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장 3 >
조금만 더 지체하면 작은 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일시적으로 무(無)의 상태가 된다. 그러면 부처에게 다시 몸을 빼앗기고, 꿈도 희망도 없어진다.
안 돼!
그 꼴은 죽어도 못 봐!
콰아아아!
[무, 무, 무슨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부처가 흩어져 가며 경악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세계에서 부처 역시 이를 악물었다.
[크으읏! 그렇다면!]
우드득!
부처의 신형이 흩어지는 것을 멈추고, 판타로스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쾃!
이미 혼돈의 힘이 상당부분 소실되어 이 공간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혼돈의 힘은 완벽하지 않다.
부처 역시 완벽하지 않으나, 수호자의 힘이기에 저항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죽어라, 판타로스!]
콰콰콰콰콰콱!
부처의 수천개 팔이 멈추어 있는 판타로스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콰드득!
이내 그의 전신이 황금빛 팔에 꿰뚫리기 시작했다.
콱콱콱콱콱!
우드득!
판타로스의 머리를, 부처의 팔이 관통했다.
파시시시식!
그가 쓰러지고, 막대한 양의 혼돈의 힘이 남았다. 부처가 다급히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콰아아아아아!
태호 역시 사방에 흩어진 부처의 힘, 그리고 판타로스의 힘을 사정없이 흡수한 상태!
‘큭!’
엄청난 격통이 일어나며 그 힘들을 소화하기 위해 애쓰며, 부처를 노려보았다.
[끝까지 귀찮게 구는구나, 인간이여! 잠자코 있었으면 모두 편했을 것을!]
부처는 전에 없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치며 태호를 내려다보았다.
콰아아아아아!
대지에 선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태산과도 같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황금빛 불상이 서 있는 것 같았고, 그것을 올려다 보는 것 만으로도 공포감이 어렸다.
“닥쳐라, 이 가짜 부처야.”
태호가 읊조렸다.
[무, 무엇이?]
“다 나와!”
태호가 소리쳤다.
하늘의 시곗바늘은 멈추었고, 모든 것들이 정지된 세계이지만 태호와 직접 계약을 맺은 소환수들은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아르카네가 나타나고.
막시무스, 그리고 펜삼이까지 등장했다.
[주군 카이저! 목숨을 바쳐, 그대를 지키리라!]
막시무스가 소리치며 전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아르카네 역시 태호를 보았다.
[싸워? 싸워?]
“싸워! 조져버려!”
[조지자!]
카르르릉!
펜삼이 역시 거대하게 변하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태호는 어마어마한 격통을 참으면서 소리쳤다.
“달려들어!”
그리고 모든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여덟 분신체가 늘어나고, 저마다 ‘최후의 수호자’를 발동시켜 10배의 화력을 만들어냈다.
‘마신.’
볼카노스의 권능, 마신이 발현되었다.
총 아홉 개의 마신이 강림했다. 육중한 형태의 시커먼 남성의 형태, 그것이 소환되어 부처를 향해 주먹을 겨눈다.
‘흑룡.’
다시 아홉의 흑룡이 소환돼, 또아리를 튼 채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어둠의 검.’
어둠의 검 아홉 개가 만들어져, 온 사방에 거대한 어둠의 신화력을 흩뿌렸다.
[어림없다아아아아아아!]
부처가 포효하며 태호에게 공격을 쏟아냈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촥!
수천 수만 개의 손바닥이 영롱한 빛을 내며 날아든다. 태호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몸 안에 일렁이는 부처의 힘, 그리고 판타로스의 힘을 소화하기도 벅차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면 모조리 다 흩어져 버릴 것 같았다.
“막시무스!”
[우오오오오오!]
막시무스가 자신의 스킬, 최후의 기사를 발동시켰다.
이제 태호 일행의 모든 능력치는 2배로 상승했다.
그리고 정면에 거대한 방패가 만들어졌다.
스킬, 절대방패다.
거기에 막시무스의 전신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불사항전이다.
[스킬명 : 불사항전(不死抗戰)]
[막시무스가 죽지 않는 최후항전태세에 돌입합니다. 불사항전의 적용시간 동안 아군이 모두 동일한 효과를 받습니다.]
허나, 부처의 공세는 막대하다.
부처의 공격이 맹렬하게 퍼부어져, 막시무스의 방패가 단숨에 깨어져 나갔다.
