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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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작전 개시2021.04.28.
"아, 배고은 씨. 여기입니다."
저 멀러서 고은의 모습이 보인다.
지후가 팔을 들어 여기에 있음을 알린다.
그러자 고은이 이쪽으로 달려온다.
"헉, 헉…. 죄, 죄송해요."
고은은 거친 숨을 고르면서도 사과한다.
"제가 좀 늦었죠?"
"겨우 5분 늦었는걸요."
많이 늦은 것도 아니니까 미안해할 거 없다.
지후가 그렇게 말하자, 고은이 간신히 고개를 든다.
그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기뻐요."
자신을 배려해준 사실에 감동한 눈치다.
이 정도는 평범한 거 아닌가?
오히려 지후가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유미나 씨는요?"
그제야 미나가 없다는 걸 눈치챈 고은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미나는 먼저 들어갔어요."
지후는 옆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건물 2층에 만나기로 한 식당이 있다.
"정말 이런 곳으로 괜찮으세요?"
고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후가 만나자고 한 곳은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일반 중식당이다.
"저도 프랑스 요리나 고급 한정식만 먹는 건 아니니까요."
사실 그건 미나가 멋대로 말한 거였다.
그냥 묻어두기로 한다.
"들어가죠."
지후는 고은을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사장님, 여기요."
지후와 고은이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미나가 손을 흔들면서 부른다.
"안녕하세요. 미나 씨."
고은이 인사를 건네면서 자리에 앉는다.
"원고 수정은 잘 끝났나요?"
"네, 여기요."
미나는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건넨다.
원래는 미나 자신이 전자책을 읽으려는 용도로 구매했다.
그 안에 원고 파일을 넣어서 볼 수 있게 했다.
"어디…."
"읽기 전에 주문부터 하죠."
지후기 손을 들어 직원을 부른다.
지후는 마파두부 덮밥, 미나는 게살볶음밥, 그리고 고은은 우육면을 주문한다.
"아, 사장님. 여기 레몬치킨이 맛있다고 하던데요."
"그래? 그럼 그것도 주세요."
지후가 미나의 요청을 바로 받아들이자, 고은이 놀라는 눈치다.
그걸 눈치챈 지후는 내심 어처구니없어한다.
고작 이 정도에 놀라다니, 대체 날 얼마나 나쁜 인간으로 생각한 거야?
한마디 하고 싶은 걸 꾹 참느라 힘들었다.
"수정한 건 어때요?"
미나의 질문에 고은은 정신을 차리고 원고를 읽기 시작한다.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 위에 놓이고 나서야, 고은이 고개를 들어 미나를 바라본다.
"좋네요. 이 정도면 출판해도 되겠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중에 원고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면서, 태블릿 PC를 돌려준다.
"감사합니다."
미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한다.
하지만 지후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미나가 몹시 안도하고 있다는 걸.
"그동안 고생 많았어. 어서 먹어."
지후도 싱긋 웃으면서 미나의 등을 두드린다.
그러자 미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게살볶음밥을 먹기 시작한다.
지후도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고은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
"왜 그러시죠?"
"아, 아니에요."
고은은 황급히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먹는다.
그런 고은을 지후는 황당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식사를 시작한다.
"아, 맞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미나가 말을 꺼낸다.
"이번에 동화가 출간되는데, 출간 이벤트 같은 거 안하나요?"
"이벤트요?"
그 말에 고은은 잠시 생각하는 눈치다
아무래도 그런 예정은 없는 모양이다.
"미나 씨는 뭐 하고 싶은 게 있나요?"
"네, 낭독회를 생각하고 있어요."
"낭독회요?"
고은이 눈을 깜빡인다.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는지, 무척 놀란다.
"사실은 사장님께서 동화에 맞는 곡을 만들어주신다고 하셨거든요."
"네!?"
깜짝 놀란 고은은 지후에게 시선을 보낸다.
"작곡도 하실 줄 아세요?"
"…저, 연예 기획사 사장이자 프리마 스텔라의 프로듀서인데요."
"프로듀스 건은 전혀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거기까지는 얘기는 안 했던가?
"낭독회라…."
고은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네요. 미나 씨의 낭독회라면 많은 화제를 불러 모을 수 있겠어요."
낭독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벤트로 열어도 괜찮겠지만, 낭독을 음성 파일로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아, 그 방법도 있었네요."
미나도 그게 마음에 든다면서 맞장구친다.
딱히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녹음하는 쪽이 완성도가 높다.
"그럼 사장님, 이제부터는 낭독 준비를 할게요."
"그래."
대답과 동시에 지후의 두뇌가 빠르게 돌아간다.
가장 먼저 미나의 낭독 음성을 녹음해야겠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곡을 만드는 게 좋겠다.
"그런데 미나 씨는 낭독 경험이 있나요?"
"아뇨, 한 번도 없는데요."
미나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자랑스럽게 말하지 마."
오히려 지후가 어이없어한다.
"왜요? 경험이 없으면 안 되나요?"
미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다.
"음~. 한 번쯤은 다른 사람이 낭독한 걸 들어보는 게 좋겠어요."
"그렇게 하자."
고은이 제안에 지후도 맞장구친다.
"별것 아닌 걸로 들리겠지만, 낭독은 그냥 책을 읽는 게 아니야."
실제로 동화구연지도사라는, 낭독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도 있다.
물론 직업으로 삼으라는 건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는 게 좋겠다는 게 지후의 생각이다.
"흐응~."
지후의 설명을 들은 미나는 관심이 생긴 눈치다.
"그럼 그 동화구연지도사 수업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래."
미나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지후는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역시 미나는 눈치가 빨라서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이것도 다 좋은 경험이 되겠죠?"
"당연하지."
그렇게 지후와 미나가 대화하는 걸 고은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정말 잘 먹었어요."
