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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나에겐 지독하리만큼 어려운 일. (29/130)

30. 나에겐 지독하리만큼 어려운 일.2021.12.13.

16548619582584.jpg“정이든, 정이든! 눈 좀 떠봐.”

이슬은 눈시울이 붉어져 울음 섞인 음성으로 이든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평온하기 그지없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일더니 그가 서서히 눈꺼풀을 말아 올렸다. 그와 시선이 맞물리자, 내려앉았던 심장이 차츰 제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한동안 자신을 멀거니 응시하던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16548619582589.jpg“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주변 잘 살피면서 걸으라고 했지.”

이든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지자 이슬의 눈동자가 옅게 흔들렸다. 나른한 음성에 심장이 찌르르 울리더니 머릿속이 멍해졌다.

16548619582593.jpg“대표님! 대표님, 어디 다치신 데 없으세요?”

업체 직원이 부리나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자, 이든은 서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가 이슬을 향해 손을 내밀자, 그녀의 시선이 커다란 그의 손에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큼지막한 그 손바닥 위에 손을 얹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의 따스한 온기를 쬐고 싶었다. 사무치도록 그리워 꿈결에서도 그리워하던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굳건한 다짐은 언제나 온기를 머금은 그의 앞에서 물색없이 흐트러졌다. 흔들리는 이성을 다잡으며 그녀는 홀로 우뚝 일어서서 건물을 빠져나갔다. 바깥 공기를 쐬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벽을 짚고 섰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가슴이 뻐근할 만큼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심장은 피부를 뚫고 나올 듯 빠르게 뛰었다. 파르르 손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쉬이 진정되지 않는 이유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확고했던 확신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져내렸다. 텅 빈 시선으로 먼 곳을 응시하던 그녀의 귓가에 세상 모든 소리가 묻히고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만 또렷하게 들려왔다.

16548619582589.jpg“어디 봐. 다친 데 없어? 발목은 괜찮아?”

초점 없던 눈동자가 천천히 목소리의 주인공을 쫓았다. 이든이 한쪽 무릎까지 구부리고 제 발목을 살피는 모습에 하마터면 울음이 비죽 나올 뻔했다. 무너지지 않으려 입안 여린 속살을 힘껏 깨물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쏟아지는 상자 더미가 아니라 결국 너였다.

16548619582584.jpg‘널 잃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네가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길 바라던 나는. 널 미워하는 것이 지독하리만큼 어려운 일인가보다. 네가 망했으면 하는 마음과 달리, 사실 네가 잘못될까 봐 두려운 모양이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계속 너가 불어왔다. 네가 일으키는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내가 참 싫다.

16548619582584.jpg‘그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 내게 머무르지 마.’

그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에게 흔들리지 않으려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 같은 것이었다.

16548619582593.jpg“정 대표님! 창고에서 사고가 있으셨다고요. 괜찮으십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업체 사장이 이든에게 다가왔다. 사장의 목소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이슬의 발목을 살피던 이든이 천천히 일어났다. 사장이 그의 두 어깨를 잡자 이든은 통증이 느껴지는 듯 움찔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16548619582589.jpg“전 괜찮습니다. 저보다는 디자이너님이 걱정이죠.”

이든은 한순간도 이슬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당장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놀라지 않았냐고 품에 가두듯 안고 다독여주고 싶었다. 새어 나오는 마음을 꾹 누르느라 바빠 사장의 말이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슬이 천천히 다가오자 그의 눈썹이 느릿하게 꿈틀거렸다. 자신의 옷자락에 작게 힘이 실리는 느낌에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작고 하얀 손이 제 옷자락을 쥐고 있었다.

16548619582584.jpg“병원 가자.”

그녀의 갈라진 음성에 이든은 애써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16548619582589.jpg“나 괜찮은데. 멀쩡해.”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던 이든의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아무래도 박스가 떨어지면서 어깨에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이슬은 파르르 떨리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감정을 꾹 눌렀다.

16548619582584.jpg“괜찮은 사람이 이래? 당장 병원부터 가.”

그의 옷자락을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차마 손을 잡으면 그 따스한 온기에 녹아내릴 것 같아 애먼 옷자락만 세게 움켜쥐고 앞장서서 걸었다. 그녀에게 끌려가듯 뒤따라 걷던 이든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이슬의 손을 잡았다.

16548619582589.jpg“병원은 내가 아니라 네가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도 제 걱정부터 하는 그에게 울컥 짜증이 솟구쳤다.

16548619582589.jpg“손이 얼음장이 따로 없네. 많이 놀랐지?”

그가 두 손을 따스하게 감싸 쥐자 이슬은 단호하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16548619582584.jpg“똑같은 말 두 번 하게 만들지 말고…….”

16548619582589.jpg“알았어. 갈게. 가자.”

