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트라우마
비주얼이 엄청난 연예인을 실제로 봤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보통 감탄하거나 또는 선망의 시선을 보낼 것이다.
나는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개인의 미적 잣대에 맞춰 기준 이하의 누군가를 폄하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야, 사람은 기본적으로 미(美)를 추구하는 동물이니까.
'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
예쁜 연예인이 TV에 나오면 채널을 고정하고, 잘생긴 배우를 보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미적인 것에 집착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결코 내가 잘생겼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단지 내 관점 문제였다.
'내가 지독하게 싫은 건.'
외적인 내 모습이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약하고 무능한 내 자아라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아무리 미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봐도 큰 감흥을 느낀 적은 없었다.
심지어 국내에서 가장 예쁘고 멋있다는 연예인들을 봐도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오늘 박살이 났다.
'말이 돼..?'
유명 연예인도 톱배우도 아니었다.
눈앞에 앉아있는 작은 생명체 하나가 나를 충격에 빠트렸다.
똘망똘망한 눈. 그 속에 갈색빛을 띠고 있는 눈동자. 자그마한 코에 앵두 같은 입술.
홍조를 머금고 있는 한 번쯤 잡아보고 싶은 볼...
아니, 잠깐만.
내가 지금 뭐라는 거야. 아이를 앞에 두고 얼굴 평가나 하고 있다니.
순간 이성을 잃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내가 본 작은 천사는 연두였다.
톱배우도 아이돌도 아닌 내 딸 서연두.
더 사족을 붙일 필요도 없었다.
연두는 그냥 너무 예뻤다. 그리고 귀여웠다.
심지어 아직 머리가 엉망인데도.
"아빠아!"
원래도 진짜 귀여웠는데 더 더 미치도록 귀엽다.
속물 같다고? 아니,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내가 미리 말했잖은가. 나는 이런 놈이라고.
그러나 재차 말하지만 나는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즉, 웬만큼 예쁘다면 이런 말 안 한다는 소리다.
'단언컨대.'
연두는 내가 지금껏 본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 가장 예쁘다.
잡지나 인터넷에서 본 그 예쁘다는 혼혈 아기들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니, 아기 한정이 아니라 어떤 초특급 미모를 데려와도 비교가 안 된다.
동양인은 서양인을 비주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그래. 이건 양심 고백인데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오늘부터는 아니다.
퍽.
누군가 내 팔을 퍽 하고 쳤다.
깜짝 놀라서 보니 연두의 머리를 자르는 젊은 미용사였다.
그녀가 다소 따가운 눈초리로 말했다.
"죄예요, 죄!"
".. 네?"
"이렇게 예쁜 따님 얼굴을 머리로 가려 두고. 그러면 안 돼요, 진짜!"
"아.."
옆에 손님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맞아요, 맞아! 나쁜 거야, 정말!"
"와, 어떻게 애가 저렇게 예쁘대? 꼭 하늘에서 내려준 요정 같네~"
"그래도 아빠 아니랄까 봐 애한테 얼굴이 좀 있네. 그러니까 이제 정신 차리고 잘 키워요!"
"하긴. 아빠가 훈훈하게 생겼으니까 저런 애가 나오지. 아유, 저 눈망울 봐!"
죄송한데 친딸 아닌데요. 물론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너무 예쁜 연두 탓에 나는 많은 손님들의 질책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우리 외삼촌이 어떻고 하며 연두의 아픈 가정사를 줄줄이 늘어놓으며 해명할 수는 없었다.
연두를 위해서 이 상황에 내가 할 말은 하나였다.
나는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잘 키울게요."
그렇게 말했는데도 수다스러운 아주머니들은 연두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옆에서 계속해서 떠들며 내게 한 마디씩을 던졌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키우기로 결정했다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지.
조금 오해를 사는 건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니에요!"
연두에게는 문제였던 모양이다.
"울 아빠 나쁜 사람 아니에요! 울 아빠한테 구러지 마세요!!"
양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꾹 잡은 채 연두는 내게 뭐라 하던 손님들을 향해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사람들이 계속 예쁘다고 말해서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반대였다.
화가 난 건가? 나한테 안 좋게 말했다는 이유로?
연두가 화 난 모습을 보는 건 또 처음이다.
근데 왜 이렇게 뭉클하지? 이게 뭐라고.
나한테 뭐라 하는 사람들한테 대신 화내 주는 사람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가?
"하하, 괜찮아, 연두야. 아빠 아무렇지도 않아."
"진짜요? 아빠 갠차나요..?"
"물론이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연두를 달랬다.
