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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76화 (176/194)

빈집 털이

그사이 태호는 상위 신 셋과 우라노스에게 만유의 눈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움직이겠습니다.

-오냐.

팟!

태호는 우선, 아스가르드에 분신체 하나를 남겨 두고 질주를 시작했다.

목표는 황금성, 천상의 권좌!

* * *

로키는 조용히 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대었다.

눈앞에서 상위 신들이 애들처럼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그래 병신들아, 싸워라.’

어차피 이놈들의 관계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였을 뿐. 언제든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치고받고 싸울 운명이었다.

자신은 그 관계에 작은 불씨를 제공해 주었을 뿐이다.

‘지금 이게 잘하는 짓일까.’

문득 로키는 그런 생각을 했다. 고개를 한껏 젖혀,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긴, 오래 살았지.’

따지고 보면 로키 역시 근 1만 년을 살아 왔다. 아주 오랜 옛날, 인간이었을 무렵이 가끔씩 생각나곤 했다. 어영부영 1만 년이란 세월을 살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아마.

이 거대 괴물들의 틈새에 끼어 버렸으니, 그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 역시 상위 신에 한없이 가까웠던 이지만 그에게는 신화력의 힘이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뭐......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군.’

로키는 포도주 잔을 끝까지 비운 뒤 킬킬킬 웃었다.

그때.

구구구구궁-!

사방에 거센 바람이 불었다.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나타난 것은 거대한 나비의 형상이었다.

퍼덕 퍼덕 퍼덕!

나비는 날갯짓을 하더니, 인간으로 바뀌어 탁자 앞에 섰다. 모두가 잠시 고요해졌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가관이군.]

상위 신, 둠 제네울이었다.

로키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사방을 훑는 그의 눈이 싸늘했다. 그는 상위 신들 중, 가장 베일에 뒤덮인 인물이었다.

[뭣들 하고 있는 거지?]

그런 그에게 라가 입을 열었다.

[둠! 너는 알 것 없다!]

[알 필요 없을 정도로 하찮은 싸움을 하고 있음은 이미 안다. 정말 중요한 것을 뒤로 한 채, 이렇게 싸움질이나 하고 있다니... 정말 한심함을 금할 길이 없군.]

둠은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며 덧붙였다.

[현재 볼카노스가 제5 천옥까지 돌파했다는 말이다. 내 천옥도 오래 버티지 못하더군. 남은 것은 메타트론의 천옥뿐.]

[......!]

라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또한, 대사제 데칼의 결계 역시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너희들은 지금 이런 무익한 싸움을 할 필요가 없는 셈이지.]

둠 제네울이 싸늘한 얼굴로 로키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지켜보니, 저 주둥이가 문제더군. 너희들은 모두 저놈의 세 치 혀에 놀아난 셈이다. 이참에 저 패륜아를 죽여야겠다.]

[오우, 그러시려고?]

로키는 전혀 겁먹은 기색 없이 팔짱을 낀 채, 느긋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였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중 맹약은 곧 박살 난다. 판타로스는 깨어날 것이고, 이런 사소한 다툼쯤은 곧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게 되겠지... 우리에게는 곧 순환의 고리와의 사투가 남아 있을 테니까.]

둠 제네울이 작정했다는 듯 자신의 양팔을 활짝 벌렸다. 온 사방에서 섬뜩한 곤충들이 튀어나와 로키를 노려보았다. 촤라라락,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앞날에, 너 같은 모사꾼은 필요 없다. 여기서 죽어 버려라, 로키.]

로키는 팔짱을 낀 채 표정을 천천히 굳혔다. 그의 얼굴에, 조소가 어렸다.

[그렇다는군요, 어르신!]

번-쩍!

그 순간.

로키의 등 뒤로 후광이 비추었다.

온 사방에는 연꽃이 피었고, 오색의 부채를 가진 선녀들이 좌우로 나타나 부채질을 했다.

로키의 등 뒤, 거대한 만다라 문양이 만들어졌다. 그곳에서 홀연히 등장한 것은, 자애로운 미소의 한 사내였다.

