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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92화 (192/194)

< 최종장 2 >

[오는군.]

무대륙의 패자, 카자토스가 검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기 일보 직전!

그는 눈 앞의 드래곤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선두를 맡겠소.]

드래고니악의 드래곤들, 그리고 카자토스의 군대!

그들이 본대륙 북쪽 평야에서 적들과 조우했다.

아찔하다.

그 앞을 수놓은 것은, 족히 수백 수천은 돼 보이는 부처의 하위 신들이었다. 하나 하나 뿜어내는 신력은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카자토스는 문득 저 편을 보았다.

하늘이 오색으로 바뀌며, 낮과 어둠이 반복되는 것 같은 거대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어쩐지.

그는 미소를 머금었다.

[최후론 제격이군.]

승산 따윈 없다.

저 물량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허나, 그는 어쩐지 홀가분해진 마음이었다.

그때.

펑!

그들의 앞에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깔끔한 정장 차림의 사내였는데, 잘 빗어 넘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빙긋 웃어보였다.

[안녕들 하시오.]

[당신은...?]

[나는, 저 위에 저 쪽에서 왔소.]

사내가 하늘 저 편을 가리켰다. 정령계의 차원이었다.

[어둠의 정령왕, 아카드라고 하오.]

[정령왕...!]

그때.

펑- 펑- 펑- 펑-

사방의 평야에 검은색 오오라와 함께 정령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평야는 꽉 찼다. 거대한 정령의 군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블랙 드래곤 장로, 소테드 스펠터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소테드로군. 하하하, 반갑구만.]

아카드가 문득 미소를 지운 채 돌아섰다. 그의 시선에 저 편, 거대한 부처의 군단이 닿았다.

펑- 퍼퍼펑-

[내 혼자 오기는 쓸쓸해서, 다른 정령계 놈들까지 동원해 왔지. 이대로 가면 모조리 다 끝장일 테니까.]

과연.

이곳 저곳에서 형형색색의 정령들이 모이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궁-

하늘에서도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거대한 하늘성이 움직여 낮은 고도까지 내려온 것이다.

“하, 이 씨발. 내가 미쳤지, 미쳤어!”

하늘성을 조종하는 것은 바로 엘린이었다. 엘린은 하늘성을 움직이며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포격준비, 그리고 전 병력 전방배치! 정말 난 미쳤나봐!”

처억- 처억- 처억- 처억-

하늘성의 모든 포신이 지상의 저 편, 부처의 군단을 겨누었다.

지상과 천계에서 최후의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 *

태호는 눈을 부릅떴다.

‘큽!’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격통이었으나, 자의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젠장, 어쩌지?’

이런 경우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부처가 수상쩍은 짓거리를 할 거라 예상했지만, 이런 사태는 모든 추측의 바깥에 있었다.

문득.

태호는 스물 스물 기어오는 부처의 기억을 떠올렸다.

‘뭐야 이건.’

눈 앞에 스쳐 지나가는 것은 그의 기억!

유년기의 기억부터 천천히 주입되는 기억들을 보았다.

부처는 본래 인간이었다.

그가 살던 세계에는 진짜 ‘부처’ 라는 초월적 존재가 있었으며, 그는 부처를 동경했다.

그 세계에서 부처의 제자가 되어 수련을 쌓아가던 그는 신이 되고, 부처의 뒤를 잇게 된다.

진짜 부처가 ‘순환의 고리’ 로 스스로를 던지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처’ 로 바꾸어, 진짜 부처의 행세를 하는 가짜 부처가 된다.

진짜 부처의 유지를 잇고 있으나, 그는 점점 더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지를 왜곡시키게 된다.

결국, 진공가향의 세계에서 군림하는 절대신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거 진짜 부처도 아니란 얘기잖아?’

즉.

가짜 부처에게 온 세계가 함락될 위기에 처한 것.

태호는 머리를 쥐뜯었다.

‘어쩌지?’

볼카노스의 목소리도, 로만의 목소리도 없다. 오롯이 혼자가 된 태호는, 전신의 격통을 느끼면서도 필사적으로 전신의 기운을 찾기 위해 애썼다.

