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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86화 (186/194)

< 거래를 하러 왔다 >

그간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허나, 이번엔 명확하게 아우슈리네가 언급됐다.

즉.

‘지금부터는 아우슈리네의 권능이 미치는 영역이다?’

그런데.

‘초시계...?’

태호가 다급히 새로 얻은 스킬을 확인해 보았다.

[균형의 수호자-아우슈리네(백색의 시계탑)]

[등급 : ???급]

[쿨타임 : ???][숙련도 : ???][소모 마력 : ???]

[스킬명 : 아우슈리네의 초시계]

[아우슈리네의 초시계를 발동시켜, 15초 전으로 시간을 되돌립니다.]

시간을 되돌린다!

15초라.

애매한 숫자 아닌가.

태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허나, 애초에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 말이 안 되는데 그것이 지금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싹!

-아우슈리네의 힘이라니...

로만이 중얼거렸다.

-시간을 거스르는 힘이라니, 정말 놀랍군.

볼카노스 역시 침음을 흘렸다.

맞다.

부처는 이런 식으로, 수호자의 힘의 고유 권능을 깨운 것이 분명했다.

부처의 무한포식이 수호자의 힘을 먹어 치우는 능력이라면, 태호의 이 힘 역시 먹어 치워질 가능성이 높다.

‘부처는 순환의 고리에서 힘을 빼낸 걸까?’

여러 의문이 물밀 듯 새어 나왔다.

그러는 한편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직이다.

아직, 혼돈의 권좌에는 장군과 대장군이 남아 있다. 그 놈들을 모조리 잡고, 두 단계를 더 상승시킬 수 있다.

우선.

놈들이 떨군 혼돈의 유산은 총 일곱 개. 태호는 그것을 죄다 챙겼다.

“이건 다 네 거다.”

-그거 정말 눈물 나게 고맙군.

로만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때.

촤아아아악!

‘어둠의 추적자’에 큼직한 혼돈의 힘이 잡혔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그 힘이, 매우 빠르게 이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웬 놈이냐!]

저 하늘에서 묵직한 그림자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게 헤파이돈이다.

로만의 말에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콰아아아아앙-!

헤파이돈이 허공에서 땅을 내리찍으며 등장했다.

메타트론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체구와 마치 뱀 같은 양팔과 머리를 가진 놈이었다. 온몸에선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듯, 안개 같은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와지지지직!

온 사방이 놈의 힘에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간 마주쳤던 그 어떤 대장군들보다 강했다.

‘어디.’

태호는 아우슈리네의 초시계를 사용했다.

째깍-

문득.

귓가에 시곗바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째깍-

째깍-

동시에.

모든 상황이 역순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헤파이돈은 땅을 찍는 모션을 역순으로 취하며 저 하늘로 다시 날아갔고, 대지는 원형으로 돌아왔다.

오싹!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전율이 일었다.

‘이런 거구나.’

태호는 새삼 이 놀라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15초의 시간이 뒤로 돌아가고, 어느새 시간이 정상적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히 미친 능력이군.

로만이 말했다.

동감이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펼쳐질 15초의 미래를 완전히 예측했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혼돈의 힘이 이곳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잠시 후.

[웬 놈이냐!]

헤파이돈이 소리치며 등장.

와지지직!

대지가 아작 난다.

그렇다면, 다시.

째깍-

째깍-

시간이 다시 되돌아갔다.

15초의 시간을 되돌리자,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다. 순수하게 정신력을 소모하는 모양이었다. 태호가 인벤토리창에서 신과를 꺼내 먹어 치우며 분신체를 늘렸다.

여덟 분신체가 만들어지고, 그들이 저마다 마법을 저장하며 15초를 숨죽인 채 기다렸다.

놈은 티 안 나게 제거해야 한다.

잠시 후.

[웬 놈이냐!]

놈이 등장할 때.

태호의 분신체 여덟이 ‘최후의 수호자’를 발동하며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엇?]

놈이 일갈을 내지르기도 전에.

강화된 어둠의 명령이 도합 15발씩 놈에게 날아들었다.

