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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193화 (193/206)

#   193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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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신데렐라 콤플렉스 거부론2021.05.20.

"전 로맨스 소설의 유행이랄까? 정형화된 패턴이 마음에 안 들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즐겁게 얘기하던 혜민이 화제를 바꾼다.

다소 불쾌한 얼굴로 팔짱까지 낀다.

"패턴?"

"그런 거 있잖아요. 남주는 재벌 2세에 외모는 연예인 뺨치게 잘 생겼다는."

"아~. 그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챘다.

로맨스 소설 중에는 양산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개가 비슷한 게 많다.

가난하지만 활발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여주인공.

혜민의 말대로 재벌 2세에 미남이지만, 과거의 상처로 차갑고 사람을 못 믿는 남주인공.

그런 남주인공의 마음을 여주인공이 열어간다.

이런 내용은 흔하다.

"미나가 추천해준 거 외에도 여러 가지 읽고 있거든요."

혜민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그런데 그 내용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나요."

"죄다 비슷해서?"

"그것도 있는데요. 그 이상으로 여주들은 전부 M이 아닌지 의심이 되더라고요."

"M이 뭐야?"

"마조히스트요."

그 말에 지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요즘 로맨스 소설에 SM 플레이가 나오는 게 유행이야?"

"그, 그런 얘기가 아니라고요!"

혜민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부정한다.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거지?

지후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런 플레이가 나온다는 게 아니라, 여전히 남존여비적인 내용이 많다는 뜻이에요."

혜민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시 주스를 마신다.

"여주는 가난하고, 남주는 재벌 2세란 설정 말이야?"

"그거 말고도 소설 내용 중에 은연히 느껴지거든요. 여주가 남주에게 지배당하고 싶은 욕망을요."

지후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로맨스 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잘은 모른다.

하지만 듣고 보니, 혜민의 말이 맞는 듯하다.

드라마에서도 사회적인 지위가 남주인공보다 위인 여주인공은 보기 드무니까.

"어째 그런 건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몰라요."

혜민의 목소리에서 불쾌감이 묻어난다.

"과거에 남녀차별을 당하기라도 했어?"

지후는 조심스레 묻는다.

과거의 혜민, 이혜연은 최고의 댄서였다.

어떤 무대에서도 활약했던 그녀가 차별받는다니.

믿기 어렵다.

"대놓고 받은 적은 없어요."

지후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눈치챈 혜민이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출연한 작품 대부분이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연상시키곤 했거든요."

신데렐라 콤플렉스.

불행한 자신을 언젠가 백마 탄 왕자님이 구해줄 것이다.

그런 꿈을 꾸는 여성은 자립의지도 없다.

그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이성을 기다린다.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내용이다.

"전 그런 거 싫어요."

혜민은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여주중에서도 유능한 경우는 많지 않아?"

며칠 전에 TV에서 본 뉴스가 떠오른다.

요즘 초·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큐레이터라고 한다.

그 이유는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큐레이터이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전시 기획을 하고, 작가를 섭외하는 모습이 멋있다나?

요즘 여주인공은 커리어우먼에 당찬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 드라마라면 저도 봤어요."

혜민이 봤다는 말에 지후의 눈이 커진다.

"정말?"

"네. 그런데 남주인공은 그 미술관을 후원하는 기업의 장남이던데요."

그리고 미술관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빠진 여주인공을 위해 남주인공이 나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아…. 그래?"

결국 거기서도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빠지지 않는다는 건가?

지후의 어깨가 살짝 처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관계 같지 않아?"

지후는 분위기도 바뀔 겸, 농담 삼아 얘기를 꺼낸다.

"뭐가요?"

혜민은 이해가 안 됐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이돌 가수랑 소속사 사장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로맨스 소설에서 잘 먹힐 거 같지 않냐고."

그러자 혜민의 얼굴이 굳어버린다.

"어라?"

오히려 지후가 당황할 정도다.

여기서는 웃어넘겨야 하지 않나?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혜, 혜민아?"

지후의 부름에도 혜민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점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사, 사장님…."