[나와, 저 불손한 것들을 해치우거라!]
부처의 호령에, 거대한 황금색 계단이 만들어지고 그 곳에서 그의 군단이 나타났다.
척! 척! 척! 척!
수천의 군단!
그 군단이 전투태세를 갖춘 채, 이 곳으로 달려든다.
[어림없지!]
아르카네가 소리치며 활짝 양 팔을 벌렸다.
[우리 아빠가 너네 다 나쁜 애들이랬어!]
데-엥!
신비력이 깃든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장을 울리는 종소리에, 모두가 석화상태에 걸렸다.
[이얍!]
어둠의 망토가 그들을 싸악 훑어,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 그 곳에 아르카네의 어둠의 장막까지 깃들었다.
카르릉! 캉캉캉!
거대해진 펜삼이는 그 틈을 뚫고 달려드는 부처의 손바닥을 쳐냈다.
우지지지지직!
적들이 모인 곳에 태호의 광역기가 쏟아진다. 군단이 말 그대로 터져나갔다.
그때.
쐐애애액!
콰지직!
태호의 몸에 직격한 황금 손바닥!
“크압!”
묵직한 타격이 왔으나, 현재는 불사의 상태!
데굴데굴 구르다 벌떡 일어선 태호가 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황금빛 비!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손바닥의 세례!
태호가 소환체들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콰아아아아아!
아홉의 흑룡이 파괴광선을 쓰고, 아홉의 마신이 섬뜩한 어둠의 마법을 쏟아낸다. 그들은 ‘어둠의 검’ 이 만들어낸 절대적 지역에서 무한히 재생되는 어둠의 신화력을 사용할 것이다.
콰지지지직!
수없이 쏟아지는 손바닥들을 상응하는 공세로 받아친다!
“나와! 발동!”
태양신의 지팡이에서 소환된 불의 화신이 거대한 불길의 세례를 내뿜었다.
콰아아아앗!
날아오는 손바닥이 사정없이 박살나면서도, 끝없는 공세에 하염없이 밀린다.
파파파파파팍!
마신들과 흑룡들이 난도질당하며 힘없이 쓰러져 갔다.
한편으로는 몸에 깃든 힘을 소화하기 위해 애쓰던 태호는 어느 순간 눈을 반짝였다.
‘됐다.’
부처의 힘, 그리고 판타로스의 힘이 신비력에 녹아들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울컥! 울컥!
온 몸이 그야말로 신화력으로 들끓는다.
“으아아아아!”
태호가 지팡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진 모든 스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펑펑- 펑- 퍼퍼퍼펑-!
망토가 흩날리며, 가진 모든 스킬들이 부처를 향해 쇄도한다!
‘나락의 절대구역!’
나락의 절대구역 15연발이 총 아홉 번!
총 135겹의 절대구역이 만들어져 부처의 사방을 가둔다!
“달려들어!”
그리고 분신체들이 부처에게 달려들어 자폭을 시행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어림도 없다아아아아!]
부처가 모든 팔을 자신에게 모아, 그 공세를 막아냈다.
콰드득 콰득 콰득!
135겹의 나락의 절대구역이 어마어마한 어둠의 창을 쏟아내고, 소환체들이 공격을 퍼부어도 까딱도 안 하는 그 모습이 사뭇 소름끼칠 지경이다.
하지만.
‘된다.’
태호는 두 눈을 싸늘하게 빛냈다. 부처가 공격을 막아내며, 수십 수백 개의 팔이 아작난 것이다.
아작난 곳에서 부처의 힘이 스물 스물 새어 나와 대기에 흩날렸다.
애초에 시간이 되돌아가기 전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공방이었다.
태호는 부처의 힘과 판타로스의 힘을 흡수했고, 부처는 미완의 힘들로 맞서다 보니 벌어진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기적!
아우슈리네와, 대사제 데칼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 준 기적!
‘이 기회를 살려야 해.’
태호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싸아악-!
그 힘들을 태호가 흡수했다.
[스킬 쿨타임이 모두 초기화되었습니다.]
다시 이어지는 분신체들!
흑룡!
마신!
이어 볼카노스의 모든 권능이 부처에게 작렬한다.
콰콰콰콰콰콰쾃!
다시 하늘을 덮는 손바닥 세례를 향해 끝없이 마법을 날리고, 소환하고, 난사하며 버틴다.
