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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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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후에게 그녀들이 찾아오다2020.11.27.
"거기 학생, 지금 시간 있을까?"
서울의 번화가.
사람의 왕래가 많은 이곳에서 한 남성이 말을 걸자, 가방을 맨 여고생 무리가 돌아본다.
"왜요?"
"굉장히 끼가 많아보이는데, 연예인이 될 생각 없어?"
"연예인이요?"
그 단어에 소녀들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한다.
"야, 연예인이래?"
"뭐야, 우리 캐스팅 당한 거야?"
"어떡해~."
아주 난리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관심있으면 연락해."
남성은 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건넨다.
소녀들은 명함에 시선을 준다.
"JM엔터테인먼트?"
"들어본 적 있어?"
"아니."
기획사 이름을 본 소녀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이번에 새로 만들었거든. 그래서 기념비가 될 만한 걸그룹을 키우려고 하는데, 그쪽이라면 잘 할 거 같아서."
남성이 설명하는데, 소녀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연락해."
"네."
대답을 한 소녀들은 남성에게 등을 보이고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한다.
"뭐야, 3대 기획사가 아니네."
"신생 회사라는 거지? 진짜일까?"
"사기 같은데."
자기들끼리 떠들더니, 남성이 준 명함을 바닥에 버리고 가버린다.
그 모습을 본 남성, 지후는 한숨을 푹 내쉰다.
"버릴 거면 내가 안 보는 데서 버리라고."
지후는 버려진 명함을 주워들고는 먼지를 털어낸다.
정말 연습생 한 명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예능감이 충분해보였는데, 좀 아깝다."
그 한 마디로 미련을 떨친 지후는 다시 새로운 인재를 찾으러 거리를 돌아다닌다.
"하아~. 지쳤다."
지친 몸을 이끌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다.
불을 켜고 소파에 주저앉는다.
"결국 오늘도 허탕쳤네."
하루 종일 걸어다니면서 가능성이 있는 소녀들에게 명함을 주었지만, 아무도 사무실이나 지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이제 생긴지 한 달 밖에 안 된 신생 기획사다.
사기가 아닌지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한 사람도 연락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때, 지후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혹시 오디션을 보겠다는 지원자인가?
서둘러 화면을 들여다 보지만,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있다.
"뭐야, 어머니잖아."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어, 아들? 엄마야.』
"네, 어쩐 일이세요?"
『어쩌긴, 우리 아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그 말에 지후는 얼굴에 미소를 띤다.
"제가 자주 연락하고 있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은 자주가 아니잖니?』
어라, 그랬나?
사흘에 한 번씩은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새 그렇게 바빠?』
"아, 네. 아시잖아요? 제대로 된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든다는 거. 키우는 쪽이 되니까 그때보다 몇 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굳이 그 일을 해야 했니?』
어머니의 말투는 아주 조용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지후의 마음응 아프게 한다.
"제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걸요."
13살에 대형 기획사를 찾아가서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이 되었다.
5년이 넘는 연습생 생활 끝에 보이그룹의 멤버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리고 8년 동안 그룹 활동, 솔로 활동을 하면서 보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빴지만, 하루하루가 충실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다가 은퇴를 결심했다.
첫 번째 이유는 지후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식어갔다는 것이다.
연예계는 하루가 다르게 사람이 바뀌는 곳이다.
그 와중에서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어느 순간부터 벅차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직접 후배를 양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획사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동안, 연예인을 목표로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꿈을 이룬 건 극히 일부였다.
다들 재능은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접은 사람들은 수두룩했다.
어렵게 출현하게 된 방송에서 눈에 띄지 못해서.
같이 활동하게 된 멤버가 사고를 쳐서.
다른 연예인과 스캔들이 터져서.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로 사라진 사람을 많이 봤다.
그들의 존재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을 가지고 연예 기획사를 차렸다.
"걱정 마세요. 지금 전 충분히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으니까요."
『알았어. 엄마는 우리 아들을 믿으니까.』
그렇게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친다.
"후우…."
한숨과 함께 스마트폰을 데이블 위로 내려놓는다.
그리고 긴 소파에 몸을 눕힌다.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야지.
"내일은 좋은 인재를 발견하면 좋겠는데…."
하루 종일 돌아다닌 탓인지, 점점 눈이 감긴다.
"괜찮은 사람이 없네."
오늘도 번화가를 돌아다니면서 캐스팅할 인재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오늘은 이렇다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지.
오늘은 그냥 돌아가자.
그렇게 마음먹고 돌아서는데,
"저기, 잠시만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혹시 날 부른 건가?
돌아보자, 지후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서있었다.
"저 말인가요?"
"네."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제부터 보고 있었는데, 연예인이 될 아이들을 찾고 계신 거죠?"
"아, 네. 그런데요?"
"사실 제가 맡고 있는 아이들이 몇 있어요. 연예계에서 충분히 활약할 만한 재능을 지닌 애들인데, 혹시 맡아 주실 수 있나하고요."
"네, 정말인가요?"
지후는 눈을 크게 뜬다.
어떻게 보면 수상하기도 하지만, 기회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는데요. 저희 사무소로 데리고 오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여자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넨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그 아이들을 데리고, 사무소로 가도록 하죠."
그렇게 만날 약속을 하자, 여자는 등을 돌려 가버린다.
"우와…."
갑자기 인재를 소개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혹시 꿈이 아닐까?
지후는 자신의 뺨을 꼬집어 본다.
"아야!"
아픈 걸 보니, 역시 현실이다.
