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슈리네의 초시계 >
구-웅!
쿠-웅!
묵직한 소리가 천계를 뒤흔든다.
[미친놈들, 아예 아작을 내 버릴 생각인가.]
로키가 투덜거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우선, 현 상황. 모든 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태호는 천천히 데칼을 자리에 눕혔다. 그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대어 본다.
쿵- 쿵- 쿵-
미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지극히 내부 깊숙한 곳, 약간의 떨림이 있다.
지-잉!
문득 그때.
태호의 귓가에 데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아이야.
‘예. 데칼 님, 무사하십니까?’
-부처를... 조심하거라... 지금... 나를 깨워선 안 된다.
‘예?’
태호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부처는 지금... 수호자의 힘을 모으고 있다... 그는... 새로운 수호자의 힘을 손에 넣어... 나를 압박해 오고 있다...
새로운 수호자의 힘?
태호의 심장이 불길하게 뛰었다.
‘그게 뭡니까?’
-무한포식(無限捕食)의 권능이다.
‘무한포식...?’
-균형의 수호자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권능을 가지고 있음이다... 그는... 무한포식의 권능을 손에 넣어... 다른 수호자의 힘들을... 죄다... 먹어 버리려는 속셈이다...
‘젠장.’
-그는 착실히 힘을 비축하였고, 얼마 전 나를 급습해 왔다. 필사적으로 그의 힘의 일부를 제한하여 내 안에 가두었지만, 오히려... 그 힘에 잠식당해 가고 있다... 네가 지금... 나를 깨운다면... 그 힘이 폭주하여... 부처에게 무릎 꿇게 될 것...
‘뭐?’
오싹!
태호는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꼈다.
‘부처의 힘이.. 그만큼 강하다 이 말씀이십니까?’
-그는... 비정상적일 만큼 철저히 힘을 숨긴 채 성장을 거듭해 왔다... 모든 것... 모든 것의 흑막이... 분명하다... 그가 좌우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직접 행한... 이중 맹약... 그리고... 완성된 혼돈의 힘뿐...!
완성된 혼돈의 힘.
그제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태호는 모든 이성을 되찾은 듯, 냉정을 되찾았다.
‘부처의 힘을 진정시키는 데 얼마나 걸리시겠습니까?’
-최소... 며칠 이상은 필요할 듯 하다.
‘최대한 빠르게 진정시켜 주십시오.’
태호가 고개를 들었다.
로키와 카실론에게 이 대화를 전하자, 카실론이 이마를 짚었다.
[미치겠군.]
이내,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데칼 님을 비밀 공간으로 모셔 가야겠다.]
“예?”
[부처 놈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백색의 시계탑은 찾지 못할 거다. 그건 아우슈리네의 권능이 만들어 낸 절대 구역이니까.]
“......!”
일리 있었다.
카실론이 태호를 보았다.
[이제 우리에게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아진 것 같군.]
[끄응...]
로키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미친놈들, 미친놈들이라고 중얼거리면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나는 아스가르드를 정리하고, 적당히 은신해 있으마. 이쪽 상황을 계속 전해 줄 테니, 너는 출발해.]
시간이 이제는 정말로 없다.
태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휴우-”
지상으로 돌아온 태호는 리얼 포스의 대지를 바라보았다. 이미 매스컴을 탈대로 탄 현 상황.
유저들은 이 상황을 또 하나의 축제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동영상을 찍고, 강해진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와 달의 빛이 머무는 중간 지점.
세계를 반으로 나누는 그 지점에서, 거대한 회색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곧.
그곳에서 길쭉한 차원 문이 만들어졌다.
차원 문은 만들어졌다가, 흩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게 혼돈의 권좌로 향하는 차원 문이다. 지금은 이중 맹약 덕분에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듯하군.”
주박에서 풀려난 로만이 말했다.
쿵- 쿵- 쿵-
심장이 뛰었다.
“정말로 들어갈 생각이냐?”
로만의 물음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태호는 혼돈의 권좌로 직접 들어갈 생각이었다.
