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52화 (52/206)

#   52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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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알고 있기에 모험하지 않는 점술사2020.12.28.

"사장님, 저 왔어요."

수지가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어, 어서 와."

작업실의 문 안쪽에서 지후의 목소리가 들린다.

"작업 중이세요?"

수지가 작업실 안으로 고개를 내민다.

"응."

한창 바쁘게 작업하는 지후를 보고 방해하기 미안하다.

"그럼 전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알았어. 금방 끝내고 갈게."

연아가 싸준 도시락과 자신이 들고 온 비닐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린다.

봉투에서 과자를 꺼내 뜯어서 먹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미나한테 2집 콘셉트에 대해 묻는 걸 까먹었네."

어젯밤에 미나가 방에서 노트에 열심히 적는 모습을 봤다.

식사하러 주방에 내려오지도 않아서 하은이 주먹밥을 만들어주었고, 그걸 수지가 전해주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수지가 노크를 한 것도, 방에 들어온 것도 전혀 몰랐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작은 테이블 위에 주먹밥 접시를 놓고 방을 나섰다.

그 정도로 미나가 열중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

혼자 있어서 심심해서 그런지, 계속 그게 신경쓰인다.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그제서야 지후가 작업실 밖으로 나온다.

"아뇨, 신경 쓰지 마세요."

수지는 빈 과자봉지를 정리해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지후가 자리에 앉으면서 수지가 가져온 꾸러미를 눈치챈다.

"이거 혹시…."

"네, 연아가 사장님 드리려고 만든 거예요."

그걸 들은 지후가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기쁜 것 같으면서도 안타까운 표정.

왜 저런 얼굴을 하는 건지, 수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가져다 줘서 고마워."

지후는 도시락을 한쪽에 치워둔다.

"안 드세요? 사장님, 점심도 거르셨을 거 아녜요?"

"그렇기는 한데,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지후는 수지를 똑바로 쳐다본다.

"미나한테 얘기는 들었어?"

"네, 제 이미지 곡 때문에 오라고 하셨다면서요?"

"맞아, 다섯 명 중에서 유일하게 네 이미지에서 악상을 얻은 게 아니라서 미나가 설정짜기 어려워했거든."

"아하, 그런 거였어요?"

확실히 어제 들은 곡은 수지가 들어도 자신에게 안 어울린다는 생각은 했다.

차라리 새로 만들어준다면 그게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미나가 생각한 콘셉트는 어떤 거예요? 사장님은 들으셨죠?"

"들었어. 가제가 페어리테일이라던데."

"동화요?"

수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동화지?

"나도 자세히 본 건 아닌데, 혜민이가 무희고, 유진이가 인형사, 미나가 도서관 사서, 그리고 연아가…."

갑자기 지후가 말끝을 흐린다.

"연아가 왜요?"

"그게…. 연아는 마녀라고 설정했더라고."

"푸훗!"

수지는 웃음을 터뜨린다.

"아하하! 마녀라, 아주 딱 맞는데요?"

"너도 연아가 마녀 같다고 생각해?"

지후가 난감하다는 듯이 어깨를 움츠린다.

"당연하죠."

너무 웃은 탓에 수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다.

"마녀는 오히려 귀여운 축에 속하죠. 제가 볼 때는 악녀 같은걸요."

"악녀는 좀 심하다."

지후가 인상을 찌푸린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그럼 사장님이 보시기에 연아는 어떤 이미지 같아요?"

"그건…."

지후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연아의 이미지라….

역시 생각나는 건 하나 뿐이다.

"그거지. 운디네."

"운디네? 혹시 물의 정령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잘 아네."

"이름 정도밖에 몰라요."

운디네는 물의 정령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청순가련한 외모에 한 사람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지만, 질투가 너무 심하고 배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 알려졌다.

"아, 확실히 연아라는 느낌이네요."

지후의 얘기를 들은 수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질투가 심하고, 배신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럼 운디네를 배신한 남자는 어떻게 돼요?"

"저주를 내리거나,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다던데."

"그럼 사장님도 조심하셔야겠네요. 연아 말고 다른 여자랑 사랑에 빠지면…."

그날로 제삿날이 되는 건가?

등골이 오싹해진다.

