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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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흥정과 감상회2021.05.15.
"나 왔어."
유진이 문을 열고 숙소로 들어선다.
그런데 안쪽이 소란스럽다.
뭐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오는데….
"잠깐!"
"꺄악!"
갑자기 들려온 외침에 유진은 깜짝 놀란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
목소리가 들리는 거실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거기에는 혜민이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손바닥을 들어 보인다.
하지만 유진의 시선을 끈 건 다른 거다.
"너, 복장이 왜 그래?"
혜민은 앞치마에 두건, 손에는 고무장갑까지 꼈다.
이런 혜민의 모습은 처음이라, 너무 어색하다.
"어쩔 수 없잖아."
유진의 시선을 눈치챈 혜민은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 거실 대청소 중이니까."
"대청소?"
유진의 시선이 혜민의 등 뒤로 향한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다.
가구는 전부 거실 바깥에 옮겨진 상태다.
그리고 거실 바닥을 혜민이 걸레로 닦고 있었다.
"수지랑 미나는?"
"수지는 베란다에서 에어컨 필터를 닦고 있어."
유진이 바닥의 난장판을 피해 조심스레 베란다를 내다본다.
그러자 혜민의 말대로 수지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필터 닦는 모습이 보인다.
"미나는 아까까지 가구를 닦던 걸레를 화장실에서 빨고 있고."
화장실 문이 닫혀 있어서 미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에서 첨벙첨벙하는 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너희들, 운이 안 좋았네."
그 말에 혜민의 어깨가 축 처진다.
정말 이렇게 될 줄이야.
"유진이 왔어?"
하은이 주방에서 고개를 내민다.
"와서 밥 먹어."
"네~."
유진은 바로 주방으로 향한다.
열심히 청소 중인 멤버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돕고 싶지는 않다.
그 뒷모습을 혜민이 원망스럽게 쳐다본다.
"끄, 끝났다…."
거실 청소와 가구 재배치를 마쳤다.
피로에 찌든 세 사람은 각각 소파나 바닥에 주저앉는다.
"수고했어."
식사를 마친 유진이 시원한 물잔이 담긴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자 바로 세 개의 손이 각각의 잔을 챙긴다.
"어휴! 집안일이란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
목을 축이자마자, 혜민이 불평을 늘어놓는다.
특히 대청소는 장난 아니었다.
하은이 일부러 날을 잡은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대청소가 가장 힘들긴 했지만, 빨래도 쉽지는 않더라."
수지도 한마디 거든다.
옷을 다림질하고, 반듯하게 개서 정리한다.
거기에 세탁이 끝난 빨래를 잘 마르도록 널어야 했다.
"난 대청소보다 식사 준비가 더 힘들더라."
미나는 여전히 소파에 늘어진 채로 중얼거린다.
카레라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감자 껍질 벗기는 게 그리 어려운지 모른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먹기 좋게 깍둑썰기도 해야 했다.
특히 칼을 써본 적이 없던 탓에 무서워서 혼났다.
"흐음~."
멤버들이 불평하는 걸 유진은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본다.
"연아 걔는 이런 일을 어떻게 하고 있나 몰라."
수지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물론 대청소까지는 안 하겠지.
그래도 빨래나 식사는 거의 전담하는 수준이었다.
셋이서 해도 힘든 걸 혼자서 다 하다니….
"진짜 하고 싶은 건 주부 아니야?"
미나의 그 말에 거실이 조용해진다.
"어? 왜들 그래?"
갑작스러운 침묵에 오히려 미나가 당황해한다.
"아니…."
수지가 입을 연다.
하지만 쉽게 말을 잇지 못한다.
"그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유진은 팔짱을 끼고는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튼 오늘은 진짜 힘들었어."
혜민이 화제를 돌린다.
연아 얘기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긴다.
그야 주부가 된다는 건 누군가와 결혼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연아가 눈여겨 보는 상대라면….
"그나저나 내일도 이런 식으로 보내려나?"
그 기운을 눈치챈 수지도 동참한다.
"하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혜민과 미나가 고개를 떨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모양이다.
"아, 좋은 생각이 났어!"
