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들 미쳤군 >
고오오오-
올림포스산이 거대한 신화력들의 격돌지로 변했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섯 개의, 저마다 다른 신화력!
그것들의 힘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해서,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터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허나 로키는 꿋꿋이 일어서서 팔짱을 낀 채 저편을 노려보았다.
[정말 여기서 생사결을 다투어 보겠다, 이거지?]
-야, 숨어.
동시에 태호에게 말을 전달한 뒤, 로키가 양손을 활짝 펼쳤다. 로키의 두 눈에 룬 문자들이 새겨지며 등 뒤에 거대한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아스가르드의 마술왕을 쉽게 보시면 곤란하지.]
쩌억-!
공간이 열리고, 그곳에 아스가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아스가르드가 우렁차게 떨렸다.
쿠구구구궁-!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늑대가 홀연히 나타나고, 아스가르드 전체를 휘감고 있는 거대 뱀 역시 대가리를 치켜들었다.
펜리르, 그리고 요르문간드가 등장한 것이다.
일촉즉발!
브라만, 라, 둠제네울, 아후라에 상위급 신 우라노스까지! 그 강대한 존재들과의 대립!
허나 로키와 부처는 한 치도 밀리지 않겠다는 듯 결의를 다졌다.
태호는 그림자 속에서 숨죽여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처는 그만큼 강한 건가?’
다만, 펜리르 그리고 요르문간드와 함께 하는 로키의 힘이 상위 신 하나에 비등할 정도라는 것은 태호도 알 수 있었다.
[어쩔까? 이대로 나는 너희 중 한 놈 목숨은 가져갈 수 있는데.]
로키가 이를 갈며 섬뜩하게 말했다.
[건방진...!]
라가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신화력을 온전히 개방했다.
까아아아아아-!
온 사방이 불길로 뒤덮이고, 올림포스의 하늘은 강철의 독수리 떼로 꽉 찼다.
[저 건방진 모사꾼을 죽여 버려라!]
콰아아아아아!
[저 빌어먹을 수탉을 물어뜯어!]
로키도 지지 않고 외쳤다.
카르르릉-!
펜리르가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산채만 한 늑대의 전신에서 거대한 힘이 넘쳐흘렀고, 요르문간드의 비늘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카드드득! 카드드드득!
강철 독수리 떼가 펜리르 앞에서 사정없이 찢어발겨 내렸다.
콰지직! 콰지지직! 지지지지직!
온 사방에 강철의 비가 내렸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올림포스는 일순간 초토화 직전에 이르렀다.
[그만-!]
그때,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아후라였다.
콰드득!
펜리르가 입에 물고 있던 강철 독수리 다섯 마리를 아작아작 씹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 싸움은 무익하다!]
아후라는 천천히 그들의 중간에 섰다.
[어차피 이중 맹약은 곧 깨지게 돼 있다! 그때 싸워도 늦지 않는다. 그전까지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져 합의점을 찾아보도록 하자.]
로키는 기다렸다는 듯한 걸음 물러섰다.
라도 말려 주길 기다렸다는 듯 물러서, 로키를 노려보았다.
* * *
파파파파팟!
볼카노스와 카실론이 달렸다.
둠 제네울의 천옥을 벗어나자 나타난 것은 빛의 세계!
이 세계는 마지막 천옥, 메타트론의 천옥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금빛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사방에는 빛의 거인들이 서서, 침입자를 말살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
꿀꺽-
볼카노스는 침을 삼켰다.
빛의 힘.
메타트론의 그 힘은, 볼카노스와는 완전히 상극의 힘이었다.
[......]
그는 한때 메타트론을 따랐다. 그는 누군가를 섬겼지만, 누구를 섬기는지 아직도 미지수였다.
혹자는 둠 제네울을 가장 의뭉스러운 상위 신이라 꼽지만 볼카노스가 볼 때는 아니었다.
메타트론이야말로 의문에 휩싸인 존재였다.
그리고.
메타트론의 천옥, 그곳에 접어들자 빛의 거인들은 천천히 차렷 자세를 했다.
[기묘한 일이군.]
