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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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안무단에 방문하다2021.02.21.
"여기예요?"
혜민은 눈앞에 있는 건물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지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5층 건물이다.
"진짜 여기에 안무단 사무실이 있는 거예요?"
"그렇다니까."
지후는 쓴웃음을 짓는다.
의심도 많네.
그래도 이해는 간다.
과거에 같이 협업한 안무단은 훨씬 화려한 곳이었겠지.
그에 비하면 여기는 허름해 보인다는 걸까?
"저기 간판이 있잖아."
지후는 건물의 벽에 붙어있는 여러 개의 간판 중 하나를 가리킨다.
「정태식 안무단 B1F」
그렇게 적혀 있다.
"B1F라는 건 지하층이라는 거죠?"
"맞아."
대답한 지후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데, 혜민이 당황한다.
"자, 잠깐만요. 같이 가요!"
서둘러 지후의 뒤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계단 끝에는 지하층과 연결된 문이 있었다.
열려 있는 문 안으로 지후가 먼저 들어서고, 혜민도 바로 뒤따른다.
그러자 사방의 벽이 거울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인다.
"실례합니다."
지후의 부름에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쳐다본다.
그중 한 남성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왔어? 오랜만이네."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지후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게. 거의 1년만인가?"
지후 역시 그의 손을 맞잡고는 미소 짓는다.
그 모습에 혜민은 상대방이 누군지 깨닫는다.
아이돌을 그만두고, 안무단을 세웠다던 그 사람이구나.
"아, 네가 이혜민이구나."
남성은 뒤에 있던 혜민을 보고는 얼굴이 밝아진다.
그리고 혜민에게도 손을 내민다.
"만나서 반가워. 정태식이라고 해. 지후와는 친구 사이니까, 부담 갖지 말고 대해줘."
"아, 네…."
대답과는 달리, 혜민은 잔뜩 경계하는 시선으로 태식을 바라본다.
그리고 지후에게 슬쩍 귓속말한다.
"사장님, 이분 괜찮은 거 맞죠?"
"그게 무슨 뜻이야?"
대뜸 사람 얼굴을 보자마자 괜찮냐니, 이런 실례가 또 있을까?
지후가 이해하지 못하자, 혜민이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전에 뵀던 임준혁 같은 사람이 아니냐고요."
준혁의 이름이 나오자, 지후의 표정이 굳어진다.
"임준혁?"
그 이름에 태식 역시 눈을 치켜세운다.
그러더니 가늘게 뜬 눈으로 지후를 노려본다.
"지후 너, 임준혁이랑 아직도 연락하고 있어?"
"그분을 아세요?"
혜민의 질문에 태식은 고개를 끄덕인다.
"같은 시기에 활동을 했으니까. 하지만 친하진 않았어. 경박하고, 허세도 심한데다가, 여자까지 밝혀댔거든."
"역시 그랬군요."
혜민은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근본이 망나니였네.
왜 그런 사람과 지후가 친구였는지 의문이다.
슬쩍 지후를 쳐다보았다.
"끙…."
혜민의 시선을 눈치챈 지후가 어깨를 움츠린다.
그러자 태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보나 마나 제대로 된 친구 한 명 없는 게 불쌍해 보여서 내치지 못한 거지? 정말 인정이 넘쳐서 탈이라니까."
"아~."
납득한 혜민은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그런 이유에서였나?
정말이지, 지후의 사람 좋은 건 천성인 모양이다.
"난 임준혁이랑은 다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태식이 혜민을 향해 싱긋 웃는다.
초면이라 뭐라 말하긴 어렵다.
그래도 혜민의 눈에는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태식이 얘는 진짜 괜찮은 녀석이야."
혜민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건지, 지후도 한마디 한다.
"그러니까 결혼도 빨리 했지."
"네? 기혼자세요?"
"응. 아내는 저기 있어."
태식이 돌아보자, 이쪽의 얘기를 듣고 있던 한 여성이 손을 흔든다.
사람 좋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그녀를 향해 혜민은 고개를 숙인다.
기혼자라고 해서 무조건 안심할 수는 없다.
