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된다 이거지? >
꿀꺽!
태호는 그제야 마른침을 삼켰다. 빌어먹을 도박이 통했다.
‘야.’
-그, 그, 그래.
로만이 대답했다.
‘저놈 힘을 어떻게 회복시키지?’
-네놈의 힘으로... 충전시켜야지.
얼떨떨한 목소리였다.
우선, 태호는 판타로스에게 외쳤다.
“다섯 장군을 내놔라!”
[......]
판타로스는 잠시 망설이는 듯 했으나, 이내 군말 없이 혼돈의 힘을 뿜어냈다.
쏴아아-!
태호의 눈 앞에 다섯 장군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었다.
태호가 망설임 없이 놈들에게 강화된 어둠의 명령을 쏟아냈다.
콰드드드득!
다섯 장군이 영문도 모른 채 쓰러지고. 태호는 자신의 눈 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균형 파괴자를 처치하였습니다.]
[대장군(5/5)]
[장군(25/25)]
[‘균형의 수호자’가 업그레이드 됩니다.]
드디어.
대장군 다섯, 그리고 장군 25을 모조리 다 처치했다.
기존 6단계였던 균형의 수호자는, 이제 7단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쿵- 쿵- 쿵- 쿵-
[패시브 : 균형의 수호자Ⅶ]
[설명 : 최초로 균형을 파괴하는 혼돈의 존재를 사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스킬. 일정 범위 안의 균형을 탐지합니다.]
7단계!
그리고.
[6차 업그레이드]
[‘사냥한 균형 파괴자들의 능력을 일부 흡수하였습니다. 또한, 아우슈리네의 권능이 훨씬 더 강화되었습니다.]
화아아악!
어느 순간.
태호의 온 사방이 하얗게 변했다.
“......!”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계, 그리고 어느 순간 태호는 순백의 공간에 홀로 서 있었다.
째깍-
그 곳에서의 태호는 오로지 혼자였다. 볼카노스도, 로만도 없다. 순수한 세상에 들려오는 것은 시곗바늘 소리 뿐.
째깍-
째깍-
어느새.
태호는 녹색 벌판 위에 서 있었다. 그 곳에는 하얀 시계탑 하나가 오도카니 서 있었는데, 좌우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없었다.
기묘할 정도로 상쾌하고 고요한 바람이 불어, 태호는 천천히 시계탑으로 걸어갔다.
째깍-
째깍-
째깍-
이 시계탑은 과거 판타로스에게 초토화되었던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던 것과 거의 흡사했다.
태호는 그 시계탑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두 눈에 환영이 보이는 것 같았다.
순백의 여성이 보인다.
그녀는 시계탑이 있던 자리에 서서, 과거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작은 마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 그리고 소담스러운 담장과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렇다.
시계탑은 저마다 그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태호는 가만히 서서, 그녀의 기억 중 하나를 그대로 지켜보았다.
어쩌면 그녀 역시 평범하게 살아가던 존재였을 지도.
다시 눈을 뜨자, 태호의 사방이 빙글빙글 돌며 회색 공간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수호자의 힘이 솟구칩니다.]
메시지가 이어졌다.
콰아아아아아-!
온 몸에서 신비력이 들끓었다. 그간은 단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힘이, 온 몸에 넘실거렸다.
[신비력의 힘이 더 이상 강화될 수 없습니다.]
신비력 보유량이 족히 다섯 배는 늘어났다. 그 뿐 아니라, 고도로 농축된 것 같은 정순한 힘이 되었다.
그 힘이란 지극히 황홀한 수준으로서, 태호는 태어나서 그런 힘을 느껴 본 적 조차 없었다.
샤아아악-!
[균형의 수호자의 최종 단계에 도달하였습니다.]
[당신의 소속이 변경됩니다.]
[이름 : 카이저]
[등급 : 측정불가]
[소속 : 수호 일족.]
태호는 살짝 눈을 감았다가 떴다. 두 눈이 광채로 빛나고, 온 몸에 환한 빛이 스며들었다가 사라졌다.
판타로스가 침음을 흘렸다.
[수호 일족... 온전한... 일족의 힘... 네게... 존재하는가...]
태호는 그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시작하자.”