카실론이 신음성을 흘렸다. 마치 메타트론은 작정이라도 한 양 길을 터 준 것이다.
그들이 걸어갈 때마다, 빛의 거인들은 좌우로 물러서 나아갈 길을 만들어 주었다.
[네메데스.]
볼카노스가 그를 불렀다.
[수상쩍습니다만... 갑시다. 시간이 없으니.]
네메데스가 말했다. 볼카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망설이는 것은 말이 안 됐다.
파파파파파팟!
그렇게 마지막 천옥을 질주하던 볼카노스는 드디어 그 천옥의 끝자락에 닿았다.
쩌억-!
갈라진 차원 너머, 그리운 천계의 풍경이 나타났다. 볼카노스는 소리쳤다.
-카이저!
* * *
미친놈들이었다.
태호는 솔직히 그들의 싸움을 보며, 숨이 막혀 오는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깊은 심해 속에 잠겨 옴짝달싹 못 하는 기분. 상위 신과 그 급의 신과의 격돌은 그 정도의 위압감을 선사해 주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로키와 라가 제대로 붙는다면 천계의 대부분의 땅이 초토화돼도 이상할 게 없다.
그때.
-카이저!
태호는 볼카노스의 목소리를 들었다.
‘탈출했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로키의 의도도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일부러 싸움을 일으켰구나!’
로키는 일부러 아스가르드로 통하는 문을 열어, 라를 도발한 것이다. 시간을 끌어 볼카노스의 탈옥이 이어질 동안, 상위 신들을 묶어 두려는 수작이었을 거다.
‘천재야.’
태호는 그대로 볼카노스에게 말했다.
로키에게 귓속말처럼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을 사용했더니, 통했다.
-탈출하셨습니까?
-그래. 수상쩍은 부분이 많다. 지금 시행하자.
-알겠습니다.
동시에, 지상에 남겨 두었던 분신체로 본신이동을 했다. 지상으로 돌아오자 마자, 태호는 천계에 남겨 두었던 모든 분신체를 해제했다.
-네 신비력으로 결계를 만들어라.
태호의 힘은 감지 불가의 힘. 뭔가 미심쩍은 것들이 있었기에, 그대로 강림해서 기운을 탐지당하는 것은 좋지 않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고오오오-
태호는 자신의 신비력을 뿜어냈다. 사방으로 퍼진 신비력이 구역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볼카노스를 소환했다.
싸아아아-
볼카노스가 나타났다. 그의 모습은 예전과 비슷했지만, 풍기는 어둠의 힘은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태호가 고개를 숙였다. 볼카노스는 빙긋 웃었다.
[예전, 내가 말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때가 되면, 너는 나를 주박으로 묶어라.
그의 말을 기억한다.
태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볼카노스가 대답했다.
[지금이 그때다.]
볼카노스는 묵묵히 덧붙였다.
[기존의 주박이 아니라, 새로운 주박을 사용해야겠다.]
“새로운 주박이라 하심은...?”
태호는 가만히 볼카노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전체적으로 빈틈없는 느낌이었다. 전신에 어둠의 힘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지독히 정갈하고 깨끗한 느낌이었다.
문득.
그의 전신에서 어둠의 힘이 사라져 갔다. 마치 온몸에 힘을 응축한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는 그냥 맨몸이었다. 아마 이 상태라면 초보 모험가의 칼질에도 상처가 날 것 같은 허술함이 느껴졌다.
[지금의 나는 빈틈투성이일 것이다.]
“그래 보입니다.”
[이대로 나를 묶어라.]
-미친놈, 진짜냐?
로만이 빽 소리쳤다.
‘뭐야?’
-넌 저게 뭔지 모르겠지만, 저건......
로만은 말끝을 흐렸다. 이내, 어이없다는 듯 덧붙였다.
-저건 자신을 아예 양도한다는 뜻이다.
‘뭐라고?’
[나를 묶은 뒤, 흡수해라.]
“......!”
-저건 말 그대로 자신을 네게 맡긴다는 뜻이다. 네 힘의 수준에 따라 볼카노스의 힘을 그대로 양도받아 쓸 수 있게 된다는 말이라고. 날 인간화해!
펑!
