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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179화 (179/206)

#   179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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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뜻밖의 고백2021.05.05.

"연아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지후가 불안함에 사무실 안을 서성거린다.

어제 문자 보낸 걸 끝으로 연아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 없으려나?"

연아에게 시간을 주자고 미나가 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라는 기약이 없는 탓에 지후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도 그냥 갈 수도 없고…."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른다.

그때,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노크한다.

"아, 네!"

지후가 서둘러 대답한다.

문이 열리면서 연아가 고개를 내민다.

"저 왔어요…."

"어서 와!"

반가운 마음에 연아에게 다가간다.

"괜찮아?"

"아, 네. 심려 끼쳐서 죄송해요."

연아는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러다가 지후의 의상에 관심을 보인다.

"어디 가세요?"

지후는 평소 편한 의상을 입고 다닌다.

그런데 지금은 반팔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있다.

"아, 한 화장품 브랜드에서 좀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거든. 광고음악을 만들어달라고."

"네?"

연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미 의뢰 받으신 게 있잖아요?"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른 의뢰를 받는다고?

그래도 되는 건지, 연아는 걱정스럽다.

"괜찮아."

그 모습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지후가 손을 내젓는다.

"아직 정식으로 의뢰받기 전인걸."

만약 의뢰를 받는다고 해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은 있을 터였다.

그 사이라면 스마트폰 광고음악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지후는 말한다.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한 거라, 점심을 먹고 가려고 했거든."

"앗, 죄송해요."

연아는 서둘러 들고 온 도시락통을 테이블 위에 펼친다.

"옷에 음식물이 묻지 않게 조심하세요."

"응."

지후는 미소 지으면서 밥이 든 통을 받는다.

그리고 식사하면서 옷에 이물질이 묻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는 와중에도 몰래 연아의 안색을 살핀다.

기분 탓일까?

얼굴에 핏기가 없어 보인다.

"사장님."

연아가 조심스레 지후를 부른다.

"어, 어? 왜?"

지후는 화들짝 놀란다.

힐끔거리는 걸 들켰나?

"그게요…."

연아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한다.

내심 조마조마하지만, 그래도 연아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 미팅에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응?"

의외의 말에 지후가 눈을 깜빡거린다.

"갑자기 왜?"

"저, 사장님께서 그런 식으로 일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요."

"옆에서 봐도 별로 재미는 없을 거야."

"…안 될까요?"

연아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하다.

"아, 아니, 안 되는 건 아니고…."

지후는 당황해하면서 손을 내젓는다.

평소라면 부탁을 해도 반강제적으로 할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내내 기가 죽어 있어서 적응이 안 된다.

"원래 미팅 자리에는 다른 사람을 데려가면 안 되지만."

지후는 빈 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알았어. 같이 가자."

"정말요?"

"지금의 연아 넌 내 일을 돕는 중이니까."

조수라고 말하면 그쪽 브랜드에서도 뭐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연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 미소가 왠지 덧없이 느껴져서 지후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그럼 가는 길에 숙소에 들렀다 갈까?"

도시락통도 두고, 연아가 외출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숙소에 가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해요."

마찬가지로 식사를 마친 연아가 뒷정리를 한다.

그 사이, 지후는 사무실을 나설 준비를 한다.

멀티탭의 스위치가 잘 꺼졌는지, 창문이 잘 닫혔는지 확인한다.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연아와 사무실을 나선다.

"어서 오세요, 문지후 씨."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젊은 남성이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마케팅부 팀장인 정성준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후는 성준이 내민 손을 잡고는 악수한다.

"먼 곳까지 와주셔서…. 어?"

말하던 성준의 시선이 옆에 있던 연아에게 향한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지, 눈이 점점 커진다.

"혹시 조연아 씨?"

"아, 네."

연아가 성준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이, 이건 정말 예상도 못 했네."

성준의 얼굴이 흥분으로 달아오른다.

"그 유명한 프리마 스텔라의 조연아 씨와 만나게 될 줄이야."

지후가 프리마 스텔라의 소속사 사장 겸 프로듀서인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같이 올 줄은 몰랐다고 말을 덧붙인다.

그러더니 지후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런데 조연아 씨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지금 연아가 제 작곡 일을 도와주는 중이라서요."

현재 연아는 작곡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에 성준은 납득한다.

"그런 거였습니까? 이야~. 부럽네요."

아이돌을 조수로 둔 지후가 부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계속 여기 있기도 뭐하니 일단 가시죠."

지후와 연아는 성준의 안내를 받아 작은 회의실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성준과 같은 마케팅부 직원들이 몇 명 있었다.

"앗, 조연아다!"

그들 역시 지후를 따라 들어온 연아를 보고 깜짝 놀란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실례합니다."

연아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마케팅부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좋아 어쩔 줄 몰라 한다.

"제, 제가 마실 걸 챙겨오겠습니다."

가장 나이가 어려 보이는 남자 사원이 회의실을 뛰쳐나간다.

잠시 후, 캔음료를 잔뜩 안고는 돌아온다.

"여기요."

그 사원은 가장 먼저 연아에게 음료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연아가 미소 지으면서 말하자, 남자의 입이 귀에 걸린다.

아주 좋아 죽네.

옆에서 지켜보던 지후가 못마땅한 시선을 보낸다.

그걸 눈치챈 사원이 서둘러 표정 관리를 하고는 지후를 포함한 사람들에게도 음료를 전해준다.

"그럼 회의를 시작할까요?"

성준의 한마디에 연아는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낸다.

지후의 조수로 온 만큼, 의뢰에 필요한 정보를 적을 생각이다.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새로 출시한 제품이 이겁니다."

성준은 테이블 위에 뭔가를 올려놓는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색 용기의 화장품 세트다.

