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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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첫 촬영일2021.02.15.
"안녕하세요."
촬영장에 들어선 미나가 인사를 건넨다.
지나가던 스태프들과 서로 고개를 숙인다.
"어서 와요."
감독이 미소 지으면서 다가온다.
"오늘 잘 부탁합니다. …그런데 저 뒤에 있는 사람은요?"
"처음 뵙겠습니다. 미나와 같은 프리마 스텔라의 멤버인 조연아라고 해요."
연아가 활짝 웃으면서 감독에게 고개를 숙인다.
"아, 네."
감독은 어중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무슨 볼일이라도?"
"볼일까지는 아니고요. 저희 멤버 중에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게 처음이라 좀 걱정이 돼서요. 그래서 매니저 언니 대신 왔어요."
"아, 아니. 뒤에 소속사 사장님이 있는데요."
감독이 자신을 가리키자, 지후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멤버가 영화에 출연한다고 따라오는 아이돌이 어디 있을까?
지후도 말렸지만, 연아는 막무가내로 따라오겠다고 떼를 썼다.
그 이유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로 말이다.
"촬영에 방해가 될 행동은 저~얼대 하지 않을 테니까요. 안심하셔도 돼요."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이 연아가 있는 걸 허락한 감독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스태프가 모여 있는 장소로 향한다.
"어라? 의외로 허락이 쉽게 떨어졌네?"
미나가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리 같은 팀의 멤버라지만, 이렇게 간단히 허락이 나올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겠지."
멀어지는 감독의 뒷모습을 보면서 연아가 말한다.
"연아야."
지후가 부르자, 연아는 바로 돌아본다.
"대체 오늘 촬영장에 따라오겠다고 한 이유가 뭐야?"
미나를 데리러 갔을 때도, 이곳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몇 번이나 물었다.
하지만 연아는 영화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뻔한 거짓말로 넘겼다.
"사실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거 아냐?"
"그렇게 듣고 싶으세요?"
연아가 지후의 앞으로 다가온다.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미는 바람에 지후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다.
"사장님이 다른 애들만 신경 쓰시고, 전 매번 내버려 두시잖아요."
연아가 못마땅한 눈으로 지후를 노려본다.
그러다가 침울해지면서 고개를 숙인다.
"저도 사장님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아, 아니. 널 내버려 둔 건 아니고…."
자신과 함께 있고 싶었단 말에 지후는 어쩔 줄 몰라 한다.
혼낼 수도 없고 어쩌지?
"어, 어쨌든 촬영을 방해하지 마. 그리고 네가 네 입으로 매니저 대신이라고 했으니까, 미나 서포트 잘해주고. 난 다른 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게."
그렇게 말한 지후는 서둘러 촬영장을 나선다.
"도망갔네."
멀어지는 지후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나가 중얼거린다.
"어휴, 정말!"
연아가 볼을 잔뜩 부풀리면서 분통을 터뜨린다.
같이 있고 싶다고 말했는데, 가버릴 줄이야.
나중에 불평을 잔뜩 늘어놓을까 보다.
"표정 관리 좀 해."
미나가 옆에서 한마디 한다.
"지금 네 얼굴, 팬들이 보면 바로 정떨어진다고 할 정도야."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연아가 자신의 뺨을 살짝 친다.
"너무 사장님 괴롭히는 거 아냐?"
"오해받을 소리 하지 마."
연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미나를 노려본다.
"좀 심술부린 것뿐이야. 이 정도는 애교로 넘길 수 있잖아?"
"그건 네 생각이지."
미나가 맞받아치자, 연아는 콧방귀를 뀐다.
"그래서? 이선경이란 사람은 어딨어?"
연아는 두리번거리면서 선경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선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안 온 거 아닐까?"
'나 참, 이제 촬영 시작할 시간인데 지금까지 안 오면 어쩌자는 거야?"
연아가 툴툴거린다.
"그런데 그 여자 봐서 뭐 하려고?"
"뭐긴, 내 앞에서도 그 사람에게 작업을 걸려고 하면 본때를 보여주려는 거지."
"역시나."
예상한 답이 나오자, 미나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지난주 영화 제작 발표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서, 있었던 일을 멤버들에게 얘기해주었다.
선경이 지후에게 작업 걸었단 얘기에 다들 표정이 굳어졌다.
특히 연아의 눈에서 격렬한 분노가 느껴졌다.
"부탁이니까 먼저 달려들지 마."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연아는 여전히 살벌한 눈으로 선경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정말 괜찮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는 미나에게 스태프가 다가온다.
"유미나 씨, 의상하고 메이크업 받으러 이동하시죠."
