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118
#
118. 새로운 자극에 대한 고민2021.02.27.
"이번 게스트는요. 프리마 스텔라의 정유진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정유진입니다~!"
유진이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으면서 인사한다.
그러자 MC들이 손뼉을 치면서 맞아준다.
"네, 오늘은 정유진 씨와 함께 진행할 건데요. 유진 씨, 평소 저희 방송을 즐겨보나요?"
"물론이죠. 저희 멤버들 말고 다른 연예인은 어떤 생활을 하는지 관심이 많거든요."
"어머, 그래요?"
MC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예의상 한 말로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사실 유진은 방송을 본 적이 없다.
게스트 출연이 정해지고 나서 어떤 방송인지 확인하려고 인터넷으로 영상 몇 개 본 정도다.
"정유진 씨는 프리마 스텔라의 다른 멤버들과 같은 숙소에서 지내고 있죠? 평소에는 어때요?"
"저희는 기본적으로는 개인 취향을 존중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드라마 시작할 시간만 되면 다들 TV 앞에 모이긴 하지만요."
"아하하, 멤버들이 드라마를 좋아하나 보네요."
"진짜 좋아해요. 만약 스케줄 때문에 못 본다고 하면 유료 결재를 해서라도 꼭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오늘 유진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보는 리얼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다른 멤버들 없이 혼자다.
그래도 겁먹지도, 긴장하지도 않은 모습으로 방송에 임한다.
"그럼 유진 씨와 함께 가볼게요."
"고, 고, 렛츠고~!"
유진의 추임새에 스튜디오에 웃음이 터진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를 방송하는 내내 이어갔다.
"실례합니다."
대기실 문이 열리면서 지후가 고개를 내민다.
'아, 사장님."
지후의 얼굴을 본 유진이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뗀다.
"유진이 너 혼자야?"
"네, 다른 분들은 다 가셨거든요."
그러자 지후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미안해. 내가 좀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걸."
"에이, 괜찮아요. 그렇게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닌데요. 얼른 가요."
유진이 지후의 등을 밀면서 가자고 보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몸을 싣는다.
"미나는 어때요? 오늘은 영화 홍보 인터뷰를 하는 날이죠?"
"너 데리러 오느라 끝까지 못 봤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좋더라."
지후는 시동을 걸어 바로 차를 출발시킨다.
"지금은 영화 촬영도 순조롭고, 다른 배우들과도 그럭저럭 잘 지내니까."
"그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은 알아요? 미나가 어떤 성격인지."
"으음~. 아마 모를 거야."
미나는 원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같은 처지인 멤버들이나 믿고 따르는 지후 외에는 진심을 들려주지 않는다.
참고로 하은은 생각을 바로 알아채기에, 미나도 굳이 말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모양이다.
"그럼 미나가 4차원인 걸 아는 사람이 없겠네요."
"그렇겠지."
미나가 맹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눈치는 빠르다.
게다가 연기력도 대단해서 카메라 앞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연기할 수 있다.
단지 지후와 멤버들에게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안 하는 거다.
"영화 촬영이라, 부럽네요."
갑자기 유진이 조수석 창가에 머리를 기댄다.
표정도 울적해 보인다.
"왜? 장기적인 스케줄이 있는 게 부러워?"
"그것도 있지만요."
유진은 잠시 말을 고른다.
"그 이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게 부러워요."
그 말에 지후도 숙연해진다.
현재 개인 활동이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건 유진뿐이다.
똑같은 고민을 했던 혜민은 안무단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아직 영화 촬영에 들어가지 않은 연아는 피아노와 작곡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그냥 저만 갈 길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 유진이 너는 인터넷 방송도 하고 있는걸."
유진의 개인 채널과 프리마 스텔라 홍보 채널, 그 두 개를 하고 있다.
각 채널의 구독자는 오만 명이 넘는 걸로 안다.
그 정도면 다른 스케줄을 할 필요가 없지 않나?
"홍보 채널은 그렇다 쳐도, 제 개인 채널은 이제 힘들 거 같아요."
"왜?"
"예전과는 달리, 조회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요."
