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꿇어 새끼야. >
처컹- 처컹-
정수들이 저마다 맞붙었다.
가만히 그것을 관찰해 보니, 저마다 다른 녀석들과 찰싹 달라 붙어 있다.
브라만의 ‘우주의 신화력의 정수’ 는 라의 ‘태양의 신화력의 정수’ 들과 서로 맞붙어 있었다.
둠 제네울의 ‘태고의 신화력의 정수’ 는 는 ‘아후라의 ‘창조, 파괴의 신화력의 정수’ 와 붙어 있다.
즉 16개의 정수들은 저마다 짝을 찾아, 큰 2개의 덩어리가 되었을뿐. 허나 짝을 찾은 녀석들도 그저 붙어서 두 이질적인 힘자랑을 하고 있을 뿐이지 그 외에 다른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특이점이 하나 있다면, 두 큰 덩어리가 저마다의 색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는 점.
브라만과 라의 합체물은 보라색.
둠 제네울과 아후라의 합체물은 하얀색.
“흐음......”
태호는 미동조차 없는 두 개의 정수로 시선을 돌렸다.
[아나크레온의 정수]
[???신화력의 정수]
“흠... 볼카노스님. 이 신화력의 정수는 대체 뭘까요?”
-으흠.
그건 볼카노스도 모르는 눈치였다. 다우징도 모르는 것 같았고, 로만도 모르는 듯 하다.
아나크레온의 정수는 아무래도 어둠 쪽 계열과 연관이 있는 듯 하니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다.
허나.
이건?
태호는 고심하다가, ‘???신화력의 정수’를 쥐고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뭔가 신화력의 정수인 것 같긴 한데.’
헌데.
“어라?”
그 정수에 기묘함이 포착되었다.
바로, 미묘한 보라색과 하얀색이 동시에 테두리에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
태호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 정수를 보라색 덩어리에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촤촤촥!
오각형의 정수들이 다닥 다닥 붙어 있던 형태가 일순 바뀌었다.
촤촤촤촤촥!
보패들은 바뀌어 가며 정 중앙, 딱 오각형 하나가 들어갈 크기의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거 설마.’
태호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신화력의 정수를 그 오각형 크기의 공간에 끼워 넣었다.
철컥!
쇳덩이들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떠오른 메시지.
[힘이 모자랍니다.]
[감히 접근할 수 없습니다.]
“......!”
힘이 모자라다?
태호는 혹시나 싶어 ‘???신화력의 정수’ 에 신비력을 더 주입해 보았다.
콰아아아아아-
분명 얼마 전 까진 맥시멈까지 채워 넣은 것 같은 그 정수에, 다시 신비력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촉이 온다.’
두근 두근 두근
가슴이 뛰었다.
“다 붙어!”
분신체들이 죄다 달려들어 신비력을 그야말로 쏟아 붓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신비력이 그야말로 홍수처럼 주입돼 갔다. 신화력의 정수는 그 힘들을 그대로 죄다 빨아버리고, 다시 시간이 하염없이 간다.
하루.
이틀.
사흘 째 되던 날.
뚝-
놈이 신비력을 충분히 머금은 듯,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 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아작 아작!
태호는 신과를 씹어 먹으며 정수의 상태를 살폈다. 테두리에 보랏빛과 하얀빛이 번갈아 뜨는 것이 아주 선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숨을 고른 뒤, 생각했다.
‘이거, 저 두 개 신화력을 합치는 핵심 코어 역할 같은 걸 하는 것 같은데.’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생각을 정리하니, 꽤 일리 있는 일이었다.
우선.
태호의 힘은 기본적으로 수호자의 힘에 기인한다.
그리고 수호자의 힘은, 모든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것에 능하며 그 수호자의 힘을 고스란히 깨우친 것은 태호였다.
즉.
신비력!
이것은 두 신의 신화력의 정수를 하나로 합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어떤 쪽에 이 정수를 끼워 넣어 완성시켜야 할까?
이는 색다른 고민이었다.
브라만의 ‘우주의 신화력’ 그리고 라의 ‘태양의 신화력’.
둠 제네울의 ‘태고의 신화력’ 그리고 아후라의 ‘창조, 파괴의 신화력’.