"아, 네."
미나가 스태프와 함께 이동하는데, 뒤에 연아가 따라온다.
"넌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아?"
미나가 돌아보면서 말하는데, 연아는 고개를 젓는다.
"일단은 매니저 대리니까, 널 혼자 가게 하는 것도 이상한걸."
사실은 혼자 남아 있다가, 선경의 얼굴을 보자마자 달려들 거 같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걸 옆의 스태프 때문에 꾹 참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의상실로 향한다.
"이걸로 갈아입으세요."
의상 담당자가 미나에게 의상을 건넨다.
상의와 무릎까지 오는 치마다.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나온 다음, 연아에게 묻는다.
"어때?"
"평범하네."
딱히 눈에 띄는 디자인은 아니다.
하지만 미나가 맡은 역은 후반부에 임팩트를 주는 역할이기에 첫 장면에서는 크게 튀지 않는다.
그렇기에 평범한 의상이 준비된 거겠지.
그 뒤로 메이크업까지 받은 다음,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온다.
"뭐야? 아직도 이선경이란 사람은 안 왔어?"
연아가 선경을 찾지만, 여전히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도착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겼다.
"이거 완전 지각 아냐?"
"응."
이번에 찍을 장면이 미나와 단둘만 나온다고 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한 모양이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연아는 감독에게 향한다.
"감독님, 오늘 미나와 같이 촬영할 배우는 아직인가요?"
원래는 미나가 말해야겠지만, 지금은 매니저 대리인 연아가 나서기로 한다.
"미안합니다."
연아의 항의에 감독이 대뜸 사과부터 한다.
"아까 연락했는데, 지금 오는 중이라네요.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요?"
"지금 오고 있다고요!?"
연아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쪽에는 촬영이 몇 시에 시작된다는 걸 알려주신 거 아니었어요?"
"무, 물론 알려줬죠."
"그런데 이 무슨…."
"연아야."
그때, 촬영장에 돌아온 지후의 한마디에 연아가 놀라 돌아본다.
"감독님께 항의하지 마. 잘못한 건 감독님이 아니잖아."
"그래도요!"
연아가 항변하려는 걸 지후가 손을 들어 막는다.
그리고 감독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연아가 무례를 저질러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본 연아가 인상을 찡그린다.
이런 식으로 지후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원인은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마음에 안 든다.
"아뇨, 괜찮습니다."
감독은 손을 내젓는다.
"배우를 너무 기다리게 하면 배우의 매니저들이 항의하는 건 당연하지요."
그러더니 연아를 보면서 싱긋 웃는다.
"조연아 씨가 이미나 씨의 매니저 역할에 충실하다는 걸 잘 알게 되었어요. 같은 팀의 멤버를 소중히 여기는 모양이군요."
"연아 얘는 절 위해서가 아니라…. 읍!"
미나가 감독의 오해를 풀려고 하던 그때, 연아가 입을 막아버린다.
그리고 조용히 입 다물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낸다.
"아하하, 정말 사이가 좋군요."
"아, 예. 그렇죠, 뭐…."
저 모습이 어딜 봐서 사이가 좋다는 걸까?
지후는 감독의 시력이 괜찮은 건지 의심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가기로 한다.
"안녕하세요."
그때, 입구에서 선경의 모습이 보인다.
주변의 스태프들이 지각한 그녀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 시선에 선경의 뒤를 따라오던 남성 매니저는 어쩔 줄 몰라 한다.
하지만 선경은 눈 하나 깜짝 않고는 감독에게 다가온다.
"감독님, 저 왔어요. …어머, 지후 오빠. 일찍 오셨네요."
"아, 네."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일찍 온 게 아니라, 선경이 늦게 온 거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눈치다.
"저기요."
미나를 내버려 두고 다가온 연아가 입을 연다.
"지금 몇 시인 줄 아세요? 촬영 시작할 시간을 이미 넘긴 뒤라고요. 겨우 나타난 주제에 다른 사람에게 조금도 미안하지 않나요?"
"여, 연아야!"
대뜸 시비를 거는 연아를 지후가 말리려 한다.
하지만 연아는 지후의 만류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지후가 선경을 감싸는 거라 여긴 건지, 더욱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그쪽 때문에 몇 명이 피해를 본 줄 아시기는 해요?"
자신을 향해 쏘아대는 연아를 본 선경이 인상을 찌푸린다.
"너는 뭐야?"
"저요? 전 여기 있는 유미나와 같은 프리마 스텔라의 멤버인 조연아예요."
"아~."
연아의 이름을 듣자마자, 선경은 누군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그 유명한 조연아구나."
