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전설-187화 (187/194)

< 엿이나 먹어라 >

[거래...]

판타로스가 이상한 단어를 들은 것처럼 그 단어를 곱씹었다.

[거래란 말인가... 크흐흐... 거래를... 하러... 왔다고...?]

태호는 가슴을 쭉 폈다. 그리고 다시 외쳤다.

“그렇다! 그리고 네 말은 틀렸다!”

[틀렸다...? 무엇이 말인가...]

콰아아아아-!

사방에 퍼진 혼돈의 힘이 태호를 겨냥하듯 공격 태세로 변환되었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적의가 느껴졌다.

“마지막 수호자는 아우슈리네 님이 아니다! 그리고... 천계에 수호자의 힘을 새로이 보유한 존재가 등장했다!”

[새로이... 보유하다...]

촤아악!

공격 태세가 금세 사라졌다.

[재미있군...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 더 해 보아라...]

“너는 부처를 믿는가?”

[누구도... 믿지 않는다...]

“부처는 지금 독자적인 수호자의 힘을 개방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상위 신들과 대사제 데칼 님을 압박하고 있다!”

[......]

판타로스가 말이 없다.

“특별히 놈의 목적을 알려 주마! 놈은 데칼 님의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이중 맹약을 대폭 강화할 거다! 놈의 목적대로 이중 맹약이 강해지면, 문지기들이 문 열지도 못 할 거다.”

[건방지군...]

판타로스가 섬뜩하게 읊조렸다. 허나, 일단 대화의 장은 열린 셈이었다.

태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럼 너는 미완성의 혼돈의 힘으로 부처와 대적해야 한다. 처음에는 비등하겠지만, 결국 대패가 예견돼 있다!”

[큭...크크큭.. 하찮은... 인간이여... 네... 시도는 좋았다... 허나... 거기까지다...]

쿠구궁-

판타로스의 팔이 하늘을 가리켰다.

촤아악-!

사방에 즐비한 혼돈의 힘들이 놈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쩌저저저저저적!

공간이 깨져 나가는 것 같은 소리! 심장이 덜컥이는 그 소리에 태호가 사방을 돌아보았다.

‘깨지고 있다.’

이 공간이 깨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이날을... 기다려 왔지... 네 세치 혀에... 휘둘릴 줄... 아느냐... 부처라면... 이미... 상위 신이라는 작자들과... 협의가... 끝난 바... 조금 미완의 힘이라도... 합공으로... 놈을 상대하는 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

짜자작!

어느새 공간이 완전히 산산조각 나 조각이 부서져 내리며, 사방이 훤해졌다. 리얼 포스의 대지가 나타났다.

-혼돈의 권좌를 나섰다...

로만이 말했다.

판타로스는 그대로 리얼포스의 대지에 섰다.

[이제... 혼돈이... 강림할... 시간이다... 네놈은... 천천히 요리해 주마...]

촤아아아아악-!

판타로스의 사방으로 혼돈의 힘이 솟구쳤다. 판타로스를 본 유저들이 경악했다.

-저게 뭐야?

-머리 아파!

-크아악!

유저들은 판타로스의 모습을 보자마자 저마다의 반응을 보였다.

* * *

[속보! 리얼 포스, 괴생명체 출현!]

[대다수의 유저 ‘두통, 발열, 구토’ 증세!]

TV 속보가 떴다.

뉴스에, 리얼 포스에 강림한 판타로스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태호는 그것을 보며 이를 앙다물었다. 아직 이중 맹약이 유지되고 있었고, 놈이 현실로 강림하지 못했다.

즉.

아직 판타로스가 설 수 있는 자리는 리얼 포스 속 세계로 한정돼 있었다.

[오라... 심연이여... 공포에 순응하라...]

촤아아악-

판타로스의 혼돈의 힘이 삽시간에 파죽지세로 뻗어져 나갔다. 온 사방이 그야말로 혼돈에 뒤덮였다.

-어어? 어어어!

유저들의 생명력이 급속도로 빨려 나갔다. 저레벨은 단 몇 초 만에, 고레벨은 몇 분가량을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기저기서 유저들이 죽어 나갔다.

‘젠장.’

쉬폰은 달렸다.

그는 저 괴생명체의 정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게 혼돈의 주인, 판타로스!’

그의 생명력이 간당간당했다. 혼돈의 힘이 몸속으로 파고들어, 급속도로 모든 것을 갉아먹어 가고 있었다.

