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편지
“축하해, 연두야.”
순간적으로 우습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거 같은 기분이.
내 품에 안긴 연두는 행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고마어요, 아빠...”
그 모습을 보니 가슴속에서 뭉클함이 일었다.
나는 연두를 꼬옥 안은 채로 얼마간 등을 토닥여 줬다.
그리고는 씩 웃으며 트리를 가리켰다.
“봐, 연두야.”
다시 크리스마스트리를 향하는 연두의 시선.
여전히 여섯개의 선물이 저마다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연두의 입은 다시 한번 벌어졌다.
“선물 되게 많다, 그치.”
“네에.”
연두는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수를 세기 시작했다.
“일, 이, 삼...오, 육... 여섯 개에요..!”
“그러네.”
“연두는 한 개일 줄 알았는데……”
“하하, 선물이 한 개일 줄 알았어?”
“네에. 산타할아버지 왜 연두한테 여섯 개 주셨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혹시 실수로 너무 많이 두고 가신 건 아닐지 걱정하는 걸지도.
여기선 내가 깔끔하게 정리해 줄 필요가 있겠네.
나는 능청스레 연두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아마 그런 거 아닐까?”
“어떤 거요..?”
“지금까지 연두한테 크리스마스에 못 준 선물을 한 번에 주신 거지.”
“한 번에..?”
“응. 한 번에.”
“헤헤..”
어느 포인트가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배시시 웃음짓는 연두.
그러다 연두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됐다.
다름아닌 트리의 꼭대기 부근이었다.
“아빠.. 저건 모에여..?”
기다리고 있던 질문이었다.
말이 나오지 않으면 먼저 얘기하려 했는데 참길 잘했네.
나는 애써 모르는 척하며 대답했다.
“글쎄.. 산타할아버지가 쓰는 모자 같은데?”
“산타할아버지 모자요..?”
“응. 산타할아버지가 연두한테 흔적을 남기신 건가 봐. 나 왔다 갔다고.”
연두는 눈이 동그래져서 대답했다.
“그럼.. 산타할아버지가 쓰던 모자에여..?”
“그렇지 않을까?”
“우아……”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있는 연두였다.
산타가 썼다는 모자에 눈을 반짝이는 건 당연했다.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꺼내 줄까, 아빠가?”
“그래도 대여..?”
“물론이지. 산타할아버지가 일부러 놓고 가신 거니까. 이제 연두 거야.”
“그럼……”
연두가 두 손을 펴서 앞으로 내밀었다.
모자를 꺼내 달라는 귀여운 제스처였다.
트리의 꼭대기에 연두의 손은 닿지 않았으니까.
스윽.
물론 내게는 간단한 일이었다.
모자를 꺼내서 바로 연두의 손에 올려줬다.
이후 연두가 보인 행동은 예상 밖이었다.
킁. 킁.
설마 바로 냄새를 맡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산타할아버지 두피 냄새가 궁금했던 건가.
당연한 얘기지만 이건 산타할아버지가 쓴 모자가 아니었다.
냄새가 날 리가 없었다.
“아무 냄새도 안 나여..!”
“크크, 그래?”
“네!”
“그럼 연두가 써 봐.”
연두의 사이즈에 맞춰서 구매한 모자였다.
잠깐 머뭇거리던 연두는 조심스레 모자를 착용했다.
“딱 맞는데?”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똑같나 바요..”
“응?”
“산타할아버지랑 연두 머리 똑같나 바요..”
의도치 않게 엄청난 소두가 되어버린 산타할아버지였다.
***
사이즈가 맞는 걸 떠나서 모자는 연두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
색감도 그렇고 빵모자처럼 머리를 폭 감싸는 느낌이 너무 귀여웠다.
구독자들이 본다면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할 장면이라 해야 하나.
‘물론.’
눈앞의 장면은 모두 카메라 속에 담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럼 선물 열어볼까?”
기다렸다는 듯 연두는 손을 번쩍 들며 대답했다.
세상 설레는 듯한 표정으로.
“네!”
딱히 선물 개봉을 미룰 이유는 없었다.
나는 트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연두가 골라볼래? 처음으로 열어볼 선물.”
“연두가요..?”
“응.”
선 채로 골똘히 고민에 빠진 연두.
산타모자를 쓴 채로 고민하는 모습에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산타의 수제자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지켜보는 나로서는 꽤 흥미진진한 상황이었다.
‘내가 고른 선물이니까.’
기대와 동시에 조금은 걱정도 들었다.
혹시 내가 고른 선물에 연두가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얼마간의 고민 끝에 손을 뻗는 연두.
“이거요..!”
연두의 손이 향한 곳에는 노란색 선물상자가 걸려있었다.