호랑이 굴로 알아서 찾아 들어가는 미친 짓을 하려는 셈이다.
“가지.”
“......후우-”
로만은 침착한 척했지만, 어쩐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태호가 놈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농담을 던졌다.
“걱정 마. 어떻게든 될 테니까. 안 되면 죽으면 그만이지.”
“으휴... 그래, 가자.”
로만과 태호가 천천히 걸어 그 차원 문 앞에 도달했다.
로만이 양팔을 활짝 벌렸다.
“내가 가진 혼돈의 힘을 더하여, 강제로 이 차원 문을 아주 조금 개방해 볼 거다.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콰아아아아아!
혼돈의 힘이 사정없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힘은, 천천히 차원 문에 깃들어 문을 점점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큽...”
로만의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지-잉!
로만이 탈진하듯 쓰러지며, 일순간 차원 문이 진득해졌다.
“빌어먹을... 이 정도가 내... 한계다. 이대로... 1분 정도가 지속되는 게 고작이겠군.”
콰아아아아!
혼돈의 권좌로 향하는 차원 문은 섬뜩하고도 요사스러운 회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 회색 틈새로, 혼돈의 권좌가 아주 살짝 보였다.
“고생했다.”
태호는 그런 로만을 주박으로 묶은 뒤, 그 문을 바라보았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분신체 하나를 그곳으로 던졌다.
......혼돈의 권좌!
회색 아지랑이로 뒤덮인 그곳에 들어선 분신체가 그림자 하나에 냉큼 숨었다.
쿠구구궁-!
그곳은 일종의 도심이라고 보면 된다. 크기는 천계의 대도시 아도니스보다 훨씬 크지만, 건축양식은 그로테스크함 그 자체다.
우선.
기형 식물이나 말미잘처럼 보이는 건물들 사이로, 괴물들이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혼돈의 힘이 가득 깃든 마물들은 천천히 사방을 걷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있었다.
쿠-웅!
그 도심은 그야말로 대중이 없다. 일관성이 없는 도시는, 혼돈의 도가니탕일 뿐!
콰지직! 우지직!
대화를 나누던 존재들이, 거대한 발에 짓뭉개졌다.
쿠-웅!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거대한 개의 형상을 한 괴물이 도심의 거리를 걸으며, 주민들을 짓뭉개고 있었다.
우드드득!
허나.
그런 개조차 그보다 더 큰 새에게 대가리를 물어 뜯겼다. 개가 몸부림치며 하늘로 끌려 올라가고, 그 새는 그보다 더 거대한 구름 형태의 괴물에게 물어 뜯겼다.
푸드득! 푸득!
시체의 비가 내린다!
주민들은 짓뭉개진 시체들에 달려들어 물어 뜯으며 포식을 즐겼다.
‘정말 정신병 걸리기 딱 좋네...’
-보통 사람들은 이 일면만 보여 줘도 미쳐 버리지.
섬뜩한 일이었다.
그러나, 태호는 이곳에서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우선.
혼돈의 권좌의 분신체로 본신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림자 속에 숨은 채 스킬을 하나 발동했다.
‘어둠의 추적자.’
지-잉!
눈앞에 ‘혼돈의 권좌’의 월드맵이 떠오르고, 온 사방에 번쩍이는 혼돈의 힘들을 확인했다.
하나하나 확인한다.
대부분 마치 작은 점처럼 찍혀 있었다. 그런 녀석들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장군으로 취급되지도 않을 거다.
문득.
북부 저 끝자락, 거대한 혼돈의 힘 하나가 잡혔다.
크기로 치면 엄지손톱보다 더 큰 힘. 그리고 그 너머에...
‘오... 시부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혼돈의 힘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게 판타로스!’
판타로스의 힘이다.
그렇다면, 엄지손톱 크기의 적은 바로 대장군일 터. 단 하나 남은 대장군 헤파이돈이다.
그 외.
태호가 매의 눈으로 맵을 샅샅이 훑었다. 장군급 존재들이 여럿 움직이고 있었다.
