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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165화 (165/206)

#   165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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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2021.04.21.

"여기야."

파주출판도시.

한국의 어지간한 출판사가 모여 있는 이곳에 지후와 미나가 방문했다.

"이 건물이에요?"

조수석에서 내린 미나가 눈앞의 건물을 올려다본다.

하얀 시멘트벽이 인상적인 3층 건물이다.

여기가 오늘 방문하기로 한 출판사다.

"후우…."

미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한다.

"긴장돼?"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지후가 묻는다.

"네, 좀…."

이렇게까지 긴장해본 적이 있을까?

아이돌이나 배우가 아닌, 작가로서 여기에 왔다.

과연 어떤 평가를 듣게 될까?

기대가 되면서도 두렵다.

"괜찮을 거야."

지후가 등을 토닥여준다.

"네 동화는 정말 재미있었어. 분명 출판사 쪽에서도 그렇게 생각해서 연락했을 거야."

"그렇겠죠?"

미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전화할게."

지후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전화를 건다.

출판사 앞에 도착하면 연락을 주기로 전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건물 안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온다.

"문지후 씨죠?"

지후보다 연상으로 보이는 여성이다.

보브컷에 안경을 쓰고 있다.

"꿈나눔 출판사의 편집자인 배고은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마친 고은과 지후가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는 지후 옆에 서 있는 미나에게 눈웃음을 짓으면서 손을 내민다.

"유미나 씨도 만나서 반가워요."

"아, 네."

고은이 내민 손을 잡고 악수한다.

"들어오세요."

그렇게 인사를 한 다음, 고은은 두 사람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의 응접실로 안내한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의자에 앉을 걸 권한 고은은 응접실을 나선다.

잠시 후, 쟁반 위에 찻잔을 얹은 채로 돌아온다.

"감사합니다."

찻잔을 받아든 지후는 감사 인사를 전한다.

미나 역시 고맙다고 고개를 숙인 후, 잔을 받는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지후와 미나의 맞은편에 앉은 고은이 말을 꺼낸다.

"보내주신 원고, 잘 봤어요."

그 얘기가 나오자, 미나는 서둘러 찻잔을 내려놓는다.

"어떠셨나요?"

"재밌었어요. 섬세한 감성에 여운도 느껴졌거든요."

긍정적인 평가에 미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쉬운 게 뭐냐면요."

고은은 조심스럽게 화제를 바꾼다.

"동화인 만큼, 아이들이 읽을 수 있게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 말에는 공감할 수가 없군요."

고은의 말을 자른 건 지후다.

"애초에 미나가 쓴 동화는 어린이용으로 쓴 게 아닙니다."

미나는 그저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썼을 뿐이다.

특정 대상에게 읽히고 싶은 목적으로 쓴 게 아니다.

"제가 보내드린 메일에도 적혀 있었을 텐데요. 동화이긴 하지만, 어른을 위한 내용이라고요."

"물론 그렇게 적힌 건 봤어요."

고은은 다소 난처하다는 듯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그래도 저희 출판사는 아동용 동화를 출판하는 곳이라서…."

"이런 말 어떻게 들리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후는 조금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애초에 저희 미나가 동화를 쓰고 있다고 관심을 보인 건 고은 씨 쪽 아니었습니까?"

"그, 그야…."

당황했는지 고은은 말을 잇지 못한다.

자주 동화 삽화 의뢰를 하는 예진에게서 당분간은 일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걸그룹 멤버인 유미나의 동화에 삽화를 그려준다고 했다.

그 말에 큰 관심이 생겼다.

유미나하면 인기 걸그룹 프리마 스텔라의 멤버 중 한 명이면서, 최근 한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 미나가 쓰는 동화라면 큰 화제를 부를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 소속사 사장에게 연락했다.

"동화가 전부 아동용이라고 할 수 없을 텐데요?"

그리고 지금은 그 사장인 지후에게 당하는 중이다.