콰지지지지직!

그대로 태호의 본신이 놈의 몸을 잡고, 그림자 속으로 집어삼켰다.

콰드드드득! 우지직! 콰지직!

온 사방에서 날아드는 강화된 어둠의 명령 세례!

헤파이돈은 미처 대응하지 못한 채 그것을 아주 박 터지게 얻어맞았다.

지금 태호의 힘은 상상 초월의 수준이었다.

방금 전 새로이 얻은 수호자의 힘으로 생명력이 10배 뻥튀기돼 있었기에, 그만큼 강해진 어둠의 명령이었다.

게다가 그것의 도합 10배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최후의 수호자!

배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급격히 강해진 그 힘!

그것이 여덟 분신체를 통해 쏟아져 버리자, 아무리 헤파이돈이라고 해도 버틸 재간이 없다.

우드드득!

결국.

[크어어억!]

헤파이돈은 그림자의 영역 속에서 비참하게 얻어터질 수밖에.

[너, 너는... 대체... 누... 누구...]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헤파이돈이 쓰러졌다.

본래 이놈의 힘은, 대략 라의 사도인 마몬급을 훨씬 뛰어넘어야 했다. 불과 얼마 전이라면 충분히 고전했을 터.

허나, 이제는 태호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어찌... 호, 혼돈의 권좌에서... 이런 일이...?]

털썩!

놈은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헤파이돈을 일격에...

태호는 그 헤파이돈이 떨군 장비를 죄다 챙긴 뒤,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샥- 샤샤샥-

다시 장군급 셋이 격살당했다. 그림자를 통해 이동하며 보이는 족족 끔살이 나 버리니, 죽는다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군 하나를 추가로 패 죽인 그 순간!

화아악!

다시금 균형의 수호자의 충족 조건 클리어!

[균형 파괴자를 처치하였습니다.]

[대장군(5/5)]

[장군(20/25)]

[‘균형의 수호자’가 업그레이드됩니다.]

이제 균형의 수호자는 6단계를 향해 쾌속 전진이다.

[패시브 : 균형의 수호자Ⅵ]

[설명 : 최초로 균형을 파괴하는 혼돈의 존재를 사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스킬. 일정 범위 안의 균형을 탐지합니다.]

그리고.

[5차 업그레이드]

[‘사냥한 균형 파괴자들의 능력을 일부 흡수하였습니다. 또한, 아우슈리네의 권능이 훨씬 더 강화되었습니다.]

5차 업그레이드가 더 명확하게 현 상황을 설명해 준 셈이다.

곧, 4차 업그레이드 때와 마찬가지로 스킬 선택이 등장했다.

허나, 이번엔 두 개 중 하나의 선택이 아닌 단 하나의 스킬만이 자동 습득되었을 뿐!

바로.

[균형의 수호자의 특수스킬]

[‘수호의 벽’]

[수호자의 사방에 절대적 방어막을 형성합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방어능력이 10배 상승하며, 1분간 지속됩니다.]

그간 몇 번이고 선택을 받지 못했던 수호의 벽이다. 그리고 이어서 몇 가지의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대장군 헤파이돈, 그리고 장군급 넷을 사냥하여 얻은 능력이 어떤 것이다- 라는 메시지들.

허나.

그것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다음 수호자의 힘을 개방하기 위해선 장군 다섯이 더 필요하다.

‘어디 있지?’

막 바쁘게 움직이려던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궁-

온 세계가 진동하듯 떨려왔기 때문이다.

마치 진노하듯, 거대한 떨림이 일어나던 그 찰나.

혼돈의 권좌 전역에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누구인가... 이방인이여... 감히... 나의... 대지에... 발을 딛고... 있는가...]

그 순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충격을 받은 태호가 몸을 휘청였다.

샤-악!

어느새 그림자에서도 빠져나와졌다.

“판타로스...!”

-드, 들킨 건 아니다. 이건 권좌 전역에 외치는 것이다.

태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판타로스가 이 상황을 눈치채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양이다.

[감히... 나의 땅에... 발을 들이다니... 용서할 수... 없음이라...]

