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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91화 (191/194)

< 최종장 >

쏴아아아악!

그 순간.

부처와 판타로스의 신형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당했군...]

판타로스의 황당한 목소리와 함께 문득 정신이 아득해진다.

‘젠장!’

태호가 필사적으로 저항해 보려 했으나, 의지가 멀어지고 있었다.

-정신 차려라 시팔놈아! 부처의 의지가 몸으로 깃들고 있다! 이건 순전히 의지의 싸움이다!

로만이 날카롭게 외쳤다.

이건 마치 볼카노스가 태호의 몸을 잠깐 차지하던 그 순간의 감각과도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볼카노스는 정중하고 조심스러웠으나 이 감각은 지나칠 정도로 패도적이라는 것!

촤아아악!

태호의 전신 감각이 빠르게 사라져 갔다. 손끝, 발끝의 통제권이 사라졌다.

깜빡-

시야가 사라졌다. 왼쪽 시야가 사라지고, 오른쪽 시야도 점점 더 흐릿해져 갔다.

-정신 차려라 카이저!

볼카노스가 외쳤다.

-빌어먹을, 저항해! 안 하면 우리 모두 끝장이야!

머릿속에서는 상반된 목소리도 들려왔다.

-여기까지 하시면 됐습니다. 안심하셔도 좋아요, 당신의 차원도... 당신의 동료들도 안전을 보장해 드리죠. 당신의 힘이 얼마나 강하든, 그것은 수호자의 힘이 움직일 때의 이야기... 고작 인간인 당신의 의지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인간계 최고라 불릴 만 합니다. 제 의념을 막아내다니... 훌륭합니다.

자애로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부처였다. 태호는 그 목소리에 홀린 듯 집중했다.

-카이저 안 된...

-야 이 개새ㄲ...

볼카노스와 로만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사라져 가고, 부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만들어 갈 진공가향의 세계는 모두가 평등하며, 하나의 이상을 추구하는 평온한 세계가 될 겁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당신의 희생으로 모든 차원이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구제받는다?

누구로부터?

태호는 문득 의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하나의 이상을 추구한다고?’

그건 정상적인 세상이 아니었다. 태호는 두 눈을 부릅떴다. 게다가, 중요한 요소 하나가 빠졌다.

‘그 세계에 나는 없잖아. 그리고 그거, 정상적인 세상도 아니잖아!’

쿵- 쿵- 쿵-

심장이 요동쳤다.

세상을 구하는거? 좋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계로 돌아가는거? 그 역시 좋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렇게 돌아온 세상에 살아가는 자신, 천태호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 모두를 희생시켜도 좋다는 건 아니지만, 목숨 걸고 지키고자 하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은 욕구도 존재했다.

당연하잖아!

그 누구도 죽고 싶어하지 않잖아!

나는 그냥, 내가 살아가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태호가 두 눈을 부릅떴다.

콰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신비력이 폭발력 있게 쏟아져 나왔다. 태호의 이성이 점점 더 또렷해져 갔다.

-......! 어찌 한낱 인간이 이토록 대단한 의지를...?

‘닥쳐라, 이 몸은 내 거다.’

태호가 애를 썼다.

-허나... 당신은 이기적이군요. 당신만 희생한다면, 모두가 평화로움을 영위할 수 있을 텐데요?

부처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득-

태호는 이를 갈았다.

‘닥쳐.’

콰아아아아!

신비력이 점점 더 태호의 자아를 감싸안는 느낌이 들었다. 요동치는 신비력은 부처의 신체 장악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두-웅!

허나.

[후후후... 이러나 저러나, 소용 없습니다. 이미 늦었는걸요.]

공간이 웅웅 떨리며, 부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잉!

태호의 시야가 돌아왔다. 모든 감각도 돌아왔으나, 신체의 느낌이 이상했다.

‘젠장!’

그렇다.

지금의 태호는 그저 몸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을 뿐, 의지를 수행할 수가 없었다.

스윽-

움직이고 싶지 않은데, 저절로 움직인다. 그렇다, 신체의 대부분을 부처에게 빼앗겨 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부처의 몸 속에 신묘한 기운이 들끓고 있었다.

그것은 고대하던 최후의 수호자의 힘, 아우슈리네의 힘이다.

균형의 수호자!

그 베일에 뒤덮힌 존재들에 대해 탐구하던 부처는, 순환의 고리라는 거대한 유형물질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순환의 고리에 접근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도 신비로운 일.

그는 상위 신들이 리얼포스의 세계를 개조하기 위해 수호자들을 잡아들일 때, 몰래 한 수호자의 힘을 흡수했다. 바로, 무한포식의 권능이었다.

그 권능을 손에 넣자, 순환의 고리에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용이해졌다.

이질감을 느낀 그는 계속해서 순환의 고리를 탐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순환의고리, 그 본질!’

그 본질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순환의 고리는 시간을 다루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고, 수호자의 힘에도 등급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것이다.

무한포식의 권능은, 천계의 힘으로 치면 신력 정도의 힘이다.

허나, 수호자의 힘 중에서도 최상위에 군림하는 압도적인 등급의 힘이 존재한다.