로만이 인간화되어 소리쳤다.
“야 미친놈아! 너 진짜로 이놈에게 모든 걸 다 걸겠다 이거냐?”
[사티로스로군.]
볼카노스는 뚫어져라 그를 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뭐 하러 그렇게까지? 너, 너는 천계에서도... 어차피... 곧 상위 신에도 도전할 수 있는 놈이잖아!”
[흐음...]
볼카노스는 빙긋 웃었다.
[무익한 희생을 제물로 삼는 그 무리에 속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
로만은 천천히 볼카노스와 태호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다들 미쳤군.”
곧, 그가 씨익 웃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어. 이번 회차는, 정말 다들 미쳤어!”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볼카노스는 천천히 태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꿀꺽!
태호는 침을 삼켰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곧, 결심이 섰다.
어차피 태호에게 이번 생은 처음이자 마지막 회귀이며,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 생에 판타로스와 천계의 상위 신들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어차피 모든 게 끝이다.
돌이키기엔 늦었다.
이미 태호에게 목숨을 걸고 조력하는 이들이 생겼다. 태호의 목숨은, 더 이상 혼자의 목숨이 아니다.
볼카노스도, 로키도. 그리고 리얼 포스에서 결전을 대비하는 다른 존재들도.
“갑니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촤라라락-!
신의 주박술이 볼카노스를 향해 뻗어져 나갔다. 볼카노스의 몸을 뒤덮은 주박은, 아무 저항 없이 부드럽게 그를 포박했다. 곧, 그가 주박에 완전히 뒤덮였다.
허나, 이 상황은 전과는 전혀 달랐다.
[천상의 권좌의 신, ‘어둠의 신 볼카노스’를 흡수하시겠습니까?]
전에 없던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상대가 완전히 자신을 포기한 뒤에야 가능한 이 상황. 그간 겪어 본 적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죽음!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것으로부터 초연해진 뒤에야 가능한 일!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쏴아아아아-!
동시에, 볼카노스의 신형이 태호의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쏴아아아아아아아아-!
태호는 전신에 익숙하지만, 갖지 못했던 아주 정순한 어둠의 힘이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콰아아아아아-!
어둠의 힘은 태호의 온몸을 싹 한 바퀴 돈 뒤 심장 부근에 모여들었다.
동시에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천상의 권좌의 신, ‘볼카노스’의 스킬을 흡수합니다.]
[‘엑티브 스킬 : 흑룡(미개방)’을 얻었습니다.]
[천상의 권좌의 신, ‘볼카노스’의 스킬을 흡수합니다.]
[‘엑티브 스킬 : 어둠의 검(미개방)’을 얻었습니다.]
[천상의 권좌의 신, ‘볼카노스’의 스킬을 흡수합니다.]
[‘엑티브 스킬 : 마신(미개방)’을 얻었습니다.]
...각종 스킬들을 흡수했다는 말이 떠오르고, 마지막으로.
[천상의 권좌의 신, ‘볼카노스’ 의 스킬을 흡수합니다.]
[‘패시브 스킬 : 어둠의 신화력(미개방)’을 얻었습니다.]
온몸에 어마어마한 힘이 감돌았다가,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이제 볼카노스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태호와 로만 밖에 남지 않았다.
“정말 진귀한 것을 보게 됐군... 터무니 없어. 흐흐흐... 으하하하하!”
로만은 그렇게 호탕하게 웃었다.
-카이저.
문득.
볼카노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호가 두 눈을 반짝였다.
“예.”
-내 의식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너는 내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실패한 듯하다.
그런 것 같았다.
볼카노스에게 흡수한 스킬들은 죄다 미개방 표시를 띄고 있었고, 심장부에 생겨난 새로운 어둠의 힘 역시 별개의 힘으로 일렁일 뿐이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네 힘을 강화해야 나의 권능들을 하나하나 깨달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쩐지 안도됐다. 정들었던 볼카노스의 목소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 태호에겐 힘이 되었다.
긴장이 탁 풀렸다.
태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비력으로 만들어 낸 결계가 사라지고, 더없이 푸르지만 불길해 보이는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 다들 미쳤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