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87화 (87/206)

#   87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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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혜민의 상담요청2021.01.26.

"고맙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프리마 스텔라 멤버들은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든다.

그리고 지후와 하은이 기다리고 있던 무대 뒤로 이동한다.

"고생했어."

지후가 싱긋 웃으면서 멤버들을 반겨준다.

"사장님, 저희 어땠어요?"

"아주 좋았어."

지후는 솔직하게 감상을 말한다.

연아의 주도 아래에 멤버들 간의 협력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다.

"그리고 만들어 준 요리도 정말 맛있었고."

"헤헤, 그렇죠?"

유진이 지후의 칭찬에 기뻐한다.

실제로도 심사 위원들에게 상대팀인 애플 트리의 요리보다 좋은 평가를 받아 우승했다.

"그게 다 연아 덕분이지."

미나가 연아를 돌아보면서 말한다.

"당연하지."

연아가 새침하게 받아들인다.

"고생 많았어, 연아야."

하지만 지후의 칭찬 한마디에 바로 얼굴이 밝아진다.

"그건 그렇고, 애플 트리는 완전 원맨쇼였네."

수지는 복도 쪽으로 향하는 문을 바라본다.

이번 요리 대결에서 진 애플 트리는 촬영이 종료되자마자, 바로 대기실로 가버렸다.

"그러게. 다른 멤버들은 완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더라."

처음부터 각자 할 일을 정해준 연아와는 달리, 은지는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하려 했다.

그러다가 제한 시간이 다 돼서 뒤에 세워두었던 멤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이러는데,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는 어떻겠어?"

수지는 상상도 하기 싫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 자.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가자."

지후가 불평하는 소녀들을 달래서 대기실로 데리고 간다.

하지만 대기실로 향하는 그의 얼굴도 밝지 않다.

아마 은지의 태도가 문제라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사장님."

다른 멤버들이 대기실로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들어가려던 혜민이 뒤돌아본다.

"왜?"

"오늘 스케줄은 이걸로 끝이죠?"

"응, 그런데?"

"그럼 나중에 사무실에서 봬도 돼요?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상담이란 말에 지후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심각한 일이야?"

"아뇨, 그 정도는 아니고요."

혜민은 손을 내젓지만, 그래도 지후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는다.

다른 멤버들이 아닌, 자신에게 상담을 요청할 정도다.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알았어."

"고맙습니다. 일단 숙소에 갔다가 나중에 사무실로 갈게요."

"왜?"

그냥 다른 멤버들만 내려주고 바로 사무실로 향하는게 더 낫지 않나?

지후가 의아해하자, 혜민은 대기실을 한 번 쓱 쳐다본다.

그리고 한껏 목소리를 낮춘다.

"연아가 싫어할 게 뻔하잖아요."

"그, 그렇겠지?"

지난번에도 혜민에게 섭외 건이 들어와서 얘기하려고 했다가 연아가 엄청나게 닦달했다.

그 모습을 또 보고 싶지는 않다는 건 지후도 마찬가지다.

"사장님."

혜민이 사무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응, 들어와."

먼저 사무실에 와서 물을 끓이고 있던 지후는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러자 혜민은 문을 닫고 소파에 앉는다.

"죄송해요. 사장님도 피곤하실 텐데."

"뭘, 힘들어도 너희만큼은 아니야."

지후는 티백이 담긴 잔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두 개의 잔을 가져온다.

"잘 마실게요."

혜민은 허브티를 한 모금 마신다.

재스민 향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상담하고 싶은 게 뭐야?"

마찬가지로 차를 한 모금 마신 지후는 바로 본론을 꺼낸다.

무척이나 표정이 진지하다.

"음…."

먼저 상담해달라고 말을 했으면서 혜민은 말을 꺼내기를 주저한다.

숙소로 향하는 내내 고민했다.

지후에게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 걸까?

"괜찮으니까 말해봐."

지후가 부담 갖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얼굴에 근심이 담겨 있다는 걸 혜민은 알아차린다.