[부처...! 방해할 셈인가?]

둠 제네울이 이를 갈며 읊조렸다.

사내가 나타나자 그의 등 뒤로 황금불상이 만들어져, 여덟 개의 팔을 만들어냈다. 팔들은 하나하나 별개의 손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것에서 어마어마한 신화력이 느껴졌다.

[아, 물론입니다.]

부처의 목소리는 따스했고, 지극히 차분했다. 듣는 이의 마음이 절로 가라앉고 침착해지는 느낌의 신화력이었다.

[아무래도 제 입장으로서는, 순리를 거부하는 여러분이 그리 달갑게 보이진 않는군요.]

부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대중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는 싸움을 즐기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싸울 수밖에요.]

라가 발끈해 소리쳤다.

[닥쳐라! 그렇게 초기화되는 것이 좋다면, 이 자리에서 너를 죽여 무(無)로 돌아가게 해 주마!]

금세 흉흉한 기운이 돌았다.

천천히 브라만이 일어서서, 자신의 신화력을 끌어 올리며 라의 편에 섰다.

아후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은 것은, 눈치를 보고 있던 올림포스의 우라노스였다.

그러다 결국.

우라노스 역시 천천히 걸어, 상위 신들의 편에 섰다.

* * *

‘미쳤어.’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와들와들 떨려 옴을 느꼈다. 상위 신이 다섯이다!

메타트론을 제외한 다섯이 저곳에 모여서 서로의 의견을 대립하고 있다.

팟!

눈앞 저편.

황금성이 보였다.

태호는 그곳의 사방을 뒤덮고 있는 거대한 신화력의 결계를 보았다.

‘과연.’

과거에는 엄두조차 나지 않아 아예 시도를 하지 않았던 신화력 주파.

허나, 이제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지금의 태호는 혼돈의 힘을 흡수해 전에 없이 정순한 신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우선.

분신체 하나를 뽑아, 결계로 집어넣어 보았다. 신비력을 한껏 끌어 올린 분신체가 결계로 가까이 갔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 그리고 다시 한 걸음.

태호의 시선이 분신체에게 집중되었다.

쿠-웅!

전에 없이 막대한 압력이 느껴졌다. 분신체에게 가해진 압력이지만, 본신에도 느껴질 정도였다.

‘흡.’

허나, 이 정도는 어쩐지 견딜 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태호는 분신체의 신비력을 모조리 끌어모아 압력에 저항했다. 그렇게 다시 한 걸음, 또 한 걸음.

문득.

결계를 넘어, 그곳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된다!’

태호가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결계 안쪽.

그 분신체를 향해 본신이동을 한 태호는 냉큼 그림자 속에 숨었다.

황금성, 천상의 권좌!

그곳에는 아무런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으나, 아주 강렬한 신화력 하나가 존재했다.

번쩍이는 빛의 거인, 메타트론이었다.

태호는 숨죽인 채 그를 지켜보았다. 메타트론은 천상의 권좌의 정원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우선.

‘만유의 눈.’

태호는 만유의 눈 하나를 만들어, 그쪽으로 날려 보냈다. 눈은 별 무리 없이 메타트론에게 날아가, 찰싹 붙었다.

‘저건 대체 뭐 하는 거지?’

태호의 의문에 로만이 대답했다.

-저건 아마 천상의 권좌 자체를 지키는 역할일 거다.

“그래?”

-허나 그의 태도는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 정확히 알 방법이 없군.

우선.

그림자 속에 숨은 채, 천상의 권좌로 숨어 들어갔다.

성 내부.

고요한 성 내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성안을 지배하는 여섯 상위 신 중, 다섯은 올림포스에 가 있으니까.

우선.

겉으로 보면 평범한 방들이 다섯 개 있다. 태호는 그 방들에 하나하나 진입했다.

표면적으로 걸려 있는 것들은 하나하나 고유의 신화력들이었다.

