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리품
관음보살?
태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곧, 기억 저편에서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저는 관음보살님을 모시는 보잘것없는 아무개, 현장이라 하옵니다.
그렇다.
화과산의 삼장에게서다.
-관음보살? 당연히 알지...
-네 주제에 어떻게?
-......어떻게라니? 고향 동문인데? 멍청아? 죽고 싶냐?
조겐 역시!
태호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인벤토리창에서 조겐을 꺼냈다.
-힉!
조겐이 관음보살을 보자마자 식겁하며 놀랐다. 그리고 태호에게 소리쳤다.
-저거 관음보살이잖아? 이런 빌어먹을!
“알아?”
-고향... 동문이라고 했을 텐데?
관음보살 역시 빙긋 웃었다.
[조겐이 당신에게 있었군요.]
-......
조겐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연신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놈이 천천히 읊조렸다.
-저건... 부처를 모시는... 사도다.
‘성향은?’
태호가 속삭이듯 묻자, 조겐이 짜내듯 대답했다.
-천계에서... 혼돈의 권좌와의 동맹을 반대하고... 순환의 고리를 받아들이자는 입장은... 오직 부처뿐이지...
태호는 그제야 조금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관음보살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채 태호에게 물었다.
[아직 의심을 거두지 않은 것 같군요. 좋아요, 이건 어떻습니까?]
관음보살이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바닥을 살짝 앞으로 내밀며 두 눈을 뜬다.
지-잉!
어느 순간.
태호의 앞에 영상이 보였다. 그 안에서는 연꽃 가득한 세계를 달리는 두 남자가 보였다. 카실론, 그리고 볼카노스였다.
문득, 카실론이 손짓하며 화면을 가리키자 볼카노스의 시선이 닿았다.
지이잉-
태호와 정신적으로 연결된 볼카노스의 의지가 전해졌다.
[관음보살 님은 우리의 아군이 맞다.]
현재의 태호는 볼카노스가 보여 주는 고유의 어둠의 기운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환영이나, 거짓이 아닌 진짜임을 말해 주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일단, 현재 세 번째 천옥을 돌파 중이다.]
언뜻 봐도 그곳은 부처의 영역이었다.
‘설마...’
[그래. 부처께서는 우리의 손을 들어 주셨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가 되니 놀라운 일이었다.
상위 신 부처!
그는 카실론과 볼카노스를 돕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럼, 나아가.
‘대사제 데칼...!’
그의 탈옥을 돕는 것도 상위 신 부처일 확률이 높다.
쩌억-!
저 멀리, 연꽃의 세계 한가운데가 갈라지고 있었다.
[갑시다!]
카실론이 소리쳤다.
[곧 보자꾸나, 나의 제사장이여.]
볼카노스의 말을 마지막으로, 그들이 경계로 사라졌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 태호가 털썩 주저앉았다. 극도의 긴장감으로부터 벗어난 탓에 일순간 온몸에 힘이 쭉 풀려 버렸다.
그런 태호의 몸속으로 따스한 기운이 흘러들어 왔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하도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가, 전신을 돌아볼 생각을 못 했다.
온몸은 아주 말끔하게 치유가 돼 있었다. 깨물어서 반쯤 찢어진 혓바닥도 멀쩡했다.
-역시 부처가 조력자였군.
태호는 로만의 말을 들으며 관음보살을 보았다. 그가 로만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오랜만이군요, 사티로스. 그곳 생활은 할 만한가요?]
-여전히 재수 없는 말투야. 아가리 닥치라고 전해 줘.
“......할 만하답니다.”
[후후후. 어지간히 답답할까요, 하지만 그것이 그의 업보라면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내 언젠가 아가리를 찢어 놓겠다고 말해 줘!
“......알았다네요.”
-크아아아아!
관음보살은 그런 태호의 전신에 자신의 강한 신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후욱-!
그 순간.
태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패시브 스킬 : ‘마음의 평온’을 획득했습니다.]
[이것이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마지막 회귀자이자 인간, 카이저.]
그가 따스하게 덧붙였다.
[많이 외로웠을 거예요.]
“......”