눈을 감는다.

집중해 본다.

그러자, 한 가닥의 힘이 느껴졌다.

‘아?’

그것은 부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끌어 올렸던 힘이었다.

어둠의 신화력!

무수히 많은 힘들의 결집체인 신비력의 요소 중에서, 남은 것은 어둠의 신화력 하나라니 처참한 일이었다.

‘젠장.’

태호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그 힘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샤아악-

미량의 어둠의 신화력이 새어 나와, 태호의 전신에 맴돌았다. 태호는 그 힘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힘은 가늘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태호의 사방을 맴돌았다.

‘어쩌지.’

문득 그 때.

-너는...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뭐지?

‘누구?’

-내 이 름 은 메 타 트 론...

메타트론!

태호가 두 눈을 부릅떴다.

‘메타트론? 네가 왜...’

-보 아 하 니 부 처 에 게 당 한 모 양 이 군...

그의 묵묵한 목소리는 천계에서 본 그것과는 달랐다.

‘너 부처 부하 아니었냐?’

-부 처 의 부 하 라... 부 처 에 게 당 하 여 의 지 를 감 금 당 한 지 천 년 이 되 어 가 는 군.

‘감금당했다고?’

그제야 비로소 과거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히 메타트론이 천여 년 전 쯤 돌변하였단 얘기를 듣긴 했는데, 그게 그 시점인가?’

-그 럴 것 이 다.

그렇다면 드는 의문.

‘왜 당신은 부처가 가진 수호자의 힘에 저항할 수 있었던 거지?’

-데 칼 님 께 서... 내 게 수 호 자 의 힘 의 일 부 를 나 누 어 주 셨 기 때 문 이 다.

‘아...!’

-본 래 나 의 임 무 는... 수 호 일 족 을 보 호 하 는 것... 비 밀 스 러 운 임 무 였 지 만 부 처 에 게 들 통 이 나 버 렸 지.

태호는 다급히 메타트론에게 물었다.

‘내 이름은 카이저! 아우슈리네 님의 권능을 이어받은 자다.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은 없는가?’

-데 칼 님 께 선 , 언 젠 가 이 런 날 이 올 거 라 예 견 하 셨 다.

메타트론은 문득, 잠깐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이 미 임 무 에 는 실 패 했 지 만 , 네 게 도 움 을 주 게 된 다 면 영 광 스 럽 게 죽 을 수 있 겠 지.

샤아악-!

문득.

태호는 심장부에서 기묘한 감각이 꿀렁거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수호자의 힘. 태호가 가졌던 아우슈리네의 힘이나, 부처가 가졌던 무한포식의 힘과는 달랐다.

더없이 순결하고 고고한 수호자의 힘.

이것이 바로, 대사제 데칼이 메타트론에게 남긴 수호자의 힘의 일부인 모양이다.

쑤욱-!

그것이 태호의 소유가 되었다.

-행 운 을 빈 다... 회 귀 자 여.

동시에 태호의 소유가 된 것은, 빛의 신화력이었다.

어둠과 빛!

두 개 신화력이 모이자 그 둘은 공명을 하며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

옴짝달싹 못 하는 태호의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새로이 만들어진 힘과 데칼의 힘의 일부가 결함하여, 빠르게 회전하자 훨씬 좋아졌다.

샤악-

신비력이 돌아왔다.

아주 일부이지만, 분명히 자신의 신비력이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힘은 신비력과 뭉치더니 더욱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배.

세 배.

네 배.

다섯 배!

그렇게 천천히 늘어나는 신비력을 유지하며, 태호는 이를 악물었다.

‘몸을 다시 가져와야 해.’

부처의 생각도 읽었고, 계획도 모두 읽었다. 이대로 무력하게 있다간,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콰아아아아!

신비력이 점점 더 늘어났다. 늘어날수록 가속도가 붙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카이저. 카이저. 들리는가?

볼카노스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태호가 눈을 부릅떴다.

‘볼카노스 님!’

-이제 들리나보군. 몸의 통제권의 일부가 돌아왔다는 증거다. 지금 뭔가 의지 하나가 느껴진다. 허나, 부처가 네 몸을 장악한 지금 상황엔 도달하지 못 하는 것 같다. 힘을 더 키워라!