황금빛 가루가 온 사방으로 흩날리고, 신비력의 잔재가 맞물려 거대한 은하수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태호는 흡수한 상위 신들의 스킬 역시 사정없이 쏟아냈다.
브라만의 별빛 섬광이 쏘아져 나가고, 라의 불의 새가 만들어져 포효했다.
아후라의 창조, 파괴의 권능은 공격지점을 분해했다가 재조립하며 둠 제네울의 기괴한 식충식물들이 공격을 막아냈다.
[크아아아아아!]
부처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태호의 공세를 틀어막기 위해 애썼다.
두둑, 두드득-!
분신체들이 10배의 힘을 발휘하며 모든 스킬을 쏟아내고, 사정없이 달려든다.
콰콰콰콰콰콰쾅!
폭발!
흩어지는 부처의 힘!
흡수!
[미, 미, 미친 놈...!]
“드디어 천박한 네 본성이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태호가 씨익 웃었다.
쾅! 콰콰쾅!
모든 것이 멈춘 세계에서, 흰 도화지에 검은 물감과 금빛 물감이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꿀렁- 꿀렁-
온 몸에서 힘이 너무나도 차고 넘쳐, 도저히 주체를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죄다 쏟아낸다.
콰아아아아아!
태호는 점점 더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부처의 힘을 흡수하고, 쏟아내고, 다시 흡수하고, 쏟아내고를 반복했다.
파파파파팟!
부처의 공세를 막아내고.
쏟아내고.
다시 쏟아지는 공세를 막아내고.
쏟아낸다!
어느 순간!
부처의 몸이 일순 절반 크기로 줄어들었다.
[크... 크으으으으! 크아아아아!]
덩달아 공세 역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태호 쪽은 아직도 베스트 컨디션이었다.
이 쪽은 부처의 흩어진 힘을 차근 차근 흡수해 나갔다.
태호가 가진 수호자의 힘이, 부처의 힘보다 상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처는 그것이 불가하니, 장기전으로 갈수록 태호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
태호는 숨을 헐떡였다.
온 몸의 모공에서 땀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쿵 쿵 쿵 쿵 쿵!
심장이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뛰고, 머리는 팽팽 돌았다.
[이, 이, 이대로 끝날 것 같으냐!]
부처가 다시 힘을 끌어올리고.
파파파파파팟!
콰콰콰콰콰콱!
소모전이 시작되었다.
부처의 크기가 점점 더 줄어들었다. 다시 반, 다시 그 절반, 다시 또 그 절반.
어느 순간.
태호는 자신의 크기까지 줄어든 부처를 보았다.
[으, 으으... 으으으...!]
그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염없이 멈추어 있는 시곗바늘이 보였다.
[내 것이었는데...]
부처는 허망한 얼굴로 그 위를 보았다.
[조금만 더 가면... 더 가면... 내 손에... 이 손에 닿을 수... 있었는데...]
콰지지직!
그런 그에게 아홉 흑룡의 파괴광선이 작렬했다.
[크어억!]
부처가 사정없이 얻어맞으며, 자신의 힘을 소실해 갔다.
털썩!
이내 그가 바닥에 쓰러졌다.
파시시시식!
부처가 쓰러지자, 멈추어 있던 하늘의 시계도 산산조각 나 지상으로 흩어져 내렸다.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태호는 숨을 헐떡이다, 그 모습을 보며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과거.
처음으로 리얼포스에 접속했던 그 날이 떠올랐다.
북쪽, 알바롱 지대에서 시작한 그 날 쏟아지던 함박눈이 생생했다. 그 날의 두근거림이 새삼 떠오른다.
판타로스에게 모든 것이 초토화돼, 잿더미가 흩날리던 겨울도 떠올랐다.
부처의 몸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황금빛 불상에 가까운 형태의 그의 몸은, 조각상이 부서진 것처럼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그곳에서 스멀 스멀 기어나오는 부처의 마지막 힘까지, 태호는 싹 흡수해 버렸다.
[분하다...]
머리만 남은 부처가 태호를 보며 중얼거렸다.
[분... 하... 다...]
파시식!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부처가 완전한 죽음을 맞았다.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온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리고.
화아아악!
하얀 눈이 내리는 것 같은 세상! 그 앞에, 한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제 선택이 옳았군요.]
“......”
태호는 그녀를 보았다.
“당신이 아우슈리네로군요.”
그녀의 얼굴을 보던 태호는, 살짝 눈을 감았다.
