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사랑과 소유욕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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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사랑과 소유욕의 상관관계.
2022.04.15.
끼익-.
귀를 찌르는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차를 세운 이든은 전장에 나서는 장수나 지을 법한 비장한 얼굴로 차에서 내려 저벅저벅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큰 노랫소리와 어두컴컴한 실내, 무엇보다 1층 스테이지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으로 북적이는 이곳은 이슬이가 싫어하는 것투성이였다.

“그래, 이런 곳을 이슬이가 좋아서 올 리가 없지.”

‘사악한 정예나가 혼자 클럽 가기 싫으니까 순진한 이슬이를 꿰어낸 것이 분명해.’
사람들 틈 사이에서 주변을 살피며 이슬을 찾아 헤매던 때였다.

“아무래도 2층 올라가서 찾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윤이 여전히 인파 속에서 예나를 찾는 듯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하자 이든은 그를 빤히 주시했다.

“난 이슬이한테 붙을 날파리들 떼어내러 왔다고 치지만, 넌 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까지 쫓아오는 건데?”

“그야 당연히 예나 걱정되니까 그러지.”
윤이 여전히 인파에 시선을 둔 채 계단을 오르자 이든은 혀를 끌끌 찼다.

“못났다, 못났어. 저러다 나중에 크게 한번 후회하지.”
이든은 못마땅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스테이지가 한눈에 보이는 2층으로 향했다.
빠르게 눈동자를 움직여 이슬을 찾던 이든은 나지막한 탄식과 함께 상체를 구부려 난간에 바짝 붙어섰다.
넋 놓고 한 곳을 응시하는 이든을 두고 윤은 입꼬리를 꿈틀거리며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뭐? 이래도 예나가 억지로 끌고 간 거야? 어떻게 저 얼굴이 억지로 끌려온 표정이냐?”
그렇다,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이슬은 잔뜩 신난 얼굴로 춤을 추고 있었다.
난간에 기대어 한참 동안 이슬을 응시하던 이든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스며들었다.
꽤 오랜 시간 그녀의 곁에 있으며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자부했건만.
또 이렇게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속속히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 이뻐서 사람 불안하게 만들까.”
네가 이쁜 건 나만 알고 싶은 비밀인데.
어떻게 하면 네가 내 눈에만 이쁠 수 있을까.

“이슬이 찾았으면 먼저 가봐. 난 예나랑 같이 갈게.”
이든은 행여 이슬을 놓치기라도 할까 봐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내 차 타고 왔으면서 어떻게 집에 가려고?”

“내가 왜 차를 안 끌고 왔겠니, 예나 차로 가려고 안 가져갔지. 예나는 내가 잘 데려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
윤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매를 좁혔다.

“정이든, 너 여기서 이렇게 한가롭게 이슬이 관찰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이슬이 주변으로 남자들 모이는 거 안 보여?”
윤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자, 이든은 순식간에 미소가 가신 얼굴로 눈매를 좁히며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이슬에게 닿으려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에도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서 입안이 바짝 타들어 갔다.
다급한 걸음으로 기어이 이슬에게 닿아 그녀에게 접근하려던 남자들을 매서운 눈빛으로 쫓아내곤 그녀의 한 걸음 뒤에 섰다.
얼마나 신이 났으면 뒤에 제가 있는 것도 모를까.
내 가슴은 이리 새까맣게 타들어 갔는데 넌 어쩜 이리도 날 까맣게 잊은 채 재밌게 놀 수 있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했지만 저도 모르게 입가에 스며드는 미소 또한 숨길 수가 없었다.

‘큰일 났다, 이젠 정말로 네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두 눈에 담고 있어도 사무치게 그리운데, 네가 없는 3년을 난 어떻게 보냈던 걸까.
평온했던 이든의 얼굴은 그녀가 제 발을 밟는 것과 동시에 느릿하게 눈썹에 꿈틀거렸다.
과연 그녀가 자신을 발견하고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아마, 깜짝 놀라겠지? 너를 찾아 이곳에 왔다고 집착한다 생각하고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 짧은 사이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쳤지만, 그녀와 시선이 맞물리고 나자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버렸다.

“이든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는 이슬을 두고 이든은 묵직한 숨을 토했다.

‘안 되겠다.’

“이든이 네가 어떻게 여길…….”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지만, 마치 몰래 나쁜 일을 하다 들킨 사람마냥 충격에 말을 잊지도 못하는 그녀를 두고 이든은 결심했다.