"절 아시나 보죠?"
"그럼. 얼마 전 TV에서 봤어. 랭킹 매기는 프로그램에서 현재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 중 보컬 실력이 뛰어난 사람 랭킹을 만들어서 보여주더라고. 그 1위가 바로 너였지."
어라?
지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랭킹 매기는 콘셉트의 예능 방송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연아가 나왔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보컬 실력이 1위라니, 역시 연아다.
"아, 그런 게 있던가요?"
연아는 흥미 없다는 듯이 넘겨버린다.
그러자 선경이 발끈한다.
"정말이지, 유미나 쟤도 그렇고, 너도 어른을 대하는 태도가 형편없네."
"하!"
코웃음 친 연아가 다시 선경을 노려본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형편없다고 말하는 거죠? 애초에 그쪽이 먼저 지각한 걸 사과 안 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새파랗게 어린 게 누구한테 훈계야!?"
선경이 버럭 화를 내자, 촬영장 내부의 공기가 싸늘해진다.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어쩔 줄 몰라 한다.
"연아 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지후가 연아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본다.
"왜 감독님께서 나서지도 않는 일에 네가 나서?"
"그래도…!"
"아까 네가 말했지? 촬영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지금 네가 한 게 뭐야? 상대 배우랑 싸우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잖아?"
지후가 야단치자, 연아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한다.
잘못을 한 건 선경인데, 왜 지후는 자신을 혼내는 걸까?
너무 분하고 억울하다.
"네가 한 말을 어겼으니까, 촬영장에 있을 자격 따윈 없어. 차에 가서 얌전히 반성해."
지후의 단호한 말에 풀이 죽은 연아는 터덜터덜 촬영장을 빠져 나간다.
"저기, 지후 씨…."
감독이 어렵게 입을 연다.
아무리 그래도 좀 너무하지 않았냐는 말을 하려는데, 지후가 그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숙인다.
"정말 죄송합니다. 연아가 자꾸 폐를 끼치네요."
"아, 아니. 그건 괜찮은데…."
지후가 먼저 선수치는 바람에 감독은 더 이상 뭐라 하지 않는다.
"지후 오빠. 사람 좋은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강단도 있으시네요."
선경이 지후를 향해 활짝 웃는다.
자신을 편들어주었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이선경 씨."
하지만 지후가 차가운 시선을 보내자, 선경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연아가 말이 심하기는 했지만, 틀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건 이선경 씨도 잘 아실 겁니다."
애초에 이 사단의 원인은 선경이 지각한데다가 사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경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지후는 이런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진짜 혐오한다.
"촬영 첫날부터 이러면, 다음은 안 봐도 뻔한데요."
"그, 그런 일은 없어요. 오늘만, 진짜 오늘만 지각한 거니까요."
선경이 필사적으로 변명하기 시작한다.
"오늘만?"
지후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옆에 있던 감독이 제발 거기까지만 하라는 시선을 보내는 바람에 그 이상 추궁할 수가 없다.
"하아…. 일단 여기 계신 모든 분께 사과부터 하세요. 그리고 다시는 지각하지 마시고요."
"네, 네…."
지후의 기세에 눌린 선경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감독을 향해 고개를 조아린다.
"오늘 지각한 건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촬영해야 하니까, 의상부터 입고 오시죠."
그렇게 선경이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면서 의상실로 향한다.
그리고 다른 스태프들에게는 선경의 매니저가 일일이 사과한다.
"후우…."
일단락했네.
지후가 한숨 돌리는데, 미나가 다가온다.
"사장님, 오늘도 한 건 하셨네요."
지후가 화를 내는 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정말 무섭다.
"화, 화낸 건 아니야. 그저 상황을 정리했을 뿐인걸."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 하지 마세요."
미나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지후를 노려본다.
"지금 상황을 본 사람 전부 사장님이 화낸 걸로 보였을 거예요."
지후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자신을 보면서 서로 속닥이던 스태프들이 지후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면서 자리를 뜬다.
"하아…."
의도치 않게 일을 저질러 버렸다.
"게다가 연아 일도 그래요."
연아 얘기가 나오자, 지후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혼낸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연아에게 상처를 줬다.
나중에 꼭 사과해야지.
"그럼 촬영 준비 들어갑니다!"
감독의 외침에 주위가 바쁘게 돌아간다.
"유미나 씨, 잠깐 이쪽으로 와보세요."
"네."
감독의 부름에 미나가 그쪽으로 향한다.
혼자 남은 지후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촬영, 괜찮을까?"
첫날부터 이 모양인데, 앞으로 잘 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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