, 태호는 어둠의 신화력에 대한 한 가지 단서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둠의 신화력, 그리고 신비력의 신화력을 둘 다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오고갈 무렵, 태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일단은 신과를 먹는다.
우적 우적!
우적!
레벨은 660에서 소강상태를 맞았다. 더 이상 레벨업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고, 신비력 강화도 멈춰 버렸다.
[현재 신체가 보유할 수 있는 신과의 기운이 최대치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럼 일단 멈추자.
300개가 넘던 신과는 이제 200여 개가 남아 있을 뿐이다.
태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밭에 심어 두었던 두 가지 ‘신화력의 정수, 아나크레온의 정수’를 회수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물건인 것 같으니까.’
급속도로 시들어 가는 신과 나무들이 아깝긴 하지만, 다시 재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 *
광휘의 궁전 꼭대기에 올라선 태호는 지붕 어귀에 걸터앉아, 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높은 산꼭대기에 만들어진 궁전의 지붕인지라 저 멀리까지 훤히 다 보였다.
레벨은 660.
신비력은 6단계.
여러 일들이 생겼고, 하지만 의외로 순조롭게 해결돼 가고 있었다.
현 전직 단계는 6단계이지만, 이미 500레벨 7차 전직, 그리고 600레벨 8차 전직 기준이 끝났다.
태호는 전직의 서를 꺼내 들었다.
지이잉-!
바로 7차 전직부터 시작이다.
[당신의 몸에 깃든 볼카노스의 가호가 더욱 강해집니다.]
[7차 전직에 성공하였습니다.]
[전직 보너스로 지능 스텟이 100 상승했습니다.]
[위업 : 최초의 7차 전직자]
[보상 : 전직자의 올 스텟 +15]
[흑마도사 궁극기 : 마신강림(魔神降臨)이 강화되었습니다.]
7차 전직은 생각보다 별로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마신강림이 강화되었다는 것은 희소식이었다.
그렇다면 그다음.
태호는 ‘8차 전직의 서’도 펼쳤다.
[당신의 몸에 깃든 볼카노스의 가호가 더욱 강해집니다.]
[8차 전직에 성공하였습니다.]
[전직 보너스로 지능 스텟이 100 상승했습니다.]
[위업 : 최초의 8차 전직자]
[보상 : 전직자의 올 스텟 +30]
[흑마도사 궁극기 : 흑색유성(黑色遊星)이 강화되었습니다.]
고오오오-!
그 순간.
태호의 전신에 시커먼 기운이 일렁였다.
‘뭐지?’
검은 기운이 안개처럼 사방에 샤악 깔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몸에 깃든 볼카노스의 가호는 이미 최대치입니다.]
“음?”
동시에.
태호의 시야가 바뀌더니, 살짝 흐릿하게 지직이다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게 되었다.
콰아아아-!
온 사방에 진동하는 어둠의 힘!
좌우를 두리번거리자, 기괴한 풍경이 태호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금속 독수리들이 떼지어 움직이는 창공의 풍경이었다.
‘이게 뭐지?’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불길하게 뛴다. 태호의 시야를 공유하는 이는 사방으로 시커먼 신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볼카노스!’
직감적으로 알았다. 태호는 지금 볼카노스의 시야를 공유받고 있는 것이다.
파파파파팟! 콰지직 쾅!
검은 신력이 뿜어져 나갈 때마다, 사방의 금속 독수리들이 줄지어 저 까마득한 지상으로 추락해 간다.
-볼카노스!
저 멀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시선을 돌리니, 그 곳에 카실론이 있었다.
-당신 제사장이 더욱 성장했군요!
-후훗.
볼카노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사방을 비추어 보니, 이 곳은 지상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창공. 그리고 끝없이 추락하는 천옥! 바로, 상위 신 라가 만든 천옥의 결계였다.
-나의 제사장 카이저.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예.’
-잘 보아 두거라, 곧 네가 가까워질 힘이다.
그 순간.
볼카노스가 양 손을 좌우로 뻗었다. 곧, 좌우로 거대한 검은 날개가 펼쳐져 나왔다.
동시에 볼카노스의 몸도 검게 물들었다. 어느 순간, 볼카노스는 하늘 저 높이로 치솟아 올라갔다. 그리고 전신의 날개를 쭉 펴며 하늘을 가리켰다.
쿠구구구궁-!
콰지지직! 우지지직!
그야말로 자연재해가 이러한 압도감을 줄까? 온 사방의 금속 독수리들이 사방에 쇄도하는 검은 바람과 번개, 그리고 검은 비에 의해 싹 쓸려 나가고 있었다.
콰드드드드득!
독수리들이 범접조차 못 하는 엄청난 위용! 태호는 압도된 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쩌저적!
그 끝없는 창공의 허공에, 거대한 균열이 만들어졌다.
-열렸다! 갑시다, 볼카노스!
카실론이 소리쳤다. 그의 신형이 균열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얼마 남지 않았다.
볼카노스는 태호에게 말하며, 균열로 몸을 던졌다.
“......!”
어느새 현실.
태호는 그 압도감을 새삼 느끼며, 긴 숨을 내쉬었다.
구구궁- 구궁-
허나.
현실도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진 않는 법.
태호는 불길하게 떨리는 저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예전, 아수라가 강림할 때의 그것과 똑같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또 다른 존재 하나가 강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구구궁- 쿠쿠쿠쿵-!
하늘은 시커멓고 시뻘겋게 울고 있었다. 마치 반반 갈라져, 대립이라도 하는 듯 하다.
쩌어어억!
그리고, 동시에 두 개의 하늘이 갈라졌다.