트리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선물이었다.
비교적 부피가 가장 작은 선물이기도 했고.
“그걸로 고른 거야, 연두야?”
“네에.”
“그럼 꺼내 봐.”
연두가 떨리는 손으로 선물을 꺼냈다.
이제 첫 선물을 개봉할 시간이었다.
“이 끈을 쭉 당기면 매듭이 풀릴 거야.”
“이거요..?”
“응.”
연두는 내가 알려준 대로 끈을 쭉 당겼다.
휘리릭.
간단히 풀리는 매듭. 이제 포장지를 뜯을 차례였다.
그런데 연두는 쉽사리 포장지를 찢지 못했다.
막상 뜯으려니까 망설임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연두야.”
내 말에 침을 꼴깍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
그렇게 포장지가 천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파직.
마침내 포장지가 제거되고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연두는 나랑 눈을 한 번 맞추고는 상자에 손을 가져다댔다.
내용물이 드러나기 직전.
툭.
마침내 첫 번째 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물을 본 연두의 눈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산타할아버지랑 루돌푸다..!”
정확히는 표지에 그려진 둘의 모습이었다.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있는 산타할아버지.
이건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나온 그림연습장이었다.
‘전에 집들이 때.’
우영이의 준 그림 연습장을 떠올려 고른 선물이었다.
평소에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 연두였다.
우영이가 준 노트는 어느새 거의 색칠을 완료한 상태.
‘새로운 게 필요했지.’
그래서 고른 게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나온 연습장이었다.
실제로 연습장의 실력 향상 효과도 입증된 상태이고.
우영이가 준 연습장을 펼쳐보면 알 수 있었다.
‘첫 장과 뒷부분의 차이가 엄청나니까.’
연습장으로 실력이 그만큼 상승했다는 의미였다.
물론 단지 그 이유로 고른 선물은 아니다.
미술치료사인 윤영이누나가 한 얘기도 유효하게 작용했다.
연두가 마음속의 응어리를 푸는 데 그림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종합해서 여러모로 생각한 끝에 고른 선물이었다.
“예뿌다……”
연두는 벅찬 표정으로 연습장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안에는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그걸 예쁘게 색칠하도록 고안된 연습장이었다.
“마음에 들어, 연두야?”
“네에! 그림 엄청 예뻐요..!”
“다행이다. 안 좋아할까 봐 조금 걱정……”
흡.
순간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마음의 소리.
나는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뭐 하는데, 이주원.’
잘하다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내가 선물을 고른 거라는 걸 내포한 말이 나올 뻔했으니까.
다행히 연두는 워낙 그림책에 정신이 집중된 탓에 아무런 의심도 없어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는 말했다.
“그럼 다음 선물 열어볼까, 연두야?”
본격적인 선물 개봉이 시작됐다.
두 번째 선물 개봉부터는 막힘이 없었다.
차례차례 벗겨지는 각양각색의 포장지들.
‘하트 팔찌, 예쁜 책가방, 병원놀이 세트, 맛있는 영양제 세트.’
선물을 하나하나 고르면서 생각했다.
연두에게 필요한 것과 좋아할 만한 것을 골고루 사는 게 좋겠다고.
사실 지금껏 준 선물들은 어찌 보면 평범한 선물들이었다.
‘누구나 아이한테 선물할 법한 물건들.’
그럼에도 연두는 선물을 확인할 때마다 날아갈 듯 좋아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 다섯 개의 선물 개봉.
이제 남은 선물은 단 하나였다.
‘지금까지의 선물과 달리.’
꼭대기 부근에 있는 여섯 번째 선물은 조금 특별했다.
흔히 아이들에게 하는 선물은 아니라고 해야 하나.
뿐만 아니라 내가 개인적으로 준비한 선물도 들어있었다.
‘구매한 게 아니라 직접 준비한 선물.’
사실 선물이라 하기에 조금 애매한 감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선물과 함께 동봉해 둔 거지.
연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자, 연두야.”
꼭대기 부근에 있는 만큼 손수 내려줬다.
연두는 선물을 건네받으며 중얼거렸다.
“헤헤, 연두색...”
연두색 선물 포장지.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을 개봉할 차례였다.
***
마지막 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외마디 의문사를 내뱉는 연두.
지금까지의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이윽고 연두가 벅차오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카메라다!”
그래. 보는 즉시 선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준비한 여섯 번째 선물은 다름아닌 카메라였다.
이 선물을 주기로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평소에.’
내 카메라에 많이 관심을 보이는 연두였다.
전에 동물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내 모습을 찍은 적도 있었고.
비록 세연씨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연두를 떠올리자 든 생각이었다. 카메라를 선물하는 게 어떨까 하는.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인 거 같았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연두의 표정을 볼 수 있었으니까.