갑자기 유진이 손뼉을 친다.
"뭔데?"
혜민이 고개를 들면서 묻는다.
그러자 유진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이참에 너희들이 집안일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는 거야."
"뭐어~!?"
세 사람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여태 우리가 한 말을 귓등으로 들었어?"
화가 난 혜민이 버럭 소리 지른다.
힘들어서 하기 싫다고 얘기하는데, 그걸 영상으로 찍는다고?
얘가 지금 우리를 놀리나?
"우리는 연예인이잖아."
혜민의 분노에도 유진은 겁먹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편다.
"특히 혜민이 넌 예능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잖아."
"그게 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혜민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니까."
유진은 허리에 양손을 얹는다.
"예능 방송에서 살아남으려면, 힘든 일을 피해서는 안 돼."
혜민은 할 말을 잃는다.
솔직히 자신은 예능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게 아니다.
그저 방송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예능 방송에 나오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하고 싶다란 마음 정도는 있다.
"혜민이는 그렇다 쳐도, 나는 뭔데?"
수지가 심드렁한 얼굴로 유진을 바라본다.
예능에 나오는 건 수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수지가 나가는 건 모델의 재능을 드러낼 수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힘든 집안일을 참고 견딜 필요가 있나?
"이런 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해."
"무슨 경험?"
"으음~. 역시 여자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경험?"
"…이게 말이야? 방귀야?"
어처구니가 없는지, 수지는 콧방귀를 낀다.
"아무리 능력 있는 여자도 제대로 집안일 하는 경우도 많잖아?'
그때, 미나가 끼어든다.
"그건 그렇지…."
방금까지 당당했던 유진이 어깨를 움츠린다.
사실만 그대로 전하는 미나의 말에는 역시 반박하지 못한다.
"이, 이것도 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이제는 추억 만들기라는 명목을 댄다.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유진의 모습에 세 사람은 할 말을 잃는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혜민이 손을 내저으면서 항복하고 만다.
그래도 이 이상 유진이 물고 늘어지는 걸 견디기 어렵다.
"앗싸!"
유진이 눈을 반짝인다.
"수지랑 미나도 괜찮지?"
그래도 한 사람 의견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걸까?
수지와 미나의 동의를 구한다.
"공짜로 해달라는 건 아니지?"
"우우…."
수지의 요구에 유진은 곤란해한다.
그러다가 결정했다는 듯이 외친다.
"알았어! 그럼 내일 집안일이랑 촬영 끝나면 내가 저녁 쏠게."
"뭘 사줄 건데?"
"중식이면 돼?"
"짜장면, 짬뽕, 탕수육, 마파두부, 고추잡채…."
수지가 줄줄이 음식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얼마나 먹을 셈이야!?"
불안함에 유진이 빽 소리 지른다.
"난 유산슬이랑 팔보채란 걸 먹어보고 싶어."
"그건 엄청 비싼 거잖아!"
미나가 끼어들자, 유진이 바로 반박한다.
"하아…."
얘기를 듣고 있던 혜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또 결과적으로 소란이 벌어진다.
왜 매번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
두통이 느껴져서 관자놀이를 꾹 누른다.
"대청소까지 했다고?"
오후 6시.
잠시 숙소에 돌아온 연아는 어제 만들어둔 시트에 올릴 크림치즈 필링을 만든다.
그걸 돕던 혜민과 수지, 미나가 오늘 집안일 했던 얘기를 해줬다.
"고생 좀 했겠네."
"말도 마."
혜민은 인상을 팍 쓴다.
생각도 하기 싫다는 눈치다.
"그래도 내일은 빨래랑 식사 준비만 하면 되지 않아?"
필링이 완성되자, 연아는 무스틀 안에 있는 시트에 붓기 시작한다.
그리고 윗면을 깔끔하게 발라낸다.
"하아…. 그게 그렇지도 않아."
식탁 앞에 앉아 케이크에 쓸 오렌지를 자르던 수지가 한숨을 내쉰다.
"아까 하은 언니가 그러더라. 내일은 베란다하고 주방 청소를 하자고."
"정말?"
연아가 눈을 크게 뜬다.