다행히 아주머니들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말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인 거 같은데?
"아빠 안 좋게 말해서 화났쪄? 아유, 기특해라."
"아고, 연두야. 아줌마가 미안해."
미용사는 이 상황이 웃기는지 큭큭 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어떻게 자를지 질문을 안 드려서 일단 앞머리만 살짝 커트했는데요. 연두 머리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음.."
나는 연두를 보며 물었다.
"연두는 어떻게 잘랐으면 좋겠어?"
"연두요..?"
"응."
"... 공주님처럼요."
내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까 내가 말한 '공주님'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연두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나는 미용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가능할까요?"
미용사는 즉시 대답했다.
"당연히 가능하죠. 이미 공주님인데요, 뭘. 그리고 저희 미용실 이름도 프린세스 헤어잖아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헤헤, 맡겨만 주세요."
미용사가 능숙하게 가위를 잡았다.
"무서어.."
"응?"
"아빠 소온..."
"하하, 그래."
내 손을 잡은 연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용감했다.
공주님 머리 자르기가 시작됐다.
***
"와.."
"어때요?"
"인정합니다. 금손이시네요."
"헤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자른 연두는 영락없는 공주님이었다. 이런 예쁜 공주님은 지구 어디에도 없겠지만.
자그마한 얼굴을 사이에 두고 어깨 밑까지 자연스레 떨어지는 머리칼이 아름다웠다.
푸석한 머리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윤기 나는 머릿결로 변모했다.
무슨 머리를 해도 안 예뻤겠냐만, 이건 내가 생각한 상한선을 너무 뛰어넘었다.
"아유, 예뻐. 혹시 아이 사진 좀 찍어도 돼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연두를 지켜보던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물었다.
하지만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사진은 좀.. 죄송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괜히 유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연두는 아직 아빠를 여의고 하루도 되지 않았다.
아빠 같지도 않은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이제는 내가 연두의 아빠였다.
다섯 살은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 나이였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사소한 것도 조심하며 케어해주고 싶었다.
그게 아빠의 도리니까.
"호호, 아니에요. 애가 너무 예뻐서 무리한 부탁을 했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연두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머리는 마음에 들어, 연두야?"
"아빠는요..?"
"응?"
"연두 머리.. 아빠는 마음에 드러요?"
나는 연두의 새초롬한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세상에서 연두가 제일 예쁜데? 공주님 같아."
".. 공주님이요?"
"그래, 공주님."
연두는 기분이 좋은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 어떤 아이보다도 맑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 다칠라."
"네, 아빠!"
이렇게 밝은 아이를 그렇게 키웠다니.
또 생각하니까 열 받네.
"감사합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네, 또 오세요. 아, 그리고 이거!"
미용사가 무언가를 꺼내서 건넸다.
"이건.. 명함인가요?"
디자이너 유지안이라는 로고가 박혀있는 명함이었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다음번에 데리고 오셨을 때 저 얘기하시라고 드리는 거예요. 그때는 오늘보다 더 예쁘게 잘라드릴 테니까."
"하하, 꼭 그럴게요."
"그럼 들어가세요!"
***
미용실을 나서자마자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침은 얼추 오후 다섯 시를 넘기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 조문을 가서 얼마 있지도 않고 뛰쳐나온 탓에 아직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시간을 보자 나는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어떡하지?'
그냥 집에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었다.
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화수목금토.'
이게 뭔가 하면 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보통은 월화수목금을 일하지만, 나는 특이하게도 저렇게 5일을 일했다.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즉, 나는 내일부터 5일간 아르바이트를 나가야 한다.
연두를 위해 투자할 시간이 많이 없다는 의미였다.
'최대한 오늘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써야 하는데······'
잠깐만 생각해도 연두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것들을 오늘 다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중에 가장 필요한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한 가지가 뭘까? 이에 대한 판단은 어렵지 않았다.
'병원.'
연두를 병원에 데려가야 했다.
환경이 환경이었던 만큼 무척이나 걱정이 됐다.
지금 연두의 몸 상태는 괜찮은 건지. 어디 아픈 곳이 있는데 방치되어 온 건 아닌지.
그래서 한 번쯤은 꼭 검사를 받게 하고 싶었다.
"저기.. 연두야."
이름을 부르자 연두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몇 번을 봐도 터무니없는 외모이다.
어떻게 다섯 살배기 아기가 이렇게 이목구비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거지.
그렇다고 조숙해 보인다는 게 아니다. 분명히 영락없는 다섯 살 아기인데.
"연두야. 혹시 지금 힘들어?"