문득.

그 거대한 존재에게 맞서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가 그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언노운...!’

언노운이었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에 그가 선명히 남았다.

‘넌 대체 어디쯤 있는 거냐.’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역부족’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이 리얼 포스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언노운을 넘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씩 웃었다.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쉬폰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대도시 노펜시아, 라이언, 안타라스 슬램. 본대륙을 뒤덮은 혼돈의 힘이 모든 유저들을 말살했다. 그야말로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크으... 크크크...]

그 생명력들이 모조리 판타로스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힘이 대폭 강력해졌다. 놈의 혼돈의 힘이 대폭 상승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때.

쩌저저적-!

리얼 포스의 하늘이 갈라졌다. 이중 맹약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일순간 그 맹약이 무효화된 듯 완전히 사라지고 그 사이로 육중한 형체들이 저마다 추락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콰과과과광!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불꽃의 새가 추락하여 바다에 처박혔다.

치이이이이이이익-!

온 바다에서 수증기가 일며, 빠르게 바닷물이 사라져 갔다. 잠시 후, 바다가 바닥을 드러냈다.

상위 신, 라다.

콰아아아-

저 하늘을 수놓으며 처박히는 것은 브라만이었다. 브라만이 추락하는 자리를 따라 무수히 많은 별자리가 만들어졌다 사라졌다.

우지직!

둠 제네울의 반파된 육신이 본대륙의 노펜시아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듯 버섯구름이 피어나고, 사방으로 먼지가 퍼졌다.

마지막은 아후라였다.

콰콰콰쾅! 콰지직! 콰직!

아후라는 지상에서 추락하며 자신의 강철 날개를 활짝 펴, 필사적으로 맞서고 있었다.

‘맙소사!’

그가 맞서고 있는 것은 거대한 섬보다 훨씬 더 큰 황금빛 손바닥이었다.

인간이 벌레를 손바닥으로 누르듯, 대기권을 뚫고 불꽃이 일며 아후라를 짓뭉개고 있었다.

콰지지직!

결국 아후라가 지상에 처박혔다.

그리고 그 위로 나타난 것은 황금빛 부처의 모습이었다. 영롱하게 빛나며 온 사방을 비출 것 같은 그 모습이, 솔직히 경외심까지 들 지경이었다.

판타로스가 혼돈의 힘을 한껏 끌어냈다.

[예상대로 되는 것이 없군요...]

부처의 목소리가 온 사방에 울렸다. 그의 선하고 맑은 목소리는 어쩐지 송곳처럼 심장을 찔러 왔다. 온몸이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려, 태호가 이를 악물었다.

[...부처... 네놈이... 시커먼... 속을... 드러낼 줄... 알고 있었다...]

판타로스가 주춤하다가, 이내 양팔을 활짝 펼쳤다.

촤아아악-!

온 사방에서 만들어진 촉수가 부처에게 쇄도했다.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일격 필살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담고 있었다.

파파팡!

허나.

부처의 등 뒤에서 만들어진 수십 수백 개의 황금색 팔들이 나타나 그것을 간단히 막아내 버렸다.

[판타로스! 서, 섣불리 덤비지 마라! 놈은 지금... 수, 수호자의 힘을 손에 넣었다! 우,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하다!]

라가 외쳤다.

[......!]

그 사이, 브라만과 둠 제네울 그리고 아후라가 몸을 추스르며 일어섰다.

대륙은 이미 난장판이 되었다. 유저가 가꾼 본대륙은 이미 온데간데 없고, 초토화된 전장만이 펼쳐져 있을 뿐!

[부처!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다!]

아후라가 소리치며 자신의 두 개 신화력을 동시에 풀 개방했다.

콰아아아아!

[여기서 네 야욕을 꺾어 주마...!]

브라만의 신화력도. 그리고 둠 제네울과 라의 신화력까지 온전히 개방되었다.

이제 천계에서 보던 모든 것이 멸망하는 싸움이, 본대륙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크으...]

판타로스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상보다 부처가 더욱 강했던 것이다.

그 역시 혼돈의 힘을 모조리 다 개방한 채 부처에게 맞섰다.

[이런 이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니... 별 수 없군요.]

부처의 아쉽다는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황금빛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비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하나가 황금빛 손바닥! 그것도 부처의 신화력이 가득 담긴 거대한 광범위 공격이었다.

콰지지지직!

상위 신 넷, 그리고 판타로스의 힘이 지상과 하늘의 경계에서 격돌했다.

