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한 마디
먼저 나는 유케아에서 제공하는 큰 카트를 하나 빌렸다.
부피가 큰 물건은 배송시킬 생각이지만, 들고 갈 수 있는 걸 들고 갈 생각이니까.
이후 나는 연두와 함께 본격적인 쇼핑에 돌입했다.
‘그나저나.’
쇼핑 시작부터 드는 생각이 있었다. 연인이 엄청 많다는 것.
젊은 신혼부부도 많은 거 같고, 가정을 꾸려 아이가 있는 부부도 많이 보였다.
‘하긴, 그런 장소로 유명하니까.’
유케아는 단순히 쇼핑을 위한 공간만은 아니었다.
워낙 넓은 데다가 실내를 예쁘게 꾸며놓은 탓에 실내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했다.
물건을 구매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데이트를 하러 온다고 했지.
매장에서도 딱히 그걸 제제하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권장한다고 들었으니까.’
심지어 전시한 침대같은 곳에 누워서 사진을 찍는 것도 허용됐다.
그밖에도 사진찍기 좋은 공간은 무척 많다고 했고.
사실 매장에서 그렇게 프리한 분위기를 허용하는 이유도 이해는 갔다.
‘그냥 데이트를 하러 왔다가도.’
예쁜 물건이 보이면 사게 되는 게 사람의 심리니까.
실제로 잠깐 돌아다녔는데도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예쁜 물건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내가 구상한 느낌에 맞지 않아 지나치긴 했지만.
어쨌든 왜 이렇게 연인들이 많이 보이는지 단박에 이해가 갔다.
“자기야, 이거 예쁘지 않아?”
“너가 더 예쁜데?”
“아, 진짜……”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지게 만드는 커플의 대화.
그 밖에도 ‘자기’나 ‘여보’ 같은 호칭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를 부르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닭살이 돋는 느낌이다.
나도 나중에 누군가를 저런 호칭으로 부르고, 또 불리게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니 더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혜씨가 백화점에서 장난삼아 그런 호칭으로 불렀던 거 같은데.
당시에는 장난인 걸 알았기에 별 감흥이 없었다.
‘.. 아서라.’
나는 고개를 휙휙 저어서 잡념을 떨쳐냈다.
먼 미래의 일인데 지금 생각해 봐야 전혀 의미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 걸 전혀 원하지도 않았다.
“아빠..!”
현재의 내게 이 단어보다 기분좋은 호칭은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를 칭하는 단어니까 말이다.
“그래, 우리 딸.”
“이제 모 사러 가요..?”
“우선 큰 가구부터 한 번 볼까? 옷장이나 책상같은.”
“네! 조아요..!”
“하하, 그래.”
그렇게 나는 연두와 함께 3층으로 올라갔다.
***
3층은 ‘쇼룸’이라는 공간이었다.
감각있는 디자이너들이 유케아의 가구를 활용해 꾸며놓은 공간.
물론 큰 가구부터 사소한 소품까지 모두 구매가 가능한 물건이었다.
“어때, 연두야?”
“진짜 예뻐여...”
“그치.”
연두의 말대로 쇼룸은 정말 잘 꾸며져 있었다.
밝은 톤으로 통일한 깔끔한 배경에 적절한 포인트도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가 봐도 예쁘다고 생각할 만한 방이었다.
‘워낙 예쁘게 꾸며놓은 탓에.’
배치된 가구까지 더 예뻐보이는 효과를 내는 게 가능했다.
자연히 구경하는 사람들의 구매욕구도 상승시킬 수 있고.
유케아에서도 그런 의도로 디자이너를 고용해 쇼룸을 꾸며둔 거겠지.
허나 나는 그런 의도에 따라 가구를 구매할 생각은 없었다.
‘막상 단품으로 구매해서 배치하면.’
지금 보는 것만큼 예쁘게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아니까.
머릿속으로 대충만 그림을 그려봐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기에 예뻐 보이는 가구를 단품으로 사는 건 지양할 생각이었다.
‘방의 구조와 벽지 색깔같은 걸 전부 고려해서 사야 해.’
사실 그 조건을 충족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존재하긴 했다.
그냥 평수에 맞는 쇼룸 속 가구와 물건을 그대로 사는 것.
눈앞의 공간을 그대로 가져가는 거기에 실패할 확률은 없었다.
디자이너가 꾸민 거기에 이상할 리도 없고.
