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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전설-194화 (194/194)

< 에필로그 >

화아아악!

세상이 요동치는 것 같다. 마치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짜릿한 감각이 밀려오던 어느 순간.

“......”

태호는 눈을 뜬 채 한참 동안이나 천장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한참 동안 보다가, 팔을 움직여 보았다.

팔은 아주 부드럽게 움직였다. 다리도, 코도, 입도, 눈도. 모든 것이 제 위치에 붙어 있었다.

“꿈...?”

아니었다.

온 몸에 일렁이는 신비력의 감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태호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

수호자의 힘을 받아들이며 변화한 신체 그대로다.

하지만...

삐빅- 삐빅- 삐빅-

요란한 알람 소리에 침대를 보니, 구형 스마트폰이 반짝이고 있었다.

[2020. 10.12]

2020년 10월 12일.

태호가 처음으로 회귀한, 그 날짜였다.

판타로스에게 죽어 회귀했던 그 날짜.

하지만 이번엔 , 모든 것이 끝나고 돌아온 날짜였다.

털썩-!

어쩐지, 태호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곳은 허름한 자취방, 태호가 살던 곳이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빠앙- 하는 작은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태호가 천천히 일어서, 그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한가로운 도시였다.

건물이고 사람이고 그저 한가롭고,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가을 바람이 불어와 머리를 흩날렸다.

‘돌아왔구나.’

방금 전 까지 꿈을 꾼 듯 했지만, 모든 것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문득 그 때.

띵동-

울리는 초인종 소리!

태호가 흠칫, 놀랐다.

회귀했을 때도 똑같았다. 모든 것은, 이 초인종 소리와 함께 도착한 리얼포스의 접속기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설마...’

태호는 불길하게 떨리는 마음을 안고 천천히 걸어,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문을 열었다.

“......?”

문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작은 상자였다.

리얼포스 접속기가 들어 있던 상자에 비하면 굉장히 작았다. 적어도, 접속기가 도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듯 싶었다.

상자에는 누가 보냈는지, 받는이가 누구인지도 적혀있지 않았다.

천천히 상자를 열자, 그 곳에 작은 구슬 하나가 들어 있었다.

‘구슬?’

그 상자를 들고 돌아와 소파에 내려놓은 뒤, 태호는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밀려오는 것은 상실감이었다.

그리고 가슴 쓰린 이별의 고통이다.

* * *

며칠 간, 태호는 폐인처럼 지내야 했다.

이제 태호에게는 신비력이 있었다. 인벤토리 창에는 어마어마한 골드도 있었는데, 그것을 현실로 꺼내 놓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막강한 힘!

그리고 재화!

신의 육체!

어쩌면, 불노불사에 무력과 재력까지 갖춘 엄청난 능력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모든 것에 무기력해져 버린 것이다.

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린 그 상실감. 그것이 태호를 점점 더 무기력의 늪으로 빠트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의미 없이 흘러가던 어느 무렵이었다.

고오오-

문득.

어느날 아침, 눈을 뜨니. 아주 익숙한 기운이 어딘가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뭐지...?”

어딘고, 하고 살펴 보니 소파 위였다.

소파 위, 택배 상자 속.

작은 구슬 하나!

헌데.

그 구슬에서 풍겨오는 힘은, 수호자의 힘이었다.

‘수호자의 힘...?’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동시에 눈 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하나!

[리얼포스 대륙에 접속하시겠습니까?]

리얼포스 대륙에 접속하겠냐고?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접속? 다시 게임이 시작된다는 말? 그게 아니면?

순환의 고리를 부수었는데?

허나.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아악-!

그 순간.

태호의 사방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

태호는 어느새, 리얼포스의 대지에 서 있었다. 그 곳의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아름답게 눈이 덮힌 설원과, 한가로이 놓여 있는 북부 초보자 마을 알바롱의 전경이 보였다.

허나.

그 어떤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NPC들도 보이지 않았고, 상태창도 보이지 않는다.

그 곳에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며 땔감을 옮기는 상인들, 그리고 눈을 치우는 주민들.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왁자지껄, 정겨운 목소리들.

“......”

그렇구나.

태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순환의 고리는 파괴되었다.

이 대륙은 이제, 게임이라는 명목 하에 무한반복되는 저주받은 세계가 아니라 평온한 하나의 차원이 되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원점에서 지금까지 성장해 온 것이다.

“......”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사람들을 멍하니,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며 지난 과거들을 떠올렸다.

알바롱에서 시작했던 리얼포스의 삶.

함박눈을 맞으며 시작했던 그 이야기는 함박눈을 맞으며 끝나게 된 것이다.

이 세계에는 이제 혼돈의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반복과, 혼돈의 타락이 없어진 세계에서 독자적인 시간이 흘러가게 될 것이다.

태호는 후련함, 뿌듯함, 그리고 허전함을 느꼈다.

“야, 호수까지 달리기 내기다!”

“어제도 졌잖아!”

“꼴등이 사탕 사기!”

그때.

세 꼬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달려오던 꼬마 하나가 태호와 부딪혀 넘어졌다.

“아코!”

태호는 부드럽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꼬마를 바라보았다.

“괜찮니?”

“아저씨 뭐에요!”

헌데.

그 꼬마의 얼굴이 낯이 익다. 태호는 천천히 그 꼬마를 바라보았다.

검은 색 올림 머리, 또렷한 두 눈. 그리고 묘하게 누군가를 닮은 그 이목구비...

그때.

“야! 볼카!”

먼저 달려갔던 노란색 머리의 꼬마가 달려왔다.

“볼카...?”

태호가 그 이름을 되뇌이다가 반문했다.

“볼카노스?”

“저 알아요?”

