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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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집 콘셉트 정하기2020.12.27.
"으아~!"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던 지후가 크게 기지개를 켠다.
"이제 슬슬 준비할 수 있으려나?"
일단 휴가 때 떠올린 악상을 거의 다 곡으로 만들었다.
물론 전부 다른 느낌이라서 한 앨범에 다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사장님, 계세요?"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목소리를 들으니, 연아란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야."
지후가 부르자, 연아가 작업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작업 중이셨어요?"
"어. …그런데 어쩐 일이야?"
지후가 묻자, 연아는 손에 든 종이봉투에서 뭔가를 꺼낸다.
"도시락 싸 왔어요."
"일부러 가져온 거야?"
"오늘 하루 종일 여기에 계신다고 하셨잖아요?"
일부러 신경 써줬다는 사실에 지후는 감동한다.
참고로 전에 집에 왔을 때 만들어주었던 반찬을 아직도 잘 먹고 있다.
"따뜻할 때 드세요."
연아는 지후의 손을 잡고는 바깥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응접실 소파에 지후를 앉히고, 연아도 옆에 앉아서 테이블 위에 도시락을 펼친다.
"여기요."
지후에게 밥이 가득 담긴 밥통과 젓가락을 건네준다.
"응, 잘 먹을게."
밥을 떠서 입 안에 넣자, 온기가 느껴진다.
바로 만들어서 가져왔구나.
엄청 고마웠다.
"국도 드세요."
보온병에 담긴 된장국을 따로 챙겨온 그릇에 담아서 건네준다.
이러고 있으니까, 어쩐지 신혼부부….
"와악!"
"꺄악! …왜, 왜 그러세요?"
"아, 아냐."
놀라게 한 건 미안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고는 절대 말 못 하지….
얼굴을 붉힌 채로 도시락 먹는데 집중하기로 한다.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린다.
"헉, 헉…."
혜민이 거친 숨을 내쉬면서 문 앞에 서 있다.
"혜민아, 네가 갑자기 웬일이야?"
"그게요, 헉…."
"일단 좀 앉아."
먼저 숨 좀 돌리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맞은편 소파에 앉으라고 권한다.
그러자 혜민이 볼을 잔뜩 부풀린 채로 앉는다.
"사장님, 너무 하신 거 아닌가요?"
"뭐가?"
뜬금없이 너무하단 말에 지후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떻게 연아랑 단둘이 만날 수가 있어요?"
"뭐, 뭔 소리야?"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다.
"딱히 연아랑 만나려고 한 게 아니라….
"사장님~! 유진이가 왔어요."
이번에는 유진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아앗! 연아랑 혜민이, 너희가 왜 여기에 있어?"
자기보다 두 사람이 먼저 온 걸 보고는 경악한다.
그리고는 소파의 옆에 가서 지후의 목을 끌어 안는다.
"일부러 사장님께 드리려고 간식도 사 왔는데!"
"응, 그건 고마워. 고마운데, 좀 놔주면 안 될까…?"
연아와 혜민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너무 무섭다.
"역시 이럴 줄 알았지."
곧 수지도 사무실에 얼굴을 내민다.
그 뒤를 따라 미나도 들어온다.
"너희들, 아직 사장님께서 식사 중이신 거 안 보여?"
마지막으로 하은이 들어오면서 사무실 문을 닫는다.
결국 다들 모이게 되었다.
"하아…."
옆에 앉아 있던 연아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사장님, 저희 2집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수지가 과자를 먹으면서 묻는다.
"음, 곡을 여러 개 만들기는 했는데, 아직 뭐라 하긴 그래."
도시락을 비운 후, 식후 차를 마시면서 답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2집 콘셉트를 정하는 거다.
"컴백할 때는 봄이겠네요."
미나가 스마트폰으로 날짜를 확인한다.
"그렇다면 발랄한 노래를 선보이는 건 어때요?"
"나쁘지는 않는데…."
좋은 의견이기는 하지만, 지후로서는 좀 다른 느낌을 내고 싶었다.
그때 연아가 뭔가 생각이 낫는지, 손뼉을 친다.
"아, 그럼 사장님께서 만드신 곡을 저희가 들어보면서 생각해내는 건 어떨까요?"
"그거 좋네. 그쪽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맞아."
다들 지후가 만든 곡을 들어보는 걸로 의견을 모은다.
"알았어."
지후가 일어나서 작업실로 향하자, 전부 그 뒤를 따른다.
