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192화 (192/206)

#   192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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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선물을 위한 밑준비2021.05.19.

"악보에도 적혀 있지만, 피아노는 피아니시모로 연주해주세요."

지후의 지시에 피아니스트가 고개를 끄덕인다.

"반대로 첼로는 좀 더 묵직하게 소리 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첼리스트는 바로 대답한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갑니다."

지후가 지휘하자, 거기에 맞춰서 첼로와 피아노가 연주된다.

그 모습을 녹음실 바깥에서 연아가 유심히 쳐다본다.

오늘은 지후가 만든 곡을 악기로 녹음하는 날이다.

이 작업을 위해 외부 녹음실에 방문했다.

"네, 됐습니다."

곡이 끝나면서 지후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녹음된 걸 확인할 동안에 잠깐 대기해주세요."

그렇게 말한 지후는 녹음실 부스를 빠져나온다.

"녹음된 거 들려주세요."

그 말에 녹음실 스태프가 아까 연주한 곡을 틀어준다.

지후는 눈을 감고 곡에 집중한다.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진지한 모습에 연아는 눈을 떼지 못한다.

"네, 이걸로 됐습니다."

그렇게 말한 지후는 부스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민다.

"오늘 녹음을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후에게 고개를 숙인다.

인사를 나눈 지후에게 스태프가 음원이 담긴 USB와 CD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다른 일이 있어서 가볼게요."

"아, 네."

스태프와도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연아를 데리고 녹음실을 나선다.

그리고 주차장에 세워 둔 차로 이동한다.

"연아야, 정 팀장님과는 연락했어?"

지후는 운전석에 올라, 바로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그 말에 조수석에 탄 연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아까 문자 보냈더니, 내일 출발 전에 다시 연락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에 시동을 건다.

"그럼 얼른 작업실로 돌아가야지."

"아뇨, 오히려 느긋하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째서?"

지후가 의아해한다.

할 일이 잔뜩 쌓여있다면 빨리 가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서둘렀다가는 사고가 날 확률이 크니까요."

요 며칠 동안 지후는 작업에 몰두했다.

옆에서 봐도 얼굴에 피로가 가득한 게 눈에 들어온다.

"요즘 수면 시간도 많이 줄이셨죠?"

연아는 걱정이다.

이러다가 지후가 쓰러지는 건 아닐까?

"걱정할 필요 없어."

지후가 싱긋 웃는다.

"그래도 네 시간은 자고 있으니까."

"그것도 적어요."

"하하, 그렇긴 하지."

연아의 말을 들은 탓일까?

아까에 비해 표정이 여유로워진다.

"그래도 큰 걱정은 줄었네요."

연아가 화제를 돌린다.

이걸로 광고음악 의뢰 건은 전부 완료했다.

물론 수정 요구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래도 방금 그 곡이라면 문제없다는 게 연아의 의견이다.

"어떨까?"

지후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오른다.

아직 큰 문제를 남긴 듯한 표정이다.

"혜민이 안무곡 때문인가요?"

의뢰받은 광고음악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혜민을 위한 안무곡도 준비했다.

수많은 멜로디를 만들었지만, 연아가 듣기에는 그 어느 것도 혜민에게 딱 맞지 않았다.

"이제 혜민이 생일까지 사흘밖에 안 남았잖아."

오늘은 일요일.

혜민의 생일은 수요일이다.

사흘 사이에 안무곡을 완성할 수 있을까?

지후로서도 자신이 없다.

"어떻게 들리실 줄 모르겠는데요."

연아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사장님께서는 혜민이를 너무 이미지로만 생각하고 계신 거 같아요."

"어?"

의외의 조언에 지후도 놀란다.

"내가 혜민이에게 고정관념 같은 걸 가지고 있다는 얘기야?"

"그렇다기보다는 혜민이에게 이상적인 이미지를 가졌다고 해야 할까요?"

"…미안,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

"그러니까…."

연아는 잠시 말을 고른다.

느낌은 알겠는데, 말로 표현이 잘 안 되는 눈치다.

"혜민이에게 원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내가? 혜민이에게?"

지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혜민에게 이상을 비추어 본다고?

그랬나?

"딱히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혜민이 안무곡 멜로디를 들으면 알아요."

연아는 살짝 토라졌는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하지만 지후는 그런 연아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으음."

지후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무래도 혜민에 대해 잘 모른다는 얘기 같다.

혜민과 좀 얘기를 하는 게 좋으려나?

"연아야, 이제부터 뭐 할 거야?"

"네?"

그 한마디에 연아가 돌아본다.

"그야 사장님을 도우려고…."

"그거 말고도 내일 카페에서 판매할 디저트도 만들어야지?"

"네."

연아는 순순히 대답한다.

"그래도 저녁 도시락을 준비하는 김에 할 수 있으니까요."

"아니, 지금 숙소로 데려다줄게."

"네? …아,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요."

연아가 다급하게 손을 내젓는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 안무단 공연에서 사용될 안무곡이 남아 있다.

여유가 있다고는 하나, 일주일 안에 완성해야 한다.

"아직 전 사장님께 오케이 사인을 받지 못했는걸요."

연아가 입술을 살짝 깨문다.

현재 연아는 작곡에 도전 중이다.

안무단 공연에 쓰일 안무곡 멜로디를 만들어서 지후에게 들려주었다.

스무 개가 넘는 멜로디를 만들었지만, 전부 퇴짜맞았다.

좋은 공부이긴 하지만, 그래도 분하다.

"조바심 내지 마."

지후가 손을 뻗어서 연아의 어깨 위로 손을 얹는다.

"넌 아주 잘 하고 있어."

