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받아라
싸아아아-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아수라와 앙그라마이뉴는 마몬을 동시에 노려보았다.
[공교롭게도, 우리 셋 다, 같은 명령을 받았군.]
앙그라가 말했다. 목소리는 마치 라디오에서 나오는 많은 목소리들이 섞인 듯하다. 듣기 좋은 목소리라고 할 순 없었다.
[자, 일단 정리를 좀 해 볼까. 우선 지상에, 인간 회귀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이쪽... 역시...]
앙그라는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긍정을 표했다.
꿀꺽!
태호는 그림자 속에서 침을 삼켰다. 즉, 저 세 놈들은 태호를 찾으러 지상에 내려온 셈이다.
[이 공은 매우 크다... 경쟁자는... 적을수록 좋겠지.]
아수라가 씩 웃었다.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
-잘 봐 두는게 좋을 거다. 사도들 끼리 싸우는 일은 정말 흔치 않은데, 재미있게 됐군.
로만의 말에 태호가 반문했다.
“흔치 않다? 그간 네가 봐 온 회차 중엔 몇 번이나 싸웠는데?”
-대충 한 세 번?
“세 번이라...”
-그래. 저마다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아무튼 세 번. 이번이 네 번째다.
“뭐 때문에들 싸우는 건데?”
-주로 지상의 전리품 때문이지. 예를 들어, 에픽 말이다. 그 다음엔 고대 일족들의 잔여 힘 흡수, 그리고 다음 회차를 둔 이권 다툼 등등...
타당하다면 타당하지만, 어쩐지 부아가 치미는 일이었다. 놈들은 무한히 리셋되는 이 땅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태호는 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더 해 봐.”
-이번 회차가 끝나면, 다음 회차를 준비해야지. 각 도심의 수호신을 정하는 것부터, 신들의 제단이 어디에 놓이는지 등등이 전부 다 거기서 이루어진다.
“......”
-유저들이 많이 오가는 땅은 당연히 비중 높은 상위 신의 부하들이 들어간다. 별 볼 일 없이 순위 경쟁에서 뒤처진 녀석들은, 다 변두리로 밀려나지. 뭐 그런 타당한 이야기다.
‘일리 있군.’
시선을 돌려, 세 사도를 주시하며 묻는다.
“저번의 싸움들은 누가 이겼지?”
-죽을 정도로 싸우진 않는다. 알지? 천계의 싸움은 대부분 으레 그러하니까. 누가 진짜 죽기라도 하면 책임을 물어 곤란해지는 경우도 파다하다. 그러니 조금 더 힘을 쓰고, 더 강한 신력을 가지고 있는 쪽이 이긴다.
그런 면에서.
이 국면은 재미있었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진짜 죽을 것 같은데?”
-그게 흥미로운 점이지.
로만 역시 목소리에 생기를 띄었다.
-이번엔 진짜로 다들 죽일 기세다. 상위 신들이, 이중 맹약의 종료를 앞두고 다들 굳히기에 들어가는 느낌이군.
‘좋아.’
기회였다.
태호는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싸워라. 죽을 만큼 싸워라.’
* * *
[크크크... 내 예전부터 저 악마 놈이랑은 기어코 결판을 내고 싶었다.]
아수라가 섬뜩하게 웃었다.
[......]
앙그라마이뉴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몬을 주시했다. 마치 기계 인간 같았다.
태호는 앙그라를 보며 물었다.
“저건 뭐냐?”
-아후라가 만들어 낸 생명이다. 내가 볼 땐... 저 셋 중 저놈이 제일 세다.
[카르르... 너희 둘 다... 오늘 내 손에... 죽어라...]
마몬이 섬뜩하게 웃으며 품속에서 지팡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지팡이네?’
그런데, 그 지팡이에게서 섬뜩한 신화력이 느껴졌다. 타오르는 듯한 불꽃이 잠들어 있는 듯 이글거리고 있었다.
-태양신의 지팡이네? 저걸 받아 왔어?
로만이 적잖게 놀랐다.
“뭔데?”
-라의 무기다. 직접 사용하는 무기니 그 파괴력이란 상상 불가지. 그걸 하사할 정도라니...
과연.
앙그라마이뉴의 무표정한 얼굴에도 경계가 들어찼고, 아수라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허나 이내 망설임 없이 양팔을 활짝 펼친 채 포효했다.
[덤벼!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쾅!
아수라가 땅을 차고 마몬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마몬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콰르릉 쾅쾅!
하늘이 분노하듯 울며 천둥 번개가 쳤다. 번쩍, 번쩍, 마치 세기말의 분위기를 풍겼다.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불꽃이 일어나, 아수라의 정면을 막았다.
[이까짓 거!]
아수라는 거침없이 돌진해 들어왔다. 불꽃을 뚫어내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간 놈이 곧, 뒤로 튕겨져 나왔다.
지글지글지글
온몸에 불꽃의 세례를 받아, 지글지글 타고 있다. 아수라의 두 눈이 희번득해졌다.
