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 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_한제희 -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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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최고의 생일선물2021.06.01.
"아, 맞다."
편의점을 눈앞에 둔 지후가 그 자리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혜민에게 건넨다.
"생일 축하해."
"어…."
혜민은 당황해하면서 지후가 건넨 작은 상자와 USB를 받는다.
"…열어봐도 돼요?"
"물론이지."
허락이 떨어진다.
혜민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연다.
안에는 루비가 박힌 팔찌가 들어 있다.
"우와! 고맙습니다!"
얼굴이 밝아진 혜민은 바로 팔찌를 착용한다.
몹시 마음에 들어하는 거 같아서 지후도 안심한다.
"그런데 이건 뭐예요?"
혜민의 관심이 USB로 옮겨간다.
"아, 그건…."
지후가 멋쩍게 뺨을 긁적인다.
"안무곡이야."
"그럼 단장님께 전해 드리는 게…."
"아니, 아니. 안무단 공연용이 아니라, 네 전용 안무곡이랄까?"
"…네?"
그 말에 혜민이 입을 다물지 못한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안무곡이라니.
"마음에 안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리가요!"
혜민이 바로 고개를 젓는다.
지후가 만든 곡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건 취향 문제가 아니다.
"기뻐요. 사장님께서 절 위해 만들어 주셨다는 게."
"그렇게 말해주니까, 만든 보람이 있네."
지후가 싱긋 웃는다.
그 얼굴을 혜민이 빤히 쳐다본다.
"저기요, 사장님."
"응?"
"그게요…."
일단 부르긴 했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혜민이 머뭇거리는 와중에도 지후는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상냥한 시선으로 기다릴 뿐이다.
"으으…."
점점 혜민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다, 다음에 얘기할게요!"
결국 혜민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는 걸까?
앞서서 쿵쿵 걸어가기 시작한다.
"…대체 뭐야?"
혼자 남은 지후는 중얼거린다.
뭔가 할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뭐, 중요한 얘기라면 나중에 말하겠지."
지후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혜민의 뒤를 따른다.
이미 혜민은 편의점으로 들어간 상태다.
냉장고 문을 열고 음료수 세 개를 꺼낸다.
"그거면 돼?"
"네."
그렇게 대답한 혜민은 바로 카운터로 향한다.
"또 살 건 없어?"
"괜찮아요. 아직 먹을 건 많이 남았으니까요."
필요한 건 없다는 혜민의 말에 그냥 음료수만 계산하고 나온다.
"사, 사장님…."
숙소로 향하던 길에 혜민이 또 입을 연다.
"왜?"
"저기요…."
아까와 마찬가지로 쉽게 말을 잇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굳혔는지,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꺼낸다.
"이따가 사무실로 가실 예정이세요?"
"응. 아직 일이 남았으니까."
"그, 그럼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사무실에?"
지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혜민이 사무실에 오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를 이렇게 어렵게 한 건가?
"아까도 그 말을 하려고 했던 거야?"
"네…."
혜민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다.
"많이 바쁘시잖아요? 그런 사장님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아…."
둘 사이에 멋쩍은 분위기가 흐른다.
확실히 요즘 지후가 많이 바쁘긴 했다.
작업을 도와주는 연아 외에 다른 멤버들과는 만날 일조차 줄었을 정도다.
그러니 혜민이 망설이는 것도 당연하다.
"오늘은 괜찮아."
일은 많이 남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사무실에 방문하는 것 정도는 문제없다.
"감사합니다!"
혜민의 얼굴이 밝아진다.
하지만 곧 표정이 굳어진다.
"그런데 이 복장으로 가야 할 거 같아요…."
혜민은 치마 끝을 꽉 잡는다.
익숙하지 않는 복장이라 불편한 모양이다.
"왜?"
"수지가 오늘 하루가 끝나기 전까지는 갈아입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불만스러운지, 혜민은 입술을 삐쭉거린다.
그래도 지후는 수지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지금도 혜민은 원피스 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음에 입을 일이 없지 않을까?
그러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입고 있으라는 거겠지.
"내가 보기에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저, 정말요?"
혜민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그럼."
지후는 싱긋 웃는다.
절대 빈말이 아니다.
가끔 입어줬으면 할 정도다.
그 정도로 지금의 원피스 차림이 잘 어울린다.
"으으…."
혜민의 얼굴이 다시 붉게 물든다.
창피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잘 어울린다는 말이 기뻤다.
"나중에 식사 마친 뒤에 나가자."
