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콘텐츠
문을 열고 들어온 연두의 세 번째 팬. 그는 말 그대로 근육맨 그 자체였다.
그냥 몸이 좋은 정도라면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터였다.
과장이 아니라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의 근육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태평양 같은 어깨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반팔티를 입어서인지 팔 근육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
뭘 입었어도 저 근육을 가릴 수는 없었을 거 같긴 하지만.
학생들도 입을 벌린 채로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 맞는 거겠지?’
오해할까 봐 하는 말인데 맞을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다.
우락부락한 몸만 보고 난폭할 거라 생각하는 건 편견이니 말이다.
그저 ‘연두의 팬이 맞겠지?’라는 의문이었다.
뭔가 내가 생각하던 팬의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것도 편견이네.’
팬의 모습을 어림짐작하는 것도 편견이었다.
누구든 연두를 팬으로서 아끼고 좋아할 수 있는 거니까.
나는 고개를 휙휙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남자는 스윽 둘러보더니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쿵. 쿵.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이 진동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왜인지 그래야만 할 거 같았다.
이 남자는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내 앞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거대한 손을 뻗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형님!”
응? 예상치 못한 한 마디에 놀란 나는 앞을 바라봤다.
남자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고 감격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방금 손을 뻗을 때 잠깐이지만 때리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으니까.
잔뜩 정색한 표정으로 다가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남자는 엄청나게 순박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까의 얼굴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나는 당황감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 형님이요?”
이 호칭도 나를 당황시킨 요소 중 하나였다.
아니, 아무리 봐도 내가 형님이라 불러야 할 비주얼인데.
다짜고짜 형님이라 부르니 황당한 기분을 안 느끼는 게 이상했다.
더군다나 나는 연두튜브에서 나이를 밝힌 적도 없었고.
내 물음에 그가 대답했다.
“네, 형님.. 진짜 뵙고 싶었습니다.”
“혹시 제 나이를 아시나요?”
“아뇨.”
“근데 왜 형님이라고……”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하하, 딱 봐도 저보다 형님이신데요. 안 그래요?”
안 그래, 이 사람아.
심지어 학생들을 바라보며 동의까지 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아직 무서운 건지 대답은 못 하고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애써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스물세 살입니다, 형님.”
“.. 네?”
순간적으로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재차 들려온 답도 다르지 않았다.
“올해 스물세 살 호랑이띠입니다, 형님.”
굳이 이 사람이 나이를 거짓말할 이유는 없었다.
장난 아니고 최소 서른 이상으로 봤는데.
입 밖으로 얘기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바로 형님이라 부를 만하네.’
구독자들이 생각하는 나는 당연하게도 연두의 아빠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내 최소나이는 스물다섯 정도일 터였다.
공교롭게도 나는 진짜 스물다섯 살이고.
한편 남자의 나이 고백에 학생들도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 그렇구나. 동생이네요.”
“네. 저는 천인덕입니다, 형님! 편하게 인덕이라고 불러주세요! 말도 놓아주시고요!”
“하하, 그래, 인덕아.”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말도 놓으라면 놔야지.
이어서 천인덕은 연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하는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 연두 팬 맞구나.
***
“안녕, 연두야..”
육중한 몸과 달리 연두를 향한 인덕이의 인사는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무서워하지 않게 굉장히 조심하는 느낌이었다.
정작 연두는 아무런 위화감 없이 아까처럼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여. 인더기 오빠..!”
“와...”
“우아.. 엄청 큰 오빠..!”
아무래도 연두는 외적인 모습에 아무런 편견이 없는 거 같았다.
단지 보이는 그대로 크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방금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건지 알면서도.
물론 판단을 한 건 아니었지만, 아예 편견 없이 대했다고는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편하게 대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저기, 인덕아.”
“네, 형님!”
인덕이는 연두를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빙긋 웃으며 질문했다.
“이건 뭐야?”
내가 가리킨 건 다름 아닌 봉투였다.
인덕이가 들어올 때부터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봉투.
왜인지 인덕이는 내 물음에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대답했다.
“초콜릿입니다, 형님.”
“.. 초콜릿?”
“네.”
뒤이어 인덕이는 봉투에서 박스를 꺼냈다. 그리고 커다란 손으로 박스를 개봉했다.
박스 안에는 각양각색의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인덕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형님하고 연두 주려고 만들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네, 제가 손재주가 좋아서 손으로 뭐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예쁜 거 만들거나, 아기자기한 거 만드는 거요.”
“...”
진짜 모든 예상을 빗나가는 녀석이었다.
인덕이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처음으로 본 연두튜브 영상이 그거였어요. 형님이 연두 캐릭터 채널아트 그려서 선물하니까 연두가 감동 받고 좋아하는 영상이요. 그래서 저도 이거 만들어서 연두랑 형님한테 선물하고 싶었어요.”
장난 아니고 진짜 감동 받을 거 같다.
얼핏 봐도 엄청난 정성이 느껴지는 퀄리티의 초콜릿이었다.
더군다나 녀석과는 묘한 동질감도 느껴졌다.
‘몸은 쨉도 안 되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재주가 좋았다.
그림은 물론이고 손으로 자잘한 것들을 만드는 걸 좋아했으니까.
초등학교 때 나무젓가락으로 고무줄총을 만들어서 친구들을 쏘고 다니다가 호되게 혼난 적도 있었고.
‘그런데 웃긴 건.’
너무 잘 만들어서 그걸로 상을 받기도 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인덕이도 나와 비슷한 녀석인 거 같았다.
나는 인덕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진짜 고맙다. 잘 먹을게.”
“네. 여기선 맛있는 거 먹을 거니까 집에 가져가서 연두랑 드세요, 형님.”