"어, 왜?"

그러자 혜민은 화가 난 듯하면서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지후를 노려본다.

"일부러 그러신 거죠?"

"뭐, 뭐가?"

"제 마음을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세요!?"

혜민이 양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친다.

"아, 아니.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닌데…."

지후가 서둘러 변명을 해본다.

하지만 잔뜩 흥분한 혜민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눈치다.

"자꾸 이러시면 저도 물불 안 가릴 거예요!"

"아, 알았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좀 진정해!"

그렇게 난리 치는 혜민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혜민은 간신히 진정…을 했다기보다는 제풀에 지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찬가지로 지후도 지쳐 소파에 주저앉는다.

"하아…."

한바탕 난리 친 다음이라 그런가?

기운이 다 빠졌다.

"저, 배고파요."

혜민은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지후는 스마트폰을 확인해본다.

오후 6시가 다 되어 간다.

저녁 먹을 시간이다.

"배달 음식이라도 시켜 먹을까?"

"전 상관없어요."

지후는 일어나서 책상으로 향한다.

예전에 받은 배달 음식 책자가 있던 거 같은데.

책상 서랍을 뒤적거리던 그때,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노크한다.

"네."

바쁜 지후를 대신해 혜민이 대답한다.

문이 열리면서 연아가 들어온다.

"아직 있었네."

소파에 앉아 있는 혜민을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더니 들고 온 도시락통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얘기 안 끝났어?"

"…어떨까?"

혜민이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지후를 노려본다.

그 시선에 지후는 몸을 움츠린다.

아직 기분이 안 풀렸나?

그냥 모르는 척하고 배달 음식 책자를 찾는 일에 집중한다.

"분위기가 왜 이래?"

연아가 수상하다는 시선으로 지후와 혜민을 번갈아 본다.

"무슨 얘기를 했기에 그래?"

"그냥 로맨스 소설 얘기를 했을 뿐이야."

혜민은 어깨를 으쓱거린다.

"로맨스 소설?"

연아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혜민과 로맨스 소설을 연결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번 공연 장르가 로맨스니까, 로맨스 소설을 읽고 있거든."

"아~. 그런 거였어?"

그제야 납득했는지, 연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가 지후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런데 사장님은 아까부터 뭐 하세요?"

"배달 음식 책자 찾아. 혜민이가 배고프다고 해서."

연아가 도시락을 가지고 오긴 했다.

하지만 지후와 연아,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이 담겨 있다.

셋이 먹기에는 적을 게 뻔하다.

그럴 바에는 배달 음식을 먹고, 도시락은 야참으로 먹는 게 낫다 싶다.

"그냥 숙소에 가서 먹으면 되잖아?"

"숙소까지 갈 기운이 없다고.'

혜민이 맥없이 앉아서 불평한다.

평소의 활발한 혜민답지 않다는 걸 연아도 눈치챈다.

"그래서 요즘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고?"

혜민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연아가 화제를 바꾼다.

"응, 넌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는 잘 안 보지?"

"안 봐. 현실의 로맨스와는 거리가 있잖아."

괴리가 너무 크면, 현실의 로맨스에 만족할 수 없게 된다.

그 말에 지후가 귀를 쫑긋 세운다.

연아가 드라마나 소설을 잘 안 보는 건 알고 있었다.

단순히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었구나.

"없네."

아무리 찾아도 배달 음식 책자가 나오질 않는다.

"요즘에는 배달 앱으로 시키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아, 그게 있었지."

연아의 조언대로 배달 앱을 설치하기로 한다.

설치가 끝나자마자, 앱을 실행한다.

그런데 음식 종류만으로도 수가 엄청나다.

"혜민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결국 혜민에게 묻기로 한다.

"저요? 으음…."

질문을 받은 혜민은 고민에 빠진다.

배가 고프긴 하다.

하지만 뭔가 특정한 게 먹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래도 뭐든 상관없다는 대답을 했다가는 지후가 곤란할 게 뻔하다.

"치킨 먹어도 돼요?"

"프라이드로?"