"핫,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순간 정신을 차린 지후는 서둘러 사무소로 향한다.
얼른 가서 사무소를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냉장고에 음료수가 있던가?
아, 커피랑 차도 준비해야지.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로 향한다.
"후우…."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괜찮아, 어제 밤새 청소해서 깨끗하다.
마실 것도 준비 OK.
이제 손님을 맞이하기만 하면 된다.
"으으, 긴장돼."
두근두근한 마음에 도저히 진정되지 않는다.
과연 어떤 아이들이 오게 될까?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노크한다.
"네!"
왔구나!
고양된 기분으로 대답한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어제 본 여성이 나타난다.
"안녕하세요. 저, 지억하시죠? 오늘 뵙기로 했었는데요."
"물론이죠. 어서 들어오세요."
들어오란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를 돌아본다.
"들어와."
그러자 여자를 따라 소녀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다섯 명의 소녀들로, 다들 괜찮은 외모를 지니고 있다.
이 정도면 성형수술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자, 인사드려."
여자는 소녀들을 일렬로 세운다.
그런데 소녀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뭔가 불만스러운지 지후에게 시선을 돌려 자꾸 딴 곳을 바라볼 뿐이다.
"저기…, 다들 어서 와. 난 문지후라고, 이 JM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야."
소녀들이 긴장해서 그런 걸로 생각한 지후가 먼저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소녀들은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이다.
"뭐해?"
소녀들의 태도에 여자가 눈을 가늘게 뜬다.
"사장님께서 먼저 인사하셨는데, 대답도 안 할 거야?"
그러자 마지못해 소녀들은 지후를 바라본다.
그리고 여자에게 가장 가까운 소녀부터 입을 열기 시작한다.
"조연아라고 합니다."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로, 목소리가 좋다는 인상을 받는다.
"저는 이혜민이에요."
높게 묶은 포니테일의 소녀인데, 몸이 근질근질한지 발로 바닥을 툭툭 친다.
"김수지."
그냥 이름만 짧게 말한 건 짧은 커트 머리의 소녀다.
다섯 명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몸매도 좋다.
"정유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양갈래로 머리카락을 묶은 소녀가 옅은 미소를 띠면서 인사한다.
예의상하는 게 다 보이지만, 그래도 붙임성이 좋아보인다.
"전 유미나라고 해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과 청순한 외모를 지닌 소녀다.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하다.
"이 아이들의 보호자인 주하은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소녀들을 데리고 온 여자가 정중하게 인사한다.
"이 애들이 예의는 없지만, 그래도 재능은 충분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은이 고개를 숙이자, 지후도 허둥지둥 고개를 숙인다.
"아뇨, 저야말로."
그리고 다시 한 번 소녀들을 둘러본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건 어렵지만, 긴장한 얼굴은 한 사람은 없다.
다들 어느 정도 배짱은 있는 모양이다.
연예계 생활에서 배짱은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소녀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하지만….
"잘 부탁한다고? 웃기고 있네."
수지가 불만스런 얼굴로 지후를 바라본다.
"이런 조그마한 소속사에서 뭘 해줄 수 있다는 거야?"
"김수지!"
하은이 그만하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인다.
수지는 입을 다물지만, 이번에는 연아가 입을 연다.
"얘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요? 저 사람이 저희의 재능을 잘 이끌어 줄 거 같지는 않는데요."
"맞아요."
유진 역시 손을 들면서 찬성한다.
"사장님이란 분이 상당히 젊어보이는데, 과연 얼마나 일거리를 가져다 주실 수 있을까요?"
다른 두 명, 혜민과 미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둘 다 표정으로 동감이라고 전한다.
"너희들, 진짜 왜 그래?"
소녀들의 폭언에 화가 났는지, 하은은 양팔을 허리에 댄다.
"지금 너희가 이것저것 가릴 처지야? 다른 기획사에도 데려가 줬는데, 기회를 못 잡았잖아! 너희 그 태도 때문에!"
그러자 소녀들은 고개를 푹 숙인다.
이 애들, 다른 곳에서도 이런 태도로 나왔나?
그럼 안 되지.
누가 오디션을 담당해도 예의가 없는 사람은 바로 떨어진다.
…혹시 여자가 지후에게 소녀들을 데려온 건, 다른 기획사에서 전부 안 된다는 얘기를 들어서인가?
"정신 차려!"
하은은 더욱더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 여기가 너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란 말이야!"
마지막 기회?
그게 무슨 소리지?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은 지후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알아요?"
참다 못한 수지가 발끈한다.
"그 사람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걸 어쩌라고요?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맞아, 우린 한 시대를 풍미한 적이 있었다고."
혜민도 발을 구르면서 짜증을 표현한다.
"야, 너희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듣다 못한 지후가 한마디하기로 한다.
"시대를 풍미해? 무슨 왕년에 잘 나갔다는 듯이 말하는 거야? 너희 같은 어린애가 할 말이 아니라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은 빠져 있어요."
연아가 눈을 부라리면서 짜증낸다.
"어린애? 우린 말이죠…."
"야, 조연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하은이 부르지만, 연아는 말을 이어간다.
"그 왕년에 잘 나갔던 연예인들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시대를 풍미했던 연예인들의 환생체란 말이에요."
미나가 한 말에 지후는 할 말을 잃는다.
"이런, 망할…."
하은은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짜증을 참는 태도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농담하는 거냐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다들 표정이 진지하다.
연예인들의 환생체?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지후는 어쩔 줄 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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