눈 앞에 주마등처럼,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다시 눈을 뜬 태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판타로스에게 멸망했던 세계.
그리고, 12년 전으로 회귀했던 그 날.
모든 것에는 그녀가 있었고, 태호 역시 그녀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다.
원망?
글쎄, 원망이란 것은 딱히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 세계의 진실을 알면 알수록, 더욱 더럽고 추악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준 그녀 덕분에, 수호 일족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태호는 그녀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아우슈리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제게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들자, 그녀가 웃고 있었다.
[고마워요, 카이저. 아니, 천태호.]
그녀의 목소리가 영롱했다. 세상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문득.
온 사방이 진동을 시작했음이 느껴졌다.
태호가 그녀를 보았다.
[이제, 순환의 고리가 움직일 시간입니다.]
“......!”
샤아악-!
눈 앞에 카실론, 그리고 로키가 나타났다. 그들은 잠깐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다, 이내 상황을 파악한 듯 털썩 주저앉았다.
카실론이 아우슈리네를 보며 씩 웃었다.
[잘 잤어?]
아우슈리네는 빙긋 웃으며 카실론을 보았다.
[덕분에... 정말 고마워요.]
[내가 뭘 했다고.]
로키는 어쩐지 허탈한 얼굴로 그녀를 보다 태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간 고생 많았다.]
그 말이 어쩐지 뭉클해, 태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샤-악!
태호의 몸 속에서 볼카노스가 빠져나왔다. 순환의 고리가 회전하며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았다.
[아우슈리네 님...!]
볼카노스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인 뒤 태호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천천히 태호에게 다가와, 포옹을 해 주었다. 따스하단 생각이 들었다.
[카이저, 결국 네가 다 했구나.]
“......무슨 말씀을요.”
목이 메었다.
그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태호가 아우슈리네에게 물었다.
“순환의 고리가 움직이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이제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게 될 거에요. 당신은 당신의 현실로 돌아가게 되고, 우리 모두는 태초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겠죠.]
“원점......”
[신이었던 이들은 순환의 고리에서 무(無)가 되어, 다시 태어나게 될 거에요. 그것이 세계의 법칙... 그 곳에서 자유로운 것은 당신 뿐.]
“저 뿐이라니요?”
[당신의 힘이 곧, 순환의 고리의 힘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렇다.
이제 태호에게는 리얼포스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힘이 공존했다.
부처가 이 힘을 가졌다면 순환의 고리를 멈추거나, 파괴하는 것에 사용했을 터.
하지만...
“그렇군요.”
태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샤아악-
태호는 막시무스와 아르카네, 그리고 펜리르 3세를 소환했다. 그들이 태호를 보았다.
[주군...!]
[끝난 거야?]
카르릉!
모두가 큰 아픔을 겪고, 무한한 반복을 해 왔다. 태호는 그것을 아주 잘 알았다.
[카이저. 마지막 부탁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아우슈리네가 경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순환의 고리가 발동된다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그 상황에서... 고리를 파괴해 주십시오.]
“예...?”
[그렇게 된다면, 이제 모두가 무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태호는 그녀를 보았다.
[많은 이들이 잠깐 동안, 순환의 고리를 파괴할 힘을 갖게 되었으나... 힘이 부여하는 마성에 취해, 고리는 여태까지 유지돼 왔습니다. 이번엔...]
맞는 말이었다.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아우슈리네가 희미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고오오오오-
온 사방이 진동했다.
세상이 천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태호는 그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그들은 하나 하나 빛이 되어, 하늘로 빨려 들어갔다. 어느새 하늘에는 거대한 순환의 고리가 보였다.
하나 하나.
모두가 다 빛이 되어 사라지고.
온 사방은 그저 순백의 공간이 되었다. 빛이 쏘아져 내려온다.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태호는 하늘 높이 떠올라 있는 순환의 고리를 보았다. 그리고, 가진 모든 힘을 끌어모아 그 곳으로 쏘아냈다.
콰아아아아악!
순환의 고리에 틀어박힌 태호의 전력은, 일순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마치 우주의 빅뱅이 이랬을까?
순환의 고리가 일순간 파괴되며, 지상으로 쏟아져 내린다. 하얀 눈 처럼!
태호는 그대로 양 팔을 활짝 벌린 채, 쏟아지는 광휘를 맞았다.
......
< 최종장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