[많이 힘들었겠지요.]
어쩐지 마음이 지나치게 평화로워져, 울컥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싸움을 응원하고, 도움을 줄 겁니다.]
쩌어억-!
다시 하늘이 갈라졌다. 그곳으로 오색 찬란한 연꽃이 피어, 황금빛 계단을 만들었다. 관음보살의 모습이 그곳을 따라 점점 하늘로 올라간다.
[또 뵙죠. 사티로스에게도 전해 주세요.]
-닥쳐! 닥쳐! 다시 보기 싫어!
“또 뵙죠.”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따스해져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랍니다.”
[좋군요. 후후후.]
그가 점점 더 하늘 높이 올라가고, 온 세상이 축복이라도 하듯 따스한 빛으로 물들었다.
* * *
태호는 세 사도가 죽은 자리에 섰다.
놈들은 하나둘 고유의 아이템들을 떨구었다. 헌데, 그 에픽들이 정말 보통 에픽이 아닌 것 같았다.
우선.
아수라가 떨군 에픽은 총 다섯 개.
그중 네 개는 평범한 에픽들이지만, 유독 하나가 대단히 굉장해 보였다.
[등급 : 에픽(신화력 부여 : 우주의 신화력)]
[종류 : 장착(캐릭터에 장착 귀속됨)]
[이름 : 별빛의 다우징]
[옵션 : 목표로 하는 것을 검색한 뒤, 추적합니다.]
“......?”
태호는 그것을 일단 사용해 보기로 했다. 마치 몸속에 스며들 듯 사라진 그것을 가동하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원하는 단어를 입력해 주세요.]
“어?”
마치 인터넷 검색창 같은 느낌! 태호는 설마, 싶은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규, 균형의 수호자.”
[검색 중...]
놀랍게도.
눈앞에 메시지가 다시 떠오른다.
[검색된 결과, 총 14,341건.]
[현재의 상황과 방향을 고려했을 때, 필요한 데이터의 개수는 총 5개입니다.]
[검색 결과를 열람하시겠습니까?]
“......열람.”
[1. 대사제 데칼은 천상의 권좌에, 상위 신들의 고등 결계에 뒤덮여 봉인되었다.]
[2. 수호자들은 멸망하였다. 최후의 수호자는 아우슈리네이며, 그녀를 찾는 것이 현세 최대의 목표이다.]
....
“잠깐만.”
태호가 반문했다.
“아우슈리네를 찾는 게 최대의 목표라고? 왜?”
[검색 중...]
[답 : 무수히 많은 수호자들은 저마다의 힘을 다루었지만, 시간을 다루는 능력은 오직 아우슈리네에게만 허락됐기 때문이다.]
“오직 그녀에게만...”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사유 : 신화력을 뛰어넘는 고등 존재.]
“......!”
-그건 별빛의 다우징이군. 브라만이 작정을 했나 보구나.
“이게 대체 뭐지?”
-멍청한 거냐, 멍청한 척하는 거냐? 그거에 물어보면 되잖아.
로만이 툴툴거렸다. 아무래도 관음보살과의 대화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태호는 별빛의 다우징을 가동하며 물었다.
“너는 누구고 누가 만들었으며, 어떤 성능을 가졌지?”
[답 : 저는 창조신 브라만 님의 소유이며, 그분의 신화력으로 만들어진 보구입니다. 저는 세계의 모든 역사를 저장합니다. 또한 힘이 허용하는 내에서 검색, 그리고 추적 기능을 제공합니다.]
“......맙소사.”
잠깐.
그렇다면?
“이중 맹약에 뒤덮인 이쪽 세상 정보는 어떻게 아는데?”
[답 : 현재의 이중 맹약은 현격히 약해졌기에, 미약하지만 정보 수집이 가능해졌습니다.]
즉.
이중 맹약이 강했을 때는 외부에서 정보 수집이 불가했다는 말이다.
쿵쿵쿵-
태호는 아수라가 왜 이것을 들고 지상에 내려왔는지 대번에 눈치챘다.
“회귀자.”
태호는 회귀자를 검색해 보았다.
[검색된 결과, 1건.]
