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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186화 (186/206)

#   186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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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바쁜 일정이 정해지다2021.05.12.

"어때?"

재생시킨 음원이 끝나자마자, 지후가 감상을 묻는다.

"좋아요."

연아가 살짝 미소 지으면서 대답한다.

"전자 바이올린에 보컬이 들어가니, 왠지 신비한 느낌이네요."

연아는 무척 만족스러운 눈치다.

물론 여기에 들어간 보컬은 연아의 것이다.

"그럼 이걸 의뢰한 감독에게 보내야겠어."

지후는 음원 파일을 USB에 담는다.

그리고 사무실 책상에 있는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노트북에 USB를 연결하고는 그 안에 있던 음원 파일을 메일에 첨부한다.

"좋았어. 이걸로 끝."

메일을 보내자, 지후는 양팔을 높이 들어 올린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가슴이 벅차다.

"고생하셨어요. 한 건 끝냈네요."

연아가 지후 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네 도움이 컸어."

빈말이 아니다.

연아의 조언이 없었다면 이렇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을까?

아마 어려웠을 터다.

아직 CF 감독의 오케이 사인을 받지 못했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그 정도로 곡의 완성도가 높으니까.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광고주나 감독이 어떤 느낌의 곡으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하지 않나요?"

보통 광고음악 의뢰를 하기 전에 기획이 나온다.

콘셉트를 정하고, 어떤 내용으로 찍을지도 결정한다.

이런 식으로 광고음악을 지후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게 좀 납득이 안 간다.

"솔직히 광고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의심되는데요."

"그렇게 말하지 마."

듣다 못한 지후가 나선다.

"전에 말했지? CF 감독이 수지가 출연 중인 「베스트 모델」을 보고 연락했다고."

그 무대에서 수지가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자유롭다고.

그 말이 인상이 깊었다고 CF 감독이 말했다.

"또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이번 광고는 미리 계획하지 않겠다고."

오히려 지후의 곡에서 이미지를 얻어 광고를 만들겠다 했다.

"그거, 사장님께 얹혀 간다는 뜻인가요?"

"왜 그렇게 해석하는 건데…."

지후의 어깨가 축 처진다.

요즘 연아가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얘기를 들으니, 아직 멀었다는 게 느껴진다.

"아무튼."

지후는 시원한 표정을 지으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이제 답변이 올 때까지는 느긋하게…."

"못 기다리죠."

연아가 말을 자른다.

"의뢰받은 곡은 아직 하나 더 있잖아요. 게다가 미나의 낭독극에 쓸 것도 만들어야 하고."

"거기에 하나 더 있고 말이지."

"네?"

지후가 덧붙인 말에 연아가 의아해한다.

"아, 혹시 안무단에서 정식 의뢰가 왔나요?"

"아니, 아직이야."

"그럼 뭐가 있는데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연아는 빨리 대답해달라는 듯이 빤히 쳐다본다.

"혜민이를 위한 안무곡을 만들 생각이야."

"걔가 부탁하던가요?"

"아니, 생일선물로 해주려고."

갑자기 연아가 입을 다문다.

그리고 지후를 쳐다본다.

무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여, 연아야…?"

불안하다.

안 좋은 징조라 판단한 지후는 연아를 조심스럽게 부른다.

그래도 연아는 뭐라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하아…."

한참의 침묵 끝에 연아가 한숨을 내쉰다.

"사장님께서 정하신 일이니, 제가 뭐라 할 수는 없겠죠."

다 포기했다는 어투에 지후는 심장이 철렁한다.

혹시 화났나?

하지만 연아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도 일을 늘리지 않으셨으면 해요. 무리하실 게 뻔하니까요."

"어, 어…. 그래."

내심 가슴을 쓸어내린다.

뭐야?

자신을 걱정해서 그런 거였나.

"그래도 혜민이에게 뜻깊은 선물을 해주고 싶어."

지후는 안무곡을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잘 하는 게…."

"작곡이니까?"

연아가 허리를 숙여서 지후와 시선의 높이를 맞춘다.

"그래도 전 섭섭해요.'

"왜? …아."

겨우 생각났다.

전에 연아도 자신만을 위한 곡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지후는 그 대가로 연아에게 작곡을 지시했다.

"어때? 잘하고 있어?"

"잘하기는요."

연아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작곡의 요령을 배우려고 왔는데, 영 소득이 없어서요."

"미, 미안해…."

지후가 고개를 숙인다.

확실히 요즘 바쁘다는 이유로 일을 돕게만 했다.