"죄송한데,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연아의 질문에 성준은 그러라고 흔쾌히 대답한다.

"아, 물론 아시겠지만…."

"네, 절대 외부에 유출하지 않을게요."

그렇게 대답한 연아는 스마트폰을 꺼내 화장품을 찍기 시작한다.

"이번 라인의 콘셉트는 뭡니까?"

지후가 화장품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묻는다.

"콘셉트라고 할 만한 건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히아신스 추출물을 주원료로 쓰긴 했지만요."

"히아신스요? 용기 색이 푸른 걸 봐서는 델프트 블루를 메인 이미지로 내세우실 생각이신가요?"

"아, 네."

지후의 말에 성준의 눈이 커진다.

"꽃에 대해서 해박하시군요."

그 말에 지후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얕고 넒은 잡학 범위 내에서 알고 있는 정도니까요."

그러더니 허공을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간다.

"히아신스는 색에 따라 꽃말이 다르죠. 그중 푸른색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인 걸로 기억하는데…."

그의 말에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황홀한 시선으로 지후를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유명한 바이올린 소곡 중에서 사랑의 기쁨이란 곡이 있죠."

"오호~! 그렇습니까?"

성준이 눈을 반짝인다.

"네. 워낙 유명한 곡이라 여러분도 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연회장 같은 곳에 자주 쓰이거든요."

"연회장이라…."

성준을 포함한 마케팅부 사람들은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건 저희 화장품 콘셉트에 안 맞을 거 같습니다만."

"그럼 방향성을 바꿀까요?"

지후는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유롭게 미소 지으면서 화제를 바꾼다.

"히아신스는 굉장히 향이 강하죠. 그걸 유혹하는 여성의 향기인 걸로 표현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거 괜찮네요!"

한 여성이 눈을 반짝이면서 찬성한다.

"고혹적인 여성의 향기라는 느낌?"

"그 문구, 마음에 들어요."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자, 지후도 만족해하는 눈치다.

"보통 그런 여성은 당당하죠.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자신을 사랑한다, 당당한 자신이기에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이런 느낌이죠."

"그 말, 너무 멋있네요!"

여자들이 꺅꺅거리면서 난리를 피운다.

그와 반대로 연아는 지금 지후가 한 말을 되새긴다.

당당한 자신이기에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

그럼 나는?

난 그 누구보다도 당당할까?

회의가 끝날 때까지 내내 그 생각만 했다.

하지만 끝내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장님은 역시 대단하시네요."

돌아가는 차 안,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연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응? 갑자기 왜?"

"아까 미팅에서 능숙하게 주도하셨잖아요."

그저 광고음악 의뢰를 받으러 간 자리였다.

그런데도 지후의 의견에 제품의 콘셉트, 광고 문구까지 전부 정해졌다.

물론 광고에 쓸 곡 의뢰도 무사히 따냈다.

"전 아무것도 생각 못했는걸요."

"아니, 그건 그냥 내가 아는 지식을 늘어놓다가 그런 거지."

그걸 마케팅부 사람들이 잘 응용해준 것뿐이라면서, 지후는 겸손해한다.

그는 늘 이렇다.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지 않고, 모두의 덕분이라면서 공을 돌린다.

연아와는 정반대다.

"지금 사무실로 바로 가실 건가요?"

"그럴 생각인데."

가서 미나의 동화용 배경음악을 만들려고 한다.

"…죄송한데요."

연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어디 좀 들리면 안 될까요?"

"상관없는데,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어?"

"그런 건 아니고요…."

연아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끝을 흐린다.

그 모습에 빨리 정하라고 닦달할 수가 없다.

"그럼 내가 정해도 되지?"

"네."

연아가 받아들이자, 지후는 차의 행선지를 바꾼다.

그들이 향한 곳은 한강공원이다.

평일의 낮이라 그런지, 주위에는 인적이 드물다.

"카페로 갈 걸 그랬나?"

"아뇨. 여기면 충분해요."

연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근처의 벤치에 앉는다.

"저기 편의점에서 마실 걸 사 올게."

지후가 편의점에 가려는데, 연아가 서둘러 말린다.

"아뇨. 지금은 사장님과 얘기 좀 하고 싶어요."

"얘기?"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의아해하면서도 연아 옆에 앉는다.

"그게요."

연아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다가 마음을 굳혔는지, 지후를 쳐다본다.

"사장님께 꼭 사과드리고 싶었어요."

"나한테? 뭘?"

지후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과할 만한 일이 있던가?

"사실은 저, 사장님을 얕잡아 보고 있었어요."

연아는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다.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그를 막 대했다.

"제가 그럴 만한 입장도 아니었는데…."

"아, 아니. 그런 건…."

의외의 고백에 지후는 당혹감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웠다.

며칠 동안 힘들어했던 게 이 생각을 하고 있던 탓이구나.

연아는 일어서서 지후 앞에 선다.

그리고 지후를 향해 허리를 숙인다.

"정말 죄송해요."

그러자 지후는 허둥지둥거린다.

"괘, 괜찮아. 네가 대놓고 무시한 것도 아닌걸."

그러니까 그러지 말라면서 연아를 다시 앉힌다.

"아까도 그랬어요."

연아는 슬픈 눈으로 눈앞에 펼쳐진 한강을 바라본다.

"사장님께서 회의를 이끌어가시는 동안, 전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어요."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옆의 지후는 아주 쉽게 의견을 말할 수 있었지만, 연아는 아니었다.

지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그를 얕잡아 봐?

정말 스스로가 한심할 따름이다.

"그러니까 그게…."

축 처진 연아를 위로하려 했다.

하지만 뭐라 말해야 하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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