단, 하은은 별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응접실에 있기로 한다.
"들어봐."
지후는 녹음해둔 곡을 모두에게 들려준다.
첫 곡은 빠른 탱고 풍의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아, 이거…."
듣자마자, 혜민이 반응을 보인다.
그러자 지후가 빙그레 웃는다.
"맞아, 네가 장기자랑에서 보여줬던 춤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거야."
그 말에 혜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그걸 보고 이렇게 곡을 만들어주었다.
기쁘기는 한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마음에 드는 거 같아서 지후는 안심이다.
"괜찮기는 한데, 타이틀 곡으로는 어떨까?"
"혜민이만 좋아할 거 같은데."
"누, 누가 좋아한다는 거야?"
"그럼 이 곡은 네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그, 그건 아닌데…."
"정말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시끄러!"
이런, 또 소란스러워졌다.
"이제 두 번째야."
이번 곡은 아주 잔잔한 발라드다.
애절하면서도 달콤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건 어디서 영감을 얻으신 거예요?"
"전에 수지랑 얘기하다가 과거 일을 좀 떠올렸거든."
수지가 고민에 빠져 있던 그날 밤, 지후는 과거 첫사랑 얘기를 들려주었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지만, 아주 소중한 추억.
그게 이 곡의 테마다.
"헤에~. 사장님의 과거인가요?"
연아가 미묘한 시선으로 지후를 바라본다.
"어떤 과거인데요? 자금 들은 걸로는 상당히 좋은 기억이었던 거 같은데."
"대, 대단한 건 아냐. 그렇지, 수지야?"
"아, 과거의 추억이었나요? 네, 그렇죠."
어째 수지는 시치미를 떼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얘는 또 왜 이래?
"사장님?"
수지의 미묘한 반응에 연아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자, 다음 곡을 들어볼까?"
지후는 서둘러 세 번째 곡을 튼다.
이번에는 발랄한 곡이 흘러나온다.
"아, 이건 유진이 곡이란 느낌이네."
수지의 감상에 유진이 벌떡 일어난다.
"사장님, 진짜예요?"
"맞아, 지난번에 실시간 방송하는 걸 보고 악상이 떠오르더라."
그 말을 들은 유진이 지후에게 푹 안겨버린다.
"너무 기뻐요!"
"야!"
혜민이 벌떡 일어난다.
"툭하면 사장님께 안기려고 하는 것 좀 고쳐!"
"왜?"
"왜긴, 너무 들러붙는 모습이 꼴사나우니까 그렇지!"
"그게 뭐야? 완전 억지잖아."
그냥 뒀다가는 또 난장판이 될 게 뻔하기에 지후는 말리기로 한다.
"너희 둘,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니까 앉아."
"네~."
지후의 말에 유진이 순순히 떨어진다.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말을 잘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진이 얌전하게 앉자, 혜민 역시 다시 자리에 앉는다.
조용해진 걸 확인한 지후는 다음 곡을 들려준다.
"이번 건 느낌이 묘한걸?"
수지가 감상을 말하자, 혜민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조용하다 싶으면서도 강렬한 뭔가가 느껴진다고 할까?"
그러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음악에 집중하던 미나가 고개를 든다.
"이번 건 제가 모티브예요?"
"알겠어?"
"네,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이미지가 떠오르거든요."
미나는 덤덤하게 의견을 말한다.
그 말대로 이번 곡은 미나의 얘기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랑을 모르면서도 이해하고 싶어서 연기하는 소녀란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
"왠지 이렇게 하나씩 듣고 있으니까, 가요보다는 뮤지컬 음악을 듣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런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유진도 동감이라는 듯이 손을 든다.
그러다가 미나가 작게 중얼거린다.
"뮤지컬이라, 좋은 콘셉트가 될 거 같아."
"뮤지컬이 콘셉트?"
미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 서곡을 모두가 부르는 거고, 그 뒤로 다섯 개의 곡을 각 멤버별로 부르는 거야."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에 맞춰서 서곡, 다섯 개의 개별 곡, 그리고 마지막 곡으로 앨범을 구성하자는 게 미나의 의견이다.
"그런 구성으로 괜찮을까? 곡이 일곱 개면 미니 앨범이잖아."
"그럼 중간에 간주곡 형식으로 몇 곡 더 넣으면 되지."
"괜찮지 않아? 그런 식으로 곡이 구성되면 타이틀곡만 아니라, 다른 곡들도 팬들이 관심을 갖을 거 같아."