"아, 죄송한데요. 사장님께서 먼저 사무실로 가시면, 제가 나중에 나갈게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늦은 시간에 단둘이 나간다고 하면 다들 시끄러워질 게 뻔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지후도 납득한다.
단둘이서 나간다고 하면 다른 멤버들이 그냥 둘리가 없다.
특히 연아가 시끄럽게 굴 게 뻔하다.
"이렇게 하자."
지후가 검지를 세운다.
"내가 나가서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나올 때 전화 줘."
번거로운 방법이다.
하지만 여자애 혼자서 사무실로 오는 게 걱정스럽다.
"알겠어요."
지후의 마음을 알아차린 혜민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계획을 세운 두 사람은 숙소로 향한다.
"다녀왔어."
"늦으셨네요?"
현관에 서 있던 연아가 반겨준다.
그리고 따라 들어오던 혜민을 향해 눈을 흘긴다.
"네가 따라갈 필요가 있었어?"
"사장님 혼자 가시면 고민 끝에 음료수를 엄청 사 오실까 그랬지."
"하긴."
연아가 슬며시 지후를 향해 눈을 흘긴다.
그 시선에 왠지 모를 압박이 느껴지자, 지후는 고개를 돌린다.
"이리 주세요."
연아는 지후 손에 들린 봉투를 가져간다.
그 안에 있던 음료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그것 좀 따라 줘."
치킨을 먹던 수지가 탄산음료를 가리킨다.
"빈 잔이 없는데?"
"그럼 주방에서 가져다줘."
"그 정도는 네가 직접 해."
"칫!"
혀를 차면서 일어난 수지는 주방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컵을 들고나온다.
"이만 가볼게."
지후가 간다는 말에 소녀들의 눈이 커진다.
"벌써요?"
"아직 의뢰가 남아있으니까."
일이 있다는 말에 다들 말리지 못한다.
그래도 얼굴에는 섭섭함이 남아있다.
"음식 좀 싸드릴까요?"
연아의 제안에 고개를 젓는다.
"됐어. 오늘은 많이 먹었는걸."
많이는 아니라도, 만족할 만큼은 먹었다.
그리고 작업한다고 해도 두, 세 시간 정도다.
더 먹을 필요는 없다.
"나머지는 너희가 먹어."
"걱정하지 마세요."
치킨을 먹던 수지가 한 손을 들어 올린다.
설마 남기기야 하겠냐는 듯한 반응에 지후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럼 갈게."
"조심히 들어가세요."
소녀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숙소를 나선다.
아까 계획한 대로 숙소 건물 근처에서 대기한다.
잠시 후, 혜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여보세요."
『저예요. 지금 막 나왔어요.』
"난 지금 건물 옆에 있으니까, 그쪽으로 와."
전화를 끊고, 숙소 입구를 향해 고개를 내민다.
그러자 입구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혜민을 발견한다.
"여기야."
지후가 손을 흔들면서 부른다.
그걸 발견한 혜민이 다가온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야."
짧은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사무실로 향한다.
"갑자기 사무실에는 왜 오겠다고 한 거야?"
"그게요…."
혜민은 잠시 말을 고른다.
"이거 어떤 곡인지 듣고 싶었거든요."
그리고는 옷 주머니에서 USB를 꺼낸다.
"그거라면 방에서 들어도 되잖아?"
"사장님과 둘이서 듣고 싶어요."
그렇게 말한 혜민이 고개를 움츠린다.
"이상한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왠지 머쓱해진다.
USB 안에는 혜민을 위한 안무곡이 들어 있다.
여태껏 많은 곡을 만들었지만, 선물 목적으로 만드는 일은 드물다.
그걸 같이 듣는다고?
"좀 쑥스럽네."
"왜요?"
혜민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유를 전혀 모르는 눈치다.
"다른 사람이랑 곡을 듣는 건 많이 해보셨잖아요?"
"그거랑은 좀 다르달까…."
"다르다니, 뭐가요?"
"이번 건 네가 부탁해서 만든 게 아니라, 내가 선물할 목적으로 만든 거니까."
안무곡을 만드는 동안, 혜민에게 한 번도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즉, 혜민의 취향에 맞춘 게 아니다.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떻게 하지?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혜민이 단호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사장님께서 만드신 곡이라면 분명히 제 마음에 들 거라고."
"고마워."
지후는 싱긋 웃는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조금은 안심이다.
"어휴!"
혜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너무 답답하다.
지후의 작곡 실력은 분명하다.
그 재능은 과거에 최정상에 올랐던 소녀들이 인정할 정도다.