의지?

태호는 일단 이를 악물었다.

콰아아아아!

눈을 감은 채, 신비력 연마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신비력들이 태호의 의지로 움직이고, 그것이 더욱 불어나던 어느 시점이었다.

-카이저, 들리는가.

그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데칼이었다.

‘데칼 님?’

-이제야 모든 일이 끝났다. 상황은... 좋지 않군.

데칼의 목소리에 회한이 가득 차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천옥에서 약화된 상태로, 부처의 힘을 소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중맹약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힘을 사용해, 이제 남은 것이 얼마 없군. 이 모든 것은 부처의 검은 속을 알지 못 했던... 나의 탓.

데칼은 굳은 목소리로 태호에게 말했다.

-잘 들어라, 카이저. 나는 지금부터... 남은 모든 힘을 이용하여 아우슈리네를 깨울 것이다.

‘뭐라고요?’

-아우슈리네를 깨워, 그녀에게 걸 생각이다. 마지막 승부를. 허나... 약간의... 아주 약간의 힘이 모자란다.

‘......!’

그렇다.

아우슈리네가 다시 깨어나, 권능을 발현한다면?

태호가 그에게 다급히 말했다.

‘지금 메타트론에게 부여했던 당신의 힘의 일부를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메타트론... 역시 그랬던 건가. 그렇다면 그 힘을... 가져가겠다...

샤아악-

태호의 몸에 잠깐이나마 깃들어 있던 데칼의 힘 일부가 빠져나갔다.

-물론 이전처럼... 막대한 회귀를 이루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가 가진 권능의 대부분이 네게 속해 있으니. 그녀는... 이제... 다시 권능을 사용하게 되면... 영원한 죽음을 맞아야 하겠지... 그러니... 그러니... 이 마지막 기회를...

뚝-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번-쩍!

하늘이 하얗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반으로 나누어 진 하늘에, 거대한 시곗바늘이 생겨났다.

-행운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평온을... 네게... 달렸다... 부탁한다.

데칼의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째깍-

째깍-

째깍-

저 하늘의 시계태엽이 역순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늘이 비추는 것은, 성스러운 여신의 모습이었다.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꼭 모아쥔 것은 아우슈리네였다.

째깍-

째깍-

째깍-

[크으윽! 이런 젠장, 아우슈리네가 깨어났다고? 어떻게... 이런... 데칼! 네놈이 기어코!]

전에 없던 부처의 포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안돼!]

콰아아아아아!

일순간.

모든 것이 역순으로 돌아간다.

촤아아아악-

태호는 자신의 몸의 주도권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고, 부처의 의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사방의 풍경이 뒤흔들리며, 부처와 판타로스의 대격돌의 장면이 보였다.

째깍-

째깍-

그러나.

그때.

부처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악! 안돼! 더 이상은 안 돼!]

뚝-

회귀가 멈추었다.

하늘의 시계도 멈추었고, 판타로스와 부처의 대립 상태에서 그대로 장면이 멈춘 것 같았다.

부처와 판타로스의 신형이 점점 더 흩어져 갈 그 무렵이었다.

모든 것이 멈추었지만, 부처와 태호만이 그 절대적인 시간의 힘 앞에서 저항하고 있었다.

[이대론 안 돼...!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데...! 끝이... 다가왔는데!]

태호가 냅다 소리쳤다.

“이 개새끼야! 끝나긴 뭐가 끝나! 어림도 없다!”

콰아아아아아아!

태호의 모든 힘이 그 자리에 쏟아졌다.

부처의 힘, 판타로스의 힘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그 가운데 태호의 힘이 쏟아지자,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지-잉!

세 개의 힘이 공명을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태호는 사방의 모든 힘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앞서 부처의 기억에서 이미 보았다.

그리고, 부처가 하는 것을 고스란히 보았다!

태호가 가진 이 힘. 지금 완전해진 아우슈리네, 수호자의 힘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사용해 작은 순환의 고리를 모조리 흡수한 부처의 모습도 보았다!

< 최종장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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