구우웅-

의외로 그 힘들이 격돌하는 지점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적막 속의, 소리 없는 공포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저 조용한 힘겨루기가 이어질 뿐.

태호는 그 태산처럼 거대한 존재들의 격돌을 목도하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부처의 힘이 지상으로 점점 더 내려오고 있었다.

촤아악-!

금빛 손바닥 수백 개가 판타로스에게 쇄도해 왔다. 판타로스는 자신의 촉수들을 뿜어내 그것을 틀어막았다. 이내, 이를 갈았다.

빠바바바박!

끔찍한 소리와 함께 판타로스의 전신이 사정없이 난도질당했다.

[크으으...!]

일순간.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물밀 듯 하강하는 부처의 힘이 네 명의 상위 신을 타격했다.

콰지지직!

엄청난 소리와 함께 네 신들이 동시에 나뒹굴었다. 쿠구구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다가 증발한 땅에 사정없이 나뒹굴고, 거대한 산이고 들판이고 남김없이 아작이 났다.

콰콰콰콰쾃!

부처가 판타로스에게 손을 썼다. 날아드는 부처의 공격은 하나 하나가 일개 도시를 박살 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판타로스가 지지 않고 응수했다. 파파팍, 파파팍, 끔찍한 소리가 오가며 수천 합을 겨루었다.

콰드드득!

허나 판타로스가 힘에서 밀렸다.

[......!]

판타로스는 그제야 깨달은 듯 하다. 미완성의 혼돈의 힘으로는 부처 앞에서 한낱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 하... 다...]

촤아아아악!

온 사방에 혼돈의 힘이 강림하고, 판타로스의 몸이 그 안에 파묻혔다. 점점 사라져 가는 그 차원 문으로 부처가 공격을 가하니, 정신을 차린 브라만과 둠 제네울의 일격이 날아들었다.

[어림없다아아아!]

[받아라!]

콰지지직!

주춤!

부처의 공세가 일순 주춤한 그 순간. 판타로스의 혼돈의 힘이 더욱 자욱해졌다. 차원 문이 열리며, 놈이 사라져 갔다.

샤아악-

판타로스가 사라지기 일보 직전.

태호는 그 공간을 향해 보구를 사용했다.

‘진공가향의 길.’

촤악-!

진공가향의 길이 만들어지며 사라지기 직전의 공간을 갈랐다. 그대로 그 안으로 안착한 태호는 완전히 독립된 공간으로 바뀐 이 세계를 보았다.

마치 작은 혼돈의 권좌와도 같은 곳이었다.

[크... 크으...]

판타로스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 놈에게 태호가 외쳤다.

“이제 거래할 마음이 생겼나?”

[거래...]

판타로스는 천천히 태호에게 물었다.

[무엇을... 바치겠느냐...]

태호가 외쳤다.

“나는 네가 온전한 힘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다!”

[온전한... 힘... 그렇다면... 무엇을... 바라지...]

“네가 흡수한 다섯 장군을 원한다! 그들의 목숨을!”

[흥미롭군... 거절한다면... 어쩔 생각인가...?]

태호의 두 눈이 싸늘해졌다.

“그럼 다 같이 그냥 뒈져 버려라.”

[......]

“싫으면 그냥 그렇게 뒈지란 말이다. 어차피 네놈이 나의 현실로 가 개판을 치나, 부처가 이기나 내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다! 뭔가 대단한 권한을 가졌다고 착각하나 본데, 이건 내가 네놈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뭐라...?]

“네놈이 싫다고 하면, 나는 이대로 부처에게 가서 내 힘을 헌납할 거다!”

[뭣이...?]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세계, 내 목숨, 그리고 동료들의 생존을 요구할 거다! 어차피 네놈 새끼 마음에 들지도 않았으니, 이대로 됐다! 싫으면 이만 꺼져라, 그리고 엿이나 먹어라, 새끼야!”

잠깐.

태호는 잠시 생각하다 시간을 돌렸다.

째깍째깍-

“...엿이나 먹어라-”

1초 전으로 돌아간 태호가 덧붙였다.

“개새끼야.”

그리고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판타로스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 시발 미친놈...

로만이 절망하는 목소리.

-......

침묵을 지키는 볼카노스.

그리고 숨죽인 채 대답을 기다리는 태호에게, 판타로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돌한... 인간이군... 좋다... 거래는... 이루어졌다...]

< 엿이나 먹어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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