검은 머리의 꼬마가 반문했다.

“아...!”

태호는 그대로 꼬마와 눈높이를 맞추어 앉은 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렇구나.

어쩐지 너무나도 반가워, 작은 볼카노스를 꼭 끌어안아 버렸다.

“우억!”

그리고 뒤따라 달려온 소년들을 보았다.

“넌 로키구나?”

“어떻게 알았어요?”

“넌... 카실론?”

“맞아요!”

세 꼬마가 알바롱에서 살고 있었다. 어쩐지 아우슈리네의 말이 귓가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이제 무한한 세계는 없을 거에요.

“......!”

태호는 감격에 젖은 눈으로 세 꼬마를 바라보았다. 이들은 이제, 반복되는 세계가 아닌 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한참 동안이나 감격한 얼굴로 녀석들을 바라보던 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다.”

“뭐가요?”

“그냥.”

태호는 큭큭큭, 웃었다.

꼬마들은 태호를 올려다 보다, 어깨를 으쓱이곤 이상한 아저씨야- 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저 편으로 달려갔다.

태호는 멀어져 가는 녀석들을 보았다.

“그렇네.”

그리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문득.

볼카노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왜?”

로키가 물었다.

볼카노스는 가만히 서서, 곰곰이 미간을 긁적였다.

“어쩐지 어디서 본 아저씨 같기도 하고...”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았다. 다만 태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지극히 친숙하고, 또 정겨웠을 뿐이다.

문득.

아저씨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볼카노스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눈에서 찔끔, 눈물이 나왔다.

왜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눈물을 슥슥 닦아 보니, 어느새 아저씨는 사라지고 없었다.

* * *

이 곳은 과거 불사왕 쿤이 있던 장소.

그 곳의 빙하지대는 여전했지만, 쿤의 자리는 없었다.

데스나이트의 미궁이 있던 섬 역시, 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역사는 바뀌었다.

문득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한 구슬을 만지작거리자, 눈 앞에 지도 하나가 떠올랐다.

월드맵!

리얼포스의 전체 월드맵이다.

그리고 곳곳에 반짝이는 것들이 보였다.

맵에서 알바롱을 보았다. 세 개의 점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설마...?’

나머지 점들이 리얼포스의 대지 곳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 * *

“어서 옵쇼!”

태호는 노펜시아에서 무기상인이 된 막시무스를 보았다. 막시무스에게 천천히 다가가, 입을 열었다.

“막시무스.”

“오, 제 이름이 제법 유명해 졌습니까?”

아니었다.

[막시무스 무기상]

간판에 적혀 있었다.

“즐거워?”

태호의 물음에 막시무스가 씨익 웃었다.

“그럼요. 매일 매일 즐거워 죽겠죠.”

-나의 주군 카이저!

그의 목소리가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태호는 그를 빤히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막시무스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태호의 손을 맞잡았다.

“그간 고마웠다.”

“예?”

그리곤,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남쪽 평야에서, 작은 마을에 사는 아르카네도 보았다.

사과를 아삭 아삭 베어 먹으며 동네를 뛰어다니는 작은 꼬마가, 태호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태호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네.”

드래고니악이 있던 섬에서 어부가 된 소테드 스펠터를 만났을 때도, 까마귀 협곡의 작은 까마귀가 된 야타카라스를 보았을 때도.

함박웃음을 지은 채 농사를 짓는 엘린을 보면서도.

태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 구슬은, 아우슈리네가 태호에게 건네어 준 선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재차 중얼거렸다.

“그렇네.”

그랬다.

이제는 모두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태호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걸렸다.

샤아악-

구슬을 다시 매만지자, 태호는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허름한 자취방으로 돌아와, 벽에 살짝 기대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쿵- 쿵- 쿵- 쿵-

묘한 두근거림이 시작되었다.

온 몸에 싸아아, 기분 좋은 떨림이 이어졌다. 옅은 흥분, 그리고 즐거움이 깃들었다.

태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집을 나선다.

몸의 상태는 최상!

날씨는 맑음,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최고의 날이다.

탁- 탁- 탁-

걸음을 재촉하던 태호는 어느새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더 속도를 붙여 달리던 태호는 어느새 한강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과거의 이 땅은, 순백의 시계탑이 자리하고 있었다.

허나 이제는 그 시계탑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야 마음 속 묵은 감정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주륵, 눈물이 흘렀다.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분노하고, 사랑하고, 절망하고, 때로는 기뻐하며.

그렇게 헤쳐 나왔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이제는 끝이 났다.

이제, 태호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태호는 한강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을 보았다.

따사로운 태양을 보았다.

무엇을 하고 싶었더라?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가슴은 사정없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다른 게임에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혹은, 여행을 떠나 세상 만물을 보고 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공부를 해도 될 것이고, 운동을 해도 될 것이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태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눈물을 소매로 슥슥 닦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그대로, 아주 천천히 걸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거니는 한강 공원으로 들어선 태호는 인파에 파묻혔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 틈에 섞였다.

날씨는 맑음, 구름 한 점 없는 선선한 날씨.

출발하기엔 최고의 날씨다.

[完]

< 에필로그 > 끝

< 연재 후기 >

독식전설이 오늘로 완결이 났습니다.

유독 마음고생을 했던 글 같아, 시원섭섭 하면서도 여러 후회가 남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독 후반부가 힘이 들어 휴재가 많았네요. ㅠ.ㅠ 다시금 사과드리겠습니다.

여러 생각을 하고, 반성도 하고, 이런 저런 복잡미묘한 생각이 드는 하루입니다.

저는 다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조금더 나은 글로, 조금 더 재미있는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즐거운 일요일 오후 되세요!

-고두열 드림.

< 연재 후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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