가슴 속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그저 죄책감이라는 감정으로 뭉뚱그리고 싶었다. 그러면 조금은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를 빗속에 두고 온 것만으로도 주말 내내 가슴이 무거웠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신 때문에 다친 그에게 마음이 불편한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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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검사를 마치고 온 이든은 대기 의자에 앉아 힐긋 이슬의 눈치를 살폈다.

16548619582589.jpg“나 괜찮으니까. 이만 가 봐. 이러다 약속 시간 늦겠다.”

이슬은 무릎 위에 올려 둔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핏기가 가실 만큼 손마디를 힘껏 움켜쥐었다.

16548619582584.jpg“다시는 내 일에 나설 생각하지 마.”

이든은 픽- 웃음을 지으며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16548619582589.jpg“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어지네.”

16548619582584.jpg“뭐?”

이슬의 사나운 표정에도 이든은 여전히 입꼬리를 꿈틀거리며 웃음을 꾹 참았다. 아예 고개를 돌려 이슬에게 시선을 고정한 그는 따스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16548619582589.jpg“지금 내 걱정해주는 거잖아.”

16548619582584.jpg“걱정은 무슨.”

16548619582589.jpg“좋네. 단이슬 잔소리.”

이슬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려 먼 곳을 응시했다.

16548619582584.jpg“착각하지마, 네 걱정 따위 하는 것 아니야. 난 그냥…….”

그 뒤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말을 하는 저조차 자신의 마음을 확연하게 들여다볼 수 없었으니까. 말을 매듭짓지 못한 채 입술을 짓이기자, 이든은 이슬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16548619582589.jpg“입술 좀 그만 괴롭혀.”

그의 온기로 얼어붙었던 자신의 세상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매몰차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으나, 그 온기가 너무 따뜻해 쉽게 내치지 못했다. 잠잠히 제 손을 감싸 쥔 그의 손에 시선을 둘 무렵, 간호사가 이든을 호명했다.

16548619582589.jpg“진료 잘 받고 검사결과 문자로 남겨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곤 진료실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멀거니 응시했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슬은 울음 섞인 음성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16548619582584.jpg“나한테 왜 그래. 나한테 대체 왜…….”

한참을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이슬은 문득 도하가 떠오른 듯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도하는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16548619638881.jpg- 네, 이슬 씨. 그렇지 않아도 지금 카페 나가려던 참인데. 일은 마쳤어요?

16548619582584.jpg“도하 씨, 미안해서 어쩌죠? 제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약속 못 지킬 것 같아요.”

카페 문을 닫던 도하는 선뜻 입을 떼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그녀가 부담스럽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16548619582584.jpg- 미안해요. 저 때문에 귀한 자리 마련해줬는데…….

착 가라앉은 이슬의 음성에 도하는 애써 입매를 끌어올렸다.

16548619638881.jpg“아틀리에는 언제든 가면 되죠. 미안해할 것 없어요. 괜찮아요.”

통화를 마친 도하는 얕은 숨을 허공에 흩트리며 짙은 상념에 젖었다. * * * 진료실에서 나오던 이든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슬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힘차게 그녀에게 닿으려던 발걸음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름 한 조각에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16548619582584.jpg“도하 씨, 미안해서 어쩌죠? 제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약속 못 지킬 것 같아요.”

그녀의 냉기 어린 눈빛과 온기 없는 음성도 겸허히 받아들였지만. 딱, 한가지 여전히 가슴을 쓰라리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녀의 입술 틈으로 새어 나오는 다른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그가 애써 외면하려 몸부림치는 현실의 파편이었다. 몇 걸음 떼면 닿을 거리에 그녀를 두고도 돌아서지도 다가가지도 못했다.

16548619582589.jpg‘너에게 그 사람이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면, 너에게 닿고자 하는 마음이 이기적인 걸까?’

아니, 결코 물러날 수 없는데. 난 너 없이 살 수 없는데.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눈에 담다가 통화를 마친 이슬과 시선이 맞물렸다. 제 안에 스며드는 불안함을 떨쳐내며 이든은 활짝 웃음을 지었다.

16548619582589.jpg“간 줄 알았는데 아직 있었네.”

16548619582584.jpg“검사결과 뭐래? 괜찮대?”

자신에게 시선 한 줌 주지 않고 싸늘하게 물어도 그 작은 관심만으로 좋았다. 그것이 그저 자신 때문에 다쳤다는 죄책감으로 물든 관심일지라도 그에겐 과분했다.

16548619582589.jpg“X-ray 상으로 특별한 이상 없는데 계속 통증이 있으면 근육이 찢어지거나 미세 골절이 있을 수 있다네.”

16548619582584.jpg“당장 입원해. 입원해서 정밀 검사…….”

16548619582589.jpg“약속 없으면 나랑 밥 먹자.”

이슬은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꾹 다문 채 이든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16548619582589.jpg“독한 약이라 빈속에 약 먹지 말라는데, 아픈데 혼자 밥 먹기 싫어서 그래.”

16548619582584.jpg“…….”

16548619582589.jpg“지난번처럼 나 두고 가지 말고 같이 밥 먹어주라.”