"아무래도 사장님께서 이상한 오해를 하시는 거 같은데, 저나 프리마 스텔라 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럼 뭔데?"

지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외에 혜민이 고민할 만한 게 있나?

"김은지랑 어떻게 지내는 게 좋을까요?"

"…뭐?"

질문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지후는 눈을 깜빡인다.

"김은지라면 애플 트리의 걔?"

"네."

은지와 어떤 사이가 되어야 할까?

혜민은 그 문제로 계속 고민했다.

처음에는 그냥 안 만나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만나다 보니까, 무시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건 그렇지."

지후도 맞장구친다.

"애플 트리와 자주 만나는 건 어쩔 수 없어."

"어째서요?"

"혹시 애플 트리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어?"

"네, 유진이 말로는 해체 직전이라고 하던데요."

그 말에 지후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그래서 그쪽 소속사에서는 극약 처방을 쓰고 있는 모양이야."

"극약 처방이요?"

그게 뭐지?

혜민은 잠시 생각에 잠기지만,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한다.

"인지도를 올리려고 모든 음악 방송이나 예능, 그리고 외부 행사에도 출연시키려고 기를 쓰고 있는 거 같아."

"네? 그, 그럼 지금도…."

"아마 새벽 라디오 방송에 나가지 않았을까?"

등골이 오싹하다.

자신들은 자려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이런 늦은 시간까지 스케줄을 소화하러 다닌다니.

…아니, 아이돌인 만큼 그게 정상이었던가?

"방송에 많이 나온다고 인지도가 다 오르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대중에게 얼굴도장을 찍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역효과가 날 거라고 생각한다.

아까 같이 나간 방송에서 보인 태도를 보면 확실하다.

"네 말대로야."

지후도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쩌면 애플 트리를 해체하기 전에 최대한 수익을 뽑아내려는 건지도 몰라."

"뭐예요, 그게?"

혜민은 발끈한다.

"진정해. 그 마음은 알겠지만, 여기서 화를 내도 소용없잖아."

"네…."

지후한테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창피함에 혜민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서 은지랑 어떤 사이로 지내는 게 좋겠냐는 네 질문 말인데."

지후는 화제를 원점으로 돌린다.

"네가 누군가와 어떻게 지낼지는 네 자유야. 거기에 대고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어."

그 말에 혜민은 고개를 숙인다.

듣고 싶었던 답은 그런 게 아닌데.

"하지만 네가 어렵게 상담해달라고 했는데, 그런 어중간한 대답을 할 수는 없겠지?"

"네?"

혜민이 고개를 든다.

눈이 마주치자 지후는 싱긋 웃는다.

그러자 다시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거 알아둬."

혜민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지후는 계속 말을 잇는다.

"난 네가 김은지에게 관심을 갖거나,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좋겠어."

"진심이세요?"

의외로 냉정한 대답에 혜민은 참지 못하고 되묻는다.

"물론이야."

지후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물론 애플 트리의 현재 상황도 문제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은지의 태도야."

아, 역시 그런가.

은지의 고압적인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했구나.

"그렇게 말씀하셔도 돼요?"

혜민은 쓴웃음을 짓는다.

"걔, 사장님 팬이잖아요."

"날 좋아해 준다고 해서 반대로 내가 좋아하란 법 있어?"

지후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하자, 혜민은 또다시 놀란다.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말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정말 제가 아는 사장님이 맞으세요?"

의아한 나머지 본인에게 묻고 말았다.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해?"

"아, 아뇨. 이상한 건…. 맞네요."

"하하."

지후가 헛웃음을 터뜨린다.

도대체 다들 자신을 뭘로 생각하는 거지?

"은지가 아이돌을 목표로 할 정도로 날 동경해준 건 기뻐.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그 태도를 감싸줄 만큼 난 성인군자가 아니야."

지후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애플 트리보다 너희들 프리마 스텔라 쪽이 훨씬 소중해."

소중하단 말에 혜민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왜 이 사람은 심장에 안 좋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까?

"이, 이건 만약의 일인데요."

혜민은 화제를 돌리기로 한다.