* * *
태호의 분신체들이 늘어났다.
여덟 분신체, 그리고 본체까지 총 아홉이 판타로스를 보았다.
콰아아아-!
태호의 신비력이 판타로스에게 스며들었다. 판타로스는 그 힘을 받아들였다.
쭈우우욱-!
마치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판타로스의 몸 속으로 신비력이 요동치며 들어간다. 태호는 살짝 눈을 감은 채 그 안에 속해있는 ‘혼돈의 힘’ 만을 솎아냈다.
‘놀랍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현재 태호의 신비력에는 여러 힘들이 깃들어 있다. 마력, 비전력, 신력, 어둠의 신화력, 영력, 법력, 혼돈의 힘 등이 죄다 섞여 있는 셈이었다.
헌데 수호자의 힘 마지막 단계를 깨닫게 되고, 그 많은 힘들 중 혼돈의 힘만 골라서 판타로스에게 주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세계가 조금 더 다르게 보였다.
평범하게 보면 평범한 세계이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구성물질과 존재하는 힘의 세부 속성까지 모두 다 알수 있었다.
콰아아아아-!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며, 판타로스에게 힘을 주입하자 점점 놈의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꿀꺽!
자신이 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미친 짓이라고 할 일이다. 판타로스가 가진 혼돈의 힘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도, 보통 사람은 미쳐 버릴 거다.
태호의 신비력이 그야말로 전에 없는 고농축의 정순함을 가졌다면, 놈의 혼돈의 힘 역시 마찬가지다.
판타로스의 혼돈의 힘은 다른 혼돈의 힘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럴 수 밖에...
로만이 투덜거렸다.
-판타로스 님은 사실상 혼돈의 권좌를 직접 만드시고, 그 모든 존재를 창조하신 창조신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렇다.
다른 상위 신들이 저마다의 차원을 지배하는 창조신이듯, 판타로스 역시 그런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
소름끼칠 정도로 판타로스의 힘이 차오른다.
[네... 힘은... 특이하군...]
이내.
판타로스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어찌... 네가... 나와 같은... 정순한... 혼돈의 힘을... 보유하고 있는 거지...]
그의 말에 태호는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콰아아아아!
그러는 한편으로도 계속해서 힘이 주입된다. 넣어도 넣어도 끝이 없는 충전작업이 끝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족히 지날 무렵의 일이었다.
[하아아...!]
판타로스는 태호의 마지막 힘까지 쪽 빨아먹은 뒤 몸을 한껏 일으켰다.
쿠 구구궁-
[아주... 유용한... 놈이군... 이건... 전성기의 힘...]
판타로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이내, 킬킬거리며 웃었다.
[재미있군... 너는...]
쩌적- 저저적-
사방의 결계가 깨어져 간다. 판타로스가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결계를 깬 것이다.
와지지직!
어느 순간.
사방의 결계가 깨어져 유리조각처럼 흩어져 내리고, 다시 지옥의 한 장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콰지직- 우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압!]
화아악! 우지지직!
부처와 네명의 상위 신들이 치열하게 격돌! 현격하게 밀리지만, 상위 신들의 필사적인 저항이 최후저지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쿠구궁-
판타로스는 그런 이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온 사방에 섬뜩한 혼돈의 힘이 사이하게 퍼져갔다.
[파, 판타로스! 부처를 막아라! 이대론 끝장이다!]
판타로스는 군말 없이 자신의 혼돈의 힘을 모조리 개방해 수천 수만 개의 촉수를 뿜어냈다.
촤라라라락-!
콰콰콰콰콱!
하늘에서 쏟아지는 부처의 황금 손바닥들이 판타로스의 촉수들과 맞부딪혔다.
스엉 스엉 스엉-!
그러자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두 힘이 마주칠 때 마다 서로의 힘이 흡수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 거다.
충격음도, 거대한 폭음도, 어마어마한 소리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서로가 서로의 힘을 흡수하는 것 뿐!
첫 번째 대결은 부처의 승이었다.
수천개의 황금 손바닥들이 촉수들을 흡수하더니,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이건... 재미있군요 판타로스. 힘을 온전히 회복한 건가요?]
부처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평온하였으나, 그 안에 가득 서린 것은 냉랭함이었다.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되었다.