팟!
장군급 둘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태호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움직였다.
* * *
쿠구궁- 구구궁-
혼돈의 권좌의 하늘이 불길하게 울었다.
장군, 미토이는 하늘을 보며 자신의 두 개 촉수를 일렁였다.
권좌가 활짝 열리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판타로스 님이 힘을 되찾는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영광의 시절이 올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는 조만간 대장군 헤파이돈, 그리고 수십의 장군들과 함께 온전히 리얼 포스의 대지에 나서게 될 것이다.
[태보.]
문득.
그는 함께 움직이던 장군 태보를 불렀다.
[......?]
태보가 없었다. 곧, 그의 시야에 기묘한 것이 잡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지천에 도달해 있는 시커먼 마법이었다.
[어... 억!]
콰지직!
그것이 머리에 작렬! 곧바로 그가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목숨줄이 끊어졌다.
그림자가 다시 움직였다.
회색 기운이 가득한, 음울한 도시를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움직여 갔다.
촥- 촤촤촥-
어느 순간.
또 다른 장군, 기간테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사방은 어둠에 뒤덮여 있었다.
우지직!
또 하나.
콰드득!
이미 거칠 것이 없다.
태호에게는 이제 수호자의 힘, 어마어마한 신비력, 어둠의 신화력이 죄다 있었으니까.
콰지직!
그렇게 숨죽인 채 장군 다섯을 사냥했다.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균형 파괴자를 처치하였습니다.]
[장군(16/25)]
[‘균형의 수호자’가 업그레이드됩니다.]
[패시브 : 균형의 수호자Ⅴ]
[설명 : 최초로 균형을 파괴하는 혼돈의 존재를 사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스킬. 일정 범위 안의 균형을 탐지합니다.]
그토록 힘겹게 상승시켰던 수호자의 등급이 일순간 쭈욱 차올랐다.
하지만, 그만큼의 패널티도 머금고 있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본진, 재수 없으면 모든 게 끝장이다.
쿵- 쿵- 쿵-
태호가 심장을 진정시키며 스킬을 확인했다.
[4차 업그레이드]
[사냥한 균형 파괴자들의 능력을 일부 흡수하였습니다. 또한, 균형의 수호자가 보유한 고유의 능력을 일부 깨달았습니다.]
4차 업그레이드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고유의 능력?
곧.
[수호자의 스킬을 선택해 주세요.]
이전에 한 번 보았던 스킬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두 가지의 스킬이 떠올라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균형의 수호자의 특수스킬]
[‘수호의 벽’]
[수호자의 사방에 절대적 방어막을 형성합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방어능력이 10배 상승하며, 1분간 지속됩니다.]
[균형의 수호자의 특수스킬]
[‘무한의 수호자’]
[수호자의 생명력과 마력이 10배 증가합니다.]
두 개의 스킬이 주어졌다.
-내 생각에는, 무한의 수호자 쪽이 유효할 듯하구나.
볼카노스가 말했다.
태호의 생각도 비슷했다. 우선, 태호에게는 이제 볼카노스의 새 권능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생명력과 마력 비례한 대미지를 주는 권능 때문이라도 무한의 수호자 쪽이 적당했다.
한쪽을 선택했다.
[무한의 수호자를 선택하였습니다.]
허나.
다음 메시지는 실망적이었다.
[‘촉수의 벽’을 획득했습니다만, 보유한 스킬 ‘어둠가시 장벽’의 하위 호환으로 습득을 보류하였습니다.]
[‘열정의 갑피’를 획득했습니다만, 보유한 스킬 ‘경이로운 갑피’의 하위 호환으로 습득을 보류하였습니다.]
[‘...’을 획득했습니다만...]
장군급들을 잡아 얻은 스킬들이 죄다 하위 호환급이라 습득 보류했다는 말이었다.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간 얻은 것들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말이었기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마지막은 바로.
[균형의 수호자의 특수스킬]
[‘아우슈리네의 초시계’]
[제한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 아우슈리네의 초시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