유진의 개인 채널은 잡지에 나올만한 스타일을 보세 의류로 표현하는 게 콘셉트다.
주 1회씩 영상을 꼭 올리고는 있지만, 조회수가 예전 같지 않다.
"시청자들도 뭔가 색다른 걸 원하고 있더라고요."
지후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색다른 거라, 뭐가 있을까?
"그것보다 유진이 너는 어때? 계속 인터넷 방송을 하고 싶어?"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고 지후는 감을 잡는다.
시청자뿐만 아니라, 유진 역시 질렸다.
그래도 지금까지 꾸준히 운영해온 건 채널에 애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콘셉트를 바꿔보는 건 어때?"
"으음~. 어떨까요?"
유진은 고민하는 눈치다.
거부감이 드는 게 아니다.
어떤 콘셉트를 하면 좋을지 모르는 눈치다.
"그 전에 인터넷 방송에 큰 신경을 써도 돼요?"
"상관없어."
대답이 바로 나온다.
"소속사 사장님께서 인터넷 방송, 그것도 개인 방송에 더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주시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유진이 쓴웃음을 짓지만, 지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지금이라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다른 멤버들이 개별 활동을 하는 지금, 뭔가를 할 기회다.
뭐라도 좋으니까 유진이 좋아하는 걸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도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요."
유진이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다.
"요즘 예능 방송의 게스트로 나가면서 생각하는 건데요. 만약 과거의 제가 있더라도 전처럼 잘할 거 같지 않아요."
"무슨 소리야."
유진은 과거에 정세진이란 이름으로 예능계의 대표주자로 불렸다.
요즘 뛰어난 예능인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유진이 빠지는 것도 아니다.
"네가 게스트로 나오면 그 방송, 시청률이 평소보다 훨씬 올라간다고. 다른 예능 PD들이 너한테 러브콜도 잔뜩 보내고 있어."
농담도, 그냥 기분 좋은 빈말도 아니다.
유진의 예능감이 굉장한 탓에 어느 방송에 나가도 재미있게 이끌어간다.
그걸로도 대단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신감이 부족할까?
"그래봤자 제가 들러리인 걸요."
많은 예능 방송에서 불러준다고 해도, 어차피 한 번으로 끝날 일이다.
그런 일에 애착을 가질 수가 없다.
"애착 말이지."
운전하면서도 잠시 생각에 잠긴다.
확실히 게스트로 활동하는 걸로는 유진의 의욕을 끌어낼 수 없다.
역시 인터넷 방송이 답인가?
"유진이 너는 뭘 좋아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진이 좋아하는 게 뭘까?
여태까지 모르고 지낸 거 같다.
"음~. 하나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요."
유진이 허공에 시선을 두고는 말을 이어간다.
"다른 사람이랑 수다 떠는 것도 좋고요. 아기자기한 잡화 모으는 것도 좋아해요."
그 외에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나 소품 같은 걸 만드는 것도 즐긴다고 한다.
"취미가 많네."
이러니 타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가도 만족스럽지 않지.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본 이유는 그걸 콘셉트로 삼으라고 조언하려 했다.
하지만 그걸 다 해보라는 것도 이상하다.
"그럼 지금 해보고 싶은 건 없어?"
질문의 방향을 돌리기로 한다.
"해보고 싶은 거요? 으음~."
유진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이렇다 할 게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
한참을 기다려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모르겠어요."
결국 울상 지으면서 항복 선언을 한다.
그러자 지후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이래서는 조언해주기도 어렵다.
하는 수 없이, 지후가 정해줘야 할 듯싶다.
"지금 관심 가지고 있는 건?"
"아, 그거요?"
이번에는 대답할 수 있는 건지, 유진의 얼굴이 밝아진다.
"요즘에는 인형 옷에 관심 가지고 있어요."
"인형 옷?"
"네. 전에 베이비돌을 하나 샀는데요. 걔한테 잘 어울리는 드레스 같은 걸 만들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에 찍힌 인형 옷 사진을 보여준다.
"대단한데."
얼핏 봐도 공들여 만들었다는 게 느껴지는 완성도다.