촤아아아아악-!

일순간.

온 사방에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필시... 이것은... 회귀자... 회귀자가... 혼돈의 권좌... 이 몸의 땅에... 침입하였음이... 분명...!]

-젠장!

로만이 경악했다.

“이, 이게 대체 뭐냐?”

혼돈의 권좌가 그야말로 요동치고 있었다. 온 사방이 마치 환영처럼 일그러지고 있다.

-이건... 파, 판타로스 님이 혼돈의 권좌 자체를 흡수하고 계신 거다.

“전체를?”

-애초에 이 권좌 자체가 거대한 혼돈의 힘! 판타로스 님의 창조물들이 살아가는 땅이다! 지금, 그 창조물들이 다시 태초로 돌아가는 거다!

콰아아아아아아!

말 그대로였다.

혼돈의 권좌 전역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딛고 있던 땅이고, 바다, 하늘, 그리고 거대하고 기괴하던 건물과 생명체들 모두!

회색 아지랑이로 변해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촤아아아아아악!

회색 아지랑이가 소용돌이쳤다. 모든 것은 그림을 지우는 것처럼 사라져 간다.

어느 순간.

태호가 서 있는 곳은 그림자도, 빛도, 어둠도 없는 무미건조한 회색빛 공간이었다. 마치 꿈처럼, 하지만 선명하고 분명하게 태호는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

촤아아아-

쿵-

회색 안개가 끼고,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안개 너머, 거대한 실루엣이 보였다.

판타로스는, 거대한 몸뚱이를 가진 기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63빌딩의 꼭대기에 시커멓고 흐리멍덩한 두 눈깔이 닿을 정도다. 주둥아리의 역할을 하는 양, 길고 두꺼운 촉수들이 뭉실거렸고 팔은 여덟 개였다.

온몸에서 시커먼 덩어리가 꾸역, 꾸역, 흘러내렸다. 울컥, 울컥, 거대한 혼돈의 힘이 솟구쳐 나왔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적인 힘!

판타로스!

과거 지구를 멸망시켰던 그 괴물과, 태호가 지금 조우했다.

[회귀자가... 있다는 이야긴 들었다... 그렇다는 말은... 마지막 수호자... 아우슈리네의 권능이... 사용되었다는 뜻...]

판타로스의 끓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인가...]

덜덜덜덜-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가 덜덜 떨림을 느꼈다.

그것은 그냥, 원초적인 공포였다. 힘의 가늠을 하고를 떠나, 그냥 뇌리에 각인된 공포의 기억!

상위 신들의 신화력들조차 뚫어 버리는 수호자의 힘을 가졌지만, 이상할 정도로 판타로스를 보자마자 공포가 깃들었다.

어쩌면 좋을까?

이대로 포기할까?

엉엉 울어 버릴까?

하긴, 이대로 포기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솔직히 할 만큼 했고, 죽어도 여한은 없다.

그리고-

-정신 차려라, 카이저.

......!

문득 태호는 정신을 차렸다. 판타로스와 조우한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이고 절망적이었던 생각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힘들겠지만, 버텨라.

볼카노스의 목소리가 구원이었다. 태호는 벌컥이는 심장을 진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놈을 직시해라. 싸워야 할 적이며, 모든 것의 원흉이자, 이용해야 할 도구이다.

태호가 판타로스를 직시했다.

마음이 점점 더 편해졌다. 볼카노스의 목소리에는 마력이 있어, 나태해지는 정신을 다잡아 주는 것이다.

태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판타로스!”

[나약한... 인간이... 회귀라는... 축복만으로... 여기까지... 왔는가...]

판타로스가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호는 어쩐지 여유를 되찾았다.

비참하게 놈에게 전멸했던 전생은 이제 없다. 이번 생에서 지구는 온전할 것이다.

동료였던 이들은, 다시 평화로운 세계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끝난 후, 태호는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판타로스.

나는 이제 더 이상 네가 두렵지 않다.

태호가 외쳤다.

“판타로스! 거래를 하러 왔다!”

< 거래를 하러 왔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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