수천개의 손바닥, 그리고 수천 수만개의 촉수가 다시 격돌!
촤아아악-!
이번엔 판타로스의 승리였다. 판타로스의 힘이 부처의 힘을 죄다 흡수한 뒤 흩어졌다.
세 번째 대결!
네 번째 대결!
수십 합을 겨루던 그 와중.
쩍-
태호는 그 소리를 들었다. 하늘을 본다.
‘이중맹약이...!’
이중맹약이 이제 깨어져 가고 있었다.
쩌저적-
거대한 금이 가고, 하늘은 수천 수만 갈래로 쪼개져 간다.
쿵- 쿵- 쿵- 쿵-
어느 순간.
와장창!
하늘의 이중맹약이 완전히 깨어져, 기능을 상실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온 사방이 요동쳤다. 저 하늘 높이, 거대한 세계들이 보였다.
정확히는 저 멀리서부터, 마치 운석이 떨어지듯 가까워지는 행성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그저 별처럼.
그 다음에는 달 정도의 크기로.
그 다음에는 하늘의 일부를 뒤덮을 정도로!
하늘을 올려다 보면, 그 세계가 보였다.
천계!
천계가 리얼포스의 대지와 한없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인가?
저 편.
정령계로 보이는 행성 역시 하늘의 절반을 차지하고, 천천히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다.
‘이중 맹약이 깨진다는 건 이런 거구나!’
세계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것!
오싹! 오싹!
천계 쪽에서 무수히 많은 황금빛 신들이 이 곳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기분이 좋군요.]
부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주 훌륭합니다. 계획대로에요.]
태호가 섬뜩함을 느꼈다.
‘계획대로라고? 뭐가?’
이내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제 여러분과는 볼 일이 끝났습니다. 지금부터는 전력으로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부처의 목소리에 네 명 상위 신들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콰콰콰쾃!
그때 부처의 신화력이 태양신 라에게 쏟아졌다. 아차 한 순간, 부처의 힘이 라의 몸을 강타했다.
콰콰콰콰콱!
우지지지지직!
섬뜩한 소리와 함께 라의 몸이 짓뭉개졌다. 부처가 오른손을 까닥이자, 황금빛 수천 개의 팔들이 라의 몸을 가볍게 비틀어 버렸다.
우지지직!
[캬아아아악!]
그대로 라가 비명을 지르며 온 사방으로 불꽃을 토해냈다.
허나.
소용없다.
라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말도 안 돼!’
태호가 비명을 질렀다.
[키야아아아악!]
라가 연신 비명을 지르며 저항해 보려 애썼지만, 소용 없다.
잠시 후, 라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놈의 거대한 심장이 허공에 붕떠올랐다.
촤아악-!
그것이 부처에게 흡수되었다. 잠시 눈을 감은 부처가 두 눈을 뜨자.
화르르르륵-!
그의 사방에 라의 불꽃이 강림했다.
[장기(將棋)는 끝났습니다. 장기말들은 이제 죽을 시간이겠지요.]
콰드득!
멍하니 있던 브라만이 다음 타겟이었다. 판타로스가 혼돈의 힘을 필사적으로 뿜어내 공격을 막아 보려 했으나, 부처를 틀어 막지 못 했다.
[컥?]
브라만이 당했다.
브라만의 심장부에 꽂힌 황금빛 팔 하나가 그대로 심장을 뜯어냈다.
우드드득!
[크아아아악!]
브라만이 피를 토했다. 그의 피가 쏟아지는 자리들이 오색 천연의 별자리로 수놓이다가, 점점 빛을 잃어갔다.
샤아악-
브라만의 심장 역시 부처에게 흡수되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부처의 전신에 라의 화염, 그리고 브라만의 우주가 강림했다.
[......크르르...!]
판타로스가 끓는 소리를 냈다.
상황은 최악!
부처는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두 상위 신의 힘을 그대로 먹어 치워 버렸다!
승산은 없다!
그러니까...
태호는 이를 빠득, 갈았다.
‘이렇게 된다 이거지?’
잘 알았다.
째깍-
째깍-
째깍-
동시에 태호의 시간이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 이렇게 된다 이거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