“마음에 들어, 연두야?”
“네에.. 진짜 마음에 드러요..”
“왜? 카메라가 그렇게 좋아?”
연두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조아요! 이제 연두도 아빠 찍을 수 이쓰니까..!”
“그, 그렇구나.. 하하..”
그게 좋은 이유였던 건가.
카메라를 선물한 이상 각오해야 할 듯했다.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찍힐 각오 말이다.
‘뭐, 연두가 기뻐한다면.’
얼마든지 모델이 될 수 있었다.
연두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연두색.. 진짜 예뻐요...”
애를 먹긴 했지. 연두색 카메라를 찾느라.
그리고 성능과 조작법이 간단한지도 체크해서 고른 카메라였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함이 일었다.
연두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찍어바도 대여, 아빠..?”
“응. 근데 뭘 찍으려고?”
“아빠!”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역시나였다.
“그래.”
나는 바로 촬영법을 알려줬다.
이윽고 연두는 카메라를 들고 뒤로 물러섰다.
‘오, 거리감은 괜찮은데?’
평소에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가.
대상과 간격을 벌리는 게 제법이었다.
이 와중에 분석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긴 하지만.
찡긋.
간격을 벌린 채로 카메라에 눈을 대고 찡긋 감은 한쪽 눈.
포즈만 보면 꽤 능숙한 사진가처럼 보인다.
“푸흣.”
이어지는 연두의 말에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는 한 마디였으니까.
“자, 찍습니다!”
사진을 찍기 전 내 멘트를 따라하는 연두의 모습이었다.
내 웃음에도 연두는 꿋꿋이 멘트를 이어나갔다.
“표정은 자연스럽게, 자세는 편하게, 눈은 카메라에 있는 동그라미를 바 주세요..”
“큭큭.”
큰일이다. 도무지 웃음이 주체가 되지 않는다.
이대로 찍으면 엽기적인 사진이 나올 게 분명했다.
짝. 짝.
충격요법까지 동원해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사진가 연두의 말대로 카메라 렌즈를 응시했다.
표정은 자연스럽게, 자세는 편하게.
연두는 카운트다운까지 빼놓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찰칵!
사진을 찍은 연두는 카메라를 들고 곧장 내게 달려왔다.
카메라를 건네받은 나는 곧바로 사진을 확인했다.
자연스레 입 밖으로 한 마디가 나왔다.
“뭐야.”
“으응..?”
“연두 왜 이렇게 잘 찍어?”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찍은 사진이었으니까.
‘물론.’
굳이 지적하자면 꼽을 수 있는 부분은 많았다.
허나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 사진도 일류 사진가가 본다면 지적할 건 넘쳐날 테고.
‘놀라운 건.’
사진에서 이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구도와 배경을 적절하게 잡아서 찍은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미안한 얘기지만 세연씨가 찍은 사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연두는 한껏 뿌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연두 잘 찍어써요..?”
“응, 진짜로.”
“히히.”
연두는 한동안 직접 찍은 내 사진을 바라봤다.
이렇게 연두 카메라의 첫 번째 사진은 내가 차지했다.
***
전부 모습을 드러낸 여섯개의 선물.
연두가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산타할아버지. 고마씁니다..!”
진심이 잔뜩 묻어나는 인사였다.
그러나 연두가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나는 슬쩍 입을 열었다.
“연두야.”
“네, 아빠!”
“아직 안 본 선물이 하나 있는 거 같은데?”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연두는 되물었다.
“어디여..?”
“저기. 카메라 들어있던 선물상자 안에.”
내 말에 연두의 시선이 다시 선물상자로 향했다.
그 안에는 정말 들어있었다.
연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선물이.
‘내가 준비한 선물.’
뒤늦게 발견한 연두는 곧바로 내용물을 꺼내들었다.
그건 다름아닌 직사각형 모양의 봉투였다.
“이게 모지..?”
그렇게 말하며 봉투를 뒤집는 연두.
아무것도 없던 뒷면과는 다른 면이 나타났다.
빨간색 리본 매듭과 뭐라 적혀있는 글씨.
자연스레 연두의 시선은 글씨로 향했다.
“연두에게.”
위에 적힌 글씨를 읽을 때는 아무런 미동도 없는 연두.
그런데 아래에 적힌 글자를 읽을 때는 달랐다.
“산타할아버지가. 어..?”
상기된 표정을 보니 눈치챈 거 같았다.
들고 있는 봉투의 정체가 뭔지.
내가 준비한 진짜 마지막 선물. 일곱 번째 선물.
‘히든 선물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바로 ‘산타할아버지가 연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