차례대로 보기로 했다.
[답 : 수호 일족, 아우슈리네의 권능 사용이 의심됨. 지상에는 회귀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천태호.”
[검색된 결과 : 0]
“카이저.”
[검색된 결과, 1520건.]
[본인의 이름 검색 결과를 보시겠습니까?]
“그래.”
[검색된 결과, 0건]
“......!”
태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반문했다.
“검색 결과가 없다는 건 무슨 의미지?”
[답 :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그저 검색 결과가 0일 가능성입니다. 통상적으로 99.99%의 확률로 이런 이유입니다.
둘째는, 감지 불가의 힘을 보유한 경우입니다. 0.01%의 확률만이 존재합니다.]
“감지 불가라?”
[답 : 수호 일족의 힘, 그리고 신화력이 그에 포함됩니다.]
“아우슈리네의 검색은?”
[답 : 그것은 직접 브라만 님이 작성해 입력하신 정보입니다.]
“놀랍군.”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수라가 터무니없는 물건을 떨구고 죽어 버렸다.
“아!”
태호는 다시 물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
그 키워드로 검색을 시도해 본다.
[검색된 결과, 1건]
[1. 죽음 이후의 세계에는 끝없는 무(無)의 영역이다.]
“순환의 고리.”
[1. 순환의 고리가 1만 년의 시간을 두고 신들의 세계를 초기화한다.]
“아 참.”
태호는 혹시나 싶어, 입을 열었다.
“사티로스.”
[1. 판타로스 따까리.]
[2. 건방진 새끼, 언젠간 죽여 버릴 것.]
[3...]
“......이건 누가 입력했지?”
태호의 물음에 다우징이 대답했다.
[답 : 최근 이 정보는 ‘아수라’ 님에 의해 수정되었습니다.]
그만 알아보자.
그 외.
태호는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한참이나 찾아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을 돌렸다.
다음은 앙그라마이뉴가 떨군 장비들이다.
놈 역시 에픽 다섯 종을 떨구었는데, 여기선 두 개의 괜찮은 에픽을 건질 수 있었다.
[등급 : 에픽(신화력 부여 : 창조의 신화력)]
[종류 : 장착(캐릭터에 장착 귀속됨)]
[이름 : 은빛 금속]
[옵션 : 창조의 신화력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착용하는 순간, 온몸을 액체금속이 뒤덮어 보유한 생명력x10의 보호막을 얻는다.]
‘대체 이건 뭐야?’
그간 봐 온 에픽들이랑은 여러모로 다른 녀석들이었다.
가장 먼저, 이 녀석들에게는 ‘카실론’의 한 마디가 적혀 있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저 리얼 포스 고유의 컨셉 놀이겠거니 했지만, 이제 그게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는 종류의 문제였다.
“흠...”
그리고 다른 하나.
[등급 : 에픽(신화력 부여 : 파괴의 신화력)]
[종류 : 장착(캐릭터에 장착 귀속됨)]
[이름 : 파괴의 쇄도]
[옵션 : 파괴의 신화력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지정하는 것을 파괴한다. 공격력, 마법공격력, 방어력, 마법방어력의 합산과 비례하는 대미지를 가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태호는 이것이 마몬을 몇 번이고 꿰뚫던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아후라는 즉, 창조와 파괴의 신화력을 둘 다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자.
우선, 이렇게 넘기고.
그다음.
마지막으로 마몬이 남았다.
“맙소사.”
마몬이 떨군 것은 지팡이였다.
태호는 그 지팡이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등급 : 에픽(신화력 부여 : 태양의 신화력)]
[종류 : 장착(캐릭터에 장착 귀속됨)]
[이름 : 태양신의 지팡이]
[옵션 : 태양의 신화력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태양의 화신을 소환하며, 태양의 힘을 일시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태양신의 지팡이!
-이걸 지상에서 보게 될 줄이야...
로만이 중얼거렸다.
“......”
이것이 바로 마몬이 2:1도 버겁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던 원동력, 태양신의 지팡이였다.
‘앗뜨!’
태호는 그것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열기에 화들짝 놀라, 지팡이를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