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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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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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2022.04.01.
이든의 집무실에 유유히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연희였다.
연희는 감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냉소를 머금었다.

“다시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네.”
이든은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연희 곁으로 다가왔다.

“앉으시죠. 차는 뭐로 드릴까요.”

“길게 이야기할 것도 아닌데, 차는 무슨.”
멍한 얼굴로 연희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윤을 이끌고 집무실을 나선 이든은 그의 어깨를 힘껏 잡고 말했다.

“조금 있으면 이슬이 들어 올 거야.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 회사에 못 들어오게 막아. 저 두 사람 절대로 마주치면 안 돼.”

“그래도, 이슬이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이슬이 엄마가 너희 사이 알고 온 걸 텐데.”

“부탁한다.”
이든은 윤의 등을 다독이며 덤덤한 얼굴로 집무실로 들어섰다.
연희는 표정 변화 없는 이든이 가소롭다는 듯 헛웃음을 토하며 입을 뗐다.

“눈치 빠른 사람이니까 내가 왜 온 지는 알 테고, 다 알고 온 거니까 말도 안 되는 핑계 댈 생각이라면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연희는 가방 안에서 사진 한 뭉치를 꺼내어 테이블에 툭 던졌다.
사진 속엔 하나같이 이슬과 이든의 다정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증거가 명확하니 그저 우연히 만나 일만 하는 사이라고 변명할 생각은 말고.”
사진을 빤히 바라보던 이든은 감정적 동요 없이 연희를 응시했다.

“이미 다 알고 오신 것 같은데 숨길 것도 없죠. 저랑 이슬이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뻔뻔한 이든의 모습에 그녀는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뻔뻔한 건가? 아니면 양심이 없는 건가? 내 딸한테 상처 준 네가 무슨 염치로 내 딸을 만나!”
연희가 한껏 날 선 말을 내뱉어도 이든은 타격감 없이 꿋꿋하게 연희를 응시했다.

“가진 것 없는 제가 이슬이 앞길을 막을까, 저희 사이 반대하셨던 거 아니셨습니까? 이젠 염려하실 일 없으실 것 같은데요. 이슬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었고 전 곧 상장을 앞둔 기업의 대표입니다.”
연희는 상체를 기울여 이든과 거리를 좁힌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난 내가 보낸 메시지를 잘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못 알아들은 모양이군, 정신을 못 차린 건가 아니면 무모한 건가?”
이든은 잠잠히 연희를 응시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연희의 입매는 호선을 그렸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나? 확실시된 계약이 왜 갑자기 불발되었는지.”
3년 전 이슬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자신이 설계했다며 스스로 인정하는 연희를 두고 이든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

“계약이 거의 확정 되었다고 들떠서 주제 파악 못 하길래, 손 좀 썼지. 투자 무산되자마자 바로 헤어지길래 난 또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네?”

“제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제가 싫으셨던 거군요.”
그가 자조적인 미소를 머금자, 연희의 눈매가 좁아졌다.
자존심 상하고 상처를 받아야 하건만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라 당혹스러웠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고 연희가 입을 떼려던 찰나였다.
Drrrrr.
책상 위에 있는 이든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그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발신인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내 사람]
발신인이 이슬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는 결심한 듯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실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더는 그녀를 위한 길이라고 자신을 속여가며 겁먹고 도망치지 않으리라.
휴대폰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통화를 수신 거부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연희는 냉기를 품은 눈빛으로 이든을 빤히 응시하며 말했다.

“3년 전처럼 굳이 내가 손을 써야 말을 들을 텐가?”

“괜한 일 하시는 걸 겁니다. 비겁하게 도망가기엔 이젠 제가 두려울 게 없네요.”
그녀를 잃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전화 한 통이면 없던 죄도 만들어서 검찰 조사받게 할 수 있어.”

“그런 얕은수에 접힐 마음이었으면 애초에 다시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에도 기대하시는 대답을 듣기 어려우실 것 같은데 이만 가주시죠. 배웅은 못 해 드리겠네요.”
연희는 변함없이 당돌한 이든의 모습에 비소를 머금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전에도 꽤 당돌했지. 그런데 결국 투자 무산시키니까 마음 변했잖아. 이번에도 네가 거머쥔 것들 빼앗고 무너뜨리면 굴복할 거 아닌가?”

* * *
회사로 들어서던 이슬은 거슬리는 것을 발견한 듯 주차된 차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주차를 이렇게 그지같이 해놨어?”
주차 칸을 벗어나 두 칸을 차지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회사로 들어섰다.
예나와 윤이 이든의 집무실 부근을 서성이자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어?”
이슬의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하며 놀란 윤은 마치 무엇인가 숨기는 사람처럼 숨 쉬는 것조차 부자연스러웠다.

“정 대표 안에 있지?”
이슬이 집무실 가까이 다가서자 윤은 재빨리 몸으로 막아서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지금 미팅 중.”

“미팅?”
미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작업실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이슬아 커피 안 마실래? 나가자. 내가 살게.”
윤이 식은땀을 흘리며 제 앞을 막아서자, 이슬의 눈매가 미약하게 좁아졌다.