그런데 왜 본인은 몸을 낮추려는 걸까?
"정말 답답해."
"뭐가?"
무심코 한 말에 지후가 되묻는다.
"아, 아뇨. 혼잣말이에요."
혜민은 얼버무리면서 고개를 돌린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사무실에 도착한다.
"USB 가지고 왔지?"
"네."
혜민은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그에게 건넨다.
그러자 지후는 작업실로 향하고, 혜민도 그 뒤를 따른다.
"말해두겠는데."
작업용 PC 앞에 앉은 지후가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본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이쯤 되니 불만이 쌓인다.
지후가 만든 곡이다.
바쁜 와중에 만들었다고는 해도, 절대 대충 만든 게 아닐 것이다.
혜민은 그렇게 믿는다.
"그럼 재생할게."
지후는 PC에 USB를 연결한다.
그리고 안에 있던 음원을 재생시킨다.
혜민은 긴 의자에 앉아서 귀를 기울인다.
"어?"
혜민의 눈이 커진다.
처음으로 들린 건, 바이올린의 높은 소리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견줄 자는 없다.
바이올린은 그렇게 말하듯, 한동안 독주를 이어간다.
한참이 지나서 피아노가 조심스럽게 끼어든다.
하지만 바이올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으음."
혜민은 고개를 주억인다.
독선적이긴 하지만, 고고함을 내세우는 바이올린이 마음에 들었다.
피아노 음이 잦아든다.
그러자 그 자리를 노리듯이 반도네온이 끼어든다.
바이올린과 반도네온, 둘 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기 싸움을 펼친다.
"좋은데."
치열하면서도 열정적인 멜로디가 마음에 쏙 든다.
한동안 이어지던 기 싸움이 이어진다.
그러다 점점 둘 사이에 균형이 맞춰진다.
그 사이에 피아노와 드럼이 끼어든다.
네 개의 악기가 한데 어우러져서 하나의 곡을 만든다.
그 와중에서 바이올린의 고음이 두드러진다.
누구도 날 지배할 수 없어.
날 길들일 수 없어.
바이올린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으으…."
혜민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쥔다.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바이올린의 음에 고양된다.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다.
그렇게 악기들, 특히 바이올린은 고음을 내면서 끝을 맞이한다.
"우와!"
화려한 끝맺음과 동시에 혜민이 벌떡 일어선다.
"최고예요!"
심장이 마구 뛴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은 기분이다.
단 4개의 악기로 이렇게 화려하게 연주하다니.
"마음에 들어?"
지후의 질문에 혜민은 눈을 반짝인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를 얘기할 정도가 아니에요!"
"무슨 뜻이야?"
"인생곡을 만났다고요!"
혜민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에 반해, 지후는 어깨를 움츠린다.
"너무 과장한 거 아니야?"
"아뇨!"
그렇지 않다면서 혜민은 고개를 내젓는다.
"장담할 수 있어요. 이 곡이라면 과거의 제 대표곡으로도 손색없어요."
"그, 그래?"
그건 좀 오버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든다.
뭐,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는 거겠지.
"그런데요."
혜민의 얼굴이 갑자기 침울해진다.
"이 정도면 저 혼자 안무하기는 어렵겠어요."
각 악기에 맞는 댄서가 있어야 한다.
"정말?"
그 말에 지후가 당황해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길 줄이야.
"미, 미안해.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네."
지후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겠다.
그 주제로 만든 곡이라 비교할 만한 다른 악기의 참여는 필수였다.
설마 안무 제작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완전히 실패했다.
"사과하실 거 없어요."
혜민은 당당한 시선으로 지후를 바라본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정도는 제 인생곡이 될 수 있어요."
이 곡으로 춤을 출 수 있다면, 다른 댄서를 준비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싱긋 웃어 보인 혜민은 지후 뒤로 이동한다.
그리고 등 뒤에서 그의 목에 팔을 두른다.
"혜, 혜민아!?"
당황한 지후가 버둥거린다.
그래도 혜민은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제 일생 최고의 생일선물이에요."
그 말에 지후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리고 멋쩍게 웃어 보인다.
"그렇게 말해줘서 영광이야."
좀 실패한 구석도 있지만, 이 말을 들었으니 지후도 만족스럽다.
"…그런데 좀 놔주면 안 될까?"
"으음. 조금만 더요."
혜민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절대 떨어지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끙…."
지후는 곤란하다.
당장 떨어지라고 할 수도 없다.
이 와중에 다른 멤버가 쳐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혜민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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