"전부 퇴짜 놓은 사람이 할 말인가요?"

연아가 지후를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노려본다.

"아하하."

하지만 지후는 겁먹기는커녕, 웃음을 터뜨린다.

"내가 원하는 게 반드시 100점이라고 하면, 네가 만드는 건 80점에서 90점 사이라고 할까?"

연아가 제출한 멜로디 중에는 괜찮은 것도 있었다.

조금만 고치면 만족스러운 곡이 될 가능성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지후는 단칼에 잘라 버렸다.

"그 멜로디는 공연에서 쓰일만한 게 아니거든."

"네?"

연아의 눈이 커진다.

이제까지의 멜로디는 공연 기획서를 보고 만들었다.

그런데 공연에 쓰일 수 없다고?

"어째서요?"

"그게…."

지후가 말끝을 흐린다.

잠시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네 멜로디는 공연 줄거리보다는 네 목표를 드러내고 있으니까."

"아."

그 말에 연아가 허를 찔린 반응을 보인다.

역시 예상한 대로다.

연아는 기획서 내용에서 자신의 이상을 봤다.

본인이 꿈꾸는 해피 엔딩을 투영했겠지?

"…그게 보이던가요?"

연아의 질문에 지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으아…."

연아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창피한가?

전혀 자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역시 사장님은 다 아시네요."

"뭐, 경력이 있으니까."

사실 경력보다는 연아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얘기를 입에 담는 건 역시 낯부끄럽다.

"이제 의뢰는 그거 하나 남았으니까, 여유 있게 가자."

"네…."

연아가 얼굴에서 손을 뗀다.

여전히 창피한지, 고개도 못 들고 있다.

이렇게 당황한 모습은 처음 보네.

귀여운 구석도 있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에 숙소 앞에 도착한다.

"그럼 전 저녁 도시락 가지고 갈게요."

차가 멈추자마자, 연아가 잽싸게 문을 열고 내린다.

"아, 연아야."

조수석 문을 닫으려는 순간, 지후가 부른다.

"왜 그러세요?'

닫으려는 문을 다시 열리면서 연아가 고개를 내민다.

"지금 바로 혜민이 좀 불러줄래?'

그러자 연아가 묘한 표정을 짓는다.

"안무곡 때문인가요?"

"뭐, 그렇지."

지후는 순순히 인정한다.

연아에게는 숨겨도 의미 없다.

"알겠어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차린 연아도 고개를 끄덕인다.

문을 닫고는 바로 숙소 건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서둘러 나온 혜민이 조수석 문을 연다.

"저 찾으셨다고요?"

"응, 일단 타."

그 말에 혜민은 조수석에 올라탄다.

문이 닫히자, 바로 차가 출발한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이번에 안무단 공연에 쓰일 안무곡을 만들려는데, 네 의견도 좀 들어보고 싶어서."

"아~."

그제야 납득했는지, 혜민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연아에게서 지후가 찾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그 이유를 몰라 불안했다.

하지만 그거라면 부를만하다.

"연아가 그 멜로디를 만든다고 들었는데요."

"으음~. 그렇기는 한데, 연아가 포인트를 잘 못 잡는 거 같아서."

"그래요?"

혜민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포인트를 못 잡는다고?

그 연아가?

그 사이, 차는 지하주차장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사무실로 향한다.

"그런데 제 의견이 도움이 되긴 하나요?"

혜민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당연하지."

사무실 불을 켜던 지후가 바로 대답한다.

"너도 공연에 나갈 생각이지?"

"물론이죠."

혜민의 대답 역시 망설임이 없다.

"그럼 네 생각을 그대로 얘기해줘."

지후는 싱긋 웃으면서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낸다.

그 사이, 혜민은 소파에 앉는다.

"여기."

지후는 차가운 사과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기획서는 전부 읽어봤지?"

"네."

혜민은 주스 한 모금을 마신다.

그리고는 말을 꺼낸다.

"저 요즘에 로맨스 소설을 읽고 있어요."

"어? 정말?"

지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가 알기로는 혜민은 미나, 유진과 함께 드라마를 즐겨보긴 한다.

하지만 활자는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저도 원래는 관심이 없었는데요."

지후의 시선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눈치챈 걸까?

혜민이 자연스럽게 말을 잇는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로맨스라고 하니까, 그 장르를 연구할 필요성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안무곡도 안 나온 지금은 달리 할 일도 없다.

혜민은 그렇게 말을 덧붙인다.

"읽어보니까 어때? 재미있는 게 있어?"

"네!"

혜민이 눈을 반짝인다.

"미나가 추천한 게 있는데, 진짜 재밌어요."

"호오~."

지후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루에 책 한 권 이상을 독파하는 미나다.

그녀가 추천할 정도면 내용은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내용인데?"

"자신의 부모를 이혼하게 만든 여자의 외동아들을 유혹하는 여자의 얘기에요."

"…너무 현실적인 내용이네."

그걸 쓴 작가는 쓰는 동안, 어떤 기분이었을까?

지후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현실적인 복수극이란 점이 집중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혜민은 솔직하게 의견을 들려준다.

"그래서 그런지, 안무단 공연 쪽은 왠지 동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뭐, 그렇겠지."

이번 공연 내용을 쓴 건 세희다.

세희는 로맨스 중에서도 남주가 외국 왕자라는 등의 화려한 내용을 좋아한다.

지후가 봐도 비현실적이기는 하다.

"요즘 그 소설을 드라마화한다고는 얘기가 있어요."

혜민은 읽고 있는 로맨스 소설 얘기를 이어간다.

그 모습이 즐거워보인다.

지후는 미소 지으면서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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