전에 공식 굿즈를 만들 때도 생각했지만, 유진의 손재주는 장난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면 어떻게 해?"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리곤 해요."
유진은 프리마 스텔라 멤버로서 사용하는 것 외에 정체를 숨긴 채 사용하는 게 더 있다.
거기에 올린다는데, 많은 사람이 봐준다고 한다.
"그걸 인터넷 방송에서 보여주는 건 어때?"
"안 돼요. 의상 하나 만드는 데 며칠이 걸리니까요."
그런가?
생각해보면 인형 제작도 며칠은 걸렸으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으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유진이 고개를 푹 숙인다.
"죄송해요."
"응? 뭐가?"
"제가 억지 부리는 걸로 사장님께서 고민하고 계시잖아요."
자신을 위해 생각해주는 건 고맙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고민하는 지후를 보고 미안함이 커졌다.
"저, 당분간은 게스트 출연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 들은 지후가 측은한 표정을 짓는다.
"에이, 그런 표정 하지 마세요."
유진이 밝게 웃는다.
"사장님께서도 그러셨잖아요. 제가 출연하면 시청률 잘 나온다고."
"그래. 유진이 너라면 잘하는 거 아니까, 걱정 안 할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후의 얼굴은 여전히 어둡다.
그 모습에 유진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쓸데없는 말을 했네.
이렇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럼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말해."
끝내 결과를 내지 못한 게 아쉬웠는지, 지후는 그렇게 말한다.
"네, 그렇게 할게요."
유진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화는 마무리된다.
"아, 저기 혜민이가 있는데요."
길가에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혜민이 보인다.
그 앞에 차를 세우자, 뒷문을 열고 혜민이 올라탄다.
"오래 기다렸어?"
"아뇨, 금방 나왔어요."
혜민이 뒷문을 닫자, 차가 출발한다.
"오늘 연습은 어땠어?"
"괜찮았어요. 첫 연습이라 그런지, 다들 의욕이 굉장하더라고요."
"거기 사람들은 어때?"
"잘 해줘. 부단장님을 누르고 배역 따냈다고 무시하는 사람도 없고."
안무단에서 잘해나가는 거 같다.
"유진이 너는 어때? 오늘 예능 방송에 게스트로 나갔다고 했지?"
"응, 재밌게 하고 왔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평소보다 기운이 없다는 걸 혜민은 눈치챈다.
하지만 이유를 묻지 않는다.
"이제 미나를 데리러 가면 돼요?"
유진의 질문에 지후가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영화 주연을 맡게 되면 정신이 없기는 하네."
혜민은 시트에 몸을 기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오늘 미나는 촬영이 아닌, 영화 홍보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주역 배우가 바뀌었다는 게 세간에 알려지면서 영화와 주연을 맡은 미나를 향한 관심이 쏟아졌다.
"보통 인터뷰는 영화 제작 전이나 촬영을 전부 끝낸 다음에 하지 않아?"
"미나로 주연이 바뀌면서 영화 언제 개봉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거든."
유진은 스마트폰으로 미나와 영화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본다.
아직 미나의 인터뷰 기사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많은 인터넷 뉴스에서 미나가 주역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어느 기사나 영화 개봉일은 미정이라고 덧붙인다.
"어떻게 말해? 촬영이 아직 안 끝났는데."
"그러게."
유진은 스마트폰 화면을 끈다.
"오늘 수지랑 하은 언니는 늦게 오지?"
"응, 그래서 연아가 저녁 만들어준대."
"사장님, 혹시 연아가 전화했어요?"
"그래, 같이 저녁 먹자더라."
"오호~."
그 말에 유진이 눈을 반짝인다.
"그럼 오늘 저녁 기대할 만한데."
"하긴, 연아 걔가 사장님이랑 같이 저녁 먹기로 한 날은 솜씨 발휘하니까."
"그, 그래?"
그냥 평소대로 준비해줘도 되는데.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녁 메뉴가 뭔지 궁금해진다.
그런 기대감을 안고 미나가 있는 곳을 향해 계속 이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