"괘, 괜히 그런 걸로 겁주지 마."

"아, 그런데요. 운디네 얘기를 듣고 있으니까, 어쩐지 살로메와 비슷하지 않아요?"

"그런가?"

행동이 비슷한지는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고 싶어서 죽이는 살로메와 배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죽이는 운디네는 다르다고 지후는 생각한다.

"아, 지금은 연아 얘기를 할 때가 아니지."

수지는 화제를 바꾼다.

"미나가 제 설정은 뭘로 했어요?"

"그러니까…. 서기관이라고 했었지, 아마."

"서기관이요?"

"응, 타인의 추억을 기록한다고 했었어."

"흐음~."

수지가 흥미롭다는 듯이 지후를 바라본다.

"어떤 의미에서는 잘 봤네요."

"그러게."

지후의 첫사랑 얘기를 들어준 걸 눈치라도 챈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미나하고 설정이 너무 겹친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아, 그래서 새로 만든다고 하신 거군요."

수지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난 어떤 이미지가 어울릴까?"

상당히 고심하는 눈치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동화 같은 거 있어?"

"그럼요. 특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했어요."

"오호~."

워낙에 유명한 동화라 지후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좋아하다니, 의외인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이 간다.

앨리스는 주변 인물들이 아닌, 스스로 행동을 결정한다.

그 점은 수지와 닮았다.

"어릴 때는 그런 식으로 이상한 나라에 모험을 떠나고 싶어 했어요."

"모험가란 말이지? 너한테 잘 어울리네."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수지는 소파에 몸을 파묻는다.

"여행의 위험성은 조금만 조사해보면 다 아니까요. 예를 들면, 어디에 가면 바가지요금을 조심해라. 또 어디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얘기가 있다거나 하는 걸요."

"그건 그렇지."

여행 갔다가 사건에 휘말렸다는 건 그리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그만큼 안전에 유의해야 하는 게 여행이고, 모험이다.

그렇기에 수지는 모험가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뭔가 아는 게 많다는 건, 사람을 겁쟁이로 만드는 거 같네."

"그러게요."

수지도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라?"

"왜 그러세요?"

"아까 한 말이 마음에 걸려."

아는 게 많은 사람은 겁쟁이가 된다라는 말.

뭔가 이미지를 잡을 수 있을 거 같다.

"으음…! 안 되겠어."

하지만 지후로서는 결정적인 이미지를 잡지 못한다.

"죄송해요."

"응? 뭐가?"

갑자기 수지가 사과하자, 지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여기에 미나가 있었다면, 사장님도 이렇게까지 고민하실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그런 건 아닐 거라 생각해."

미나는 곡을 듣고 이야기를 상상해서 콘셉트를 만들었다.

즉, 지후가 만든 곡이 없었다면 콘셉트가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 여기에 있다고 해도 별 도움을 줬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네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네."

수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수지는 생각한다.

"그나저나 뭔가 잡힐 것 같은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일단 지후가 이미지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줘야겠는데, 어떻게 하지?

그때, 수지의 스마트폰에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들인다.

"죄송해요, 문자가 왔나 봐요."

수지는 얼른 스마트폰을 켜본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린다.

"왜 그래?"

혹시 안 좋은 건가?

지후는 걱정스럽게 묻지만, 수지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광고 문자예요."

"흐음~."

지후는 흥미로운 듯이 수지의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보통 어떤 광고가 와?"

"대부분은 게임 광고예요. 전에 설치한 메신저를 통해서 해보라고 하는 게 많더라고요."

"아, 그거라면 나도 많이 받곤 해."

참고로 지후의 스마트폰은 작곡 작업에 방해될까 봐,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 외에는 깔아둔 앱의 알림 설정이에요."

"뭐가 있는데?"

"음, 만보기 앱이 있는데요. 하루에 몇 시간을 잤는지, 지금 얼마나 걸었는지 알려주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의 운세를 알려주는 앱도 아침에 알림이 오고요."

"운세? 너도 그런 거에 관심있어?"

의외다.

수지는 현실적인 성격이라 운세 같은 건 안 믿을 줄 알았는데.

"저도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유진이가 멋대로 깔아버렸어요. 나중에 보니까 하루를 시작할 때 조언이 되기도 해서 계속 쓰고 있지만요."