‘실제로 그렇게 집을 꾸미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지.’
나도 동의했다. 상당히 합리적으로 집을 꾸밀 방법이라는 점은.
허나 이 방법 역시 내게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연두와 함께 마련한 소중한 보금자리를 꾸미는 데에 타인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함께할 집인 만큼 스스로의 힘으로 꾸미고 싶었으니까.
‘내가 감각이 아예 없었다면 모르지만.’
그게 아닐뿐더러 함께 의견을 나눌 연두도 있으니까 말이다.
쇼룸은 쇼핑보다도 다른 용도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아까 말했듯이 유케아는 사진을 찍을 장소로도 무척 적합했다.
지금 내가 연두와 서서 바라보는 곳은 여자아이의 방을 콘셉트로 디자인된 쇼룸.
‘완전히 작정하고 꾸몄군.’
벽지부터 온통 분홍색에 완전히 샤랄라한 느낌의 공주님방이었다.
솔직히 내 기준에서는 많은 시간을 보낼 공간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질 거 같으니까.
‘하지만.’
잠깐 보기에는 내 눈에도 무척 예쁜 방이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달콤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연두도 지금껏 쇼룸 중에서 가장 초롱초롱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들어가서 사진 하나 찍을래, 연두야?”
“.. 그래도 대여?”
“물론이지.”
실제로 쇼룸 안에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구나 소품을 만져보기도 했다.
컨셉이 컨셉인지라 연두 또래의 아이들도 많이 보였고.
“찍고 시퍼요, 사진..!”
“하하, 그래.”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쇼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반짝이는 커튼과 걸려있는 아기자기한 액자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건 하나였다.
‘피아노.’
눌러보니 소리는 나지 않았다.
방의 분위기에 맞게 배치해 둔 소품인 거 같았다.
마침 그 위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하얀 조명. 보자마자 든 생각은 하나였다.
‘포인트네.’
처음에는 침대가 좋지 않을까 했는데 들어오니 생각이 달라졌다.
여기 피아노 의자가 완벽한 포인트였다.
한편 연두도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피아노다..!”
“오, 피아노가 뭔지 알아, 연두야?”
“네, 아라요.. 어리니집에서 선생님이 보여줘써요. 피아노 치는 거..”
“그렇구나. 어떤 노래?”
“떠따 떠따 비행기!”
“아.”
동요를 들려주신 모양이네.
보여줬다는 걸 보니 아마 유투브 영상이 아닐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사진 촬영이었다.
“의자에 한 번 앉아 볼래, 연두야?”
“피아노 의자에여..?”
“응, 피아노를 친다고 생각하고.”
내 말대로 연두는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뻗어 건반 위에 올렸다.
‘.. 아니, 뭐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손가락이 하얗고 길어서인지 정말 찰떡이었다.
게다가 어제 네일아트를 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열 개의 손톱.
정말이지 잘 어울린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했다.
스윽.
그 상태로 연두는 고개만 돌려 나를 응시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밑으로 떨궜던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우와...”
순간적으로 내가 내뱉은 감탄사인 줄 알았다.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니 한 여자가 연두를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복장을 보니 유케아의 여직원인 거 같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다짜고짜 말했다.
“.. 무슨 일 있으신가요, 손님?”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당황한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갑자기 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지나가던 와중에 애기가 너무 예뻐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놔 버려가지고..”
“하하.. 괜찮습니다.”
“근데 아이 부모님은 어디 가셨지?”
그렇게 혼잣말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여직원.
보아하니 내가 아빠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 못하는 눈치이다.
‘.. 지나가다가 봤다고 했으니.’
그전에 나와 연두가 나눈 대화는 듣지 못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도 뭐랄까. 묘하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얘기를 꺼내려는 찰나에 연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아..!”
아무것도 모르는 연두가 해맑게 웃으며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그제야 직원은 다시 나를 바라보더니 외마디 음성을 내뱉었다.
“헉...!”
뭐라 대꾸하기 애매한 감정표현이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 아버님이셨구나! 정말 죄송합니다! 워낙 젊으셔서...”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따님이 너무 예쁘셔서 넋 놓고 지켜봐 버렸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어, 그런데 그건……”
그렇게 말하며 직원이 가리킨 건 카메라를 든 내 손이었다.
무언가를 깨닫고 본능적으로 하강하는 손.
휘리릭.