식당을 나서면서 고은이 감사 인사를 전한다.
어제는 더치페이를 제안받았다.
하지만 우육면만 따로 계산하기 뭐하다는 이유로 지후가 전부 계산했다.
"왠지 죄송하네요. 식사하자고 한 건 전데요."
"신경 쓰지 마세요."
지후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밥 한 끼 정도는 누가 사도 상관없다.
"역으로 가실 거죠? 거기까지 태워다 드리죠."
주차장에 있는 차를 가지고 올 테니, 미나와 잠깐 기다려달라 한다.
"아뇨, 괜찮아요."
하지만 고은은 제안을 거절한다.
"사양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부담가질 필요 없다는 말에 고은은 재차 고개를 젓는다.
"사실 이따가 근처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했거든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라 차를 탈 필요도 없다고 한다.
그게 진짜인지, 거절하기 어려워서 둘러대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차에 타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그렇게 말한 고은은 몸을 돌려서 걷기 시작한다.
그녀의 뒷모습이 안 보일 때쯤, 지후가 입을 연다.
"이걸로 포기하려나?"
"어떨까요?"
평소의 미나답지 않게 대답이 어중간하다.
"나, 평소처럼 보였지?
"네."
미나는 간결하게 대답한다.
그게 오히려 잘못했다는 걸로 들린다.
"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
그 말에 미나의 시선이 지후에게 향한다.
"딱히 그런 건 없는데요."
그런 걸 왜 묻느냐는 듯이 지후를 빤히 쳐다본다.
"아무것도 아냐."
지후는 머쓱해하면서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 옆을 미나가 따른다.
지후는 운전석에, 미나는 조수석에 올라탄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요."
차가 출발하자마자, 미나가 말을 꺼낸다.
"그리 일이 잘 풀릴 거 같지는 않아요."
"왜?"
그 말에 지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고은과 식사까지 했다.
물론 생각보다는 식사 자리가 편하긴 했다.
고은도 말을 걸기보다는 지후와 미나가 대화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게 다 자신에게 정나미가 떨어져서 그런 줄 알았다.
"그냥 제 느낌이 그런 것뿐이에요."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자.
미나의 말에 지후도 수긍한다.
정확하게는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눈치 빠른 미나가 뭔가 알아차린 건 틀림없다.
하지만 닦달하면서까지 알아내기는 꺼려진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은 고요했다.
"하아…."
미나는 매고 있던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외출하기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돌아오니 좀 피곤하다.
수정 원고를 건네는 게 역시 걱정이었던가?
아니면….
"왔어?"
노크 소리와 함께 연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들어와."
미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연아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다.
"일은 잘 됐어?"
눈이 마주치자마자, 연아가 묻는다.
그녀가 말한 일이라는 건 원고 수정 건이 아니다.
"글쎄."
미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의자에 앉는다.
신통찮은 반응에 연아의 얼굴이 굳어진다.
"왜?"
"네 조언대로 하긴 했는데,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거 같더라."
"무슨 뜻이야?"
이해되지 않는지, 연아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도 사장님께 반했으니 알잖아?"
그 한마디에 연아는 눈치챈다.
즉, 미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후의 본래 모습,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모습에 고은이 되려 넘어갔다고 말이다.
"하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연아는 고래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내가 멍청했어."
지후의 가장 큰 장점이 다정함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자신도 그 점에 반했건만….
"뭐, 네 계획은 괜찮았어."
애초에 고은이 지후에게 반한 건, 그를 차가운 도시의 남자로 봤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연아의 계획은 옳았다.
미나 역시 그 방법이 통할 거라 생각했다.
"단지 배고은은 냉정함보다는 상냥한 사람에게 더 끌렸을 뿐이야."
자신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미나의 위로에도 연아의 표정은 어둡다.
"방해꾼을 배제하려다가 실패했네."
지후를 노리는 라이벌이 늘었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서 있을 힘도 없어서 침대 끝에 풀썩 주저앉는다.
그러다가 문뜩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들어 미나를 바라본다.
"그 사람도 그 사실을 알아?"
"아니,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만 했어."
"그래?"
지후가 모른다.
그 사실이 작게나마 안심하게 만든다.
"지금은 어디에 있어?"
"사무실의 작업실에. 내 동화에 맞는 곡을 만든다고 하시던데?"
그 말을 듣자마자, 연아가 일어난다.
그리고 문밖으로 향한다.
"어디 가려고?"
미나의 질문에 연아가 돌아본다.
"그 사람에게 간식으로 과일 좀 가져다주려고."
그렇게 대답하고는 방을 나간다.
"참 나."
미나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저렇게까지 초조해할 줄이야.
이래서 사랑에 빠진 여자는 힘들다.
"뭐, 재밌는 구경거리는 되겠지만."
미나도 몸을 일으킨다.
일단 씻고 나서 원고를 메일로 보내야지.
"뭐가 문제였을까?"
지후는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턱을 괸 채로 중얼거린다.
나름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아올 때 들은 미나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지금은 고은의 반응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작업이나 하자."
지후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스마트폰에서 문자 도착 알림음이 들린다.
보낸 사람은 고은이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원래는 제가 식사 대접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대접받게 되었네요.」
"고작 밥 한 끼 사준 게 신경 쓰이나?"
지후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얼마 되지도 않은 금액이라 대신 냈을 뿐인데.
곧이어 또 다른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다음 번에는 제가 꼭 살게요.」
"다, 다음?"
난감하다.
고은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오늘 식사 자리를 마련한 거였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나오다니, 완전 실패다.
"하아…."
한숨을 내쉬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노크한다.
"네."
문이 열리면서 연아가 고개를 들이민다.
"바쁘세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쉰다.
왜 왔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지?
그저 곤란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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