"그래? …응?"

"왜 그러세요?"

수지가 질문에도 지후는 대답하지 않는다.

뭔가 깊게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에 수지는 잠시 지켜보기로 한다.

"운세, 지식…. 그래, 이거야!"

뭔가를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뭐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올리셨어요?"

지후가 소리치는 바람에 좀 놀라긴 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묻는다.

"점술가는 어때?"

"네?"

뜬금없는 소리에 수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인다.

"그러니까 미래를 알 수 있는 점술가 말이야.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조언은 해도, 직접 자신이 일에 끼어들려고는 하지 않잖아?"

"아."

그제서야 지후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된다.

"요컨대 아는 게 있어도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래. 이거라면 너에게 딱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괜찮은 거 같아요."

솔직히 수지 자신에게는 썩 와닿지 않는다.

그래도 지후의 밝은 표정을 보고 아니라고 말하는 건 좀 꺼려졌다.

또, 그 아이디어에서 어떤 곡이 나올지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좋았어. 그럼 당장 곡을 만들어야지."

지후가 의욕이 넘치는 모습에 수지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럼 전 가볼게요. 가서 미나에게 이 얘기도 전해줘야 하니까요."

"그래, 그럼 부탁할게."

수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린다.

그리고 그곳에는 연아가 서 있었다.

"여, 연아 네가 어쩐 일이야?"

지후의 질문에도 연아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화가 난 듯한 얼굴을 한 채로 그에게 다가올 뿐이다.

그리고는 지후의 앞에 서서 입을 연다.

"저, 할래요?"

"뭘 해?"

"전에 만들어주신 그 곡이요. 그걸 노래로 부르겠다고요!"

그 말에 지후는 물론, 수지까지도 놀란다.

"너, 그 곡은 살로메에서 이미지를 얻었다면서 하기 싫어했잖아.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연아는 그 이상으로 설명하지 않고, 다시 지후를 바라본다.

"할게요. 하면 되는 거죠?"

"으, 응…."

설마 이렇게 빨리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대체 미나가 뭐라고 설득한 걸까?

"두고 보시라고요. 반드시 완벽하게 부를 테니까."

그러더니 지후의 품에 안겨버린다.

"야, 야!"

지후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연아가 안기는 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수지도 같이 있다.

지후가 당황한 시선으로 연아와 수지를 번갈아 보자, 수지는 한숨을 내쉰다.

"방해해서 미안한데, 나 아직 여기 있거든."

수지가 말을 걸자, 연아가 고개를 돌려 수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던 도시락 꾸러미를 수지에게 던져준다.

"그거 줄 테니까, 방해 말고 나가!"

"자, 잠깐만! 그건 내 일용할 양식…."

"나중에 또 만들어줄 테니까 그냥 줘버려요!"

그리고는 지후를 소파 위에 쓰러뜨려 버린다.

"뭐 하는 거야!?"

"저랑 얘기 좀 해요."

"대화라면 앉아서 하면 되잖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수지는 도시락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전 갈게요."

"자, 잠깐만. 수지야! 날 두고 가지 마!"

제발 도와달라는 지후의 외침을 무시하고, 사무실 문을 닫아버린다.

"죄송해요."

수지는 문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인다.

저런 연아를 상대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도와주기로 한다.

수지는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신호가 몇 번 가더니, 상대가 바로 전화를 받는다.

"지금 뭐해?"

『뭐하긴, 아까 안무 짠다고 했잖아.』

상대, 혜민은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대답한다.

"너, 여유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연아가 사장님을 덮치고 있다고."

『…뭐, 뭐어어어!?』

그 말에 혜민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더, 덮쳐? 거기가 어디야?』

"사무실."

『내가 지금 당장 갈게. 너도 거기 있어!』

그리고 통화가 종료된다.

혜민이라면 10분 만에 올 게 뻔하니, 좀 기다려 볼까?

그러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어라? 이렇게 보면 난 예언가라기보다는 뒤에서 암약하는 역할이 잘 맞지 않나?"

혜민이 오고, 상황이 진정되면 그걸 지후에게 말해야지.

그런데 그전까지 뭘 한다?

들고 있던 도시락 꾸러미를 보면서 괜히 나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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