그리고 곡을 만드는 걸 보여주지는 않았다.

작곡의 요령도 터득할 겸, 일을 도와달라고 했는데….

"좋은 공부이긴 해요."

지후가 너무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일까?

연아의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진짜?"

"그럼요. 제 감상을 듣고는 그걸 바로 곡에 반영하시잖아요."

그 변화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건 나름 좋은 공부다.

연아의 그 말에 지후는 어느 정도 안심한다.

"그것도 그렇지."

그러면서 생각한다.

역시 연아는 대단하다.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방법을 터득했다.

이것도 다 과거의 경력 덕분일까?

"아무튼 이런 식으로 계속 일이 진행될 거 같아."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크게 기지개를 켠다.

"앞으로도 도와줄 수 있어?"

연아를 돌아보면서 묻는다.

"그럼요."

바로 대답이 나온다.

"사장님께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요."

당당한 미소에 지후는 눈을 떼지 못한다.

그 모습이 유난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한참을 연아와 마주 본다.

그 침묵을 지후의 스마트폰이 깬다.

"으악!"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지후는 깜짝 놀란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스마트폰을 꺼낸다.

"CF 감독님인가요?"

눈썹을 찡그린 연아가 묻는다.

"아니."

화면에 뜬 이름을 본 지후는 고개를 젓는다.

"태식이야. 혜민이 안무단 단장인."

상대가 누구인지 설명하고는 통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어, 문지후. 지금 바쁘냐?』

"지금 막 의뢰자한테 곡을 보내고 한숨 돌리던 차인데, 왜?"

『그래? 잘됐네.』

그 말을 들은 지후가 코웃음 친다.

"잘되긴 뭐가? 이쪽은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어? 진짜?』

태식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왜? 너도 안무곡 의뢰하려고?"

지후는 다시 의자에 풀썩 주저앉는다.

『네 말대로야. 혹시 혜민이에게 얘기 들었어?』

"기획서까지 확실히 봤어. 그런데 3주 걸려서 그것밖에 안 나오면 문제인 거 아냐?"

태식과 통화하는 사이, 연아는 냉장고로 향한다.

문을 열고는 포도 주스를 꺼낸다.

그리고는 지후를 향해 손가락으로 유리잔을 가리킨다.

마시겠냐는 표시에 지후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쩔 수 없었다고.』

태식이 투덜거린다.

『너도 알지? 매번 공연할 작품, 우리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기획한다는 거.』

그 말대로 정태식 안무단의 공연은 태식과 세희,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기획한다.

지난번 「언더그라운드」는 태식이, 그리고 이번 작품은 세희가 만들었다.

『그런데 아내가 이번에는 로맨스로 하겠다고 정하더니, 그 내용을 질질 끌고 가는 거야.』

로맨스를 좋아하는 세희다.

그만큼 로맨스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다.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3주가 지났다.

"세희 씨 답네."

지후는 쿡쿡 웃음을 참느라 애쓴다.

완벽을 추구하는 세희라면 몇 번이고 내용을 고쳤을 터다.

"그럼 8월에는 공연 못 하겠네?"

『확정난 건 아니지만, 고려는 하고 있어.』

말은 이렇게 하지만, 태식의 마음이 연기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

사실 공연 연기가 태식이나 정식 단원들에게는 큰 타격이다.

수익이 들어오는 시기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네가 보기에는 작품이 어때?』

"좋아. 세희 씨가 오랜 시간 공들인 보람이 있네."

『정말이냐?』

"그렇다니까. 우리 애들도 기획서 보고는 꼭 보러 가겠다고 했는걸."

『그나마 안심이네.』

태식도 안도한 눈치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도 내용이 엉망이었다면 부부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장면의 안무곡으로 만들어 달라는 건데?"

『바쁘다면서?』

"그러냐? 그럼 끊는다."

『야! 끊지 마!』

끊는다는 말에 태식이 다급하게 부른다.

"왜? 난 일해야 한다고."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이럴 때는 예의상이라도 한 번 더 물어봐야 하는 거 몰라?』

"아, 그래? 뭘 의뢰할 건데?"

지후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수화기 너머로 탄식 소리가 들린다.

분명 어처구니없어하는 거겠지.

"너무 재밌어하시는 거 아닌가요?"

책상 위에 포도 주스 잔을 내려놓은 연아 역시 그러지 말라는 듯이 말한다.

연아가 봐도 좀 너무했나?

지후는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어디 보자. 너한테는….』

이쪽 상황을 알 리 없는 태식은 의뢰할 안무곡을 고민한다.