이슬의 시선에 비친 이든은 잃어버린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았다.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떼지 않고 기다리는 강아지. 이번에 그를 버려두고 떠난다면 몇 날 며칠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기다릴 것만 같았다.

16548619582584.jpg‘내가 널 잃고 불행한 만큼만 너도 딱 그만큼만 불행하길 바랐는데.’

이젠, 불행한 널 두고 볼 자신도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네 심장에 칼을 꽂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품었던 나는 어디 갔을까. 대체 난 어디서 길을 잃은 걸까. * * * 이슬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듯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상념에 젖어있었다. 보다 못한 이든은 식당을 나서는 이슬을 가로막고 차 키를 빼앗아 들었다. 그녀가 이대로 운전을 하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길, 차 안은 적막으로 가득 들어찼다. 지상 주차장에 차를 세운 이든은 멍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이슬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딸칵- 그가 안전벨트를 푸는 소리에 흐릿했던 이슬의 눈동자에 빛이 스며들었다. 주위를 살피던 이슬은 집에 도착한 것을 인식하고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그저 들어가는 것만 보려고 그녀를 따라 걷던 이든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이든의 시야에 단지 앞을 서성이는 도하가 들어왔다. 동시에 도하는 이슬을 발견하고 단번에 그녀에게 닿았다.

16548619638881.jpg“이슬 씨!”

그의 등장에 놀란 듯 이슬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자, 도하는 안도하며 미소를 지었다.

16548619638881.jpg“아무래도 목소리가 안 좋아서 무슨 큰일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도하는 안도하던 것도 잠시, 이슬의 등 뒤로 이든이 보이자 미소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16548619638881.jpg‘당신 목소리가 그토록 잠겨있던 이유가 결국 저 남자 때문이었나?’

그녀가 말한 그 ‘일’이 이든이 아니길 바랐다. 그녀에게 닿으려 비겁하게 그녀가 좋아하는 ‘류’까지 들먹였건만. 그리 좋아하는 ‘류’를 저버리고 저 남자 곁에 있을 만큼 당신의 마음이 기울어있지 않길 바랐다. 그녀에게 닿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은 도하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16548619582584.jpg“괜한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대신 다음에 제대로 밥 살게요.”

16548619638881.jpg“괜찮은데 그렇게 해야 이슬 씨 마음이 편하다면 나한테 밥 살 기회 드릴게요. 올라갑시다.”

이든은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으로 도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밤에 그녀의 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것도 신경을 긁고 있건만. 그가 자연스레 뱉은 말이 거슬려 미간이 사납게 구겨졌다.

16548619582589.jpg‘올라갑시다? 집까지 드나드는 사이다 이건가?’

이든은 속이 타는 듯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이슬과 도하 사이를 끼어들며 말했다.

16548619582589.jpg“주말에 네가 입고 간 옷 찾아가야겠다. 아니다. 나중에 와서 입게 여기 두는 게 나으려나?”

맹수가 으르렁거리듯, 그녀의 뺨이 자잘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제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어뜯을 것 같아도 물러설 수 없었다. 염치없게도 난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널 빼앗길 수 없다. 이든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하를 빤히 응시했다. 교차하는 두 남자의 시선에 스파크가 일 정도로 고요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견제하는 두 남자에게 수컷의 향이 물씬 풍겼다.

16548619695406.jpg

   * * * 다음 날 아침. 이든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어제 보다만 보고서를 살폈다. 어깨를 움직이며 뭉친 근육을 풀자 묵직한 통증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통증에 밤잠도 설칠 정도였으니 꽤 오래 갈 통증이라 생각 들었다. 노크 소리에 이든의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 그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스며들었다. 굳은 얼굴로 집무실에 들어온 이슬은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16548619582584.jpg“몸은 좀 어때?”

통증이 여전하다며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더는 걱정을 끼칠 수 없었다.

16548619582589.jpg“좋아. 말끔해.”

그저 형식적인 안부라도 그녀의 시간이 아주 잠시라도 자신에게 흐른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 . . 점심 식사 후 모두가 나른해질 시간인 오후 3시. 다급한 발걸음과 함께 이든의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하루종일 하늘을 둥둥 떠다니듯 달콤했던 행복의 시간도 그것으로 끝이 났다. 노크도 없이 벌컥 열리는 문에 이든의 얼굴이 일순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16548619582589.jpg“민재이, 분명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했을 텐데.”

그의 일갈에도 표정 변화 없이 책상 앞에 선 재이가 말했다.

16548619722994.jpg“내가 처음부터 수상하다 생각했어. 언젠가 이렇게 뒤통수 맞을지 알았다고.”

재이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계속 늘어놓자, 이든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차갑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16548619582589.jpg“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16548619722994.jpg“오빠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재이는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이든의 책상에 세게 내려놓았다. 여전히 재이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쏘아보던 이든은 서서히 태블릿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 듯 이마를 매만지며 태블릿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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