진짜 날을 잡은 건가 싶다.
"베란다는 그렇다 쳐도, 주방은 대공사일 텐데."
연아는 주방을 둘러본다.
아까 거실 청소한 얘기를 들어보면, 주방도 마찬가지로 진행될 게 뻔하다.
식탁, 의자, 가전, 장식대 같은 걸 빼고 바닥부터 청소하겠지?
물론 붙박이인 싱크대나 찬장, 너무 무거운 냉장고는 예외일 것이다.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힘든 일이다.
"그래도 내일은 유진이가 있잖아."
내일은 카페 휴일이기에 유진도 청소에 동참할 예정이다.
"그게 말이야."
혜민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걔가 아까 브레이크 타임에 와서 뭐라는 줄 알아?"
"뭐랬는데?"
"우리가 집안일 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 올리자고 하더라."
"…아하."
몇 초간 침묵 끝에 이해한 눈치다.
나름 집안일에서 벗어나려고 머리를 쓴 거겠지.
"역시 집안일 하기 싫어서 핑계 댄 거 아닌가 몰라."
혜민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한다.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필링 겉면이 예쁘게 잘 발리자, 흡족해하는 연아가 제안한다.
"촬영을 다 같이 번갈아 가면서 하는 거야."
"그거 좋은 생각인데."
연아가 사용한 도구들을 세척하던 미나가 반응을 보인다.
"그러게."
혜민과 수지 역시 만족해하는 눈치다.
연아의 말대로 하면 촬영을 빌미로 번갈아 쉴 수 있을 테니까.
"이 얘기를 유진이에게 하면 어떻게 나올까?"
"아마 촬영할 수 있는 건 자기뿐이라고 하지 않으려나?"
"카메라로 촬영하는 정도라면 우리도 할 수 있는데."
"그 얘기, 내일 아침에 해주자."
"어떤 표정 지을지 벌써부터 기대되네."
혜민과 수지, 미나는 내일 일을 상상한다.
즐거움에 히죽거린다.
"그래, 그래."
연아는 대충 대답하면서, 케이크 위에 랩을 씌운다.
그리고 필링을 굳히기 위해 냉장고 안에 넣는다.
수지가 준비한 오렌지 장식은 일단 밀폐용기에 담기로 한다.
"그래도 애는 울리지 마."
"노력할게."
혜민이 무심한 듯이 대답한다.
정말 괜찮을까?
걱정이 들긴 하지만, 연아는 뭐라 말하지는 않는다.
알아서들 하겠지.
"다 끝났어?"
연아의 케이크 제작이 일단락되자, 거실에 있던 하은이 들어온다.
"아직 완성된 건 아니에요."
한 시간 뒤에 다시 케이크를 꺼내서 오렌지와 오렌지 젤리를 얹어야 한다.
그때까지는 내일 쓸 케이크 시트를 구울 생각이다.
"그래? 그럼 저녁 재료 준비는 거실에서 해야겠네."
그렇게 말한 하은은 냉장고 문을 연다.
야채칸에 있던 마늘을 꺼내고는 다시 문을 닫는다.
"혜민이 넌 찬장에서 절구 좀 꺼내."
"에이…. 요즘 누가 마늘을 일일이 다져요?"
그냥 야채 다지는 기계 하나 사지.
그 말에 하은의 눈이 매서워진다.
"자꾸 얄미운 소리만 하면 매일 마늘 다지는 것만 시킬 거야!"
"끙…."
그러자 혜민은 어깨를 움츠린다.
내내 몸에서 마늘 냄새가 풍기는 건 사양이다.
"수지랑 미나는 새우 다듬는 것 좀 도와."
"네."
혜민이 당하고 난 직후라서 그럴까?
두 사람은 별말 없이 따른다.
"그리고 연아 넌."
하은의 시선이 연아에게 향한다.
"시트 반죽은 금방 하지? 그걸 굽는 동안 밥 좀 안쳐."
"알겠어요."
그 말에 연아는 바로 움직인다.
밥솥에 안치기 전에 쌀을 30분간 불려야 한다.
그래서 볼에 쌀을 담아 물에 깨끗이 씻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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