[크하하하하! 재미있구나!]
아수라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던 반투명한 팔들이 저마다의 병장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파파팟!
사방의 모든 것이 갈려 나간다. 섬뜩한 신력이 머금어진 병장기들에게 사각지대는 없는 듯했다.
화르르륵-!
마몬의 지팡이에서 불꽃의 새가 만들어져, 그런 난도질에 대항했다.
캬르르르르릉!
온 사방이 불지옥이 된 양, 불꽃의 새가 포효했다. 동시에, 사방으로 쫙 펼쳐진 검붉은 장막!
척! 척! 척! 척!
그곳에서 악마 군단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악마 군단의 머리 위로 불꽃이 하나씩 스며들었다.
악마들이 하나둘 감은 눈을 떴다. 두 눈이 불꽃으로 일렁였다.
[키야아아앗!]
이내 굉음을 지르며 끝도 없이 달려 나온다.
[크하하하하하! 이까짓 거!]
아수라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력이 더욱 박차를 가했다.
콰드드드드드득!
땅이고 바람이고, 나무고 돌이고, 심지어 내리는 빗방울마저도 산산조각 나는 난도질이 이어진다.
씨이이이잉-
그 난도질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돌풍에 잘려 나간 잔해들이 토네이도를 만들었다. 장막에서 쏟아져 나오는 악마들이 토네이도에 휩쓸려 마구 흔들렸다.
누군가는 토네이도에 휘말려 저 하늘 꼭대기까지 치솟아 오르고, 누군가는 저 구석에 처박히고, 누군가는 조각나 살점을 흩날렸다.
허나.
그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은, 압도적인 물량 공세였다.
콰아아아아-!
척! 척! 척! 척!
수백 수천의 악마들이 지치지도 않고 걸어 나오는 발걸음 소리에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이거 완전히 미친놈들이네.’
아수라는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깨물었다.
까드득-
[크하하하, 으하하하, 큭... 큭큭큭...]
아수라의 온몸의 혈관이 시뻘겋게 피부 위로 드러났다.
[킥, 키키키키키킥... 키히히히힉!]
-수라나찰 모드군.
태호는 그것을 체크해 두기로 했다.
동시에 아수라의 움직임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콰콰콰콰콰콰쾃!
그야말로 폭풍 그 자체.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혈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와중.
태호는 앙그라마이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건 왜 가만히 있지?’
놈은 두 사도의 혈투를 지그시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컴퓨터처럼 그 싸움을 읽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쭈-욱!
놈의 전신이 은색 빛이 된 것처럼 가늘어졌다. 그대로 쇄도해 간다!
푹-!
소리는 작지만 확실하게 났다. 앙그라마이뉴는 그대로 마몬의 미간을 관통한 채 마몬의 뒤에서 다시 제 형상을 되찾았다.
[카... 카앗!]
미간에 은색으로 된 구멍이 뚫렸다. 마몬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허나, 동시에 앙그라의 몸을 콱! 움켜쥐었다.
[킬킬킬... 이럴 줄 알았지...]
마몬이 입으로 녹색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섬뜩하게 웃었다.
꺄르르륵! 까륵!
끝없이 튀어나오는 악마 군단이 그들의 사방으로 모여들었다.
[키히히히히! 어딜!]
파파파파파팟!
아수라의 연쇄 공격은.
화르르륵!
마몬의 지팡이가 만들어 낸 거대한 불꽃에 막힌다. 불꽃은 점점 인간의 형태를 갖추더니, 아수라와 정면으로 맞섰다.
그 사이.
끼히히히히! 키히히!
악마들이 점점 더 모여들었다. 어느새 마몬과 앙그라마이뉴의 사방에는 악마 군단이 모여 산을 이루었다.
고오오오오-!
온 사방에 검붉은 신력이 모여든다. 그것은 말 그대로 악마들이 모여 이룬 산으로 모여들어, 하나의 덩어리처럼 변했다.
검붉은 찰흙 같다.
덩어리는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이내 하나의 형태를 갖추었다. 꾸물꾸물하며, 점점 다시 마몬의 형상으로 변해 양팔을 활짝 펼쳤다.
[크...크크큭, 맛있구나, 맛있어...]
마몬은 섬뜩하게 웃었다. 이내 아수라에게 시선을 돌리려던 마몬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이이잉-!
복부에서 은빛이 모여들더니, 폭발해 버린 것이다. 폭발한 그 안에서 앙그라마이뉴가 고고하게 걸어 나왔다.
[컥!]
[파악 완료, 죽어라.]
촤아아악!
온 세상이 은빛 강으로 바뀌었다. 사방에서 은색 물결이 친다. 하나하나가 섬뜩할 정도의 신력으로 만들어진 광범위 공격이었다.
[크히히히!]
아수라는 광소를 흘리면서 아랑곳 않고 화염의 거인과 싸우고, 은색 물결이 치고, 장막에선 악마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
그것을 지켜보던 태호는 솔직히 혀를 내둘렀다.