첫 번째 방은 우주가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방문을 열자, 압도적인 우주의 신화력이 태호를 짓눌러 왔다.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히고, 무중력의 상태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압도감이었다.

‘이게 우주의 신화력, 브라만.’

이것은 진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거대한 결계다. 허나, 이것을 뚫고 들어올 존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그들도 못 했을 거다.

그 내부에는 끝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세상이 휘리릭 바뀌며, 독자적 세계를 보여 주었다. 마치 파노라마로 만들어진 영상의 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즉, 방은 애초에 크지 않다고 생각하면 또 별로 크지 않다. 허나 파노라마의 영상 속으로 움직이고자 하면, 또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구조 같았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세계!

그 모습을 마치 신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온 사방에 개미처럼 움직이는 인간의 문명이 보였다. 고대 문명과도 같은 그들의 문명!

그리고 그 세계의 인간들은 브라만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렇다.

상위 신들은 저마다 독자적 세계를 지배하는 신!

‘정말 터무니없는 놈들과 싸우게 된 것 같은데.’

헛웃음이 나오는 와중, 방 내부의 사방에서 신화력이 느껴졌다.

-야. 여기 느낌이 심상찮다.

로만도 느낀 듯 말했다.

‘뭐야, 벌써 돌아온 건가?’

허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시야를 좁혀라. 이 공간은 넓게 보려면 한없이 넓어지는 곳이다.

그의 조언은 합리적이었다.

태호는 이 방 자체를 한없이 작게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방의 크기는 평범한 인간의 방 크기만큼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보인다.

사방에 놓여 있는 것은, 신화력으로 만들어진 작은 보구들이었다.

그 보구들이 어마어마한 신화력을 뿜어내며 강력한 결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

태호는 문득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게 뜬금없지 않다는 생각 역시 했다.

방에서 결계를 만들어 내는 보물은 총 네 종. 하나하나, 보패 같이 생겼다.

‘그렇네.’

맞다.

아나크레온의 정수, 신화력의 정수 같은 물건이었다. 잠깐 망설이던 태호는 이내 결심한 듯, 그 네 개의 보패를 모조리 챙겼다.

샥-!

그리고 방을 빠져나와, 다음 방으로 향했다.

이곳은 아후라의 방!

아후라의 방은 이미 헤르메스의 신발로 본 바 있기에 그리 놀랍지 않았지만, 그의 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조금 놀라운 점.

아후라의 세계는, 고도의 기계문명이었다는 거다. 그 세계의 인간들은 기계 로봇을 움직였고, 마천루들이 가득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도 네 개의 보패를 갈취했다.

그다음, 라의 방!

라의 세계는 예상대로 고대 이집트 문명과 굉장히 흡사해 보였다. 거대한 피라미드들, 그리고 동물과 인간이 섞인 듯한 생명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다음은 둠 제네울의 방이었다.

이곳은 기괴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가 아니라, 벌레 같은 것들이 살아가는 세계인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꿈틀거리는 곤충, 그리고 파충류들의 세상! 고대 공룡의 세계를 보는 것 같은 기묘한 세상을 지켜보던 태호는, 그곳에서도 네 개의 보패를 훔쳤다.

그 다음.

‘메타트론은 독자적 방이 없는 건가?’

그럼.

남은 것은 단 하나, 부처의 방이었다.

현재 부처는 로키를 돕고 있다. 또한, 그는 볼카노스의 탈옥을 돕는 조력자이기도 했다.

물론, 태호는 그를 온전히 믿지 않는다. 허나, 지금 당장 그가 큰 힘을 보태어 주는 것은 사실이었다.

샤-악!

일단 여기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아스가르드 쪽에 남겨 둔 분신체로 본신이동을 한 태호는 그제야 땅에 털썩 주저앉아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젠장.’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미친 짓이었다.

-너 정말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숨죽인 채 지켜보던 로만이 말했다. 놈 역시 크게 안도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호는 덜덜 떨리는 팔을 부여잡고 아스가르드의 포근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로키에게 말했다.

-이쪽은 임무 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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