‘저긴...’
드래고니악 근방이다.
태호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 * *
스크롤을 찢어 드래고니악에 도착하자, 소테드를 비롯한 다섯 장로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테드 님.”
“아, 너로군.”
소테드가 태호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다른 장로들도 태호를 보더니 천천히 다가와 하나씩 입을 열었다.
“그대가 레드 드래곤의 유산을 찾아다 준 카이저란 인간이군. 고맙게 생각하네.”
하나 하나, 각 드래곤들의 장로들이었다.
태호도 그들과 하나씩 인사를 나눈 다음, 다시 소테드에게 말했다.
“상위 신들의 사도들이 강림할 겁니다.”
“그럴 테지.”
“목표는... 아무래도 일단 드래고니악은 아니겠지만, 위험 지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테드는 고개를 까닥였다.
“이쪽은 우선 드래곤의 유산을 가동할 준비를 마쳤다. 만전태세를 갖추었으니, 상황을 보기만 하면 돼.”
그리고 소테드는 작은 구슬 하나를 태호에게 내밀었다.
“이걸 소지하고 있으면 나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유지할 수 있다. 갖고 가라.”
“예.”
태호는 그것을 받아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신과 열매를 꺼냈다.
“드십시오.”
하나를 먹어 치우자, 소테드의 몸에 변화가 있었다.
드래곤들은 총 신과 두 개 정도까진 소화가 가능한 모양이다.
태호는 장로급들에게 신과를 하나씩, 그리고 그 휘하 일반 드래곤들에게도 하나씩 내밀었다.
그들이 신과를 먹자, 몸에서 풍기는 힘이 훨씬 더 정제되고 강력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막 드래고니악을 떠나려던 태호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휘이이이이잉-!
콰지지직! 지지직!
하늘은 요동치고, 드래고니악을 감싸고 있는 토네이도들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그곳에 우뚝 서서 드래고니악을 지키고 있는 여섯 장로들. 그리고 그 휘하의 드래곤들.
태호는 그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 * *
쿠구궁 쿠궁!
갈라진 두 개의 하늘에서, 저마다 다른 힘을 가진 존재가 지상에 착지했다.
촤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
아수라가 먼저 지상에 착지해 포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반대편 하늘에서 나온 것은...
[크르르르-]
마몬이었다.
태호는 그 둘이 보이는 땅의 그림자 속에 숨어 지켜보았다.
‘아수라랑 마몬이네?’
일단 로만을 꺼냈다.
-세상에... 두 놈이 같이 나타났군.
로만이 귀찮게 됐다는 듯, 혀를 쯧- 하고 찼다.
[사티로스! 사티로스! 어디 있냐 사티로스! 빌어먹을 악마 놈도 같이 왔군 그래!]
아수라가 빼액 소리쳤다. 한발 늦게 착지한 마몬도 크르르르, 울며 소리쳤다.
[염병할... 망나니 놈이...]
사이가 좋지 않음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아수라와 마몬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파지지직- 지지직-!
사방의 대지가 초토화돼 가기 시작했다. 아수라의 등 뒤에 있는 반투명한 팔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갖추어, 당장이라도 마몬을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또한 마몬 역시 검붉은 색 장막을 만들어, 악마 군단을 내보낼 준비를 마쳤다.
‘차라리 싸워라.’
태호의 소감은 그랬다.
‘박 터지게 싸워.’
-하나 더 온다.
그때.
로만이 말했다.
태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쿠쿠쿵- 쾅-
거대한 하늘의 진동!
그리고 사방이 은빛으로 물들었다. 지나치게 선명한 은빛으로 변한 뒤, 번개처럼 강림한 것은 마치 외계인처럼 생긴 사내였다.
얼굴은 삼각형이었고, 전신에는 무수히 많은 문신들이 새겨져 있었다.
-저건 앙그라마이뉴다. 아후라의 사도가 도착했군.
로만의 말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의 사도가 모였다.
하나 하나가 풍기는 기운을 가늠해 본다.
‘강해.’
그간 상대해 왔던 그 어떤 적보다 강했다. 분명히 예전에는 상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 했을 적이었건만, 이제는 어쩐지 그런 두려움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의 힘이 훨씬 더 세밀하게 보인다.
각각 보유한 신력의 밀도가 보이고, 그 안에 숨겨진 일말의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저게 신화력이구나.’
저들은 상위 신들의 신화력을 받아 사도가 된 것이다.
쿠구구궁- 콰콰쾅!
하늘에서 기어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방은 어두침침해지고, 천둥과 번개가 친다.
콰콰쾅! 쾅!
쏴아아아아-!
세 명의 사도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재수 옴... 붙었군... 은빛.. 대가리... 너도... 왔냐...]
마몬이 앙그라마이뉴에게 말했다. 앙그라는 마몬을 흘끗 보더니, 아수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인님의, 명령.]
[......?]
[아수라, 너는, 지금부터.]
그의 목소리는 마치 기계 같았다. 딱딱 끊어지며, 감정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마몬을, 죽인다.]
그의 이어진 목소리에 아수라는 씩 웃었다.
[마침 재미있군 그래. 나도... 브라만 님께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야.]
‘뭔 소리야.’
태호는 흠칫 놀랐다.
[크르르......]
마몬은 이를 갈았다. 허나, 놈은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는 듯 킬킬거리며 웃었다.
[재미있군... 크르르... 나도.... 라 님께.... 비슷한.... 명령을.... 들었는데.... 킬킬킬...]
2:1로 불리한 상황이지만, 놈에게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콰콰쾅! 쾅!
세 사도가 금방이라도 맞붙을 듯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