저건 미친 놈들이었다. 어느새, 이 일대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잊혀진 섬의 10배 크기의 대지 온 사방은 그야말로 초토화, 난장판이 되었다.
콰지지지직! 우지지지직! 지지지직!
은색 물결에 닿은 모든 것이 그야말로 소멸해 나간다. 검붉은 장막의 악마군단도 나오는 족족 소멸해 나가고, 마몬도 큰 타격을 입었는지 휘청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키야아아악!]
문득.
아수라의 시선이 홱, 돌아갔다.
아수라의 시선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태호는 속으로 고사를 지냈다.
‘뒤통수다, 아수라.’
제발.
‘앙그라 뒤통수를 쳐라.’
브라만이 아수라에게 비단 ‘마몬’을 죽이라고 했을 리는 없다. 분명히 사도들은 죄다 죽이란 명령을 했을 거다. 어차피 둘러대면 그만이다.
마몬은 앙그라와 자폭했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정도로 둘러댄다면 효과적일 거다.
태호가 그리 생각한 것은 기우가 아니었다.
아수라의 입가에 씩, 미소가 걸렸다.
휘리릭-!
아수라의 등 뒤 반투명한 팔들이 앙그라에게 날아든다.
쐐애애애액-!
파파파파파파파팟!
섬뜩한 난도질이 앙그라를 향했다.
[크하하하하하!]
앙그라는 그대로 휘청거리며 아수라의 난도질을 고스란히 얻어맞았다.
그런 아수라에게 화염의 거인이 달려들어 온몸을 불태운다.
[크아아아아!]
아수라의 피부가 녹아들어, 피부 안쪽의 근육과 혈관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그래도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파파파팟!
은빛 물결이 아수라를 덮쳤다. 그야말로 세상이 진동하고, 온 사방이 쩌렁쩌렁 울렸다.
피가 튀고, 피로 피를 씻어 낸다.
처참한 전투가 이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틈을 놓치지 않았다.
푹! 푸푸푸푹!
아수라의 검은 앙그라의 몸을 난도질하고, 앙그라는 은색 빛으로 아수라의 몸을 꿰뚫는다.
마몬은 앙그라의 은색 물결에 큰 대미지를 지속적으로 입으며, 아수라의 견제를 모조리 받아 낸다.
얼마나 사투가 이어졌을까?
그 와중.
마몬은 다급히 몸을 뺀 뒤, 소리쳤다.
[너희... 모두... 먹이가... 돼라...!]
촤아아악-!
악마 군단이 쏟아져 나오던 검붉은 장막은 마치 아르카네의 망토처럼 변하더니, 깔때기 모양처럼 변해 사방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블랙홀처럼, 사방의 먼지 하나도 남김없이 그곳으로 흡수돼 갔다. 앙그라와 아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키익... 키익... 히이익... 히익...]
마몬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태호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마몬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신력이 점점 더 감소하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태호가 눈을 반짝였다.
우선. 태호는 분신체들을 만들어 냈다. 그림자 속에서 분신들이 계속해서 증식해 나가, 총 여섯이 되었다.
여섯의 분신체들이 각기 ‘마법왕의 가호’를 이용해, 신비력으로 마법을 저장해 두기 시작했다.
‘마법은, 나락의 절대 구역.’
쑤욱-!
그때.
블랙홀에서 은빛 형체가 기어 나왔다. 앙그라마이뉴였다. 놈은 간신히 기어 나와 마몬에게 공격을 가했다.
푸푸푸푸푹!
[어딜... 놓칠쏘냐...!]
마몬이 지지 않고 다시 놈을 빨아들였다.
쏴아아아아-!
앙그라가 다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갔다. 놈에게도 신력이 많이 소실됐음을 느낀다.
-지금이다.
“지금이다.”
로만과 태호가 동시에 말했다.
태호는 그림자 속에서 몸을 일으킨 뒤, 자신의 분신체들을 모조리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각 분신체들에게 명령했다.
‘최후의 수호자 발동.’
지이이이잉-!
분신체들이 단기적으로 10배의 힘을 발휘하는 최후의 수호자 모드를 발동시켰다. 매우 짧은 시간만 지속되고 그 이후 죽지만, 죽는 것은 아무래도 좋다.
‘쏟아내!’
쿠구궁-!
여섯 분신체들이 각 15발의 나락의 절대 구역을 시전했다. 도합 90겹의 나락의 절대 구역이, 단기적으로 10배의 힘을 발휘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끝이 아니다.
‘달려들어!’
펑! 펑! 펑! 펑! 펑!
분신체들은 블랙홀로 ‘어둠의 발걸음’을 써서 달려들었다.
쏴아아악-!
분신체들을 좋다고 빨아들인다. 하나도 남김없이 빨려 들어갈 때 마몬이 소리쳤다.
[뭐, 뭐, 뭐냐!]
뭐긴.
태호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폭탄 받아라.”
그리고 읊조렸다.
‘자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