다급하게 움직인 탓에 하마터면 카메라를 놓칠 뻔했다.
이렇게 반응하는 게 더 바보같은 걸 알면서도 자연히 나간 반응이었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게 그.. 딸이랑 같이 네일아트, 아니 립스틱……”
아니, 갑자기 립스틱이 왜 나와?
당황한 나머지 매니큐어랑 립스틱이 혼동된 모양이다.
뇌정지가 온 나를 향해 직원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따님이랑 같이 네일아트 놀이하셨구나.”
“.. 네, 맞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런 거 쳐다도 안 보셨는데. 되게 좋은 아빠시네요.”
의외로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이렇게 보는 게 당연한데 괜히 오버를 떤 건 나였다.
그나저나 의도치 않게 또 듣게 됐네. 좋은 아빠라는 말.
‘겨우 이거 하나 했다고.’
그래도 내게는 그 어떤 말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칭찬이었다.
나는 가벼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뇨.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따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세요!”
“네, 수고하세요.”
그렇게 직원은 자리를 비켜줬다.
어쩌다 보니 피아노 의자에 혼자 앉혀둬 버렸네.
연두는 여전히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륵.
나는 씩 웃으며 카메라를 올렸다.
찍기 전인데도 어떤 사진이 나올지 감이 왔다.
“자, 찍는다, 연두야?”
“네에..”
가느다랗게 올라가는 연두의 입꼬리.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촬영 버튼을 눌렀다.
찰칵.
***
예상대로 사진은 A컷 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A컷이었다.
매번 만족스럽긴 해도, 이 정도로 마음에 드는 사진은 오랜만인 거 같았다.
‘원스타에 올리면.’
좋아요 수 신기록을 달성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카메라 속에 사진을 고이 간직해 뒀다.
이후 우리는 3층 쇼룸을 쭉 돌며 가구를 골랐다.
‘부엌에 둘 식탁부터 책장과 옷장 등의 필수 가구들.’
물론 찍어온 집의 사진과 구조들을 보며 신중하게 골랐다.
지금 산 가구들만 전부 배치해도 집이 심심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듯했다.
미니멀하고 깔끔한 집 내부가 완성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보다 좀 더 감각적인 느낌의 보금자리를 원했다.
특히 연두의 방은 가능한 한 예쁘게 꾸며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기자기한 소품과 홈퍼니싱 액세서리가 모여있는 2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허나 바로 내려갈 생각은 없었다.
‘상당히 시간이 흘렀으니까.’
3층을 돌면서 벌써 상당한 시간을 소요한 상태.
그에 따라 배꼽시계도 반응하고 있었다.
아까 말했듯 유케아는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했다.
따라서 실내의 식사공간과 휴식공간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다고 했지.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예쁘게 꾸며진 카페까지.
‘갈 길이 바쁘니 카페는 안 갈 거지만.’
2층을 돌기 위해서 배는 채워야 했다.
레스토랑은 현재 우리가 있는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곧장 연두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도착한 나는 메뉴판을 바라봤다.
‘흠..’
고급레스토랑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단품으로 구성된 여러 메뉴를 담아와 배를 채우는 방식으로 보였다.
나는 맛있어 보이는 메뉴 위주로 주문을 완료했다.
‘돈가스, 미트볼, 연어 샐러드.’
그 외에도 간단한 디저트까지.
둘이 먹기에는 많아 보일 수 있지만 괜찮았다.
‘하나하나 보면 양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지금의 허기 상태로 고려해 볼 때 충분히 전부 먹을 수 있었다.
연두도 오래 걸은 탓에 식사 준비 만땅인 느낌이고.
그렇게 우리는 음식을 들고 한 테이블에 자리잡았다.
“그럼 먹어볼까, 연두야?”
“네에!”
나는 나이프와 포크를, 연두는 포크를 손에 쥐었다.
그렇게 눈앞의 음식들을 해치우려는 순간.
스윽.
음식 위에 조그마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뭔가 하고 옆을 바라보니 어떤 조그마한 남자애가 서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뭐지? 음식이 먹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도 그럴 게 녀석은 망부석처럼 서서 음식이 아닌 연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으응..?”
결국 시선을 느낀 연두도 자그맣게 목소리를 냈다.
그런 연두를 향해 남자아이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짧지만 임팩트 있게 귀에 꽂히는 한 마디를.
“.. 진짜 예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