태호의 고민에 도움을 준 것은 볼카노스였다.
-당장은... 브라만과 라의 힘 쪽에 투자해 보는 것이 어떨까?
“으흠. 짚히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따지듯 물어본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의 의도가 궁금해 묻는 것이었다.
-우선, 네게는 라의 지팡이가 있다. 또한 브라만의 다우징 역시. 어쩌면 브라만의 힘으로 다우징의 숨겨진 성능을 개방할지 모르며, 라의 지팡이는 이미 강한 무기로 천계에서도 평판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과연 볼카노스였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태호는, 브라만과 라의 신화력의 정수가 합쳐진 보라색 덩어리에 ‘???신화력의 정수’를 가져다 대었다.
촤촤촤촥!
중앙에 공간이 만들어지고.
찰캉!
정수가 장착되자,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 보랏빛 정수들의 덩어리가 허공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구우우우우웅-
굉장한 진동이 이어졌다.
콰아아아아아!?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사방을 압도하는 것은 두 개, 거대한 신화력의 다툼이었다. 브라만의 힘과 라의 힘이 치열하게 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나, 그 두 상이한 힘의 정 중앙 태호의 푸른빛 신비력이 쏟아져 나오며 그 둘을 감싸안아 버렸다.
구구구구궁-
마치 풍선처럼 두 힘을 덮어 씌운 신비력!
허나 사방으로 터질 듯 울컥이는 두 힘의 파동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죽인 채 지켜보던 어느 순간!
피시시시식-
모든 힘의 다툼이 끝난 듯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힘이 점점 더 사그라들어, 정수 덩어리로 돌아갔다.
두둑- 두둑 두둑-
정수가 천천히 포개어졌다. 오각형 크기의 정수들은 총 9개의 집합체였는데, 하나 둘 포개어지더니 정 중앙의 정수 단 하나만 남았다.
그 정수에서는 매우 익숙하지만 미묘하게 브라만과 라의 힘을 품은 힘이 느껴졌다.
태호는 그것을 뭔가에 홀린 듯 쥐었다.
[‘신비의 신화력의 정수(우주+태양)]
다급히 정확한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등급 : ???급]
[종류 : 재료]
[이름 : 신비의 신화력의 정수(우주+태양)]
[상위 신 브라만, 그리고 라의 신화력의 정수를 신묘한 힘으로 융합시킨 정수. 이 정수를 소지한 것만으로도 신화력을 간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헐.”
그리고 육성으로 놀라며 털썩 주저앉았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그 용도가 이거였냐?’
동시에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돈다.
‘일단 이게 최대한 많이 필요하겠군.’
이 힘을 감지하는 것은 태호만이 가능하다. 우선 그 정수를 챙기고, ‘둠 제네울, 아후라’ 의 정수의 집합체를 인벤토리 창에 넣은 뒤 잽싸게 움직였다.
* * *
[뭐?]
로키는 지친 눈으로 태호를 보다가, 고개를 까닥였다.
[볼카노스! 거긴 좋냐?]
-안락하군.
태호의 마음 속에서 볼카노스가 말했지만, 로키에게 들린 듯 했다.
[좋아 보이진 않는군, 미친 놈 같으니라고.]
로키는 어쩐지 씁쓸한 얼굴이었다. 오랜 벗이 인간 회귀자에게 흡수됐다면,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태호는 어쩐지 마음 한쪽이 살짝 아려와 빤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자초지종은 대충 들었으니, 빨랑 찾아라. 여분의 분신체 하나 쯤은 아스가르드에 놔 두고, 특별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닌 게 아니라, 태호도 ‘만유의 눈’ 들로 이미 보고 있었다.
-신화력의 정수가 사라졌다니...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부처의 소행인가?
-이런 빌어먹을, 어떤 개자식이...!
상위 신들이 저마다의 반응으로 길길이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저 편의 하늘은 그야말로 아주 난장판이었다. 하늘은 시도 때도 없이 울그락불그락 알록달록 바뀌었고,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렸다가도 태양이 떠올랐다.
[진짜 간덩이 크다.]
로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씩 웃었다.
[그래서 좋아. 네놈은 뭔가를 해 낼 것 같거든.]
“......”
이런 이야기를 요즘 제법 듣는 편이었다. 태호는 쓰게 웃었다.