"그, 그래도 이왕 출판할 거, 저희 출판사의 방향에 맞춰주셨으면…."

"제가 받은 메일에는 꿈나눔 출판사가 어떤 곳인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고은의 애원하는 듯한 시선에도 지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사실 고은의 연락을 받고 난 다음, 꿈나눔 출판사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았다.

아동용 동화책 전문 출판사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는 척하기로 한다.

"만약 아동용 동화책을 전문으로 내는 곳이라고 했다면, 저도 쉽게 미나의 동화를 보내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자신이 실수했다고 고은이 사과한다.

"그, 그래도 출판해서 많은 독자에게 선보이는 게 서로 좋지 않나요?"

"저희 쪽에서도 그게 최선이긴 하죠."

지후는 고은의 말에 긍정한다.

"하지만 저희 목적은 미나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거지, 잘 팔릴만한 걸 쓰려는 게 아닙니다."

그러더니 지후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만약 그런 목적으로 저희 쪽에 연락하신 거라면, 이번 출판 제의는 거절하기로 하죠. 미나야, 가자."

"자, 잠깐만요!"

고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당황한 탓인지, 의자가 뒤로 넘어간다.

"사, 사장님 말씀도 이해해요.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유미나 씨의 생각 아닐까요?"

그러더니 미나에게 시선을 옮긴다.

"어때요? 소속사 사장님과 같은 생각이신가요?"

그 말에 미나는 고은과 눈을 마주친다.

"네, 그 점은 사장님과 의견이 같아요."

지후와 고은이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출판을 목적으로 내용을 아동용으로 고칠까?

아니면, 이대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까?

결론이 나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 출판할 생각으로 그 이야기를 쓴 게 아니거든요."

솔직히 책으로 만든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열심히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했다.

게다가 이번 출판 건이 무산된다고 해도, 지후는 자가 출판으로 책을 내준다고 약속했다.

"굳이 내용을 바꿔가면서 출판하고 싶지는 않아요."

미나의 단호한 말에 고은의 얼굴에서 맥이 빠진다.

그와는 반대로 지후는 흐뭇하게 미나를 바라본다.

"이걸로 출판 제의는 없던 일이 되는 거죠?"

미나마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고은은 서둘러 정신을 차린다.

"자, 잠깐만요!"

"아직 하실 얘기가 더 남았습니까?"

지후는 불쾌하다는 듯이 고은을 쳐다본다.

"시간 좀 주세요."

"시간이요?'

"네.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전 유미나 씨가 쓴 이야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아동용이 아닌 게 신경 쓰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미나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라고 고은은 말한다.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전 평생 후회할 거예요."

말이 좀 과장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지후는 질문한다.

"시간을 드리면 뭐가 달라집니까?"

"저희 사장님을 설득할게요!"

고은은 양손으로 테이블을 힘껏 내리친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그 위에 있던 찻잔이 심하게 흔들린다.

"아동만이 아닌, 더 넓은 연령층에서 읽을 수 있도록."

그렇게 말하는 고은의 눈에서 결의가 느껴진다.

그래서 진심이라는 걸 지후는 알 수 있었다.

"좋습니다."

지후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기다리도록 하죠."

"가, 감사합니다!"

기뻐하는 고은을 향해 지후는 검지를 세운다.

"단, 일주일 안에 연락해 주세요."

"이, 일주일이요?"

기한이 있다는 말에 고은의 표정이 굳어진다.

"저희도 필요 이상으로 시간 낭비는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 말에 고은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그 안에 반드시 허가를 받아낼 수 있도록 할게요."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미팅을 마친다.

고은의 배웅을 받으면서 건물을 나선 지후와 미나는 다시 차에 오른다.

"후우…."

운전석에 오르자마자, 지후가 크게 한숨을 내쉰다.

"사장님, 좀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아하하, 그래 보였어?"