‘안 되겠다. 빨리 결혼해야겠다.’
더 지체할 필요가 있던가.
내가 널 사랑하고, 네가 날 사랑하고 있는데.
널 위해 못할 것이 없고, 널 행복하게 해줄 자신도 있으니.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날을 이젠 꿈꾸어도 되지 않을까?’
목구멍 끝에 걸린 그 말을 가까스로 꾹꾹 눌러 참았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그 시간, 너와 주어진 생을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소중한 그 말을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뱉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 프러포즈 생각뿐이라 얼굴이 굳어 있는 그를 두고 이슬은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왜 말 한마디가 없지? 지금 연락 안 받아서 화났다고 티 내는 건가?’
화낼 거면 까짓것 내라고 하지 뭐, 그런다고 내가 무서운 줄 아나.
10년이나 만난 사이에 밀당하는 게 아니고서야 어쩜 그렇게 모르는 사람처럼 외면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열이 뻗쳐 얼굴이 화끈해졌다.
코로 크게 숨을 내쉬며 이든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 의도치 않게 기 싸움이 되어버리던 찰나, 흐릿했던 그의 눈동자에 서서히 빛이 스며들었다.
그제야 이슬이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입매를 설핏 말아 올렸다.

“그렇게 봐도 하나도 무섭지가…….”
이든은 말을 끝까지 잇지 않고 사납게 인상을 구겼다.
처음엔 이슬을 찾는 데만 급급해 그녀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다음엔 그녀의 미모에 홀렸고, 그다음엔 그녀와 달콤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 바빠 몰랐었는데.
이든은 이슬에게 바짝 붙어서서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무 시끄러워서 머리 아프니까, 나가서 조용히 이야기하자.”
그럴싸한 하나의 핑계였다.
이슬을 훑어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목을 긁어대듯 신경이 거슬렸기에.
1초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든은 클럽을 빠져나오자마자 누가 볼세라 재킷을 벗어 이슬의 어깨에 걸쳐주며 나지막이 궁시렁거렸다.

“대체, 위를 가려야 하는 거야, 아래를 가려야 하는 거야?”

눈매를 좁힌 채 중얼거리는 그 모습이 귀여워 서운했던 마음이 살짝 풀렸지만, 이슬은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 절대로 여기서 녹아내리면 안 돼! 왜 날 그렇게까지 모른척하며 선을 그었는지 물어봐야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서운했기에, 따지고 들 건 따지고 들어야겠다 생각했다.
미간을 사납게 구기며 눈에 잔뜩 힘을 싣고 이든을 빤히 바라보자, 이든은 느릿하게 두 눈을 끔벅이며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모르는 문제의 답을 물어볼까 조마조마하는 학생 같았다.
이든이 한없이 작아지던 순간, 차갑게 내려앉은 이슬의 음성이 이든의 이름을 불렀다.

“정이든.”

“네?”
음산하게 울려 퍼지는 이슬의 음성에 바짝 긴장한 이든은 은연중에 존댓말이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이든은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로 대답하고는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슬은 그 잠깐의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내가 우리 연애하는 걸 사람들한테 비밀로 하자고 했지, 날 무시하고 외면하라고 했어?”

“어…… 내가 널 무시하고 외면했다고?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이든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눈썹을 긁적이며 억울함을 주장하자, 이슬은 분노를 삭이며 입을 뗐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처럼 슝- 가버리는 것도 모자라 나랑 같이 밥 먹은 것도 숨겼잖아.”

“…….”

“아니, 사귀기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서 날 무시하고 외면해? 아니면 이제 와서 뭐 밀당이라도 하자는 거야? 이젠 잡은 물고기라고 막 대하는 거야?”
낮 동안 가슴 속에 삭여온 울분을 한꺼번에 쏟아낸 이슬은 힐긋 곁눈질로 이든의 얼굴을 살폈다.
따지고 보면 그가 자신을 외면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차례 그의 전화를 수신 거부한 것도 모자라 휴대폰 전원을 꺼 놓은 터라 자신도 크게 할 말은 없는 처지건만.
서운함 하나가 자신을 어린애처럼 만들어 놓는 것만 같았다.
계속 심통이 나고, 그가 원망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떼를 부리고 싶었다.
탓할 것이 없으니 괜스레 불똥이 제 어깨를 덮은 그의 슈트 재킷으로 향했다.