바로, 시간을 자유자재로 돌리는 ‘미지의 힘’ 이었다.

부처는 그 힘에 대해 탐구했다. 그리고, 최후의 수호자로 알려진 아우슈리네의 존재를 밝혀냈다.

밝혀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그녀를 찾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아우슈리네의 힘은 대사제 데칼이 최후까지 숨기고 싶어했던, 순환의 고리 그 자체의 기원에 해당하는 힘이었다.

때문에, 데칼의 막대한 힘이 그녀의 위치를 숨기고 있었다.

부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이 보유한 무한포식의 권능을 강화시켰다. 수천 년, 족히 만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리고, 어느 순간.

아우슈리네의 힘이 발현되었다는 것을 느낀 그 때였다. 묘한 기시감과, 시간의 흐름이 불규칙해졌고 운명의 흐름이 뒤틀린 것을 느낀 그 때.

부처는 깨달았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그리고 유독 특이한 성장세를 보이는 유저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상위 신들에게 철저히 자신의 힘을 숨겼고, 지상의 일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의 힘은 엄밀히 따지면 수호자의 힘이었기에, 이중맹약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 상태로 새로이 ‘아우슈리네의 힘’을 이어받은 ‘유저’ 에게 여러 기연을 제공해 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감금되어 있던 볼카노스를 슬쩍 풀어주고, 그가 어둠의 신화력을 얻도록 은밀한 도움을 주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대사제 데칼’을 천옥 속에서 천천히 약화시켜 나갔다. 그의 조력자로 접근하여, 그의 힘을 조금씩 약화시킨 것이다.

데칼이 충분히 약화될 무렵, 그를 공략하여 자신의 힘을 심어 두었다.

유저는 수호자의 힘을 바탕으로 급성장을 이루어 갔다. 회귀자란 것을 제대로 이용하는 유저였다.

부처는 유저가 더욱 성장하도록 길을 터 주었다. 또한, 상위 신들을 공략할 수 있도록 천계를 흔들어 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것!

그것은 순전히, 유저가 가진 수호자의 힘 때문이었다.

수호자의 힘 중에서도 최고등급의 힘.

아우슈리네의 권능!

그 힘은 희생을 바탕으로 전이될 뿐이다.

무한포식의 권능으로는 흡수할 수 없는 고등의 힘이었기에,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아우슈리네의 권능은 기본적으로 다른 수호자의 힘들에 있는 속성을 전부 다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무한포식의 ‘포식’ 역시 마찬가지.

아우슈리네의 권능에도 ‘포식’ 과 비슷한 속성의 성질이 있었다. 그녀의 힘은 무한포식이 가진 ‘모든 힘을 흡수함’도 갖추고 있었기에 완벽한 상위 호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다. 그럼...

유저를 키운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몸을 차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선의 방법!

판타로스를 온전한 힘으로 깨우게 유도하고, 마침내 판타로스와 조우한 부처는 자신의 수호자의 힘을 온전히 개방했다.

수호자의 힘이 완벽히 개방되어, 완벽한 혼돈의 힘과 전력으로 마주친다면?

일시적으로, 순환의 고리나 다름없는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챘다.

작지만, 원리는 똑같다.

결국, 부처는 그 공간에서 판타로스와 함께 자신의 모든 힘을 개방하여 판타로스와 자멸하는 것을 선택했다.

순환의 고리 속에서는 모든 존재들이 일시적으로 무(無)의 존재가 돼 버린다.

그리고 그 곳에 충만한 자신의 의지를, 카이저라는 유저에게 쏟아 넣었다.

...부처는 두 눈을 떴다.

새로운 신체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신의 육체에 비해도 전혀 손색없는 완벽한 신체이며, 더욱 만족스러운 것은...

‘이 힘!’

그 신체에 깃든, 수호자의 힘이었다.

“후후...”

그가 웃음을 머금었다.

“후후후... 후후후후! 마침내... 마침내인가...!”

전신에 넘치는 힘!

아우슈리네의 권능, 그 극상의 수호자의 힘이 흡수한 무수히 많은 힘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 힘!

물론 절대적인 수치로는 부처 본신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했지만, 상관 없다. 그 본신의 힘으로는 한계치가 명확했다.

이제, 오랜 숙원을 해결할 시간이었던 것이다.

샤아악-

일순간 무(無)로 돌아갔던 육체에 온전히 힘이 돌아오고, 부처는 작은 순환의 고리를 빠져나왔다.

싸아아아아아-

모든 것이 초토화된 본대륙의 대지!

그 대지 앞에 선 부처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채 웃었다.

“후후후... 아하하하하하!”

우르릉- 콰콰쾅!

번쩍!

천둥 번개가 치며 세상이 어둠게 물들었다.

그리고, 천계를 통해 지상에 강림한 금빛 신들의 군단이 부처를 향해 동시에 머리를 조아렸다.

콰콰콰쾅! 우르릉 쾅!

“아하하하하!”

허나,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

아우슈리네는 자신의 권능의 대부분을 이 카이저라는 유저에게 전달했다.