"반반이요."

"알았어. 연아 너도 먹을 거지?"

"네."

도시락도 있으니, 한 마리면 충분하겠지?

처음 써보는 앱이지만, 사용 방법은 간단했다.

지후가 치킨을 주문하는 동안, 연아와 혜민의 대화가 이어진다.

"왜 드라마나 로맨스 소설에는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사라지지 않는 걸까?"

"고정관념을 바꾸는 건 쉽지 않잖아."

여자도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게다가 여자 중에서도 이성에게 보호받고 의지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고."

연아가 진지하게 말을 꺼내자, 혜민은 한숨을 푹 쉰다.

"그런 마음가짐이 오히려 여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걸 모르나?"

뭔가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네.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아서 지후는 책상 앞 의자에 앉는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남주야."

혜민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잘 생기고 돈이 많으면 다야? 성격이 파탄 났는데. 왜 여자들은 그런 남주에게 열광하는지 모르겠다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더니 연아의 시선이 지후에게 향한다.

그러자 지후가 화들짝 놀란다.

"왜, 왜?"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자, 지후는 어쩔 줄 몰라 한다.

갑자기 날 왜 쳐다보는 건데?

잠시 후, 혜민 역시 지후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둘 다 왜 그러는 건데!?"

지후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외친다.

"아니, 대단한 건 아닌데요."

지후가 당황해하자, 연아가 싱긋 웃는다.

"사장님은 절대 로맨스 소설 남주로는 못 나올 거 같아서요."

"맞아요."

혜민도 맞장구친다.

"그건 당연한 거 아냐?"

지후도 알고 있다.

전직 연예인이었던 만큼, 외모는 그럭저럭으로 치자.

그래도 자신은 재벌 2세도, 부자도 아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혜민이 손을 내젓는다.

"사장님 같은 인물이 로맨스 소설에 나오면 여주가 파고들 틈이 없을 거예요."

"그, 그 정도로 내가 성격이 안 좋다는 거야?"

"그 반대라고요!"

도저히 대화가 맞물리지지 않자, 혜민의 목소리가 커진다.

"사장님의 경우에는 성격은 물론이고, 외모도 완벽해서 오히려 악녀를 개과천선 시키고도 남아요!"

"무슨 소리야…."

전부터 생각했지만, 소녀들은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높게 평가한다.

고맙기는 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부담이 크다.

"우리도 사장님을 만나서 많은 게 달라졌으니까요."

연아가 허공을 쳐다본다.

어쩐지 감개무량한 느낌이다.

"사장님은 로맨스 소설에서는 안 맞지만, 현실에서는 최고의 남자죠."

그 말에 지후의 얼굴이 창피함에 새빨개진다.

사람 면상에 대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배달이요."

그때, 사무실 문을 노크하는 배달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네!"

혜민이 서둘러 문을 열고 배달온 치킨을 받아든다.

"감사합니다!"

배달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다시 문을 닫는다.

"같이 먹게 도시락도 펼쳐 봐."

"네 건 없어."

"야!"

연아의 쌀쌀한 말투에 혜민이 발끈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아는 도시락통을 열기 시작한다.

"사장님도 얼른 오세요."

"응."

지후는 일어나서 소파로 향한다.

연아가 옆으로 비켜나기에 그녀의 옆에 앉는다.

"잠깐만요."

혜민의 부름에 지후와 연아가 같이 고개를 든다.

"어째서 연아 옆에 앉으시는 거예요?"

"별 이유는 없는데."

"그럼 제 옆에 앉으셔도 되잖아요?"

혜민이 불만이 가득한 시선으로 지후를 노려본다.

"이런 일로 날을 세우는 사람 옆에 누가 앉고 싶겠어?"

"뭐야!?"

연아의 말에 혜민이 버럭 화를 낸다.

"둘 다 그만해."

지후는 다시 진땀을 빼면서 두 사람을 말린다.

정말이지, 이 두 사람을 포함한 소녀들은 전부 똑같다.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재능을 보여준다.

그런 소녀들이 지후에게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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