그래도 늘 곁에 붙어있는 이상,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래서 우리 안무단에 들어오고 싶다고?"
그의 말에 지후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아직 프리마 스텔라가 활동 중이라서 보결 단원으로 들어가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디야?"
태식은 자신의 손을 마주 잡는다.
"TV로 혜민이가 춤추는 걸 봤는데, 대단하던걸? 나도 이제껏 댄서나 안무가를 잔뜩 봐왔지만, 그런 실력은 처음이야."
태식의 열변을 지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고개만 주억거릴 뿐.
혜민이 과거에 댄싱퀸이라 불린 이혜연이니, 이 정도 반응은 당연하지.
"꼭 이혜연을 보는 기분이란 말이지."
하지만 그 말에 지후와 혜민의 등골이 오싹해진다.
서, 설마 눈치챈 건가?
슬쩍 태식의 얼굴을 보았다.
"아, 지금 애들은 이혜연을 모를까?"
이혜연의 설명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태식의 모습을 보고 지후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행히 모르는 눈치다.
"아, 아뇨. 이름 정도는 알아요."
설명은 필요 없다고 혜민이 손을 내젓는다.
자신이 이혜연이라는 걸 눈치 못했다는 사실에 안도한 모양이다.
"그 사람에 대해서 아시나 봐요?"
"물론이지! 내가 춤을 시작한 계기니까."
태식의 눈이 반짝인다.
그가 이혜연이란 이름을 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우연히 TV에서 이혜연 사망 10주년을 기념하는 방송이 나오는 걸 봤다.
과거의 학교 폭력, 연이은 사람들과의 불화, 그리고 화려한 경력.
그 모든 게 태식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춤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지나가더라. 댄서가 돼야 한다고."
마치 계시라도 받았다는 말에 혜민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과거의 자신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눈앞의 태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네 과거 얘기는 됐어."
지후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태식의 말을 자른다.
지금 얘기는 몇 번, 아니, 몇십 번도 넘게 들었다.
그래도 좀 놀랐다.
설마 계기가 된 게 이혜연일 줄이야.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계기가 된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려고 하면 꼭 일이 생기는 바람에 못 듣기는 했지.
"아, 미안. 쓸데없는 얘기를 늘어놨네."
머쓱해진 태식은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인다.
"아무튼 혜민이 네가 우리 안무단에 들어와 준다면 대환영이지."
"정말요?"
"그럼. 아직 우리가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니라서 단원이 많이 부족하거든."
혜민은 태식의 뒤를 힐끔 쳐다본다.
태식의 아내라고 소개한 사람까지 포함해 총 여덟 명.
여기에 보결 단원이 몇 명 더 있기는 하지만, 참여도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사람 수가 적은 게 확실히 메이저로 보기는 힘들다.
"활동은요?"
"두 달에 한 작품씩 대학로의 무대에서 공연을 열고는 해."
그의 안무단은 창작 무용을 선보인다.
단순히 하나의 주제로 춤을 춘다기보다는 대사가 없는 뮤지컬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한다.
"재미있겠네요."
춤과 음악으로만 이루어진 뮤지컬이라는 말이 혜민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렇지?"
혜민의 긍정적인 반응에 태식이 씩 웃는다.
"앞으로 한 달 뒤에 공연을 가질 예정이야. 관심이 있다면 너도 나가볼래?"
"저도 나갈 수 있어요?"
“그럼. 줄거리나 설정 같은 건 정해졌지만, 배역은 아직이거든. 네가 노력하면 배역을 맡아서 공연에 나올 수 있을 거야.”
그러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뒤의 단원들을 바라본다.
"물론 정식 단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야겠지만."
"에이, 단장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맞아요. 아직 입단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그게 부담이 돼서 안 한다고 하는 거 아녜요?"
"어? 그럼 곤란하지. 현직 아이돌이 온다고 잔뜩 기대했는데."
능청스러운 말에 태식과 단원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서로 거리낌 없이 대하는 모습에 혜민도 미소 짓는다.