“됐어, 이런 건 왜 입혀줘?”
옷을 벗어서 이든에게 내밀자 그는 옷을 벗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재빨리 다시 옷을 어깨에 걸쳐주었다.

“추워, 감기 걸려.”

“감기는 무슨 한여름인데, 그리고 가릴 거면 왜 입었겠어?”
사납게 미간을 구긴 채 다시 한번 재킷을 벗으려 들자, 이든은 필사적으로 막아내려 이슬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에헤이, 옷은 벗지 맙시다.”

“이거 왜 그래? 애초에 가릴 거면 이런 옷 입지도 않았다니까?”

“입으려거든 나랑 단둘이 있을 때만 입어. 지나가는 놈들이 힐긋거리면서 보는 거 싫어.”

“왜, 보여주려고 입었는데 많은 사람이 보면 좋지!”

“내가 널 독점하고 싶으니까.”
녹아내리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이까짓 사탕발림에 왜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걸까.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뚱한 표정을 짓던 이슬은 그에게 말리는 것이 싫은 듯 이든을 가볍게 밀쳐냈다.

“왜 날 독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이든은 명쾌한 대답 대신 그녀의 말에 극히 동의한다는 듯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널 독점할 방법이 있긴 할까?’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
한순간도 네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
결혼하면 아침에 눈 뜨고 잠드는 순간까지 네 곁에 딱 달라붙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와 미래를 그려보던 이든은 한 번도 투정 부려 본 적 없던 그녀가 투정을 부리는 것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든이 말없이 잠잠히 자신을 바라보자, 이슬은 괜히 자신을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네 살짜리 꼬마도 아니고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
되는대로 심술부리고 고집부리는 자신이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열일곱에도 안 하던 짓을 서른이나 돼서 하고 있다니.’
한없이 너그럽고 그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비죽 튀어나온 심술은 쉬이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투정에 답답하고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묵묵히 그 짜증을 받아주는 것도 모자라 따뜻한 눈빛으로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그를 두고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토록 응석을 부린 적이 있던가.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든 아버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바쁜 어머니.
응석이라는 것도 받아 줄 사람에게나 부릴 수 있는 것이었다.
이슬이 이든에게 응석을 부리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정이든이라서, 정이든이니까.
사랑하니까, 그의 관심을 오롯이 독차지하고 싶었고.
사랑하니까, 온 세상에 그가 내 남자라고 소문내고 싶었으며.
사랑하기에,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다 내보이는 것이 아닐까.
이든이라면, 이 사람이라면 내 안에 꼭꼭 숨겨놓은 그 어떤 얼굴도 사랑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
지그시 이슬을 눈에 담던 이든은 이슬의 두 손을 부드럽게 잡고 말했다.

“그랬구나, 내가 준희 앞에서 차갑게 굴고 외면해서 마음이 상했구나.”
빙하도 녹일 듯한 부드러운 음성은 물론 봄을 닮은 따스한 눈빛에 홀려 이슬은 서운함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고 말았다.

“서운했다면 미안해. 절대로 그럴 의도로 그런 거 아니었어.”

“…….”

“우리 애들이 너를 두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네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상처받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하는 게 싫어서 그랬어.”

“…….”

“내가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이든은 빈틈없이 이슬을 품에 끌어안으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단이슬, 이렇게 예쁜 널 어떻게 외면하고 무시할 수 있겠어. 지금도 다른 놈들이 지나가면서 힐긋거리며 보는 것도 피가 거꾸로 솟는데.”

“치이- 말은.”

“그리고 널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밀당 할 시간이 어딨어?”
이슬은 이든의 품에서 벗어나 한껏 누그러진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든은 입술을 가로로 길게 늘어트리며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콧잔등을 톡톡 부드럽게 쓸었다.

“그리고 어장에 갇힌 물고기는 네가 아니라 나 아니야? 요즘 나한테 너무 사랑과 관심을 안 쏟는 것 같은데?”

“됐어, 네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을 거야. 나 오늘 내 집에서 잘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이슬이 휙 돌아서서 주차장 쪽으로 향하자, 이든은 세상이 무너진 얼굴로 느릿하게 두 눈을 끔벅였다.

“실밥 푸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집에 가겠다고? 안 되는데.”
이든은 뒤늦게 그녀와 벌어진 거리를 빠르게 좁히며 간절하게 매달렸다.

“나 아직 환자인데? 오늘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가 상처가 콕콕거리면서 아픈데?”
이든의 간절한 음성에 입꼬리가 꿈틀거렸지만, 표정을 갈무리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