허나, 그녀의 본체는 비밀스러운 곳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녀의 육신까지 먹어 치워야 비로소 완벽한 아우슈리네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는 인벤토리 창을 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주박에 당해 있던 관음보살을 꺼냈다.

샤아악-

신비력이 운용되며 관음보살의 주박이 해제되었다.

[오오...! 드디어... 그 날이 온 겁니까?]

“그래요.”

부처는 빙긋 웃으며 관음보살에게 말했다.

“이제 백색의 시계탑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에요, 네메데스와 데칼에게는 나의 힘을 심어 두었으니...”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중맹약이 완전히 박살난 리얼포스의 세계!

“그의 힘이 다 해 가고 있군요... 이중맹약도 사라진 지금이라면-”

그가 눈을 감았다.

콰아아아아-

관음보살은 그런 부처의 등 뒤에서 일렁이는 작은 에너지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순환의 고리...’

저것은 판타로스와 부처의 모든 힘이 응집하여 만들어진 작은 순환의 고리.

일순간.

촤아아악-!

부처의 몸으로 그 작은 순환의 고리의 에너지가 흡수돼 들어왔다.

그가 가졌던 ‘무한포식’ 으로는 절대 소화하지 못 할 막대한 힘들이 지금은 흡수된다. 이 상위 힘은, 그야말로 만능이나 다름없으니까.

촤아아아아아악-!

부처는 어느새 그 거대한 힘을 체내에 머금었다.

고오오-

소름끼치는 혼돈과 수호자의 힘이 맞물렸다. 그리고, 이내 부처가 눈을 떴다.

“찾았습니다.”

부처의 앞에 거대한 영상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 곳에 있는 것은...

[로키... 로군요.]

“저는 지금부터 이 힘들을 소화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지금이라면 우리의 군대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지요. 떠나십시오.”

관음보살이 고개를 숙였다.

[예.]

촤촤촤촥-!

황금빛 군대의 절반이 관음보살을 따라 천계로 움직였다.

부처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 땅 역시... 근본부터 갈아 엎는 게 좋겠군요. 새로이 만들어질 진공가향의 세계는 이 곳에서부터 시작될 테니...”

이내 부처가 남은 황금의 군대를 향해 지시했다.

“여러분은 이제 이 땅을 정리해 주시지요.”

척!

남은 군대가 고개를 숙이고,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처는 모두가 떠난 자리에 앉아 숨을 골랐다.

쿵- 쿵- 쿵- 쿵- 쿵-

쾅 쾅 쾅 쾅 쾅!

부처의 본신을 포함한 모든 힘, 그리고 판타로스의 본신을 포함한 모든 힘!

그것을 일순간 받아들인 그의 전신은 끓어오를 듯 엄청난 고통의 도가니탕이었다.

참아낸다.

부처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 힘들을 소화하고, 대사제 데칼과 네메데스만 해결하면 이제 모든 것은 끝이다.

......샤샤샤샥!

천계 어귀.

로키는 품 속에서 용과를 꺼냈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매로 대충 슥슥 닦은 뒤 한 입 크게 물어 뜯었다.

과즙이 새어나오고, 새콤 달콤 짜릿한 맛이 이어져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한 때의 그는 인간이었다.

까마득한 오랜 예전, 로키는 인간계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었다.

이제는 신이 되어,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돌이켜 보면, 그리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시간들이었다. 영생을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모든 종(種)을 압도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그리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살 만큼 살았으려나.]

저 편.

이제는 리얼포스의 대지와 매우 근접해진 차원계들이 보였다. 이중맹약이 깨졌다는 증거였다.

[별 수 없구만.]

로키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손을 탁탁 털고, 팔짱을 낀 채 정면을 보았다.

저 편.

수십 수백, 어쩌면 수천!

어마어마한 숫자의 황금빛 신들이 로키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자자, 이 몸을 잡으려고 이토록 많이들 오신 건가? 그게 아닌가? 어찌 됐든 비켜 줄 생각은 없걸랑~]

로키는 지금 천계의 어귀, 순백의 시계탑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을 틀어막고 서 있었다.

이중맹약이란 비단 리얼포스의 땅을 틀어막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사제 데칼은 최후의 수호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그것을 사용했다.

백색의 시계탑!

그 최후의 수호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어어어어엉!

저들은 하나 하나가 부처의 하수인들이다. 숫자가 많지만, 하나 하나의 병력 역시 강하다. 최소, 신 급이다.

‘어마어마한 힘을 모아 두셨구만.’

그들의 신력이 모여 로키를 압도해 오기 시작했다. 로키의 두 표정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사라졌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진지한 표정만이 남았다. 로키가 양 손을 활짝 펼쳤다.

[아스가르드의 마술왕을 뚫어 보시지.]

콰아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신력이 몰아치며 사방의 풍경을 변화시켰다. 어느새 온 사방은 아스가르드의 풍경으로 변했다.

[다 덤벼!]

크허허허허헝!

촤라라락!

펜리르와 요르문간드가 요란한 울음소리를 냈다.

< 최종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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