『그래. 두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부탁해.』

클라이맥스 부분인가.

지후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긴장감이 한순간에 희열감으로 바뀌는 부분이다.

그만큼 공연의 모든 곡 중에서 가장 질이 좋아야 한다.

"기한은?"

『1주.』

"죽을래?"

지후의 목소리가 험악해진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곡을 의뢰하면서 고작 1주라고?

직접 곡을 쓰라고 할까 보다.

『농담이야. 2주 내로 부탁해.』

"그것도 짧거든."

전에 안무곡을 의뢰할 때는 3주를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연 연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기한이 촉박하다.

어쩔 수 없지.

지후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일단은 알았어. 최대한 빨리 완성해서 보내줄게."

『부탁한다.』

"그리고 의뢰 계약서는 메일로 보내줄 테니까, 서명한 다음에 다시 보내."

『철저하네.』

대답하는 태식의 목소리에서 옅은 웃음을 느껴진다.

그렇게 태식과의 통화를 마친다.

"하아…."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자마자, 지후는 한숨부터 내쉰다.

"정식 의뢰받으신 거예요?"

"응."

지후는 책상 위의 포도 주스 잔을 집어 든다.

그런 그의 표정은 다소 어둡다.

광고음악에 미나의 낭독극 곡, 혜민의 생일선물, 거기에 공연 안무곡까지.

일이 쌓였다.

"반은 사장님께서 벌이신 일이지만요."

"끙…."

연아의 날카로운 지적에 지후는 어깨를 움츠린다.

뭐, 맞는 말이긴 하지.

"다, 당분간은 작곡에 집중해야겠어."

지후는 말을 돌리면서 주스를 들이켠다.

일주일은 바쁘겠는걸.

"그 말씀은…."

연아가 조심스럽게 쳐다본다.

"식사나 자는 시간까지 줄여야 한다는 거지."

기본적으로 지후는 무리하는 걸 꺼리는 편이다.

몸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 결과물이 좋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무리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냥 여유롭게 의뢰를 받으면 되는 건데."

연아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으음…. 저기, 연아야."

지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네가 날 많이 도와줘야겠어."

작곡에 매진해야 하는 이상,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있는 건 뻔하다.

연아가 도와준다면 일상생활은 물론, 작곡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탁해도 될까?"

"당연하죠."

연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다.

"제가 아니면, 누가 사장님을 돕겠어요?"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안도한 지후도 연아와 마주 보면서 웃는다.

"물론 보수는 주시는 거죠?"

"응?"

보수란 단어에 지후가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 간신히 뇌가 돌아간다.

그래.

일까지 돕게 하는데, 무보수라는 건 말이 안 되지.

"알았어. 보수는 준비해둘게."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연아가 묘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돈으로 주신다는 건 아니시죠?"

"그걸 원한 거 아냐?"

"아이참."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연아는 살짝 발을 구른다.

"사장님과 제 사이에 돈을 주고받는 건 아니지 않아요?"

"그, 그런가?"

묘하게 어긋난 거 같은데?

자신과 연아 사이가 어떤데?

그런 생각도 들지만, 지금은 아무 말 않기로 한다.

"그럼 뭘 원하는데?"

"원하는 거요? 후훗."

연아가 웃는 모습에 지후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다.

마치 지뢰를 밟은 느낌이랄까?

…물론 실제로 밟아본 적은 없지만.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절 위해 시간 좀 내주세요."

그 말에 지후의 눈이 가늘어진다.

"또 데이트하자는 거야?"

"전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음료만 마시고 돌아왔잖아요."

연아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반박한다.

"그랬지. 그래도 네가 부족하다고 해서 드라이브도 했잖아."

두 시간 넘게 한강 주변을 돌아다닌 건 기억도 안 나나?

"그걸로는 부족해요!"

연아는 양팔을 위아래로 흔든다.

그리고 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전 사장님과 하고 싶은 게 아주 많다고요!"

"알았어."

지후는 항복의 의미로 양손을 들어 올린다.

"알았으니까, 좀 진정해."

지금은 할 일이 잔뜩 쌓였다.

그 와중에 연아를 흥분시켜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좋아. 지금 맡은 일 전부 끝나면 데이트하자."

"정말이요?"

연아의 눈이 반짝인다.

"한 입으로 두말은 안 해."

나중에 없던 일로 했다가는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걸 알기에 지후도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다.

"꼭이에요!"

무척 기쁜지 연아는 지후의 손을 꽉 붙잡는다.

뭘 기대하는지 지후는 모른다.

그래도 몹시 기뻐하는 연아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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