“화가님 미팅은 잘 마쳤어?”
예나가 팔짱을 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하자 이슬은 여전히 꺼림칙한 기분으로 예나에게 시선을 두었다.

“응.”

“나 너무 열심히 회의 준비했나? 당 떨어져. 이슬아 커피나 마시고 오자.”
예나가 거의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하는 바람에 억지로 사무실을 빠져나온 이슬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생각에 잠긴 듯 두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머지않아 눈동자에 빛이 스며든 이슬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집무실 쪽을 응시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통화가 수신 거부 되자, 이슬은 거침없이 이든의 집무실로 다가갔다.
예나와 윤이 그녀를 막아보려 손을 뻗었지만, 그때는 이미 이슬이 집무실 문고리를 잡아당긴 이후였다.
이슬이 집무실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3년 전에도 꽤 당돌했지. 그런데 결국 투자 무산시키니까 마음 변했잖아. 이번에도 네가 거머쥔 것들 빼앗고 무너뜨리면 굴복할 거 아닌가?”
연희의 음성에 무슨 일인지 파악할 새도 없이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직감이 틀리길 바랐다.
엘리베이터에서 집무실로 걸어오는 그 짧은 거리를 이슬은 자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빗나가길 바라고 또 바랐다.
주차장에서 얼핏 본 그 차가 연희의 업무용 차가 아니길.
자신이 목숨같이 여기는 이든에게 상처 주는 말을 건네질 않길.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여자라도, 그래도 혈육이라고 미련하게 붙들고 있는 그 여자에게 더는 실망하는 일이 없길 바라고 또 바랐는데.
그녀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제 삶에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암담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듣지 않아도 될 가시 돋친 말을 들었을 이든을 생각하니 눈가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심장은 욱신거렸다.
폐부에 닿을 만큼 크게 숨을 들이마시던 그녀는 지독하리만큼 차갑고 냉기를 품은 얼굴로 집무실로 들어섰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날 선 눈빛은 단번에 연희에게 꽂혔다.
연희는 갑작스런 이슬의 등장에 당황한 듯 두 뺨이 자잘하게 떨렸다.
놀란 것은 연희뿐만이 아니었다. 이든은 난색이 서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선뜻 입을 떼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연희에게 고정된 이슬의 시선이 차츰 테이블을 어지럽힌 사진으로 향했다.
사진을 발견한 그녀는 입매를 비틀어 냉소를 흩트렸다.

“도 관장님,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네가 처음부터 이런 애랑 엮이지 않았으면 내가 이렇게 나서는 일도 없었겠지.”

“그래서 이런 삼류나 하는 짓을 하셨어요? 돈 봉투도 없이?”

“단이슬!”
연희의 외침에도 이슬은 한 걸음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돈은 얼마나 주시려고요? 설마 푼 돈으로 처리하시려는 건 아니죠? 하나밖에 없는 딸을 두고 가격을 매기는 건데, 꽤 크게 값을 치르셔야 할 거예요.”
연희는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터트리며 이슬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제 속으로 낳았다 하지만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더 제가 관장님께 실망해야 할까요?”
이슬은 더는 실망할 것도 없다는 듯 체념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금 나 하나 좋자고 이런 일을 하겠어?”
이슬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릿한 미소를 토해냈다.

“그렇죠. 어느 것 하나 저를 위하지 않는 게 없으셨겠죠. 그래서 저랑 아버지도 버리신 거잖아요. 다 저를 위해서.”

“애처럼 굴지 마. 지금은 네 사랑이 가장 고귀하고 대단하게 느껴질 테지만 그거 얼마 못 가. 찢어지게 가난하면 고귀했던 그 사랑이 가장 넌더리가 나거든.”
연희는 옛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치가 떨리는 듯 두 주먹을 힘껏 말아쥐었다.

“내가 그 길을 가 봤으니까. 너만큼은 그 길 걷지 말고 좋은 남자 만나서 편하게 살라는데 뭐가 문제야.”
이슬은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목 안으로 삼켰다.
그제야 아버지가 밤낮없이 일에 매달린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법 없이도 살 정도로 선량했던 사람이 왜 많은 사람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면서까지 더러운 돈에 욕심낸 것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만 같았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왜 그리 밤낮 할 것 없이 일에 매달려서 날 외롭게 만드나, 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을 짓까지 하면서 돈에 집착했나 싶었는데 결국, 관장님 때문이었네요.”

“…….”

“아버지를 망가트린 건 당신이야,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를 당신이 망가트렸다고!”
연희는 듣고 싶지 않은 듯 시선을 외면하며 먼 곳을 응시했다.

“돈 많이 벌어서 어떻게든 떠나간 관장님 마음을 되돌리고 싶었겠죠. 겨우 중소기업 사장밖에 되지 않는 양반이 돈을 긁어모아 봤자지. 무려 DK 그룹 사모님이 되셨는데 중소기업 사모님이 성에 차려고.”

“…….”

“배 아파서 낳은 자식 버리고 남의 자식을 제 자식처럼 품을 만큼 돈이 좋은 사람인데.”
이슬의 계속되는 비아냥에 연희는 참다못해 억누르던 감정을 표출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엄마 노릇 하겠다잖아! 넌 나처럼 오점 남기지 말라고 이렇게 기를 쓰고 있잖아!”