"애플 트리가 해체되고, 김은지가 여기로 와서 자신을 받아달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만약의 일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은지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까?

아니, 분명 그렇게 나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음…."

지후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역시 고민이신가요?"

아까 지후는 은지를 감싸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사람을 내칠 만큼 지후는 모질지 못하다.

그래서 걱정이다.

"고민되지. 은지는 태도가 나쁘긴 해도, 아이돌이 될만한 재능은 가지고 있으니까."

비록 프리마 스텔라 멤버들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은지도 나름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고민이라고 말을 덧붙인다.

"그럼 받아들이시겠네요."

혜민은 턱을 괴고 재미없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아니."

그런데 지후는 고개를 젓는다.

"결국 은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에 혜민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왜, 왜요?"

당황하면서도 그 이유를 묻는다.

"사장님께서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연예 기획사를 세운 건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라고."

그렇다면 은지를 받아들이는 게 맞지 않나?

"그렇기는 하지만, 나라고 모든 사람을 받아들일 수는 없어. 애초에 그런 건 무리라고."

"맞는 말씀이기는 한데…."

그런 이유로 지후가 포기하실 거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수상하다는 눈으로 보지 마."

혜민이 의아해하는 모습에 지후는 쓴웃음을 짓는다.

"사실 그거 말고도 이유가 있기는 해."

"뭔데요? 혹시 김은지의 태도 때문인가요?"

그거라면 지후도 거절할 만하다.

"아니, 그것보다 더 치명적인 이유가 따로 있어."

"네?"

고압적인 태도보다 치명적인 이유라고?

"그게 대체 뭐예요?"

"얼마나 절실하게 아이돌에 임하고 있냐는 거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이제껏 프리마 스텔라를 하면서 많은 아이돌을 만나왔다.

힘들게 데뷔한 만큼, 다들 최고가 되겠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은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걸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지후는 잠시 말을 고르는 눈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너희를 생각하면 되지 않아?"

"저희요?"

"그래, 모든 기획사에서 전부 거절당하고 여기에 왔을 때 말이야."

"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알겠어요."

처음 이 사무실에 왔을 때를 떠올린다.

다른 곳에서 전부 거절당하고 소녀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곳을 찾았다.

하은이 열심히 설득한 덕분에 지후가 자신들을 받아들여 주었다.

"하지만 전 딱히 절실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요?"

지후가 자신들을 맡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혜민은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 사람도 곧 자신들에게 질려서 버리겠지?

그렇게 지후를 의심했다.

물론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지만.

"뭐, 너희들은 절박함을 넘어서 포기하는 느낌이긴 했지."

그 말에 뜨끔했다.

역시 눈치챘나?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너희한테도, 나한테도 좋은 결과가 나왔잖아."

"그건 그렇지만요."

간단히 대답하지만, 사실 혜민에게는 또 다른 변화가 있다.

…물론 그걸 말할 생각은 없다.

"아무튼 내가 볼 때는 은지는 그런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아."

지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굳이 아이돌이 아닌 다른 일을 하더라도 최고를 목표로 하는 아이라고 봐."

"걔가 최고가 되었다가는 아랫사람이 못 버틸걸요."

"그러게. 그걸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사회 생활하는 게 힘들어지기는 하겠어."

지후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 이상은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듯이.

"아무튼 상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혜민은 잔을 비운 후, 지후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얘기가 좀 길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후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어서 충분히 만족스럽다.

"아냐. 그럼 갈까? 데려다줄게."

"네? 괘, 괜찮은데…."

"무슨 소리야. 이렇게 늦은 시각에 여자애 혼자 보낼 수는 없잖아."

지후는 옷을 챙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 그의 배려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착잡하게 느껴진다.

만약 다른 멤버가 이랬다고 해도, 지후는 마찬가지로 바래다줬겠지.

혜민이 특별한 게 아니다.

"뭐해? 안가?"

혜민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지후는 벌써 사무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한다.

"가, 가요!"

혜민도 서둘러 뒤를 따라나선다.

마음은 복잡하지만, 그래도 기쁜 건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지후와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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