"안 힘드러요!"
"그럼 아빠랑 병원 갈래?"
"병원이요..?"
"응. 혹시 연두 아픈 데 있나, 아야한 데 있나 해서 가는 거야. 의사 선생님한테."
뭔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거리에서 아야 같은 아기어를 쓰니까 진짜 아빠가 된 기분이다.
아니, 나 진짜 아빠 맞지. 정신 차리자.
"연두 아야한 데 업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지금은 안 아픈데 나중에 아야할 수도 있거든."
결국 연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연두는 병원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게 아닐까?
다행히 미용실 바로 옆 건물에 소아과가 있었다.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옆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아과가 정밀검진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 보면 알겠지.
애초에 나부터가 아파도 병원을 안 가서 그다지 익숙한 장소는 아니었다.
스르륵.
자동문이 열리고 나는 병원으로 들어섰다.
대기자는 거의 없는 거 같았다.
나는 카운터로 걸어가며 간호사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처음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여기 보호자 분이 주소랑 이름 좀 적어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내가 펜을 끄적이는 사이 간호사들의 시선이 연두를 향했다.
그들의 반응 역시 아까의 아주머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와, 안뇽!"
"너무 예쁘다.. 이름이 뭐니?"
연두는 관심이 쏠려서인지 내 손을 꾹 잡고 작게 중얼거렸다.
"서.. 연두요."
"헤헤, 연두구나! 만나서 반가워!"
우물쭈물하는 연두를 향해 내가 말했다.
"연두야,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인사해야지."
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방금 내 멘트 진짜 아빠 같았다는 걸.
연두는 금세 웃으며 내게 대답했다.
"네, 아빠!"
그리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간호사들을 향해 꾸벅 배꼽 인사를 했다.
과장 안 보태고 그 모습에 간호사들은 쓰러지려 했다.
너무 귀엽다는 이유로.
인사한 후 쑥스러운 건지 내 다리를 끌어안는 연두를 보고는 입까지 틀어막았다.
"와, 내가 뭘 본 거지? 너무 귀엽다...."
"되게 젊으셔서 사촌오빠 아닐까 했는데 아빠셨구나..!"
"진짜 이렇게 예쁘게 생긴 아이는 처음 봐요, 저!"
".. 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윽고 연두의 이름이 들려왔다.
"들어가시면 될 거 같아요."
나는 간호사들을 뒤로하고 원장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여자 의사와 간호사 한 명이 있었다.
밖에 있던 간호사들과 달리 둘 다 나이가 꽤 있는 거 같았다.
"안녕하세요."
"네, 들어오세요. 어머, 너무 예쁜 공주님이네! 밖에 간호사들이 왜 이렇게 떠드나 했더니."
나는 웃으며 연두를 의자에 앉혔다.
의사가 말을 이었다.
"그래. 우리 공주님은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내가 대신 대답했다.
"어디가 아프다기보다.. 정밀 검사를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 방문했습니다."
"정밀 검사요?"
"네. 그..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요."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낯익은 도구를 꺼내며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우리 아기, 배 한 번 볼까?"
청진기를 배에 대려는 거 같았다.
그런데 연두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경계했다.
설마 내가 있어서 그런가? 배를 보이는 것도 부끄러운 건가?
"연두야. 혹시 부끄러워서 그래? 아빠 뒤돌아 있을 테니까..."
"시러요! 안 할 거예요!"
그런 연두의 모습을 보자 무언가 기시감이 들었다.
이건 처음에 거리에서 갑자기 보인 거부반응과 같았다.
무언가에 겁을 집어먹은 느낌.
'트라우마..?'
청진기에 이 정도로 겁을 먹었을 확률은 희박했다.
아까 미용실에서도 가위를 무서워하긴 했지만, 내 손을 잡으니 아무렇지도 않아 했으니까.
이상함을 느낀 나와 달리 의사는 별 감흥이 없는 거 같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아이는 숱하게 봤다는 걸까?
그녀가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좀 도와줄래요?"
"네."
"미안해, 연두야. 잠깐만?"
내가 뭘 할 틈도 없이 둘은 능숙하게 연두의 옷을 올렸다.
다르게 말하면 강제로 올린 거지만.
"흐아아앙! 시러어! 으아앙!!"
연두는 마구 몸부림쳤다.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연두가 지금까지 왜 그렇게 몸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건지.
'부끄러워서가.. 아니었어.'
태연하던 의사와 간호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충격에 물들었다.
그러나 그 둘보다도 표정의 변화가 큰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정말.. 기분이 정말 개 같아지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