“오점.”
씁쓸한 얼굴로 그 말을 곱씹듯 읊조리던 이슬은 실소를 터트렸다.

“내가 관장님한테 오점이었구나, 그 오점 지금이라도 말끔히 사라져 드릴 테니까 앞으로 편하게 다리 뻗고 사세요.”
연희는 어느새 한계에 다다른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정말, 같잖은 반항 그만 좀 해! 참는 것도 정도가 있는 거야.”
연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이자, 이슬은 그녀의 곁에 바짝 달라붙어 섰다.

“충고 하나 드릴게요. 그렇게 좋아하시는 사모님 놀이 계속하시려거든 내 사람 건드리지 마세요. 다시 한번 내 사람 건드리는 날엔 오늘처럼 교양이나 품위 따위 지킬 생각 없으니까.”
이슬은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애쓰는 듯 음성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어떻게 직접 본인 발로 나가실래요? 아님, 경찰 부를까요?”
연희가 모멸감에 이를 악물며 회사를 빠져나가자, 이슬은 두 주먹을 질끈 말아쥐며 두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이든은 툭- 건드리면 그대로 무너져내릴 것 같은 이슬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무겁게 짓눌렸다.
그녀가 초연한 얼굴로 말없이 제 곁을 스쳐 지나자 이든은 불안한 듯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이슬아.”
그의 눅눅하게 젖은 음성이 심장을 찌르르 울렸다.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하자.”
힘없는 그녀의 목소리에 괜스레 울음이 묻어나는 것 같아 그녀를 잡은 손이 힘없이 툭- 떨어져 내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으며 건물을 빠져나가자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제 손을 잡아채는 손길에 맥없이 돌아섰다.
그는 계단으로 뛰어 내려온 듯 거친 숨을 정돈할 겨를도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이슬을 담았다.

“이슬아 내 이야기부터 들어.”
끝까지 모르길 바랐던 비밀을 그녀가 알게 된 이상,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했다.
이젠 꾹꾹 눌러왔던 그 날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지난번에 줬던 반지 주면서 결혼하자고 하려고 했었어.”
그가 한없이 낮은 음성으로 내뱉는 한마디에 이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어느 날 그저 같잖은 핑계로 이별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생각했던 그의 말이 날카롭게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때의 난 사방이 다 벽이었고, 나 자신이 바닥이라 생각했어.’

‘너가 내 곁에 있으면 내 어둠이 너한테 물 들 것 같았어. 도저히 네가 시드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어.’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네가 내 엄마라는 사람에게 수모를 당한 것도 모르고, 난 널 한없이 증오하고 저주했었는데.

“내가 꿈꿔왔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니까, 두려웠어 내 어둠이 너에게까지 뻗는 것은 아닐까, 나로 인해 네가 시들지 않을까.”
이제야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말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졌다.

“그래서 하루라도 더 빨리 네가 좋은 사람을 찾길 바랐어. 네가 내 곁을 떠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어, 바보같이.”

“왜 말 안 했어. 처음부터 말했으면 좋았잖아.”

“너한테 네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아니까.”

“…….”

“그림을 시작한 것도, 그렇게 좋아하던 서양화를 접은 것도 다 엄마 때문이었잖아. 너에게 도 관장은 쉽게 미워하지도 끊어내지도 못하는 애증이라는 걸 아는데 내가 어떻게 그래.”
비참했다.
내 엄마라는 사람이 널 찾아가 모진 말로 네게 상처를 주고 널 무너뜨리고 주저앉힌 것도.
이런 사실도 모르고 3년이나 널 증오하고 저주하며 죄책감이 스밀 때마다, 다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를 하던 그 시간도.

“대체 얼마나 더 나를 비참하게 만들 생각이야. 내가 네 앞에서 얼마나 더 바닥을 보여야겠어.”
그녀의 말간 눈동자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왈칵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자, 이든은 가슴이 저미는 듯 눈썹을 우그러뜨렸다.

“그렇게 숨기고 혼자 짊어지는 게 정말 날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럼, 내가 고맙다고 할 줄 알았어? 왜! 네 앞에 제대로 설 수 없게 만들어.”
우리의 이별에 내 엄마라는 사람이 개입된 줄도 모르고,
너가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줄도 모르고.
네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들만 고르기 바빴고, 나 혼자 상처받은 양 그 시간을 널 원망하기 바빴는데.
내가 어떻게 네 곁에서 행복할 수가 있어. 내가 네 얼굴을 어떻게 봐.
가볍게 말아쥔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내려치고, 핸드백으로 그를 밀쳐냈지만 우직한 그의 몸이 밀릴 리 없었다.
한참 그녀의 분이 풀릴 동안 말없이 맞고 있던 그는 그녀를 품 안에 가뒀다.

“이번엔 절대로 도망치지 않을게, 비겁하게 네 손 놓지 않을게.”
묵직한 그의 목소리가 가슴을 저릿하게 울렸다.
이슬은 그를 밀쳐내던 손길을 멈추고 그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