"나도 재밌을 거 같아. 왜, 일반적인 음반은 곡이 전부 다른 느낌이잖아. 그러니까 이런 식의 구성이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미나가 열변을 토하면서까지 자신의 의견을 어필한다.
평소에 조용한 말투의 미나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걸 본 지후는 싱긋 웃는다.
"그럼 미나 네가 전체적인 설정을 만들어 볼래?"
"네? 제가요?"
"그래, 원래 콘셉트는 소속사에서 만들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인원이 많이 없잖아. 게다가 너와 멤버들이 같이 부를 걸 생각하면 네가 다른 애들의 의견을 받아서 설정을 만들어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지후의 말을 듣고 미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곧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맡겨주세요!"
의욕이 가득한지 미나의 눈이 반짝인다.
그렇게 좋을까?
쓴웃음이 나지만, 그래도 기대해보기로 한다.
"그러면 너희들도 미나랑 같이 생각해봐."
"네."
"잠깐만요."
그때, 연아가 말을 꺼낸다.
"저는요?"
"응? 뭐가?"
"다른 애들에게서 악상을 얻은 곡은 다 들었는데, 저만 없잖아요."
연아는 볼을 부풀리면서 항의한다.
"그, 그게…."
지후가 난감함에 고개를 돌려버린다.
"어? 진짜 연아에게서 악상을 얻으신 건 없어요? 그럼 곤란한데요?"
이야기 구상을 위해서는 멤버별로 한 곡씩은 있어야 한다는 게 미나의 의견이다.
그건 이해한다.
이해하는데….
"진짜로 제 곡은 없어요?"
벌떡 일어난 연아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노려본다.
"아니, 없는 건 아닌데…."
"그럼 들려주세요!"
강력한 요청에 못 이겨 다음 곡을 들려주기로 한다.
이번 곡도 상당히 강렬한 느낌이다.
요염함과 날카로움이 인상적이다.
"어라? 이건…."
곡을 들은 멤버들은 전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왠지 그거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른 멤버들이 서로 마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연아는 아무 말 없이 지후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제발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연아의 계속되는 시선에 지후는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사장님, 이 곡은 그거죠?"
미나가 알겠다는 듯이 입을 연다.
"살로메죠?"
"으, 응…."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미나의 말대로 이번 곡은 살로메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니, 딱히 연아 네가 살로메라는 건…. 푸흡!"
해명하려던 지후의 얼굴에 쿠션이 날아온다.
"전 살로메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아, 알아. 아는데…."
"안다는 사람이 제 이미지 곡으로 이걸 내놔요!?"
연아가 강력하게 항의하자, 지후는 어쩔 줄 몰라 한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멤버들이 서로 쑥덕거리기 시작한다.
"딱히 잘못 본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조연아, 사장님 좀 그만 들볶아."
보다 못한 혜민이 연아를 말린다.
"네가 그런 식으로 사장님을 못 살게 하니까 그런 곡이 나오지."
"뭐야?"
이번에는 연아의 눈이 혜민에게 향한다.
"자, 잠깐만."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는 예감에 지후는 서둘러 둘을 말리기로 한다.
"내가 잘못했어. 연아 네 이미지 곡은 다른 걸로 만들어줄 테니까 좀 참아."
"…정말요? 방금 들었던 다른 곡들보다 훨씬 좋은 걸로 만들어주실 거죠?"
"그래."
그제서야 연아가 환하게 웃는다.
정말이지, 연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후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사장님은 연아에게 엄청 약하네."
두 사람을 보고 있던 미나가 중얼거린다.
"그러게. 혜민이 너, 분발해야겠다."
"내, 내가 뭘?"
"이대로 있다가는 손도 못 써보겠는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수지와 혜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진이 벌떡 일어난다.
그러더니 연아와 지후의 사이에 끼어든다.
"연아 너, 더 이상 사장님 괴롭히면 내가 용서 안 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갑자기 끼어든 유진이 몹시 거슬리는지, 연아가 무섭게 노려본다.
그 눈빛에 유진은 어깨를 움츠리지만, 물러서지는 않는다.
'아, 유진이도 있었지."
상황을 지켜보던 수지는 다시 혜민에게 시선을 돌린다.
"큰일이네. 라이벌이 늘어서."
"끙…."
혜민이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그런 멤버들의 모습을 본 미나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은 모양이다.
"좋아, 테마는 한 남자를 두고 다투는 소녀들이란 걸로 해야지."
혼자서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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