[천계는 이미 발칵 뒤집혔다. 볼카노스는 탈출했고, 각자의 방을 지키던 신화력의 정수들은 죄다 털려 버렸으니까.]
로키가 태호를 똑바로 보았다.
[이젠 좋든 싫든, 전면전이 다가올 거다. 움직여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한쪽 눈을 찡긋이며 덧붙엿다.
[은밀하게.]
......분신체 둘을 파견보냈다.
지상으로 돌아온 태호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인벤토리 창에서 꺼낸 것은 ‘태양신의 지팡이’ 였다. 그것을 쥐자, 곧.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온 사방의 풍경이 바뀌었다.
어느새 온 사방은 지옥의 화염으로 뒤덮힌 황량한 대지! 이미 한 번 본 바 있는 그 땅에, 거대한 화염의 거인이 서서 포효하고 있었다.
[이노오오오오옴!]
화르르륵! 화륵!
태호는 그의 이력을 대강 들었다. 상위 신에 준하는 힘을 가졌던 존재라고.
상위 신들조차 ‘태양신의 지팡이’를 듣자 학을 뗀 것을 보면, 그 위력을 알 만 했다.
[네놈이 감히 나를 능욕해! 오늘 너는 한 줌 잿더미로 변하리라!]
“......”
콰아아아아아!?
온 사방으로 거대한 신력이 뿜어져 나왔다. 불꽃의 지옥! 상하좌우, 지글지글 타오르는 업화가 밀려와 태호를 덮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태호는 인벤토리를 뒤적이다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바로, 조금 아까 완성시킨 정수였다.
브라만, 라의 힘이 신비력으로 인해 응축된 정수!
쏴아아아아악!
태호에게 물 밀 듯 쏟아지는 업화는, 정수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로 막혔다.
놈의 업화는 무서웠지만 이쪽은 상위 신 라의 신화력이다. 곧, 업화가 사그라들고.
경악한 화염의 거인, 수르트 의 얼굴이 한눈에 보였다.
[무... 무엇이?]
태호는 정수를 든 채 소리쳤다.
“네놈 주인이 되려고 왔다!”
[이, 이건... 라 님의 힘...! 이, 이, 인정할 수 없다!]
콰아아아아!
다시금 일어나는 거대한 불길! 불길의 파도가 맹렬히 태호에게 돌격해 온다!
하지만.
다시금 정수에서 쏟아진 불의 보호막이 태호를 머리카락 한 올조차 상하게 만들지 못 했다.
[이, 이, 이럴 리가? 라 님의 신화력이 어찌 네게...?]
‘효과 좋은걸.’
태호는 씨익 웃었다.
쏴아아아!?
치이익-?
쏴아아아아아아!?
치이익-?
불길이 죄다 틀어 막히자, 화염의 거인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는지 주춤 주춤 물러섰다. 그리고 결심했다는 듯, 이를 악물고 놈이 사방의 불을 일으킨다.
콰아아아아앗!
세상이 잿더미로 변해 버릴 것만 같은 그 불 역시, 태호의 앞에선 점점 힘 없이 사그라들 뿐!
[말도 안 돼......]
수르트의 얼굴에 절망이 들어찼다.
초반 맹렬했던 그의 기세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점점 사방의 불길도 사그라들었다.
화악, 화악, 화아악-
어느새 제법 만만해진 불길로 뒤덮힌 땅 위를 저벅 저벅 걸어, 태호는 놈의 앞에 당도했다.
집채만큼 거대했던 놈은 어느새 평범한 인간 크기로 돌아와 있었다. 온 몸에서 화르륵, 불길을 뿜어내지만 기세에서 완전히 밀린 것이 느껴졌다.
‘라의 신화력...’
그 신화력의 정수를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이 정도라니.
상위 신들이 가진 위용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일단.
눈 앞의 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주인이 되려고 왔다.”
[으... 으으...]
놈은 라의 신화력 앞에 옴짝달싹 못 하는 것 같았다. 겁에 질린 얼굴을 하길래, 정수를 휙! 내밀었다.
[힉!]
놈이 다시 물러선다.
태호는 싸늘하게 읊조렸다.
“꿇어, 새끼야.”
< 꿇어 새끼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