여기, 좋은 곳이네.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볼게."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지후가 말한다.
오후부터 스케줄이 있다.
바로 돌아가서 다른 멤버들과 함께 이동해야 한다.
"뭐야? 벌써 가?"
태식이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오늘은 인사만 하기로 하고, 다음에 여유가 있을 때 또 올게."
그러자 태식은 혜민을 쳐다본다.
"혜민아, 다음에 올 때는 입단한다고 말해주라."
"괜한 부담 주지 마."
지후는 쓴웃음을 짓는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여기라면 혜민이 활동해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안 그랬다면 여기에 데려올 리가 없다고, 혜민은 생각한다.
"어때? 태식이나 안무단을 본 소감은?"
운전하던 지후가 조수석에 앉은 혜민에게 묻는다.
"잠깐 본 정도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첫인상은 괜찮았어요."
안무단의 가족 같은 분위기도 좋았고, 단장인 태식도 좋은 사람 같다.
"원래 안무단 같은 것은 오디션 보지 않아요? 아까 그런 얘기는 전혀 없던데요."
"있기는 한데, 너 온다는 얘기를 듣고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을 봐둔 거 같아."
그 정도면 오디션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라 말을 안 한 거 같다고 지후는 말한다.
"가능하면 안무단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어렵겠죠?"
두 달에 한 작품, 열흘간 공연을 선보인다고 들었다.
즉, 지금은 공연 중이 아니라는 뜻이다.
"직접 보는 건 힘들겠지만, 공연한 영상 정도는 있지 않을까? 나중에 한 번 물어볼게."
"네."
그렇게 대답한 혜민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직 입단을 결정하는 건 빠르다.
그래도 혜민의 마음은 입단 쪽으로 기울고 있다.
안무단의 분위기도 그렇지만, 지후가 소개해줬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사장님은 안무단이 공연하는 걸 보신 적이 있으세요?"
"응. 전부는 아니지만, 시간이 생길 때마다 보러 가곤 해."
"사장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땠어요?"
"괜찮았어. 적은 인원이라서 그런지, 밀도가 높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수준이 높더라고."
"흐음~."
지후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대충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정태식이란 분은 어떤 사람이에요?"
일단 첫인상은 합격이었다.
그래도 그게 전부라고 할 수 없어서 지후에게 묻는다.
"아까도 말했듯이 괜찮은 녀석이야."
두 사람이 탄 차는 앞차를 따라 크게 우회전한다.
중요한 구간이기에 지후는 앞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붙임성도 좋고, 책임감도 강하거든. 뭐, 가끔은 그 책임감 때문에 아내가 고생하는 거 같기는 하지만."
"고생이요?"
"네가 봤을 때도 안무단이 작았지?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문제가 생겨서 공연에 빠지게 되면 그걸 메꾸느라 난리라고 하더라."
"어떻게 메꾸는데요?"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서 섭외한다던데. 물론 실력 있는 사람을 세워야 하니까, 출연료 협상에 애를 먹는다고 들었어."
확실히 태식, 단장의 아내 입장에서는 고생할 법하다.
그렇게 작은 안무단의 공연이라면 큰 수익이 나지 않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 적은 수입으로 단원들 몫까지 나누다 보면 부부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얼마나 될까?
그 와중에 출연료가 높은 사람이라도 나타나면 그 돈도 남지 않겠지.
"그래도 인간성이 좋아서 단원들이 남아 있기는 해."
그 얘기를 들은 혜민이 미묘한 표정으로 지후를 쳐다본다.
정작 지후는 운전하느라 앞만 보고 있다.
자신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그 모습에 혜민은 작게 한숨을 내쉰다.
"하아…. 사돈 남 말 하고 계시네."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혜민은 시치미를 떼면서 고개를 돌린다.
방금 건 마치 지후의 얘기처럼 들렸다.
책임감 강하고, 인간성이 좋아서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점이 똑같다.
닮은 점이 있어서 친구로 지내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역시 입단 쪽에 무게를 두게 된다.
어느새 차는 숙소에 가까워지면서, 혜민의 시선에 저 멀리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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