“그래.”
그런데 조금 문제가 있었다. 연두의 시선이 초콜릿에 고정됐다는 것.
저건 먹고 싶어서 도저히 못 참겠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결국 나는 미소를 띠며 연두에게 말했다.
“인덕이 오빠가 만든 초콜릿 먹고 싶어, 연두야?”
마음을 들켜서인지 연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먹고 시퍼요..”
“그럼 딱 하나만 먹는 거다?”
“머, 머거도 대여..?”
“응.”
나는 박스에서 가장 작은 하트모양 초콜릿을 꺼내 들었다.
이 정도면 입맛을 그리 떨어트리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또 연두가 지금 초콜릿을 먹는 건 나름의 팬서비스이기도 했다.
‘직접 만든 초콜릿을 맛있게 먹는 걸 보면 뿌듯할 테니까.’
물론 맛있어야 한다는 가정이 붙긴 했다.
표정으로는 절대 거짓말을 못 하는 연두였으니까.
그런데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내가 볼 때 이 초콜릿은 맛없는 게 불가능했다.
한편 인덕이는 떨리는지 침을 꿀꺽 삼키고 연두를 바라봤다.
“자, 연두야.”
연두가 자그마한 입을 벌렸다.
나는 그 안에 하트모양 초콜릿을 쏙 넣어줬다.
아암.
오물. 오물.
초콜릿을 입에 담은 볼이 움직였다.
이윽고 연두의 볼이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마시써...”
하트모양 초콜릿을 먹어서인지, 초콜릿과 사랑에 빠진 표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인덕이가 세상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인덕이가 연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맛있어, 연두야?”
“네에.. 하눌만큼 땅만큼 마시써요...”
“그럼 그 말 한 번만 해주면 안 되나?”
“...?”
인덕이는 애매하게 말하고는 헛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
연두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물론 나는 알아챘다.
“연두야.”
“네, 아빠!”
“연두가 진짜 맛있는 걸 먹었을 때 하는 말이 뭐지?”
이렇게 말하면 모를 수가 없었다.
바로 알아챈 연두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리얼 꿀마시! 인더기 오빠 초콜릿 리얼 꿀마시에요..!”
“크크, 잘했어.”
인덕이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이 말을 듣고 싶었는지 알 거 같았다.
이쯤 되니 앉아 있던 학생들도 완전히 긴장이 풀린 상태였다.
‘인덕이가 어떤 녀석인지 알았을 테니까.’
남학생이 다가와서 인덕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진짜 고마워요, 인덕이 형.”
“응?”
“형 덕분에 연두튜브 레전드 유행어를 눈앞에서 영접했어요. 형 진짜 좋은 사람이었네요.”
“흐흐, 이제야 알아봤구나?”
뒤이어 여학생도 질세라 끼어들었다.
“오빠 진짜 대박인 거 같아요! 초콜릿 너무 예뻐요. 나도 예쁜 거 만들어서 가져올 걸...”
“고마워. 넌 뭐 챙겨왔는데?”
“헤헤, 저는 아직은 비밀이지용!”
그러고 보니 학생들도 연두에게 줄 선물을 챙겨 온 거 같았다.
이따가 주려고 아직 가지고 있는 상태였지만.
어쨌거나 다행이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풀렸네.’
인덕이로 인해 초반의 어색했던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직 세 명뿐인데도 엄청 즐거운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으니까.
벌써부터 그런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무척 즐거운 팬미팅이 될 거 같다는 예감이.
***
시간이 다가올수록 하나둘 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의자가 가득 찼다.
‘전부 온 건가.’
팬미팅 인원은 스무 명이었으니 얼추 맞는 거 같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정말 다양한 팬들이 온 상태였다.
연령대도 다양했고, 남녀 비율도 거의 비슷했다.
‘이것만 봐도 알겠네.’
연두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한 아이라는 것.
눈앞의 장면만 봐도 알 거 같았다.
전에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팬미팅 분위기는 즐거웠다.
앞서 온 세 명과 친해져서인지 나머지 팬들과도 금방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전부 연두를 아끼는 진짜 팬들만 모인 거 같고.
‘윤수아의 말이 맞았어.’
자연스레 분위기가 만들어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
이제 그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 거 같았다.
의자가 전부 채워지고 얼마 후, 테이블 위도 잔뜩 채워졌다.
뭘로 채워졌는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나와 연두, 그리고 팬들의 허기를 달래줄 음식이었다.
‘메인메뉴는 스테이크고.’
메뉴 선택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윤수아의 지론이 반영된 메뉴 선택이었다.
분명히 ‘고기를 씹으면 기분이 좋아지게 돼 있어요! 기분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최고죠!’라고 했었지.
지극히 본인 의견이 반영된 이야기였지만, 의외로 설득력이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의견을 설파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스윽. 스윽.
“자, 연두야. 아 해 볼까?”
“아~”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한다?”
“네에!”
힘차게 대답하고 연두는 다시 입을 앙 벌렸다.
나는 작게 썬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어줬다.
아암.
행복한 표정으로 맛을 음미하는 연두.
그 모습을 보니 윤수아가 한 말의 설득력이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팬들의 표정만 봐도 화기애애하고.
‘그나저나.’
슬슬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도 꽤 진행 중이고, 서로 어느 정도 얘기도 나눴으니까.
이쯤에서 가벼운 콘텐츠를 진행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주머니에서 고이 접어둔 종이를 꺼내 들었다.
“저기, 다들 잠깐 주목해 주시겠어요?”
내 말에 팬들의 이목이 나에게로 쏠렸다.
윤수아가 야심 차게 준비한 콘텐츠를 시작할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