지후가 지친 듯한 미소를 지은다.

그걸 본 미나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고 확신한다.

고은에게 일부러 강하게 나갔다고.

"난 출판 경험이 없지만, 책을 낸 어느 지인이 그러더라고."

출판사에서 에세이를 내자는 제의를 받은 지인은 힘들게 쓴 원고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편집자에게 엄청 트집 잡혔다고 했다.

물론 그 원고가 허술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지인이 보기에는 편집자가 자신의 기를 꺾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모든 편집자가 그런 건 아닌 건 알아. 그래도 네가 열심히 쓴 이야기를 난 무척 재밌게 읽었어."

그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고은이 아동용으로 맞춰달라는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내가 너무 앞서갔나?"

지후는 조심스레 미나의 안색을 살핀다.

미나의 얘기도 듣지 않고, 너무 자신의 의견만 내세운 게 걱정인 모양이다.

그러자 미나는 고개를 젓는다.

"저도 사장님과 같은 의견이라고 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기뻤다.

지후가 그렇게 단호한 태도로 나간 건, 자신이 쓴 이야기를 존중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에 지후가 말하는 동안, 나서지 않았다.

"고마워."

지후가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그럼 갈까?"

"네."

차가 출발한다.

조수석 창문으로 바깥을 쳐다보던 미나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지, 지후를 쳐다본다.

"사장님."

"응?"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북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고 가면 안 돼요?"

사실 파주에 간다는 걸 알고는 기대를 많이 했다.

물론 출판 건도 있었지만, 책이 만들어지는 곳을 방문한다는 게 너무 기뻤다.

"으음, 그럴까?"

자신 때문에 계약이 허탕친 게 마음에 걸렸는지, 지후도 바로 받아들인다.

"그럼 이 주변을 돌아보면서 네가 괜찮다고 생각되는 곳을 말해줘."

"네!"

지후의 허락이 떨어졌다.

신이 난 미나는 창문에 얼굴을 찰싹 붙이고는 괜찮은 북카페를 찾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지후는 웃음을 터뜨린다.

"결국 출판 건은 허사가 되었어?"

주방 식탁 앞에 앉은 연아는 여러 나물을 다듬으면서 묻는다.

"허사까지는 아니고, 좀 기다리는 거야."

맞은편에 앉아 나물 다듬기를 돕던 미나가 대답한다.

"네 생각에는 어때? 그 편집자가 출판사 사장을 설득할 수 있을 거 같아?"

"글쎄?"

미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다.

고은이 어떤 편집자인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출판사의 방향성은 그 대표가 정한다.

원래 아동용 동화책을 내는 꿈나눔 출판사에서 방향을 바꿔서 미나의 동화를 출판한다?

큰 모험인 건 틀림없다.

"그건 그렇고 사장님의 그 모습은 좀 놀랐어."

그러자 연아는 크게 한숨을 내쉰다.

"나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걸."

강하게 나오는 지후를 보지 못한 게 몹시 아쉽다.

자신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싫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얼마나 멋있게 보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눈앞의 미나가 얄미워진다.

"괜히 노려보지 마."

자신이 원해서 본 게 아니다.

그러니 화풀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네가 쓴 이야기는 어떤 내용이야?"

생각해보니, 미나가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연아는 아직 모른다.

지후도 그렇고, 출판사 편집자도 바로 반응을 보일 정도면 재미가 있는 건 확실하다.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보여줄게."

"그러다가 할머니가 될 즘에 나오는 거 아니야?"

"아냐! 사장님께서 그러셨다고. 이번 출판 건이 무산되면 자가 출판을 통해서라도 내주겠다고."

"하아…."

그 말을 듣고 연아가 또 한숨을 내쉰다.

"대체 어디까지 해줄 셈인지 모르겠네."

이런 식으로 자신들에게 다 퍼주면 어쩌자는 걸까?

지후의 그런 점이 너무 걱정되는 연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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